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ho Sees Through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97)
천재, 세상을 읽다 천재 세상을 읽다-97화(97/200)
#97화. 결과. 5
세 사람의 시선이 이혜림에게 꽂혔다.
많이 젖진 않았지만,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한 사람처럼 보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우진이 걸치고 있던 웃옷을 벗으며 이혜림에게 다가갔다.
자신의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과 표정이, 불안하고 초조하다.
이러한 감정들은, 충분히 해소해 줄 수가 있다.
우진이 이혜림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상대방의 니즈, 즉 상대가 원하는 것을 파악하면 심리적으로 안정을 줄 수도, 반대로 정신적 붕괴를 가져다줄 수도 있었다.
우진이 택한 것은 전자였다.
“비 맞았어? 감기 걸리게.”
우진은 자신의 옷으로 그녀의 어깨와 팔을 닦아냈다.
그리고 머리칼도 옷으로 감싸며 적당한 힘으로 짜듯이 물기를 없애 주었다.
이혜림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우진은 담담한 말투였지만, 이런 행동은 처음이었다.
자신이 선물해 준 시계를 차고 있는 손으로, 자신에게 말이다.
우진에게 물어볼 말들이 잔뜩 있었지만, 그 생각은 어느새 날아가 버리고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몸은 추운 것 같지만 뭐랄까.
우진이가, 따뜻하다.
그때 우진은 김민과 박인혁을 바라보며 그녀를 소개했다.
“아까 말씀드렸던 제 친구예요.”
이혜림이 머리칼을 귓가로 넘기며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이혜림이라고 해요.”
“엄청 미인이시네요! 김민이라고 합니다.”
“박인혁입니다.”
이혜림이 의자에 앉자 우진이 양은그릇을 내밀었다.
꼴꼴꼴꼴.
우진이 막걸리를 따라주자 이혜림이 막걸리를 빤히 바라보았다.
“고소하고 살짝 새콤해. 개꿀맛이야.”
저도 모르게 ‘풉’ 웃은 이혜림이 막걸리를 입으로 가져갔다.
처음 맛보는 막걸리였지만 목이 탔었는지 단번에 들이마셨다.
그리고 양은그릇을 내려놓으며 시원한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우진이 이혜림의 앞접시에 분홍 소시지를 올려 두며 말했다.
“바로 먹어야 돼.”
그녀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지금도 평소와 다르다.
분홍 소시지를 입으로 가져가 오물거리던 이혜림이 우진을 보며 씩 웃었다.
“괜찮네.”
그런 이혜림의 모습을 바라보던 김민과 박인혁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자신들을 알아보며 활짝 웃을 줄 알았는데, 평소대로였다면 사인을 해달라거나, 사진을 찍어 달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는데 신경도 쓰지 않는다.
마치 병풍이 되어 버린 느낌이랄까? 아니 그 표현도 모자랐다.
투명 인간이 되어버린 기분이었다.
박인혁이 말을 꺼냈다.
“혹시 연예인 지망생이세요?”
“아니요. 그냥 일반인이에요. 무명아 연기는 어때? 할 만해?”
“그냥 실명으로 말해도 돼.”
어차피 김민 배우도 알고 있었고, 몇몇의 촬영 관계자들도 알고 있었다.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으면 그뿐이었다.
그건 조정환 감독님이 신경 써서 알아서 잘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우진은 굴전을 맛보면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쏴라있네. 살아있어.”
“무명 씨 본명이 우진 씨였구나.”
우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막걸리를 마셨다.
박인혁이 물었다.
“우진 씨, 아까 관찰로 사람이 어떻게 움직일지도 예측할 수 있다고 했잖아요? 상대를 이해한다면. 연기에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은데…. 눈에 보이는 것만 관찰하면 되는 건가요?”
박인혁은 진심으로 우진이 말하는 관찰이 탐이 났다.
우진이 고개를 가볍게 젓자. 박인혁이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이혜림이 더 빨랐다.
“촬영할 때 불편한 점은 없어?”
“딱히 없는 것 같아.”
“우진 씨. 그럼 상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경청해야 돼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박인혁의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우진의 말을 이해하려 머리를 쓰고 있지만, 나오는 건 없었다.
“그게 무슨 의미죠? 이해를 잘 못하겠어요.”
우진에겐 답은 바로 들려오지 않았다.
박인혁은 전을 먹고 있는 우진을 뚫어버릴 듯한 시선을 쳐다봤다.
“일단 상대의 관심사를 맞춰주며 탐색을 하는 거예요. 상대는 나무고, 질문은 도끼죠. 나무를 쓰러트릴 듯, 한 방향만으로 질문하지 않고, 여러 방면으로 찍어 보는 거죠. 이성을 유혹할 때도 비슷해요.”
그래서 혜림이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다.
전부터 혜림이의 결핍을 이해했고, 그것을 채워줬으며 만날 때마다 심리적 안정을 주고,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었다.
“관찰로 상태를 이해하고, 질문으로 상대를 파악하면, 그때부턴 양을 몰아가듯 상대를 움직일 수 있어요. 쉽게 예를 들자면 라벨링.”
박인혁이 눈을 깜빡였다.
쉽게 예를 들어 ‘라벨링’이라고 하는데 아주 생소한 단어였기 때문이었다.
“제가 그쪽엔 문외한이라서 라벨링이 뭔지…….”
우진이 울리는 핸드폰을 귓가로 가져가자 박인혁은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김태현 형사님]우진이 전화를 받았다.
그 시각.
우진에게 전화를 건 김태현은 유치장에서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사람을 보며 말했다.
“우진아, 혜림 씨 다녀갔어. 빨리 말해 줬어야 했는데 내가 깜빡했네. 나한테 화 많이 난 것 같더라.”
-그럴 수밖에 없어요.
“그치? 애인 맞지? 눈에서 막 레이저 나오는 줄 알았어. 너 정말 좋아하는 것 같더라.”
-그런 사이 아니에요.
“둘이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잘해 봐. 연애는 많이 해 볼수록 좋아.”
-전 다르다고 생각해요.
“여러 사람을 많이 만나 봐야…….”
김태현은 자신의 입을 빠르게 닫았다.
우진이 그렇다면 그런 거다.
“시간 되면 말해.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네. 고생하세요.
우진과 통화를 마친 김태현은 유치장으로 다가갔다.
“정신이 좀 들어요?”
40대로 보이는 사내는 괴로워하고 있었는데, 이제야 술이 깬 것 같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닌데….”
술에 만취해 전체적인 기억은 희미했지만 몇 장면은 또렷이 생각났다.
식당에서 시비가 붙어 자신이 소주병으로 사람을 내려치고, 배를 몇 번이나 찌른 기억 말이다.
“그 사람…. 그분은 어떻게 됐나요? 살아 계신가요? 살아 계시죠!? 만나 뵙고 사죄드리고 싶은데……. 살아 계시죠? 네? 돌아가신 거 아니죠!?”
김태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아직 술 덜 깼나. 무슨 말이야 이 양반아.”
“제가 사람 찔렀잖아요. 술병으로. 하…….”
김태현은 이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생각했다.
그렇게 몇 초가 되지 않아 피식 웃었다.
“이 양반아, 그거 막걸릿병이었어.”
“막걸릿병이요? 플라스틱?”
김태현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뿅망치처럼 머리 때린 거야. 뾱뾱. 당신이 유치장에 있는 이유는 영업방해, 기물파손!”
“아…….”
그는 간담을 쓸어내리며 기뻐했다.
* * *
이혜림이 잠깐 화장실을 간 사이, 박인혁은 숨통이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이건 무슨 분위기가 신우진 한 사람을 놓고 벌이는 서바이벌 같은 느낌이었다.
서로 말을 걸려고 경쟁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박인혁의 물음에 우진이 답했다.
“라벨링이란 상대에게 딱지를 붙인다고 이해하시면 돼요. 뭐뭐 해 보인다. 기뻐 보인다. 슬퍼 보인다. 즐거워 보인다. 라벨링을 던지고 상대를 지켜보는 거죠. 그럼 라벨링 효과로 상대의 감정이 증폭되어 말로 흘러나와요. 어떠한 상황에서 어떠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알 수 있죠. 그리고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도 말이에요.”
순간, 박인혁은 촬영장에서도 느꼈던 소름이 또다시 등줄기를 타고 올라오는 것을 맛봐야 했다.
저런 순진한 얼굴로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았지만 진실이었다.
우진이 자신에게 보여준 것들이 있으니 말이다.
김민도 우진의 말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하나둘씩 이야기가 진척되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우진은 그런 둘의 상태를 이해하고 있었다.
관찰에 대한 탐욕과 욕심이 자라나고 있었으니까.
틈이 날 때마다 만나자고 할 것이다.
우진은 관찰에 대해 말하며 그들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럼 우진 씨는 항상 관찰하고 있는 건가요?”
“예전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녀석을 점점 이겨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방심은 하지 않았다.
불러내 지켜볼 필요성도 있었고.
박인혁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거……. 막걸리 먹으면서 할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데, 괜히 미안해지네요.”
엄청난 정보를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
자신보다 훨씬 어려 보였지만 말을 함부로 놓치 못할 것 같았다.
“우진 씨, 담배 피우세요?”
“아니요.”
“아, 그럼 우리 담배 한 대만 피우고 올게요.”
밖으로 나간 박인혁이 담배를 물며 고개를 저었다.
“야, 민아, 어디서 저런 얘기 들어봤어?”
“처음이긴 한데 흥미롭긴 하네.”
“네가 몰라서 그래. 촬영 끝나고 네가 나한테 말했잖아? 연기할 때 분위기 확 달라졌다고. 그거 우진 씨 이야기 듣고 변한 거야.”
“그래?”
“관찰, 이야……. 이거 대박인데 진짜. 나 딱 처음 보고 술 줄이라고 하고 여자친구 있는 것까지 말하더라니까? 요즘 강아지 산책 못 시키는 것도 알고.”
담배 연기가 유령처럼 내뿜은 박인혁이 팔뚝을 슥슥 문질렀다.
“시발…. 그때 소름이 쫙 돋는데. 생각을 해봐. 네가 뭐 하는지 다 알고 있어. 그런데 예측도 할 수 있고 양몰이처럼 사람도 몰아갈 수 있대.”
“혹시 신내림 같은 거 받은 거 아니야?”
“그건 아닌 것 같고…….”
한편, 화장실에서 돌아온 이혜림이 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뺨은 술기운으로 인해 옅은 홍조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김태현 형사님한테 얘기 들었어.”
이혜림은 막걸리가 담긴 그릇에 시선을 고정하며 말을 이었다.
“오지랖인 거 인정해. 그래도 말할래. 너무 위험하지 않아?”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위험하지는 않아.”
“위험해질 수도 있잖아? 범인이 앙심이라도 품으면…….”
“혜림아, 프로파일링이라고 알지? 범인을 직접 대면하지 않고 추리만 하는 거야. 사무실 같은 곳에서.”
이혜림이 치맛자락을 꾸욱 쥐었다.
그리고 어떠한 말이 나오려는 걸 입술을 깨물어 막았다.
우진은 그녀가 결심을 굳혔다고 생각했다. 우진은 고개를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녀가 시선을 고정한 곳을 바라봤다.
이 또한 상대가 말한 단어를 따라 하는 것처럼, 미러링 같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었다.
-같은 곳을 바라본다.
이혜림이 다시 말을 꺼냈다.
“혹시라도 네가 잘못되면 내가 더 자랑할 게 사라지잖아. 이 차장님도 무의미해지고 영업팀 부장님 승진도.”
드르륵.
열렸던 미닫이문이 다시 닫혔다.
이상한 분위기를 눈치챈 박인혁이 들어오지 않고 그대로 문을 닫은 것이었다.
“투자도 그렇고, 네게 무슨 일이 생기면 앞으로 그 콧대 높은 언니 오빠들 한 방 먹여 줄 수도 없잖아, 그렇잖아…….”
이혜림은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말들을 쏟아냈다.
하지만 우진은 들리는 것을 넘어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었다.
순간.
이혜림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우진이 손을 올렸기 때문이었다.
“혜림아….”
이혜림의 촉촉한 목소리가 우진의 말을 끊었다.
테이블 안으로, 두 무릎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그녀의 손이 질끈 주먹을 쥐었다.
“알잖아. 넌 알잖아. 내가 너 좋아하는 거. 경찰서에 찾아간 것도. 내가 지금 이러는 것도. 나 원래 이런 사람 아닌데, 그래서… 그래서… 너한테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하고 이렇게 말로 고집만 부리는 내가 너무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