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ho Sees Through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58)
천재, 세상을 읽다 천재 세상을 읽다-58화(58/200)
#58화. 놀이터. 9
김태현은 거실로 들어가는 우진에게 바짝 붙었다.
그리고 속삭이듯 말했다.
“면식범이라는 확률이 높다는 거지?”
“이제 알아보면 될 것 같아요.”
김태현은 우진의 말을 이해하려 머릿속을 다시 정리했다.
토막 낸 사체를 아이스박스에 보존하고, 관절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처럼 토막 냈다.
하지만 절단된 면을 살펴보며 전문가의 솜씨는 아니다.
실밥을 일부러 흘려 놓을 가능성도 크다.
범인은 키가 작거나 운동신경이 낮은 사람으로 추정.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정육점 사장이 용의자가 되도록 액션을 취했다.
수상한 차량의 행선지는 약 3시간이면 나온다.
차량을 찾는다면 우진의 말은 신뢰도가 더 높아진다.
아니, 김태현은 우진이 실수를 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윽고 우진은 물을 들이켜고 있는 종혁 아버지에게 다가갔다.
밖은 사람들의 웅성거림으로 난리가 났고, 과수대는 집 안으로도 들어와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우진의 목소리는 다른 장소에 있는 사람처럼 너무나도 담담했다.
우진이 입을 열었다.
“종혁 아버님. 당뇨로 인한 합병증이 오신 것 같은데, 물을 많이 마시게 되면 신장에 부담이 갈 수 있습니다. 물보단 호흡을 가다듬는 것이 좋습니다.”
우진의 말에 최기철은 계속해서 속으로 놀라기만 할 뿐이었다.
도대체 저런 걸 어떻게 알고 있을까? 근처에 약봉지라도 본 것일까?
그때 물컵을 내려놓은 종훈 아버지가 말했다.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빨리 그 백정새 끼 잡아주세요! 우리 종혁이를…….”
“중요합니다. 아버님이 도움을 주셔야 범인을 빠르게 잡을 수 있어요. 사업이 잘되셨던 것 같은데, 안타까운 말이지만 무너지셨군요. 이유가 뭘까요?”
“사업 말아 먹는 사람이 어디 한둘 이겠습니까! 지금 사업이랑 우리 아들이……크흑! 흑!”
그는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얼굴에 두 손을 파묻었다.
그때 최기철이 우진의 팔을 조심스럽게 잡아끌며 속삭였다.
“우진아, 우리도 살인사건이 나면 가족들도 용의 선상에 올리고 수사하는데, 지금은 너무 몰아붙이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
우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최기철 형사님은 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종혁 아버지로부터 감정전이가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다시 감정을 추스를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알겠어요.”
우진은 말과는 다르게 눈물을 훔치고 있는 종혁 아버지에게 다시 물었다.
“아드님의 머리에 좌상이 있습니다. 자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둔탁하지만 뾰족한 그 무언가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범인은 끔찍하게 토막을 내 이리로 가져왔습니다. 실종 이틀 만에 말이죠.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엄청난 원한 관계가 아니라면 이런 끔찍한 일을 벌 일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업에 대해 여쭈어본 거예요. 과연, 합의를 본 정육점 사장님이 그런 마음을 먹었을까요? 딸이 성폭행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합의로 넘어간 사람입니다. 그런 아버집니다. 그런 사람이 박종혁 군을 살해하고 종혁 아버님께 끔찍한 시체를 보여줄 만큼, 그런 원한을 품고 있었을까요?”
최기철이 눈을 껌벅였다.
듣고 보니 그렇다.
만약 자신의 딸이 그런 일을 당했다면 합의고 뭐고 없었을 것 같았다.
딸을 성폭행해서 가해자를 죽인 아버지도 있었으니 말이다.
우진이 다시 말을 꺼냈다.
“그럴 수 있기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범인은 아버님께 원한이 아주 큰 인물일 가능성이 큽니다.”
종혁 아버지가 머리를 쓸어 올렸다.
“생각해 보겠습니다. 생각…….”
그의 생각하는 모습에 우진은 다시 거실을 둘러봤다.
TV 다이에 지갑이 보였는데, 우진은 지갑을 펼쳐 내용물을 슬쩍 확인했다.
그리고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지갑에 꽂혀 있었던 명함에 적힌 이름이었다.
세상은 참 편리해졌다.
이렇게 남의 욕망을 쉽게 엿볼 수 있는 시대가 도래했다.
흔히 기레기라고 불리는 자들은 남의 불행을 좋아한다.
자신들에겐 돈이 되기 때문이다.
[P&T Solution]P&T Solution의 기사가 몇 개 떴는데, 4년 전 기사가 가장 눈에 띄였다.
미용실 용품을 제작해 판매하는 사업이었다.
-불매 운동이 일어나는 가운데 매출이 급격하게 감소하면서…….
우진은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렸다.
종혁 아버지의 입에서 어떤 말이 흘러나올지 예측이 됐다.
이제 범인은 두 사람으로 선명하게 좁혀졌다.
우진은 종혁 아버지가 충분히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말을 걸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주변에 시선을 뿌릴 뿐이었다.
이윽고 과수대가 아이스박스를 조심스럽게 옮겨가는 광경에, 종혁 아버지의 얼굴에 눈물이 쭉쭉 그어졌다.
* * *
주변 정리가 끝나가 무렵 종혁 아버지의 입이 열렸다.
“우리 종혁이가……. 성폭행, 아니 전 정말 애들끼리 합의 하에 성관계를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김태현이 그의 기분을 맞춰주듯 고개를 끄덕였다.
“4년 전에, 성폭행 사건에 연루된 적이 있었는데, 우리 회사 직원의 딸이었습니다.”
우진이 말했다.
“조용히 합의가 이루어졌겠군요. 기업 이미지에 타격이 갈 테니까요.”
“네. 딸아이 아빠 승진도 시켜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어린 애들이 실수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 정도 보상이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또 한 번…….”
“정육점 딸이었겠군요.”
“네. 미용실 용품은 이미지가 생명인데, 소문이 돌아 문을 닫게 됐습니다. 잘 돼 가던 사업인데 기레기 새끼들 때문에…….”
종혁 아버지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테이블에 시선을 고정했다.
우진은 그의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회사가 문을 닫게 되고 얼마 후, 승진을 약속했던 직원의 딸아이가 자살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자살한 딸아이 아빠가 앙갚음하려고…….”
“그분 성함 기억 하시겠어요? 딸이라도요.”
종혁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4년 전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우진은 거실을 구경하듯 천천히 걸으며 말을 이었다.
“종혁 아버님? 산책 좋아하시죠?”
“네. 건강을 생각해서 동네 몇 바퀴 돌곤 하죠.”
“좁은 동네지만 종혁 아버님의 성격을 고려해 보면 이웃 주민들이랑 친하시진 않으실 테고, 여기에 정착한 지는 얼마나 되셨어요?”
“1년 정도 된 것 같습니다.”
“그럼 1년 동안 이사 온 이웃 주민은 없었나요? 용의자의 확률이 아주 높거든요. 수상한 사람이나, 지리를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미간을 좁히던 그가 고개를 저었다.
“없는 것 같습니다.”
우진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이렇게 생각해 볼까요? 직원이었던,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 사람이 종혁 아버님과 종혁 군에게 원한을 품고 정육점 사장님을 이용한 겁니다. 모든 정황을 정육점 사장님이 범인이라고 초점을 맞춘 거죠.”
그의 눈이 부릅떠졌다.
“그런 계획이…….”
살짝 틀어진 상패를 바라보는 우진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반대로 자로 잰 듯이 놓인 물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수사망에서 제외됩니다. 이곳의 지리를 눈감고도 파악할 수 있을 정도여야 하기 때문인데, 여기로 이사 오거나, 수십 번의 답사가 이루어졌어야 합니다. 그런데 산책을 좋아하는 종혁 아버님과 마주친 적이 없습니다. 수상한 사람을 본 적 없다고 말씀하셨죠?”
얼굴을 가렸어도 사람은 자신의 해가 되는 사람을 본능적으로 느끼게 되어 있다.
그것도 직원이었던 인물이라면 필히 느꼈을 것이다.
원시적 뇌라 불리는 limbic system(변연계)이 작동해 무의식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네, 그렇습니다.”
“범인이 예전 직원분일 확률은 많이 낮네요.”
그때 김태현의 핸드폰이 울렸다.
“어, 말해.”
-차량 발견했는데 대포차에요. 골목에 그냥 박아 놓은 것 같아요.
“혹시 내가 말했던 정육점 가게랑 가까워?”
-네, 1Km도 떨어지지 않았어요.
“정육점 주인 알리바이 확보해.”
-네. 다시 연락드릴게요.
전화를 끊은 김태현이 우진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우진의 말대로 퍼즐이 딱딱 맞춰진다.
정육점 주인의 알리바이가 확보된다면 우진의 추리는 100%다. 아니 100%를 뛰어넘는 그 무엇인 것 같았다.
저번에도 그랬지만 도대체.
어떻게 이리 짧은 시간에 모든 것을 유추해 낼 수 있을까.
이제는 적응이 될 법도 하지만, 현장에서 보는 우진이는 정말 적응이 안 된다.
김태현은 볼을 긁적거리고 있는 최기철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보다 저 놈이 더 환장할 노릇이겠지.’
우진의 입이 또다시 열렸다.
“골프를 많이 즐기셨나 보네요. 트로피들도 많고, 다른 상패도 많네요. 그런데 식탁 쪽 물건들만 정리가 잘 되어 있네요.”
아주 미세한 차이였다.
우진의 머릿속으로 영상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우진은 화장실에서 나온 종혁 아버지를 거실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비틀거린다.
손을 허공에 휘젓자 진열된 물건들이 흔들리고 바닥에 떨어졌다.
머릿속에 영상을 재생시킨 우진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평범하게 보이려 다시 올려놓았지만 평범하지 못하다.
이래서 평범이 참 힘들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지만, 당사자는 하나하나 계속 신경이 쓰였을 것이다.
“누가 잡아줬죠?”
“그게 무슨 말인지…….”
우진은 의문투성인 말을 남겼고, 다시 입을 열었다.
“종혁 아버님. 범인이 빨리 잡히길 바라시죠? 그럼 제 말에 잘 대답해주셔야 합니다.”
종혁 아버지는 머리를 쓸어 올리며 짧게 답했다.
“말씀하세요.”
우진은 뜸 들이지 않고 물었다.
“실종 신고를 하시기 전, 누군가와 작은 다툼이 있으셨나요?”
“아니요. 없습니다.”
“식탁을 매일 청소하시나요?”
“네. 아내가 밥 먹고 난 후에는……. 아니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겁니까? 우리 아들이 죽었는데…….”
우진은 고개를 저었다.
“전 지금 아버님의 말씀대로 범인을 빠르게 잡기 위해 질문을 드린 겁니다. 평소 당뇨를 가지고 계셨던 분이었는데 아드님이 사고를 쳐 합병증이 오셨겠네요. 사업은 망해가고 문을 닫았죠. 골프를 즐기던 분이 건강도 많이 나빠지셨습니다. 가족사진을 보니 살도 많이 빠지셨네요. 운동 능력도 많이 떨어지셨죠?”
지켜보고 있던 김태현의 머릿속으로 우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담벼락의 먼지를 보고했던 말이었다.
‘범인은 키가 작을 수도, 운동신경이 없을 수도 있어요.’
종혁 아버지의 키는 척 봐도 168을 넘기지 못한다. 그리고 건강이 나빠져 운동신경도…….
“혹시 연기자를 꿈꿨던 적이 있으신가요?”
“뭔 개소리야!”
종혁 아버지의 침 튀기는 고함은 우진의 평온을 깨트릴 수 없었다.
“명품 배우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 배우들은 자기 자신도 속여버리고 완전히 다른 캐릭터가 되어버리죠. 종혁 아버님도 그런 재능이 있지만 명품 배우에 비하면 한참 부족해서 많이 갈고 닦으셔야 할 겁니다.”
미끼를 던지면 연기를 시작했다.
예전 직원을 이야기하며 99%의 사실과, 1%의 거짓을 섞었다는 게 그 증거였다.
사건을 미궁으로 빠트리려는 심리적 의도가 다분하게 보였다.
정육점 사장의 이름을 기억하지만, 직원이었던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시간이 더 지났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우진은 거실을 둘러봤다.
심리적 증거들이 널리고 널렸다.
정육점 사장을 범인으로 몰아가고 싶어하는 마음이 강하고, 그것이 안 된다면 치부까지 들춰내 경찰에게 미끼를 던지는 사람.
“당신 뭐야! 경찰 아니지!? 지금 뭐하자는 거야!”
“네. 거시적으로 본다면 전 학생신분이에요.”
그에게 짤막하게 답한 우진이 김태현에게 말했다.
“루미놀 시약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확실한 증거를 좋아한다.
“어? 잠깐만.”
잠깐 밖에 나갔다 온 김태현이 루미놀 시약을 우진에게 건넸다.
우진은 과수대가 지나친, 그곳에 루미놀 시약을 뿌렸다.
그리고, 혈액이 반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