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ho Sees Through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54)
천재, 세상을 읽다 천재 세상을 읽다-54화(54/200)
#54화. 놀이터. 5
“네. 꽤 괜찮은 사업이 될 거예요.”
우진은 처음 제시카와 통화를 하면서 전화번호를 외워버렸다.
그리고 남들 모르게 그녀에게 전화해 몇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미국 국적의 그녀는 인도네시아에서 주재원으로 있었고, 회사내 위치도 높았다.
우진은 자신이 산업 스파이처럼 느낄 수 있도록 뉘앙스를 던졌다.
혼자 LED 농법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하면 그녀의 관심을 끌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일개 개인이 추진하는 일이 아니라, 대기업이 추진하는 일이라는 뉘앙스.
우진은 아주 간단한 심리를 이용한 것이었다.
그리고 절대 신화상사가 추진하는 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비밀스럽게 말했을 뿐이고, 더 빨리 추진해야 한다고 이야기 했을 뿐이었다.
밑밥을 뿌려 그녀 멋대로 생각하도록 내버려 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맞춰주면 되었다.
-어떻게 흙과 토양의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키울 수 있다는 말이죠?
“전구를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다른 조건들은 모두 기계가 담당하죠.”
-아…….
그녀가 바로 이해하자 우진이 말을 이었다.
“중동의 고급 호텔이나 레스토랑에 먼저 유통을 시작할 거예요. 일종의 마케팅이죠. 농약과 병충이 있을 수 없는 잘 관리된 질 좋은 채소. 고급화로 먼저 알리고…….”
우진은 빨리 진출해 중동을 선점해야 한야한다는 점을 어필했다.
제시카의 우려스러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당신, 이래도 괜찮겠어요?
마치 산업스파이 짓을 해도 별 탈이 없겠냐는 듯한 물음이었다.
“네. 상관없습니다.”
-샘플이나 사진을 볼 수 있나요?
“지금은 힘듭니다. 당신이 한국으로 올 때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제시카는 최종 미팅으로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그때가 되면, 완벽하게 완공이 되어 있을 것이었다.
-와우, 기대하고 있을 게요.
“이제 우린 파트너가 된 건가요?”
-그럴 확률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궁금한 점이 생기면 언제든 이 번호로 연락해 주세요.”
-그럴게요. 거긴 밤이죠? 편안한 밤 보내세요.
통화를 마친 우진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사업의 최종적인 목표는 번창이었다.
자신은 그 수순에 따르고 있고, 아주 자연스러운 반응과 흐름이라 생각 됐다.
이 사업이 잘된다면 정부도 밀어줄 것이다.
수출 사업이고 기업이 커져야 세금도 많이 걷어 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패스트 푸드가 만들어질 것이다.
*
파란색 대문이 덜컹거리며 녹가루를 뱉었다.
“누구세요?”
한보라의 말에 배달원이 말했다.
“우유 배달이요.”
그의 인기척이 사라지자 한보라가 대문을 열고 주머니에서 우유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주방에 있는 할머니에게 쪼로로 들려갔다.
“할머니, 이거 얼마 주고 사는 거예요?”
우진이 일기처럼 가계부를 쓰라는 것을 지키기 위한 행동이었다.
“응? 그거? 주민센터에서 지원해 주는 거야.”
“지원이요?”
할머니가 자글자글한 미소를 지으며 한보라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리 착한 보라 먹으라고 공짜로 주는 거지.”
한보라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고사리 같은 손으로 쥐고 있는 우유를 바라봤다.
돈이라는 숫자를 사용하지도 않고 우유를 얻었다.
이걸 수입이라고 해야 할까.
한보라는 아니라고 결정을 내렸다.
숫자를 쓰지 않고 얻었으니, 수입과 지출 어느 칸에도 적어 넣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순간, 한보라의 머릿속으로 우진이 떠올랐다.
‘수입은 말이지…….’
*
“홍보 마케팅 다녀오겠습니다.”
우진의 말에 이 과장이 친숙한 아저씨의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어어, 다녀 와.”
우진이 사라지자 임 대리가 말했다.
“쟤는 보면 볼수록 남들이랑 사고방식이 다른 것 같아요. 엉뚱할 때도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기계 같기도 하고, 어떨 때는…….”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이 과장이 그의 말을 끊었다.
“괜히 수능 만점 받았겠어? 내 아들이 알아서 공부하게 만든 것도 그래. 내가 예전에 책을 천 권 정도 읽은 사람을 만난 적 있거든? 대화가 안 통해. 비상해. 왜 그런 말 있잖아? 천재들은 이상하게 행동한다고.”
그때 임시원의 뒤에 있던 대리가 말했다.
“그럼 난 천재인가.”
“뭔 헛소리야?”
“매일 같이 소맥의 비율을 찾으려 정진하는 사람이니까 말이야. 남다른 행동이지.”
임 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네. 매일같이 남들보다 몸을 빠르게 망가트리려고 연구하는 놈이니까.”
그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네. 경영지원팀 임시원 대립니다.”
-영업 4팀 강 대린데요. 신우진 인턴 자리에 있나요?
“아니요. 비품 전달하러 갔는데, 왜 그러시죠?”
-아……. 그게 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임 대리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알겠습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임 대리가 이 과장을 바라봤다.
“이 과장님, 영업 4팀에서 우진이 또 부르는데요?”
“왜? 또 바이어가 우진이 찾는데?”
“아니요. 영업 4팀 부장님 호출이래요.”
이 과장이 어이없다는 듯 껄껄 웃었다.
자신과도 그랬고, 상급자와 계속해서 얽힌다.
이게 과연 인턴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우진이 돌아오자 임 대리가 말했다.
“우진 씨, 영업 4팀, 심 부장님이 찾아. 올라가 봐.”
“네? 할 일이 태산인데요?”
우진의 말에 다들 헛웃음을 지었다.
인턴이라는 신분에서 저게 나올 법한 말인가?
다른 인턴이었다면 얼굴을 굳히며 초초해 하거나 벌벌 떨었을 것이다.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나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우진은 정반대였다.
저 모습은 꼭 일도 많은데 귀찮게 왜 부르냐는 듯한 표정이다.
부장이 부르는데 말이다.
“급한 건 내가 처리 할 테니까, 어서 가봐.”
“알겠습니다.”
영업 4팀에 도착한 우진은, 자신을 바라보는 직원들의 얼굴과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
여러 가지 감정들이었지만 종합적으로 판단을 내린다면 눈치를 보고 있었다.
“우진 씨 왔어요?”
“마실 거라도 한 잔 줄까?”
“안녕하십니까. 괜찮습니다. 심 부장님이 찾으신다고 들었습니다.”
인턴 백지현의 담당인 강 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어서 가보세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건넨 우진은 바로 부장실로 향했다.
그리고 노크를 한 후에 안으로 들어갔다.
부장실은 심플했다.
소파, 책장, 그리고 창문들은 개방감을 주어 가슴을 탁 트이게 했다.
우진은 명패 뒤로 앉아 있는 심 부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경영지원팀 인턴, 신우진이라고 합니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우진은 심 부장의 얼굴을 찰나에 읽어내려갔다.
나를 궁금해 하는 눈빛있지만 다문 입술의 입꼬리는 살짝 밑으로 내려가 있다.
그가 가벼운 목소리로 우진에게 자리를 권했다.
“거기 앉아.”
PC 뒤 부장이 일어서자 우진은 소파에 앉았다.
소파로 걸어오는 심 부장이 재미있다는 미소를 지었다.
‘사회생활도 못하는 이런 햇병아리를 바이어가 마음에 들어 했다고?’
보통 부하직원이 자신이 먼저 앉기 전에는 일어서 있는 것이 예의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진의 입장은 달랐다.
순진한 척 의외성을 두어야, 심 부장이 자신을 생각하는 틀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심 부장이 소파에 앉았을 때, 우진이 말을 꺼냈다.
“심 부장님, 난이 참 예쁩니다. 마음의 여유가 있으신 분들이 많이들 키운다고 하던데, 대부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 게 아쉬운 것 같습니다. 먹고 살기 바쁘니까요.”
아부성 멘트로 들리지 않도록 우회에 들어가는, 현실에 입감해 줄 수 있는 프레임을 씌우면.
살짝 아래로 향해 있었던 심 부장의 입꼬리가 이제는 위로 올라간다.
광대의 근육까지 말이다.
“사람마다 다 자기 자리가 있기 마련이지.”
자신을 드높인다.
“맞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심 부장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원래부터 제시카랑은 아는 사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되고,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아닙니다. 업무를 지원할 겸 통화만 했을 뿐입니다.”
심 부장이 깍지를 끼며 우진에게 몸을 살짝 기울였다.
이런 모습은 상대방의 시선을 더욱 잡아끌어, 자신의 말을 집중하게 만든 효과를 가져온다.
또 다르게 말하자면 좋아하는 이성이 상대에게 무의식적으로 하는 행동이었다.
심 부장에겐 호기심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드문 일이지만 막무가내로 나오는 바이어가 있긴 하지. 영업 팀에서 전화를 받았을 때, 사적인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던 건가? 뭔가 있었으니 제시카가 자네를 지목 했겠지.”
“네. 목소리가 좋다고 말했습니다.”
“그게 단가?”
우진은 부장까지 옭아맬 수 있다고 판단했다.
“네. 여성과 남성의 감정선은 완전히 달라서, 때에 따른 칭찬은 강력한 효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요즘 피부관리를 받으시네요. 양복과 넥타이는 항상 사모님이 골라주시고, 하지만 타이 핀은 심 부장님께서 기분따라 착용하시네요. 심 부장님은 평소 구두는 행운의 부적처럼 생각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 신화상사에 입사할 때부터 신고 계셨던 것인가요?”
심 부장의 동공이 급격하게 커졌다.
이는 어두운 시야를 밝히려는 반사적인 반응인데, 놀랐을 때도 많이 나타난다.
뿐만이 아니라 심 부장은 솜털이 쭈볏서며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지금 신고 있는 구두는 입사 할 때부터 구매해 이제까지 수선을 하면서 고쳐 신었기 때문이었다.
이 자리에 올라 올 수 있게 된 성공의 부적처럼 말이다.
용한 무당을 보는 듯한 심 부장의 모습에 우진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고 대응했을 뿐입니다.”
“호, 혹시 신끼……. 그런 건가?”
“아닙니다.”
“가족분들 중에 무당이…….”
“심 부장님, 아닙니다. 제가 심 부장님에게서 본 것을 말씀드린 것 뿐입니다.”
심 부장은 체면을 차리려는 생각과는 반대로 자신의 몸을 힐끔힐끔 살폈다.
이윽고 놀란 표정을 숨기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특별한 재주를 가지고 있나 보군그래.”
“아닙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심 부장은 미팅 자리에 무조건 우진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바이어가 우진을 지목한 것이 이해가 돼버렸다.
그래서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상대의 패를 먼저 읽고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크면 클수록 좋다.
“미팅 자리에 참석해 줄 수 없겠나?”
우진은 곤란하다는 듯한 표정을 만들어냈다.
“들으셨을지 모르겠지만, 그땐 학생의 신분입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해서…….”
“혹시 원하는 게 있나?”
“없…….”
심 부장은 우진이 결정을 짓지 않도록 말을 끊었다.
“아니, 지금 말고 나중에 말해줘. 시간은 충분하니까. 그럼 나가보게.”
심 부장은 우진이 나간 문을 가만히 바라봤다.
체면 때문에 놀라지 못했던 표정을 지금은 마음껏 짓고 있었다.
바이어가 원하고, 또 바이어의 기분을 맞춰주고, 어쩌면 바이어의 패까지 읽을 수 있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심 부장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수화기를 잡았다.
“난데. 우리 이번 분기 예산 얼마나 되지? 협상 지출로 최대 얼마까지 가능한지 알아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