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ho Sees Through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96)
천재, 세상을 읽다 천재 세상을 읽다-196화(196/200)
#196화. 하고 싶은 것은 다. 7
우진은 이혜림을 떠올리며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지금 이 시간, 이 시점에 나라는 사람은 아주 심플하고도 간단하다.
“이정철 대표님의 따님, 이혜림과 결혼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이정철 대표는 우진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저런 대답을 원하는 건 아니었지만, 성주 엔니지어링에서 연락이 왔을 때 적잖게 놀랐었다.
갑자기 함께 잘해보고 싶다고 감사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마음을 바꾼 이유를 물어보니 그쪽에서 당황스러운 대답이 들려왔다.
‘신우진 이사님이라고, 사람 보내셨지 않습니까?’
어이가 없었다.
그림의 떡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미련을 점차 버리고 있었는데, 딸과 결혼하고 싶다는 놈이 그림에 손을 집어넣어 떡을 빼낸 격이었다.
이정철이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툭툭 두드렸다.
이력을 봤지만 그건 둘째다.
현재가 중요하다.
아버지가 녀석이 이런 모습을 보고 결혼을 승낙하신 것일까.
아버지의 눈을 못 믿는 건 아니었지만 확인하고 싶어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줬다.
그 시간 내에 감언이설을 했던 어떻게 구워삶았는지도 중요치 않다.
결과가 만들어졌으니까.
툭. 툭.
테이블을 두드리던 이정철의 손가락이 멈췄다.
그때 우진이 말을 꺼냈다.
“혜림이 고운 손, 물 많이 묻히지 않게 고무장갑은 항상 넉넉히 쟁여 놓고 있겠습니다.”
항상 무표정이 트레이드 마크였던 이정철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뭐라고?”
“허락해 주십시오!”
“집안일은 사람을 시키면 될 것이고….”
이정철은 말끝을 흐렸다.
이런 말을 생전 처음 해 보는데, 자신이 지금 왜 이런 말을….
뭔가 녀석에게 말리는 기분이 느끼는 느낌이 들었는데, 그때 우진이 입을 열었다.
“승낙해 주시는 건가요?”
이정철이 잠깐 말없이 응시하자 우진이 넙죽 엎드렸다.
“허락해 주십시오!”
이정철은 이번에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해왔으면서 저런 모습을 보아 하면, 맹해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일어나.”
“네!”
벌떡 일어난 우진이 두 손을 공손하게 모았다.
훤칠한 키에 순해 보이는 잘생긴 얼굴.
아버지의 눈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그리고 자신의 시험을 검증하듯 일도 신속하게 처리했다.
그런데 도통 속을 읽히지가 않는다.
딸아이를 좋아하는 건 확실한 것 같은데….
“술, 좋아하나?”
우진은 올 게 왔다고 생각했다.
“못 먹지는 않습니다.”
이정철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에 뭔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걸 뜯어 우진에게 내밀었다.
우진은 이정철에게 다가가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혜림이와 결혼하면 제가 지켜야 하는 것들인가요?”
이정철은 다시 별 이상한 놈 다 보겠다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7시까지 이리로 와. 혼자.”
종이에 적힌 것은 주소였다.
“알겠습니다.”
“나가 봐.”
“이따 찾아뵙겠습니다.”
이정철에게 고개를 숙인 우진은 그대로 대표실을 빠져나갔다.
이정철은 우진이 나간 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골 때리는 놈이네.”
자신의 골을 말이다.
* * *
커피숍에 앉아 있는 이혜림의 몸은, 맞은편에 앉아 있는 우진에게 기울어져 있었다.
“뭐라셔? 응? 뭐라셨어?”
궁금해 미치겠다는 표정이었다.
카라멜 마끼야또 한 모금을 마신 우진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진의 입가엔 거품이 묻었고, 얼굴이 진지한 모습은 참 이상하게 잘 어울렸다.
우진스럽기 때문이었다.
“마지막 미션을 받은 것 같아.”
이혜림은 거품이 묻은 우진의 입가를 엄지로 닦아내며 입을 열었다.
“미션? 무슨 미션? 아니 또 다른 일 해결하래?”
하얀 미간이 살짝 구겨진 그녀는 아빠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성주 엔지니어링에서 개발 중인 MCU를 신화그룹의 자동차에 달게 된다면, 타 기업에 뒤처져 수출 2등이란 명성을 갈아엎으며 새롭게 역사를 만들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또 미션?
우진에게 기대감이 높은 것일까.
아니면 시험대에 계속 올려놓는 것일까.
이혜림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우리 그냥 갖고 있는 거 다 정리하고 둘이서만 결혼할까?”
우진은 슬며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축복받아야지. 나는 혜림이 네가 예쁜 드레스 입고 많은 사람에게 축하받았으면 좋겠어.”
우진에게 몸을 기울고 있던 그녀가 다시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그리고 환하게 웃었다.
“이래서, 널 안 좋아할 수가 없어.”
“아버님이 술 한 잔 하자셔.”
“술?”
“응. 최종 미션인 것 같아.”
혜림이가 눈을 살포시 감았다.
“우리 아빠는 안 그러실 줄 알았는데.”
대한민국에서 딸을 가진 아버지들의 전통인지, 사윗감을 데려오면 술을 주구장창 마시게 하는 경우가 있다고 종종 듣곤 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 살아서 돌아올게.”
이혜림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는 안 가고?”
“응, 혼자 오래.”
그녀가 다시 의자에 털썩 등을 기대었다.
“대체 무슨 말씀을 하려고. 우진아, 혹시 아빠가 이상한 말 하면….”
“혜림아, 괜찮아. 귀한 딸을 아무한테나 시집보내고 싶어 하지 않으시는 마음, 당연하다고 생각해.”
이혜림은 말없이 우진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누구 남자친구인지, 얼굴같이 마음도 예쁘다.
우진이 테이블 위로 손을 스윽 내밀었다.
이혜림도 손을 내밀어 우진의 손을 잡았다.
우진이 슬쩍 미소지으며 말했다.
“따뜻하다.”
* * *
택시를 타고 이동하고 있는 우진은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도 기상청은 틀렸네.”
비가 쏟아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윽고 목적지에 도착한 우진은 차에서 내려, [은혜상회]라는 곳으로 들어갔다.
테이블이 3개밖에 없는 작은 고깃집이었다.
“어서 오세요. 비가 많이 오죠?”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그가 넉넉한 미소로 우진을 반겼다. 그 혼자 운영하는 가게 같았다.
“안녕하세요. 한 사람 더 올 건데. 주문은 조금 이따가 해도 될까요?”
“아이고 그럼요. 편하게 기다리세요. 편하게.”
자리에 앉은 우진은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 시간까지 10분이 남았다.
그때, 미닫이문이 드르륵 열리며 이정철 대표가 들어왔다.
“오셨어요?”
우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고개를 끄덕이던 이정철이 고개를 돌려 주방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말했다.
“형님, 저 왔습니다.”
주방에서 나온 주인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인제 그만 오라니까.”
“제 마음입니다.”
사장이 고개를 저으며 테이블을 눈짓했다.
“앉아, 오늘 항정살이 아주 좋아.”
“소주도 하나 주시고요.”
이정철은 바로 우진과 마주하며 앉았다.
“고기 좋아하나?”
“없어서 못 먹습니다.”
이정철이 피식 웃었고 주인이 잘린 당근과 오이, 그리고 소주를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물었다.
“누구셔?”
우진을 말한 것이었다.
“놀라지 마세요. 혜림이가 결혼하고 싶다는 녀석입니다.”
주인의 눈이 급하게 커졌다.
그의 이름은 조우찬, 이혜림 엄마의 오빠였다.
그러니까 이혜림의 삼촌인 셈이었다.
이정철은 이렇게 세상을 떠난 아내의 오빠를 종종 찾아오곤 했다.
이곳에 있으면 아내가 웃으며 자신을 반겨주는 것 같기도 했고, 다시 돌아가고 싶은 그 날의 내음이 은은히 풍겨오는 것만 같았다.
“이야…. 잘생겼네! 내 잔 한잔 받아요!”
우진을 순간적으로 뜯어보던 조우찬이 소주병을 우진에게 내밀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우진은 그에게 술잔을 조심스럽게 내밀었다.
“신우진이라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우진이 몸을 틀어 술을 훌쩍 마셨다.
그사이 판단은 끝났다.
자신에게 보이는 그의 반응을 말이다.
가게 주인은 이혜림과 눈이 비슷하게 닮았기도 했다.
그의 눈은 소처럼 생겼다면 이혜림의 눈매는 사슴이다.
이곳에 데려오고, 그의 반응을 종합해 보자면 핏줄일 확률이 아주 높았다.
“나도 한 잔 주세요.”
우진이 술을 따라주자 그가 단번에 술을 입으로 털어 넣었다.
“아아, 내 정신 좀 봐라. 고기 금방 내올게요. 조금만 기다려요. 조금만.”
조우찬이 주방으로 몸을 틀었다.
그는 이혜림이 어렸을 적부터 연락을 거의 끊다시피 조카를 멀리했다.
이런 곳에서 일하면서, 조카와 만나고 연락하다 보면 신화그룹의 집안에서 혜림이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구박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났다고, 조우찬은 이혜림이 고기 냄새나 배는 이곳보다 신화그룹에서 행복하기를 바랐다.
이정철이 말없이 술병을 내밀었고 우진은 공손히 술을 받았다.
이정철은 우진에게 술을 받지 않고 자작처럼 본인의 잔에 술을 채웠다.
그리고 말없이 훌쩍 술을 넘겼다.
우진도 이정철에게 맞추어 술을 마셨다.
이렇게 제대로 된 안주도 없이 술을 먹이는 이유는 우진은 잘 알고 있었다.
술버릇이나 평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점점 취기가 오르고 거기서 더 취하면 사람은 이성이 마비되고 본능이 나오게 된다.
즉, 살아오면서 설계된 자신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노출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진은 살짝 고민되는 것이 있었다.
자신의 몸에서 잠들어 있는 무의식, 컨트롤할 수 있다지만 취하고, 더 취하게 된다면 녀석이 뛰쳐나올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이 취하게 되는 게 아니라, 여기 있는 두 사람이 인사불성처럼 널브러질 수도 있다.
무의식은 분명 그럴 것이다.
바지에 용변을 보게 할 정도로 상대를 취하게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녀석은 아주 작은 것에도 승부욕이 강한 놈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런 걱정거리를 한 번에 날려 버릴 방법이 있었다.
그렇게 조우찬이 가져온 고기가 익지도 않았는데 우진은 2병을 마시게 되었다.
고기를 굽던 조우찬이 항정살을 먹기 좋게 잘라 우진의 앞접시에 올려 두었다.
“한 번 드셔 봐.”
“감사합니다.”
항정살을 우물거리던 우진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러면서 조우찬을 바라봤다.
우진의 놀란 얼굴에 조우찬이 씨익 웃었다.
“어때? 맛이 괜찮죠?”
“샷다 내리고 싶은 맛… 이네요.”
“어?”
우진이 말이 무슨 말인지 눈을 껌벅거리던 조우찬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 그렇지! 귀한 손님이 왔는데 샷다 내려야지!”
조우찬은 정말 간판불을 꺼버리고 ‘Close’라는 푯말을 달았다.
그리고 금세 돌아와 우진의 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술 진짜 잘 마시네. 자자, 한 잔 더 해요.”
조우찬과 우진의 잔이 부딪쳤고, 이정철은 가만히 우진을 지켜보기만 했다.
정말 술을 잘 마시는지, 3병째가 다 되어 가는데 눈이 처지거나 혀 또한 꼬이지 않았다.
‘샷다 내리고 싶은 맛… 이네요.’
아니, 이상한 말을 하는 거 보니 슬슬 취해가고 있는 것인가? 일부러 그러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정철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조우찬은 우진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직업이 뭐냐, 가족분들은 무얼 하시냐, 우진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내려는 듯 꼬치꼬치 다 물었다.
“자자, 짠 하자고 짠. 정철이 너도 목석처럼 있지만 말고 한잔해.”
“네.”
셋의 잔이 또 부딪쳤다.
우진은 이번에도 망설이지 않고 술을 넘겼다.
그런데.
털썩.
우진의 상체가 테이블에 내리꽂듯이 떨어졌다.
1초간의 짧은 정적.
눈을 부릅뜨고 있던 두 사람 중 조우찬이 벌떡 일어났다.
“괘, 괜찮아!? 이봐!”
흔들고 일으켜 세우려고 해봐도 우진의 몸은 축 늘어졌다.
“신우진! 정신 좀 차려!”
아무리 불러보고 깨워도 우진의 눈은 떠질 줄을 몰랐다.
멀쩡한 상태에서 쓰러져 버린 우진의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조우찬이 119를 부르려 카운터로 빠르게 이동했고, 이정철이 우진을 둘러업으며 출입문으로 향했다.
“제 차가 더 빠를 겁니다.”
기사가 대기 하고 있었다.
조우찬이 빠르게 미닫이문을 열었다.
우진을 업고 나오는 모습에 기사가 차에서 내려 빠르게 다가왔다.
이정철이 말했다.
“신호 다 무시하고 병원으로. 빨리.”
“네.”
순간.
“아빠!”
낯익은 음성, 이정철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딸, 이혜림이 달려오고 있었다.
“우, 우진아!?”
“네가 여길 어떻게….”
“어떻게 된 거예요! 우진아? 괜찮아? 우진아?”
“혜, 혜림아. 그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