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ho Sees Through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92)
천재, 세상을 읽다 천재 세상을 읽다-192화(192/200)
#192화. 하고 싶은 것은 다. 3
이혜림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우진을 바라봤다.
“지금… 뭐라고 했어?”
멍하게 물었던 그녀가 갑자기 피식 웃었다.
또 장난이다.
“야, 재미없거든?”
우진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왼쪽 손을 테이블에 올려 두었다.
그리고 오래전 이혜림이 선물했던 시계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 시계 말이야. 아주 오래전부터, 받았을 때부터 긁히진 않을까, 깨지진 않을까. 항상 그런 생각하면서 조심했어.”
우진은 시선을 돌려 다시 그녀를 바라봤다.
“이 시계를 그렇게 생각한 것처럼, 혜림이 너도 그렇게 생각했어.”
처음 이혜림을 만났을 때, 그녀를 통해서 자신이 모르는 것들을 얻기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 그녀도 많이 변했고, 자신도 변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자신을 바라보는 이혜림은 언제나 웃고 있었고, 나도 모르게 점점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때 이혜림이 잠시 시선을 떨궜다.
그렇게 1분이 흘렀을까?
다시 고개를 든 그녀가 우진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지금 장난치는 거 아니지?”
“응.”
“지금 이용권 쓰는 거야?”
우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머금었다.
“응.”
그녀가 긴 머리칼을 쓸어 올리며 한숨 같은 긴 숨을 쉬었다.
“하아….”
그러면서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우진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상상조차 못 했지만, 나왔다.
“이용권 쓴다니까 별수 없지. 하자. 결혼.”
“이거.”
우진이 꺼내 든 것은 영화 티켓 두 장이었다.
핸드폰으로 결제를 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고 직접 가서 끊어 왔다.
그러고 싶었으니까.
“너랑 둘이 보고 싶었어. 이 영화.”
로맨스 코미디 영화였다.
“2시간 남았네?”
“응.”
대답한 우진은 품속에서 또 다른 걸 꺼내 들었다.
낡은 수첩이었는데, 우진이 수첩을 삼 분의 이쯤 넘겨 그녀에게 잘 보이도록 내밀었다.
“혜림아 이거 한 번 봐줄래?”
“뭐야 이게?”
곧장 그녀의 두 눈에 우진이 쓴 글귀가 담겨졌다.
[혜림이랑 손잡고 걷기, 혜림이랑 동물원 가기, 혜림이랑 거리에서 아이스크림 먹기, 혜림이랑 놀이기구 타기(바이킹은 패스), 혜림이에게 꽃 선물하기. 혜림이랑 계곡 놀러가기. 혜림이 업어주기, 혜림이랑….]빼곡한 글씨를 읽어 내려가고 있는 그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이상하게 가슴이 벅차오르고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어떤 그 물질적인 선물보다, 또 어떠한 말보다 그녀에겐 감동으로 다가왔다.
이혜림은 얼굴을 천장으로 들어 올려 흐를 것 같은 눈물을 식혔다.
“나랑 이걸 다 해보고 싶다 이거지?”
“응. 연인들이 데이트 즐기는 것처럼 해보고 싶어. 오로지 너랑만.”
그때 이혜림이 가방을 어깨에 걸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벌써? 영화 시작하려면 2시간이나 남았는데.”
“거기까지 걸어가자.”
그렇게 두 사람은 커피숍에서 나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서로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다. 아니 이혜림의 손이 자꾸 움찔움찔거렸다.
그냥 우진의 잡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 어려웠다.
그때였다.
우진의 손이 그녀의 손안으로 스윽 들어왔다.
“네 손, 따뜻하다.”
우진은 그녀와 맞잡을 손을 걸음에 맞춰 앞뒤로 천천히 흔들며 걸어갔다.
둘은 사람들 속에 섞여 있었고, 사람들은 우진과 이혜림이 이제 막 시작된 연인이라는 것을 알 수가 없었다.
당사자들만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더욱 특별했다.
둘의 뒷모습은 각자 달랐지만 마음은 같았다.
그리고 많이도 변해왔다.
“어?”
이혜림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아니 잰걸음으로 다시 방향을 틀어 움직였다.
잠깐 사이에 도착한 곳은 놀이공원에서나 보일 법한 아이스크림을 파는 곳이었다.
“두 개 주세요.”
색색의 아이스크림이 콘 위에 높게 쌓였고 우진과 그녀의 손에 들려졌다.
이혜림이 빙긋 웃으며 아이스크림을 들어 올렸다.
“짠!”
“짠!”
둘은 건배하듯 아이스크림을 부딪쳤다.
아이스크림은 달고 부드러웠다.
둘은 다시 손을 맞잡으며 걸었고, 이혜림의 고개가 우진의 어깨로 떨어졌다.
이 기분을 마음껏 느끼고 싶었다.
마음껏.
* * *
다음 날, 한 줄의 기사가 인터넷에 실렸다.
[최근 보육원에 7억 원의 상당한 기부를 한 사람이 중학생이라는 소식이 전해져 많은 화제를 낳고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번뿐만이 아니라….]그 기사를 작성한 여기자는 학교 정문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듯 서 있었다.
그렇게 10분이 흐르지 않았다.
단발에 웃을 때마다 보조개가 생기는 중학생을 발견한 것이다.
여기자가 얼른 한보라에게 다가왔다.
“한보라 학생, 맞으시죠?”
한보라는 반사적으로 뒤로 주춤거리며 물었다.
“누구세요?”
그녀가 머리를 귓가로 넘기며 친절한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명함을 내밀었다.
[이시연 기자]“기자에요. 최근에 기부를 했다고 들었는데, 그 많은 돈을….”
“저 아닌데요?”
기자가 눈을 깜빡이며 한보라를 훑었다.
예쁘장한 것만 빼놓고 가방이나 신발을 봤을 땐 평범해 보이는 중학생이었다.
기자는 다시 미소를 만들어냈다.
“다 알고 왔어요.”
보육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환한 얼굴로 피자를 먹는 사진과 일치했으니까.
한보라가 다시 주춤거렸다.
불현듯 우진 아저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선한 일을 했을 때, 누군가가 알아주길 바란다면 그건 선한 일이 아니야. 하지만 자연스럽게 세상에 알려진다면 좋은 일이지. 선한 사람은 모범이 되어 어떤 식으로든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거든. 해피 바이러스처럼.’
이 말을 들을 당시 한보라는 자신이 선한 사람이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답은 우진 아저씨가 내려주었다.
‘우리 보라는 선하고 착하지. 남모르게 기부하는 걸 좋아하잖아. 연예인들하고도 다르지.’
그런 연예인들이 있었다.
기부를 하고 알려지는 게 싫었단다.
하지만 후에는 결국 알려지게 되고 인터뷰를 하게 된다.
일종의 이미지 마케팅이다.
하지만 한보라에겐 기부란 차원이 다른 의미였다.
자신의 과거를 생각하고, 정말 그들의 웃음을 보며 행복함을 느꼈다.
“학생이 기부한 거 맞죠?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보라야, 누구셔?”
불쑥 들려 온 목소리에 한보라의 고개가 뒤로 돌아갔다.
모자를 쓰고 흰 티셔츠에 스키니 진을 입은 여성.
오늘 같이 옷을 보러 가자던 이혜림이었다.
“언니!”
한보라가 이혜림의 팔짱을 끼며 찰싹 달라붙었다.
그리고 기자를 바라보며 이혜림에게 귓속말을 속삭였다.
이야기를 전해 들은 이혜림의 눈빛이 나른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기자에게 다가갔다.
“조용히 지내고 싶은 아이에요. 그러니 그냥 돌아가세요.”
“좋은 일은 알려져야….”
이혜림의 하얀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네?”
“남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려서 파리가 달라붙거나 말거나 본인 이익만 취하려는 건 아니고?”
“아니요. 그게 아니라….”
“아직 미성년자야. 사춘기일 수도 있는 나이지. 혹시나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왜곡된 시선을 버틸 수 있는 나이라고 생각해?”
기자가 손을 저었다.
“전 정말 좋은 뜻에서 찾아온 거예요.”
“그럼 그냥 가세요.”
이혜림의 차가운 말투에 기자는 입술을 핥았다.
“뭐, 뜻이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기자는 몸을 돌려 걸어갔다.
이혜림은 가만히 그녀의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했다.
한보라가 이혜림의 곁으로 다가와 엄지를 치켜세웠다.
“언니, 완전 카리스마 있었어요.”
이혜림이 피식 웃었다.
“어째… 보라 너도 점점 우진이 말투 닮아 가는 것 같네?”
“헤헤, 어우야… 이런 거요?”
또 한 번 피식 웃음 지었던 그녀가 물었다.
“아까 기자가 뭐 주던 것 같던데? 뭐 줬어?”
“명함이요.”
“언니 줘 볼래?”
한보라에게 명함을 건네받은 그녀가 핸드폰을 귓가로 가져갔다.
“차 실장님, 저예요.”
그렇게 간단하게 통화를 끝마치고 바로 백화점으로 향했다.
한보라는 신발부터 보기 시작했다.
신발을 아이러니하게도 한두 개 사는 것이 아니라 사이즈가 다르게 몇 개나 사고 있었다.
신발뿐만이 아니라 옷도 그랬다.
영상통화를 하며 상대에게 이건 어떠니, 저건 어떠니 하며 보여주기까지 했다.
보육원 애들을 챙겨 주는 것이었다.
그런 한보라의 모습을 보며 이혜림은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산 것들을 택배로 부쳤다.
“이제 보라 꺼 사러 가자. 언니가 쏜다!”
“명품 안 예쁜데….”
한보라의 눈엔 명품이 이상하게 보였다.
이혜림은 그럴 수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와 어른들의 시선은 언제까지나 다를 수 있었으니까.
평소에도 그랬다.
한보라에게 이거 어떠냐고 물어보면 어색하게 웃곤 했었으니까.
“자기가 마음에 드는 걸 사야지.”
“전 저런 게 예쁜 것 같아요.”
한보라가 다른 매장의 웃옷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보라야.”
“네?”
“저거 명품이야.”
“아아….”
* * *
그 시각.
회사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는 이시연 기자는 자신의 핸드폰을 확인하고 있었다.
핸드폰 화면엔 학교 정문에서 차로 이동하고 있는 이혜림과 한보라의 사진이 담겨있었는데,
“대박….”
이시연 기자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이혜림을 한눈에 알아봤다.
그리고 둘의 모습을 몰래 핸드폰에 담았다.
중학생은 억대의 기부를 하고 있고, 그 중학생이 신화그룹에서 떠오르고 있는 이혜림과 관계가 있다.
어떤 기사보다 흥미진진한 그림이 절로 그려졌다.
“이건 진짜 대박 사건이다.”
그녀는 오늘따라 유독 엘리베이터가 늦게 도착하는 기분이었다.
어서 자신이 대박 하나를 물어 왔다고 사무실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렇게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그녀는 바로 사무실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과장님!”
“귀청 떨어지겄다.”
그녀가 눈에 힘을 주며 말을 꺼냈다.
“대박 사건 하나 물어 왔어요!”
“뭔데? 저번처럼 뭐 헛다리 짚고 이렇게 유난 떠는 거 아니야? 확실한 거야?”
바로 사실무근이라고 정정 기사를 냈으니 말이다.
“이거 보세요.”
그녀가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을 과장에게 보여줬다.
“제가 낸 기사 있잖아요. 몇억 기부한 중학생, 그 중학생이 신화그룹 이혜림하고 뭔가 있는 것 같아요.”
과장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이혜림이 확실해 보였다.
“야 이거….”
그때 내선전화가 울렸다.
“잠깐만.”
과장이 전화를 받았다.
“네. 김경호 과장….”
과장은 말을 잇지 못하고 듣기만 했다. 아니 얼굴도 경직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그가 이시연에게 말했다.
“그 중학생 기사 빨리 내려.”
그녀가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네?”
“빨리 내려. 이혜림 언급도 하지 말고.”
“과장님 무슨 말씀이세요?”
“야 인마. 지금 누구한테 전화 온 줄 알아?”
“과장님 이거 대박 사건….”
그때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그녀가 흠칫 뒤를 돌아봤다.
조금 전 대표실에 들렀던 슈트 차림의 우진이었다.
선보고 후조치 하려던 차주혁에게 연락을 받고 우진이 직접 움직인 것이었다.
다름 아닌 자신의 사람, 한보라에 관한 일이었으니까.
이곳을 방문한 목적은 단 하나.
“누구…?”
그녀의 물음에 무표정한 우진이 입을 열었다.
“펜대를 꺾어야 말을 들으실까. 아니면 모가지가 날아가야 말을 들으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