The Genius Who Sees Through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80)
천재, 세상을 읽다 천재 세상을 읽다-180화(180/200)
#180화. 음……. 4
오게 될 거다.
그게 누구든 말이다.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가만히 서서 걸어왔던 길을 바라보던 우진은 몸을 돌려 별장으로 향했다.
* * *
우진에게 소식을 알린 차주혁은 잘 손질된 머리를 쓸어 올렸다.
첫 번째 타깃으로 정해진 이정미의 운전기사를 매수했다.
신우진 이사가 왜 첫 번째로 이정미를 택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 회장님의 자식들 중에 가장 활동적인 그녀다.
쉽게 말해 감정이 흐르는 대로 움직이고 말 또한 기분이 내키는 대로 막힘이 없었다.
그런 그녀의 운전기사를 매수해 둔다면 그녀가 뭘 하고, 뭘 생각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런 걸까.
두 번째로 막내 이정혜의 측근까지 눈으로 두었다.
하지만 이정호 대표에게는 접근할 수 없었다.
‘이정호 대표님은 쉽지 않을 거예요. 한 번 떠보고 안 되겠다 싶으면 바로 그만두세요.’
신우진 이사의 말대로 차주혁은 간만 보고 더 이상 건드리지 않았다.
운전기사나 비서 등등의 인물들이 이정호에게 충성심이 얼마나 강한지 씨알도 먹힐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돈 이야기를 까지 꺼냈다면 바로 이정호 대표의 귀에 들어갔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을 매수할 때 같이 이루어졌던 작업.
살이 떨리는 작업이었다.
오너가의 심장부에 들어갔다 나왔으니까.
걸렸다면 지금쯤 SH Strategy에서 쫓겨나가는 것은 둘째 치고 쇠고랑을 차고 있을지도 모른다.
먼지가 탈탈 털리듯 말이다. 아니 없는 죄까지 추가되어 감방에서 노년까지 보내야 할지도 몰랐다.
그때 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부하 직원이었다.
“여보세요.”
-이정호 대표님이 조 실장님을 호출한 것 같습니다.
차주혁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정호 대표가 SH Strategy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조 실장님을 호출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이 회장님의 직속 지시만 받는 조 실장은 오너가의 가족들이라도 감히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인물이었다.
다른 이유도 있었다.
이 회장님이 자식들에게 회초리를 들거나 다그칠 때 조 실장이 움직였다.
그들의 과거의 약점과 치부를 낱낱이 알고 있어 만만히 보지를 못했다.
혹시 그러한 정보도 몰래 숨겨 놓았을지도 몰랐다.
“알았다. 주시하고 있어. 계속 보고 하고.”
-네.
차주혁은 담배를 입에 대며 눈을 감았다.
그리고 픽 하고 웃어버렸다.
상황이 고요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 방에 펑, 하고 터져 지각변동이 일어 날 것만 같이.
과연 어떻게 흘러가게 될까.
담배를 다시 회수한 차주혁은 우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 이사님, 바쁘십니까?”
-잠시 만요.
누구에게 말하는지 신우진 이사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차주혁이 눈을 껌뻑거렸다.
경찰복을 입은 우진을 한 번도 보지 못한 차주혁이었는데, 경찰복을 입고 누구를 어떻게 잡아가는 우진의 모습이 잘 상상이 가지 않았다.
-말씀하세요.
“아, 네. 이정호 대표님이 조 실장님 호출했습니다.”
-드디어 꼬리를 엿봤나 보네요.
이 회장님에게로 가는 꼬리를 말이다.
-이정미 씨는 어떤가요?
“별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혜림 아가씨만 예의 주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정혜 씨는요?
“변호사와 주주들을 만나고 다니고 있습니다.”
-안 탑니까?
“네?”
우진은 차주혁에게 말한 것이 아니었다.
수갑을 채운 사람에게 하는 말이었다.
-안 타면 공무집행 방해로….
다른 남자의 신음소리가 바로 들려왔다.
-억! 알았다! 알았어! 타면 되잖… 억! 경찰이 이래도… 컥!
탁!
차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우진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렸다.
-알겠습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네요. 계속 보고 해주세요.
“네. 들어가십시오.”
통화를 마친 차주혁은 핸드폰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뭐가 자연스럽게 흘러가고 있다는 걸까?
금방이라도 지진이 일어나 땅이 쩍쩍 갈리지고도 남을 것 같은데 말이다.
* * *
이정호의 대표실을 찾은 조 실장이 허리를 굽혔다.
“부르셨습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이정호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조 실장님 바쁘신데 제가 괜히 보자고 한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앉읍시다.”
이정호가 소파에 앉자, 조 실장도 그제야 자리에 앉았다.
“하실 말씀이라는 것이….”
조 실장이 말끝을 흐리자 이정호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우리 조 실장님, 아버님 곁에 몇 년 있으셨죠?”
“20년 째 모시고 있습니다.”
조 실장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벌써 그렇게 됐네요. 아버지를 대신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군요.”
“제가 모시고 싶어서 그런 것뿐입니다.”
그때 비서가 들어 와 차를 내려 두었다.
조 실장이 잠시 찻잔을 바라볼 때, 이정호의 눈에 조 실장이 담겼다.
‘모시고 싶어서 그런 것 뿐이다라….’
찰나에 이정호의 입가에 비웃음이 자라났다가 사라졌다.
그때 조 실장이 입을 열었다.
“혹여 회장님의 행방을 묻고 싶으신 거라면, 시간 낭비를 하고 계시는 겁니다. 저도 백방으로 알아봤지만 계시는 곳이 어딘지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정말 증발하듯 사라져 버렸다.
이혜림을 주시하고 있어도 알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정호의 눈엔 아버지에게로 향하는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에게 겁과 피와, 협박을 주면서 알아낸 것이었다.
이정호가 말했다.
“불안하십니까?”
조 실장의 눈이 무슨 말이냐는 듯 살짝 커졌다.
“그 무슨….”
“생각해 봤습니다.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조 실장님은 어떻게 되실까 하고요.”
“그런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건강에 문제도 없으셨고요. 그리고 도통 생각을 알 수 없는 분이지 않으십니까. 이번에도 그런 일련의 일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물끄러미 조 실장을 쳐다보던 이정호가 사람 좋은 미소를 유지 한 채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소망하는 일이지요. 단지 이 말을 전해드리고 싶어서 뵙자고 한 겁니다. 혹여나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조 실장님은 우리 신화그룹에 수호자로 남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말입니다.”
“차 잘 마셨습니다. 먼저 일어나도 되겠습니까?”
심지가 굳은 조 실장의 그런 말에도 이정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미소를 보였다.
“아무렴요. 바쁘실 텐데, 다음엔 더 좋은 차로 대접해 드리겠습니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난 조 실장이 이정호에게 허리를 숙였다.
“그럼.”
그렇게 조 실장이 밖으로 나가자 이정호가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자신이 방금 했던 말을 떠올렸다.
‘신화그룹의 수호자라….’
낯간지러운 말을 던졌다.
조 실장이 나간 문을 쳐다보고 있던 이정호는 몸을 틀어 창가로 시선을 옮겼다.
수호자는 개뼈다귀 같은 소리다.
아버지 모르게 은밀히 불러도 꿈쩍하지 않고,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다며 움직이지 않던 놈이 왔다.
아버지의 부재를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수호자라… 웃기지도 않는군.”
이정호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그의 눈엔 조 실장은 개처럼 보일 뿐이었다.
똥을 먹어치우는 똥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목걸이를 채워, 조련하면 그뿐이었다.
그렇게 될 거다.
똑. 똑. 똑.
노크 소리에 이정호는 고개도 틀지 않은 채 답했다.
“들어 와.”
곧 깔끔한 슈트 차림의 남성 하나가 허리를 숙였다.
“어떻게 됐어?”
“찾았습니다. 사람 하나 바로 보냈습니다. 위치는….”
“그만.”
그의 말을 끊은 이정호가 두 손을 허리에 걸쳤다.
표정은 전과 다르게 굳어졌다.
“두 말 나오지 않게 확실하게 두둑이 챙겨줘. 아니지. 말도 할 수 없게 목구멍까지 돈 처넣어.”
“알겠습니다.”
* * *
등산객 하나가 산길을 오르고 있었다.
모자를 쓴 그는 약 30대 초중반으로 보였다.
전문 등산가처럼 차려입은 그는 풍경을 구경하며 걸을 법도 했지만 시선을 앞에 둔 채 꼿꼿이 걷기만 하고 있었다.
그러하길 얼마나 지났을까.
산을 등에 업은 운치 있는 별장 하나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의 걸음이 아주 느려졌다.
별장을 곳곳을 확인하듯 고개를 돌리며 움직였다.
그리고 곧, 그의 동공이 확장됐다.
밖으로 나온 이 회장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농사꾼 같은 모자를 쓰고 나온 이 회장은 어린 나무들에게 물을 주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 그의 어깨를 툭 하고 쳐버렸다.
“뭐야?”
그가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틀자 어깨를 부딪쳤던 남자, 우진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제가 핸드폰 좀 보느라….”
“됐으니까 가 봐.”
“죄송합니다.”
한 번 더 그에게 고개를 숙여 보인 우진은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그러면서 중얼거렸다.
“당신을 보낸 거구나.”
모르는 남자였지만, 그는 원하는 것을 발견했다는 듯한 제스처를 보였다. 가까이서 봐서 더 잘 알 수 있었다.
우진은 바로 전화를 걸며 말했다.
“3시 방향. 손님 왔습니다. 모른 척 확인만 해보세요.”
우진의 말에, 별장 앞에 서 있던 핸드폰을 귀에 대고 있던 경호원의 고개가 돌아갔다.
한 등산객이 보였는데 모자를 푹 눌러써 얼굴은 잘 보이진 않지만, 이쪽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시선을 느낄 수가 있었다.
우진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남들 연봉을 제시할 거예요. 아마도 그보다 더한 금액일 겁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눈먼 돈입니다. 받으셔도 돼요.
그렇게 통화는 끊겼고 우진은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경호원도 이내 등산객에겐 관심이 없다는 듯 시선을 회수했다.
그렇게 20분 뒤 이 회장이 별장으로 들어가자, 잠깐 보이지 않았던 등산객이 경호원에게로 다가갔다.
“별장이 그림 같네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말씀 좀 물을 수 있을까요?”
웃고 있는 남성에게 경호원은 당황하지 않고 답했다.
“지리를 묻는 것이라면 저도 잘 모릅니다.”
“그거참 다행이네요.”
남성의 얼굴에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그 후로 시간이 흘러 경호원은 교대를 한 후 커피숍을 찾았다.
경호원이 마주 보고 있는 사람은 아까 그 등산객이었다.
“말씀드렸다시피 가족분들이 이 회장님을 많이 걱정하고 계십니다. 어디에 잘 계시는지 그것만 확인하기 위한 용도입니다. 이 회장님의 휴식을 방해하고 싶지 않으시기도 하고요. 사례는 충분히 해드리겠습니다.”
등산객 차림의 그가 쇼핑백 하나를 경호원의 다리 옆으로 스윽 밀었다.
경호원이 쇼핑백 안을 가린 신문지를 슬쩍 치워봤다.
순간 그의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5만 원권 다발이 얼마나 차곡차곡 쌓여 있는지, 족히 1억은 넘는 것 같았다.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마른침이 넘어갔다.
등산객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도와주시면 잊지 않겠습니다. 가족분들이 많이 걱정하고 계십니다.”
경호원이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정말 그거 하나면 되는 건가요?”
경호원의 입에서 돈에 홀린 듯한 말이 흘러나오자, 등산객이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