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10)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10화(10/171)
10화 사천 데나르
마침내 밝아온 요정 작물 경매일.
플리안 남작은 아침부터 분주했다.
이번에 판매 책임을 맡은 둘째 즈바르트도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마지막 당부를 듣기 바빴다.
“아들아. 이번에 우리 요정 작물은 하나같이 특등품이다. 요정의 힘이 깃들어 마법적인 효과가 아주 진하다 이거야. 가령, 이 요정 멜론 같은 건 한 통에 최소 15~20데나르는 받아야 하는 물건이지. 한 수레면 7,500데나르에서 10,000데나르는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특등품의 수레를 지나친 그는 옆에 더 화려하게 꾸며진 수레에 담긴 멜론도 들어올렸다.
안 그래도 요정멜론은 일반적인 멜론과 달리 푸른 도자기빛을 띠고 있었는데, 이건 그보다 심해서 새벽빛처럼 보이는 몽롱한 빛무리를 품고 있었다.
“그리고 이 극등품은 최소 2배는 받는 게 정상이다. 못해도 한 통에 30~40데나르는 받아야 맞는 가격이라고 할 수 있지.”
즈바르트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이미 다 외운 가격들을 또 한 번 속으로 읊조렸다.
플리안 남작이 그런 즈바르트의 어깨 손을 얹고 진지하게 말했다.
“사실 어차피 경매이기 때문에 가격은 우리가 아니라 상인들이 경쟁으로 정하게 된다. 하지만 오래 거래한 상인들이 아니라 온갖 곳에서 별별 인간들이 다 몰려올 것이기에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려면 네가 각 상품의 가격과 효능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만일의 사태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전에도 말했던 거다. 가장 흔한 것은 여론 조성이지. 누가 그 가격에 사냐며 공개적으로 투덜거리고 경매 분위기를 망칠 수 있다.”
“과연······.”
“그런 때 네가 나서서 본떼를 보여줘야 한다. 왜 그런 가격을 받아야 하는지도 설명해 주고. 그게 판매 책임이 할 일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아버지!”
플리안은 흐뭇한 얼굴로 즈바르트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둘째 아들 즈바르트는 키가 191cm에 달하고 어깨는 떡 벌어졌으며 단련한 기사의 기세를 품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에게 판매 책임을 맡긴 것이었다. 어지간한 뜨내기 상인들은 즈바르트를 보기만 해도 기가 죽을 터였으니까.
“믿는다. 아들아.”
즈바르트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려준 플리안은 얼굴을 진지하게 고치고 앞장 섰다.
그의 뒤를 즈바르트와 페르세타, 그리고 일리안느가 뒤따랐다.
이제, 베리테 남작가에 일어난 기적이 과연 얼마짜리였나, 그 가격표가 붙을 시간이었다.
**
이번 경매의 규모는 대단했다.
왕국 각지에서 몰려든 크고 작은 상단이 총 152개.
당연히 경매준비도 허투루 할 수 없었다.
플리안 남작은 고심 끝에 아주 훌륭한 경매규칙을 만들었다.
자본이 작아도 합작 등의 방식으로 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었고, 같은 물건을 누구는 비싸고 누구는 싸게 사는 일도 없도록 모든 것을 꼼꼼히 따졌다.
가문의 이익을 극대화하면서도 상인들도 만족할 수 있는 경쟁적이고도 공정한 규칙이었다.
가문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박수를 칠 정도로 정교했고 직관적이었다.
하지만 이 멋진 규칙은 제대로 시행되기도 전, 위기에 처하고 만다.
처음엔 당당하고 멋지게 경매가 시작되었다.
즈바르트가 눈짓을 하자 목소리가 큰 하인이 외쳤다.
“첫 번째 수레는 요정 포도입니다. 아시다시피 맛도 뛰어나고 노화예방에도 뛰어나지요. 마법 의식의 제물로도 효과가 아주 좋으며, 포도 씨앗과 껍질은 각종 마법 재료로도 사용되지요. 버릴 게 없는 최고의 과일입니다. 이건 한 수레에 1,000데나르부터 경매를 시작하겠습니다!”
1,000데나르면 1핀(5g)짜리 은화로 1만개. 금화로는 100개였다.
전문적인 직업을 가진 자유민이 2년 간 한푼도 안 쓰고 죽어라 일해야 모을 수 있는 금액.
어마어마한 액수였지만, 그조차도 경매 시작가에 불과했다. 플리안 남작은 이 요정 포도라면 한 수레에 최소 2,000데나르 이상은 받아야 정상이라고 말했으니까.
그런데.
“1,000 데나르.”
1번 상인이 팻말을 들어올리고,
조용-
그걸로 끝이었다.
“무, 무슨?”
즈바르트가 눈에 띄게 당황했다.
모든 상인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아무런 흥미를 보이지 않고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그 순간, 즈바르트는 깨달았다.
‘설마······ 담합을 했다고?’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곳에 모인 상단의 숫자만 해도 152개. 그 많은 숫자의 상단이 일사불란하게 담합을 할 수 있다고?
즈바르트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사이, 군중 속에 앉아 있던 1번 상인은 차가운 비웃음을 머금었다.
‘놀라긴. 고작 152개의 상단들을 하나로 묶는 게 뭐 큰 일이라고.’
비델 남작.
그는 상업으로 큰 부를 이뤄 귀족의 작위를 돈으로 사들인 귀족이었다.
주로 왕궁이 있는 왕도에서 활동하는 자였는데, 베리테 남작가의 엄청난 풍년 소식을 듣고 몸소 이곳 동쪽 변방까지 행차했던 것이다.
‘여기 남작도 나름 머리를 쓰긴 했어. 경매일을 최대한 미뤄서 경쟁을 극대화한다. 나쁘지 않은 전략이야. 그 바람에 나도 이 영지에 머물며 헛돈을 썼으니까. 근데 말이지······.’
비델 남작의 두 눈이 초승달처럼 휘었다.
‘그게 나에겐 또 시간을 준 거지. 152개의 상단? 까짓 놈들 겁주고 어르고 적당히 떡고물 뿌려주면 다 넘어오는 거라고.’
산수만 할 줄 알면 되는 간단한 계산이었다. 일단 자신이 모든 작물을 최저가로 사고, 거기에 마진을 적당히 붙여 나눠주는 것이다. 그러면 모두가 경매에서 경쟁하는 것보다 더 싸게 살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당연히 물량 등의 문제에서 불만이 있는 상인도 있겠지만, 그걸 찍어누를 권력과 영향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가능한 방법이었다.
그는 창백하게 질린 플리안 남작 쪽으로 시선을 던지며 아주 달콤하게 비웃음을 베어물었다.
‘이게 왕도 상인의 방식이라는 거다. 이 촌놈들아.’
왕도 상인들을 끌어들였다고, 큰 돈 벌겠다며 희희낙락했을 저들을 생각하면 정말 폭소가 터져나올 것만 같았다.
집안에 드래곤을 끌어들이고도 좋아하는 꼴이라니.
헌데, 그때였다.
“1,500 데나르!”
군중들 사이에서 웬 소녀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려퍼졌다.
꿈틀!
‘누가 감히······?’
눈썹을 일그러뜨린 비델 남작은 목소리의 주인공을 발견하곤 헛웃음 흘렸다.
“이것 봐라······?”
1,500 데나르를 제시한 자는 다름 아닌 베리테 남작가의 막내, 일리안느 베리테였으니까.
제값을 못 받을 바에는 그냥 자기가 사들여서 없는 일로 만들겠다는 일리안느의 기지였다.
“깜찍하네.”
하지만 비델 남작은 이런 경우에도 이미 다 대비책을 세워둔 상태였다.
“어허······. 이거 주최 측에 작정을 하고 가격을 올려치려나보오? 아무리 요정 작물이라지만 그래봤자 포도인데 그걸 누가 1,500 데나르를 주고 삽니까? 안 그렇습니까, 일리안느 베리테 아가씨?”
그 느물거리는 말투에 일리안느는 입술을 깨물었고, 즈바르트는 엄중한 기세를 폭발시켰다.
“경매중 소란과 가격에 대한 이견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1번 손님은 퇴장해 주십시오.”
과연 제국 기사 아카데미의 차석 졸업자.
신체 속에 완전히 녹아든 오러가 묵직한 기세를 떨쳐울렸다. 보통의 상인었다면 그와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찔끔 지렸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비델은 그냥 상인이 아니었다.
“허어! 협상은 상행위의 기본인데. 그것을 하지 못하게 한다? 베리테 남작가는 장사를 할 마음이 없나 보오?”
“궤변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경비병! 모셔라!”
남작가의 경비병들이 갑옷을 철컥거리며 다가서자, 비델 남작의 기사들이 일제히 앞으로 나섰다.
“누가 감히 왕국 귀족의 몸에 함부로 손을 대느냐! 국왕 폐하께서 직접 서임하신 귀족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이냐!”
그 서슬 퍼런 기세에 경비병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중간에서 쩔쩔 매기만 했다.
국왕폐하라는 칭호 앞에서, 시골 병사에 불과한 그들은 감히 어깨를 펼 수 없었다.
즈바르트가 입술을 악물고 물었다.
“귀족이셨습니까?”
“그렇네. 베리테 남작가의 둘째 아드님. 이 몸은 국왕폐하께 직접 서임을 받은 비델 남작이라고 하네.”
외통수였다.
왕국 귀족을 멋대로 끌어낼 수는 없는 것이었고, 그렇다고 그를 그대로 두면 마음대로 경매를 쥐고 흔들 게 뻔했다.
바로 지금처럼.
“같은 귀족이라 믿고 있었는데, 베리테 남작가는 너무 장사꾼 속셈을 드러내는 것 아니오? 남작가의 위세를 믿고 그렇게 가격을 올려쳐버리면 아무도 물건을 사지 않을 것이외다.”
즈바르트가 울컥해서 외쳤다.
“가격을 올려치다니요! 요정 작물은 그냥 식용으로도 인기가 높지만, 그 마법적 효과는······!”
“그러니까 말이요. 요즘처럼 마법이 사라지는 시대에 그 마법적 효과라고 온전하겠소?”
터무니없이 뻔뻔한 언행이었다.
그런 시대라서 더 비싸게 팔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정말 그 효과를 의심했다면 왕도에서 활동하는 그가 몸소 여기까지 왔을 리도 없지 않은가?
하지만 방도가 없었다.
비델 남작이 계속 저렇게 깽판을 놓으면 베리테 남작가 입장에선 끌려다닐 수밖에.
일리안느가 기지를 발휘해 물건이 싼 가격에 팔리는 걸 한 번은 막았지만, 계속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오래 가는 요정 작물이라도 식물은 식물. 유통기한이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니까.
결국 남작가는 여기서 상품들을 팔아치워야 했는데, 상품들을 사줘야 하는 사람들은 모두 비델 남작의 회유와 강압에 굴복하여 경쟁에 참여할 생각 자체가 없어보였다.
플리안 남작도, 즈바르트도, 일리안느도, 어쩔 줄을 모르고 점점 안색이 창백해지기만 했다.
바로 그때,
이번 경매에서 구경꾼을 하기로 했던 페르세타가 단상 위로 올랐다.
“형?”
“잠시 나에게 맡겨요.”
앞으로 나선 페르세타는 천천히 눈을 깜빡이고는 입술을 열었다.
듣기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경매장 곳곳에 스며든다.
“남작님. 어째서 가격이 이렇게 비싸냐고 물으셨습니까?”
“그대는?”
“베리테 남작가의 장자, 페르세타 베리테입니다.”
“오, 바르덴테님의 수제자셨구만?”
그리 말하는 비델 남작의 얼굴엔 노골적인 비웃음이 걸렸다.
상인들의 웅성거림 속에선 ‘ 남작가의 바보?’, ‘그 둔재가 폐관을 마쳤어?’ 하는 말들이 섞여 나왔다.
하지만 페르세타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수레에 실린 요정 포도를 들어올렸다.
그냥 보랏빛인 일반적인 포도와 달리, 특등품의 요정 포도는 각도에 따라 무지개빛이 나는 특성을 지녔다.
페르세타가 그 빛이 잘 보이게 포도를 이리저리 흔들더니 입술을 열었다.
“그거 알고 계십니까? 마계의 군주 중 하나인 아모릭스는 이런 특등품 또는 극등품의 요정 포도로 만든 포도주를 즐겨 마십니다. [아모릭스는 칠채(七彩)를 뿜어내는 포도주를 좋아한다.]라는 기록이 여러 곳에서 발견되지요.”
그 말에, 상인들이 술렁거렸다. 누군가 물었다.
“그게 정말이오?”
“물론입니다. 2,000년 전의 대마법사 헤시오도스님의 마법서 <테오고니아>에 처음 기록되었죠. 그 후로도 계속 기록된 내용입니다. 의심이 가신다면, 아란드리아의 대도서관에 질문해보시면 아실 겁니다.”
상인들의 술렁임 속으로 아까와는 다른 의미의 말들이 새어나왔다. ‘하긴, 결국 대마법사 바르덴테님의 수제자 아닌가?’, ‘저런 지식이 있어도 이상할 것은 없지.’
번호판을 움찔움찔하는 상인들이 늘어났다.
하지만 그들은 심각한 얼굴의 비델 남작을 보며 눈치만 살필 뿐 감히 번호판을 들어올리진 못했다.
그들의 얼굴에 진한 아쉬움이 흘렀다.
상인인 만큼 그들로서는 모를 수가 없었다. 그냥 요정 포도와 ‘마계의 군주 아모릭스가 즐겨 마시는 요정 포도주의 원료’는 그 가치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었으니까.
신계와 마계는 가장 위대한 상계(上界).
그곳의 존재가 즐겨 먹는 것이라면, 왕과 제후는 물론이고, 제국의 황제까지도 탐을 낼 게 분명한 보물이 아닌가?
비델 남작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자칫하면 그가 공들여 만들어 둔 판이 흔들릴 수도 있었으니.
‘제법이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할 거다. 왕도의 귀족이자 영향력 있는 상인인 나와 척을 져야 하는 일이거든. 그런 각오를 하려면, 더 막대한 이득이 필요할 거다.’
지금 상황만 보면 오히려 잘 된 것인지도 몰랐다.
더 가치가 올라간 요정 포도를 여전히 싸게 살 수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그가 만든 담합의 연대는 흔들릴지언정 깨지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남작가의 장자, 페르세타 베리테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아슬아슬한 균형 위로, 아모릭스와 관련한 일화들을 마치 마법 주문을 외듯, 유려하게 풀어놓았다.
“악마군주 아모릭스에겐, 이런 기록들도 있습니다.
[오늘은 애첩 리리타의 기분이 좋지 않으니 같이 요정 포도주를 마셔야겠구나.]그리고 또 이런 구절도 있죠.
[오늘밤은 많이 피곤하니 요정 포도주를 마시고 시작해야겠다.]이 기록들로 보아 알 수 있는 건, 아모릭스는 함께 마시는 상대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 힘을 내기 위해, 요정 포도주를 마셨다는 것이지요.”
이때까지만 해도 상인들은 바로 눈치 채지 못했다.
그저, ‘악마군주가 인정할 정도로 효능이 있구나?’ 하는 정도로만 받아들였을 뿐.
그리고 페르세타는 마지막 말로 마법 주문을 완성시켜 청중들 사이로 떨어뜨려버린다.
“물론, 다들 아시다시피, 악마군주 아모릭스는 [색욕(色慾)의 악마]입니다. 아마······ 남자한테 좋은 모양이지요?”
우르르르르-!
그 순간, 장내에 앉아 있던 모든 상인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빠르게, 누구보다도 큰 목소리로, 비델 남작이 1번 팻말을 다시 들어올렸다.
“4,000 데나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