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ho Sees Through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91)
천재, 세상을 읽다 천재 세상을 읽다-191화(191/200)
#191화. 하고 싶은 것은 다. 2
푸근한 인상을 짓고 있던 그의 눈이 부릅떠졌다.
동공은 팽창되고 영상을 정지시킨 듯 움직임이 정지됐다.
“스님? 아니, 장춘민 씨, 동공이 팽창한 이유는 더 많은 빛을 흡수해 눈앞의 위험 요소를 판단하기 위함이고, 몸이 경직된 이유는… 그냥 쉽게 말하면 속세에서 뇌 정지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천적을 만나면 죽은 척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죠. 지금 당신 상태가 그래.”
석상처럼 굳어졌던 장춘민의 몸이 움찔거리며 풀렸다.
“처사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지만 오해와 번뇌에….”
우진이 기지개를 켜며 그의 말을 끊었다.
“제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잘 아시는 것 같은데요. 당신의 표정이 말해주고 있어. 못 알아듣는 척하는 거라고. 자, 고양이에게 궁지에 몰린 쥐는 한 가지 선택을 합니다. 물려고 달려들죠. 하지만 당신에겐 두 가지 선택이 있네요. 주변이 나무로 빼곡하게 차 있는 산이라 도망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죠. 그런데 그러지 마세요. 제가 개 코는 아니지만 흔적을 아주 잘 찾거든요. 그럼 방법은 하나.”
우진이 한 손을 그에게 까닥거리며 다시 말했다.
“드루와. 드루와.”
주춤거리던 그가 갑자기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처사님, 본래 사람이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싶어 하고 해서….”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건 내가 좋아하는 말인데 당신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것 같아.”
우진이 그에게 한 발짝 다가갔다.
“두 가지 모두 선택하지 않은 것 같은데….”
우진이 조금 전의 그처럼 합장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제가 들어가겠습니다.”
“자, 잠깐!”
쿠당탕!
우진은 그에게 언제 붙었는지 그의 옷깃을 잡고 엎어뜨려 버렸다.
그리고 주머니에 구겨 놓았던, 살충제를 담았던 비닐로 그의 손을 수갑처럼 결박시켰다.
그 광경에.
“어머머!”
“무슨 일입니까!”
“스님!”
스님들과 사람들이 몰려왔다.
우진은 장춘민을 일으켜 세우며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입니다.”
하지만 뒷말을 중얼거리듯 작았다.
“지금은 아니지만.”
한 스님이 걱정스레 다가왔다.
“처사님! 왜 이러십니까!?”
우진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유력한 용의잡니다. 처음엔 다 그렇습니다. 착하고 예의 바르고 좋은 사람이었다고. 다들 그렇게 말씀하세요. 정말 그런 사람인지 아닌지는 경찰서 가서 조사받아보시면 됩니다. 아무 죄가 없다면 금방 나오실 거예요.”
“전 아니라고 몇 번을 말씀드려야 합니까!”
장춘민은 민머리가 벌겋게 변할 정도로 버럭 소리쳤다.
“아니면 금방 풀려날 겁니다. 가시죠.”
우진이 그의 팔을 잡아끌고 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일반인이나 스님들은 조금 전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할 수도 없었고, 이해하기도 힘들었다.
2년 전 절로 들어온 그가 용의자라니.
여태껏 보여준 차분한 성격과 자애로운 인품.
믿기 힘들었다.
한편, 우진은 자꾸만 멈칫 멈칫거리는 그를 툭툭 밀치며 산에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우진이 어깨나 등을 가볍게 칠 때마다, 그는 참는 듯 눈을 감으며 이렇게 말했다.
“아미타불….”
“어머머.”
우진과 장춘민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은 둘의 모습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때마다 우진은 담담히 경찰이라고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5년 전 아동 성폭행을 벌인 장춘민, 목격자가 있었지만 몽타주가 두루뭉술했고, 아이도 처음 보는 인물이라 수사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우진은 그가 ‘장’ 씨의 성이라 불렸던 걸 알아냈고, 성형을 했다는 사실까지 인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는 세상에서 3년을 숨죽여 지냈고, 시사 프로그램에 자신의 범죄행각이 나오자 더 깊이 숨어들었다.
바로 절로 말이다.
“돌부리 조심하세요.”
우진의 말대로 정말 뾰족하게 돌뿌리가 올라와 있어, 장춘민은 발을 틀어 피해갔다.
하지만.
“허억!”
그의 몸이 갑자기 기울어지더니 내리막을 구르기 시작했다.
우진이 발을 걸어 버렸으니까.
컥, 컥 신음을 내며 구르는 그를 바라보며 우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발도 조심했어야지. 그런데 돌처럼 잘도 굴러가 가네.”
그의 몸이 굴러감에 따라 돌에 치이고 뾰족한 잔가지에 긁혔다.
우진은 그런 광경을 지켜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 표정은 순식간에 바뀌었다.
사람들이 대거 보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아이고! 스님!”
우진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자마자 곧장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달려가 그를 잡았다.
더 구른다면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이유도 섞여 있었다.
“으으으으.”
두 손이 결박당한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겉으로 보아도 생채기가 전신에 가득했고, 눈이 파랗게 멍이 들어있었다.
“괜찮으세요? 아이고 성불하실 뻔 하셨네. 내생(來生)엔 좋은 몸은 아닐 것 같지만.”
장춘민을 일으켜 세운 우진은 다시 쩔뚝거리는 그를 끌고 갔다.
그렇게 우진의 차에 도착했을 때, 장춘민은 눈을 껌뻑거렸다.
경찰차, 또 일반 차도 아닌 빨간색 스포츠카에 우진이 시동을 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 당신. 경찰 아니지? 아니지? 신분증 보여줘 신분증!”
“놓고 왔어요.”
짤막하게 말한 우진은 그를 조수석에 욱여넣고 김태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형사님, 지금 용의자 하나 데려가려고 하는데요.”
-아이고… 또? 우진이 네가 찍은 놈이면 용의자가 아니라 그냥 범인이겠지. 어디야?
“절이요.”
-뭐라고? 절?
“네. 지금 스님 데리고 갈게요.”
-….
“DNA 대조해 보시면 맞아떨어질 거예요.”
-스님?
“네. 짭 스님이랄까요? 산길 내려오다가 발 헛디뎌서 좀 구르셨는데, 갈비뼈하고 다리에 금이 간 것 같아요. 괜찮겠죠?”
-…형사, 검사, 국회의원이 다 네 편인데. 안 괜찮으면 안 되지.
* * *
커피숍에 있는 이혜림은 눈을 깜빡이며 우진을 쳐다보고 있었다.
갑자기 불쑥 연락이 와서 회사 앞이라는 말에 급하게 나온 그녀였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왠지 그런 걸 들키고 싶지가 않았으니까.
“연락도 없고, 어디 다녀온 거야?”
“절에 잠시 들렀었어.”
“108배라도 하고 온 거야?”
“응. 향냄새도 나오고 등불도 그렇고. 평화로웠어.”
우웅- 우웅-
“혜림아, 잠깐만.”
우진은 김태현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이 새끼, DNA 일치하고…
이혜림은 커피를 마시며 통화를 하고 있는 우진을 살짝살짝 훔쳐봤다.
변한 건 없어 보였고… 하긴, 20일이 채 되지 않는 기간에 달라지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이혜림에겐 아주 길게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이내 통화를 마친 우진이 말했다.
“혜림아, 그런데 화장 급하게 했어?”
“응? 평소 같이….”
갑자기 되묻듯이 반응했던 이혜림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화장실 좀.”
우진을 남기고 빠른 걸음으로 화장실로 들어온 이혜림은 바로 거울 앞에 섰다.
자세히 보니 파운데이션이 한쪽은 두텁고, 한쪽은 얇았다.
“아오 씨….”
눈을 꾹 감았던 이혜림이 물을 틀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다시 자리로 돌아온 그녀에게 우진이 말했다.
“화장 지웠네. 역시 혜림이 너는 생얼이 더 예쁜 것 같아.”
피부는 하얗고 눈썹은 짙고 얇다.
콧대도 부드럽게 올라가 있고, 입술도 마치 립글로스를 바른 것처럼 윤기 있었으니까.
“네 말 때문에 지운 거 아니거든.”
“그럴 수 있어.”
“아니라고.”
이혜림이 팔짱을 척 끼우며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혜림아, 잘 지내고 있었어?”
“나야 늘, 뭐 그렇지.”
우진이 슬며시 웃음 지었다.
아직 다 끝난 게 아니다.
신화그룹의 핏줄들이 간간이 복싱처럼 잽을 날릴 테니까.
하지만 이혜림은 그걸 잘 피해내고 있었다.
권력을 이해했고, 시간이 조금 더 흐른다면 크게 휘두르는 주먹에 맞춰 카운터도 날릴 수 있을 것이었다.
이혜림은 아직도 시선을 창밖에 고정한 채로 말했다.
“저녁 뭐 먹을 거야?”
“글쎄……. 자장면이 당기긴 하네. 고춧가루 팍팍 뿌린 자장면.”
“나도 중식이 당기긴 했는데, 일 빨리 마치고 나올게. 같이 먹으면 되겠네.”
그녀의 목소리엔 영혼이 없었다.
다른 생각에 온통 머리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진은 당연히 그녀의 상태를 눈치채고 있었다.
“무슨 생각해?”
“어? 아무것도.”
그녀가 그렇게 말한 것도 잠시였다.
결정을 했는지 백에서 명함을 한 장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 우진에게 밀었다.
“나 네 명함 가지고 있는데?”
“뒤집어 봐.”
이혜림은 다시 창가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벌써부터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만 같았다.
[이혜림 이용권]뒷면을 확인한 우진의 입가가 슬며시 올라갔다.
“이거 나 주는 거야?”
“어, 왜? 싫어?”
“기한은?”
이혜림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쭈욱 들이켰다. 그리고 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했다.
“유치하다고 생각하면 안 돼. 기한은 네가 가지고 있는 동안이야.”
이혜림은 그렇게 말하고도 오글오글거렸다.
“평생 소장가치가 있는 거네.”
“뭐, 그렇지….”
“어떻게 사용하면 되는 거야?”
“뭐… 먹고 싶은 게 있다거나, 곤란한 일이 생긴다거나… 또….”
말끝을 흐린 이혜림은 자신이 말하고도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진은 먹고 싶은 것 먹고, 곤란한 일들은 뒤집어 상황을 역전시켰으니 말이다.
하고 싶은 것도 다 하고 산다.
자신이 필요할까?
그때, 우진이 자신의 지갑에 이혜림의 명함을 꽂으며 안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지갑이 들어있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고마워. 말하면 다 들어 주는 건가?”
“내 선에서 할 수 있을 일이라면 뭐든지. 우진이 너한테 받은 게 많았으니까. 돌려주고 싶어.”
또다시 그녀는 창가로 고개를 돌렸다.
민망해 죽을 것 같았다.
“이 회장님은?”
“다른 별장으로 옮기셨어. 안 그래도 네 이야기 하시더라. 바둑 한판 두러 오라구.”
우진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무래도 이 회장님은 그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낼 확률이 높았다.
우진이 가만히 이혜림을 응시하자, 그녀가 물었다.
“왜? 내 얼굴 또 어디가 이상해?”
“아니. 저번에 이 회장님하고 바둑 둘 때가 생각나서. 그때 내기를 했는데. 이 회장님이 혜림이 너를 언급하시더라구.”
이혜림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를?”
“응.”
“뭐라고 하셨는데?”
“바둑에서 지면, 혜림이 너랑 결혼하라구.”
눈꺼풀을 깜빡거리던 그녀의 동공이 사시나무처럼 흔들렸다.
“하, 할아버지가 나랑 결혼하라고 했다구?”
“응. 내가 이겼지만.”
“할아버지 병세가….”
“아니, 멀쩡하셨어. 지금도 잘 추스르고 노력하고 계시는 것처럼.”
이혜림의 말문이 턱하고 막혀 버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농담하신 거겠지.”
“우리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잘생기고 예쁠 것 같은데.”
“우진아, 너….”
“혜림이 너는 어떻게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