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102)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102화(102/171)
102화 해명
“후……. 내 죄가 많네.”
페르세타도 알고 있었다.
마법사들이 속삭이는 소리.
누구는 꿈도 꿨다고 하지 않던가? 자신이 사람들을 다 불태워 버리는 꿈.
그 말을 들은 페르세타는 쓰게 웃었다.
솔직히 아무리 자신이라고 해도 그랬을 것 같진 않지만……. 그만큼 그간 자신이 보여 준 행보에 인정머리가 없었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그는 고민했다.
그의 머리는 명석했지만, 이런 문제의 해법을 찾는 건 어렵기만 했다.
애초에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짐작하고 배려하고 풀어 주는 것 따위 배워 본 적이 거의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는 몇날 며칠을 깊이 고심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힘과 공포로 모든 것을 해결하면 참 편하지만, 이제 페르세타는 그게 옳은 방법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 스승 바르덴테에게도 비슷한 배움을 얻기는 했다.
바르덴테 역시 페르세타가 세상을 불태울 것을 두려워해, 그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데 힘을 썼으니까.
덕분에 머리로는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다.
사람을 함부로 죽이거나, 자기 뜻대로 휘두르려고 해 봐야 좋을 일은 없다.
이제는 그걸 가슴으로도 알았다.
그렇기에 고민은 점점 더 깊어지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많이 늦어졌다.
페르세타가 침묵하는 만큼 사람들의 분노와 두려움은 커졌다.
뒤늦게 그 실수를 깨달았기에, 페르세타는 더욱더 고개를 깊이 숙이고 사죄의 말을 전했다.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의 불안을.
매일 밤 악몽을 꾼 일부 사람들의 고통과 불편을.
하지만,
“머, 머리 하나 숙인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오, 옳소!”
“정말로 죄송하게 생각한다면 지금 즉시 그 수상한 마법을 폐기하십시오! 우리가 보는 앞에서!”
“옳습니다!”
머리를 숙이는 것.
사실 그건 그 무엇도 해결해 주지 않는다.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머리를 숙이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도 되는 듯이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그건 그저 마음을 드러내는 방식의 하나일 뿐, 그 자체로 해결책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많은 경우엔 사죄가 문제를 더 키우곤 했다.
상대의 권위와 힘이 두려워 소극적이던 상대가 용기를 얻게 되는 것이다.
‘사죄를 했다고? 역시 저놈이 틀리고 내가 옳았군!’
‘사죄를 한다는 건 저쪽도 쫄리고 있다는 뜻이야! 지금! 지금이다! 밀어붙여야 해!’
마치 사자의 피 냄새를 맡은 하이에나들이 더욱 용기를 얻듯이, 평소라면 마도왕이라는 지고한 신분을 지닌 페르세타와 눈도 못 마주쳤을 사람들은 오히려 더 큰 용기를 얻었다.
‘저, 저래도 되나?’
‘마도왕이신데……. 황제 폐하와 버금 가는 권위를 가진 분이신데…….’
‘그래도 저렇게 높은 분이 머리까지 숙이셨는데 이야기는 들어 보는 게…….’
물론 그중에는 고개 숙인 페르세타를 밀어붙이는 걸 영 내키지 않아 하는 사람도 많았다.
페르세타의 높은 신분을 고려해서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좀 더 이성적으로 페르세타의 설명을 들어 보고 싶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군중이 모이면 목소리 큰 쪽이 두드러지게 되는 건 일종의 섭리.
페르세타와 군중들을 지켜보던 마법사들의 눈에는 그 광경이 꼭 모든 군중이 미쳐 날뛰는 것처럼 위협적으로 보였다.
마법사들의 마음은 급속도로 불편해졌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마도왕 전하께서 머리까지 숙이셨는데!’
‘저것들은 목숨이 아깝지도 않은 건가?’
‘아니……. 기껏 마도왕 전하께서 부드럽게 나오셨는데 왜 이래? 이러다가 진짜 분노하시려면 어쩌려고……!’
군중들의 성난 반응에, 오히려 지켜보던 마법사들이 안절부절못하던 그때, 페르세타는 숙였던 머리를 들었다.
그는 성난 군중들을 오시하며 말했다.
“죄송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마법은 폐기할 수 없습니다. 이 마법은 세상에 해를 끼치기는커녕 오히려 축복을 가져올 물건이니까요. 제가 사과드린 건, 예상치 못한 불편을 드린 점을 사과드린 것이지 이 마법을 만든 것을 사과드린 게 아닙니다. 오히려 이 부분에 있어서 저는 천 번 만 번 감사를 들어도 부족할 겁니다.”
방금 전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당당한 모습.
그의 눈과 목소리에 설린 확신, 그리고 그에게서 후광처럼 뻗어 나오는 권위에 분노를 토해 내던 군중들의 기세가 주춤 멈춰 섰다.
페르세타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분 앞에 숨김 없이 보여 드리고 설명 드리고자 나왔습니다. 저희가 어떤 마법을 만들고 있는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기능이 있는지. 다 알려 드리겠습니다.”
페르세타가 뒤를 향해 눈짓했다.
그쪽에는 커다란 천에 덮여 있는 거대한 자동 수레가 있었다.
“소개합니다. 저 먼 차원의 우주 속으로 떠올라 우리 세계를 영원한 영광으로 비춰 줄 대마법, ‘마력의 달’입니다.”
페르세타의 손짓에 따라 자동 수레 양쪽에 서 있던 마법사가 덮여 있던 천을 걷었다.
그리고,
“헉!”
“어엇……!”
“흡……!”
뭐라도 페르세타에게 반박할 말을 준비하고 있던 군중들 사이에서 숨 막힌 탄성만이 터져 나왔다.
아직 성장하고 있는 작은 세계, ‘마력의 달’.
얼마 전 페르세타의 어머니인 로오루아와 아버지인 플리안이 보았던 그때보다 조금 더 커진 상태였다.
전체적인 연둣빛 안에서 부유하는 다양한 색채들은 훨씬 더 다채롭고 깊어졌다.
후우웅-
우우우웅-
낮고 기분 좋은 허밍이 겹겹이 겹쳐지며 바람을 타고 사람들 사이로 흩어졌다.
군중들은 눈을 부릅뜨고 숨을 헐떡거렸다.
지금 이 순간,
누군가는 어릴 적 여름 꽃 냄새를 맡았다. 또 누군가는 바닷가에서 마주쳤던 소녀를 떠올렸다. 밀밭을 헤집고 지나가는 바람을 느꼈고, 소나기 속 내리꽂히던 벼락을 보았다.
실제로 그런 경험을 했든 안 했든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한없이 그립고 경이로운 이 기분.
“아…….”
“하아…….”
“음…….”
말은 없고 그저 흘러나오는 것은 짮은 탄식 같은 것들 뿐.
전율과 감동이 스쳐 지나가는 조용한 순간, 페르세타의 목소리가 담담하게 그들 사이에 울려 퍼졌다.
“이 마력의 달의 목표는 마나 태양의 막대한 마력을 받아들여 지상으로 전송을 하는 것입니다. 이게 성공하게 된다면, 인류는 지금까지 손에 쥐어 본 적 없는 막대한 마법을 사역할 수 있게 될 거예요.”
페르세타가 손가락을 따악- 튕겼다.
그러자 모여든 군중들의 품속에 있던 마도구들이 일제히 공명하며 지잉 지잉 울었다.
“요즘은 이렇게, 마도구 하나쯤 지니고 다니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마력의 달이 떠오른 다음엔 모든 사람이 마도구 하나……. 아니, 서너 개쯤은 가지고 다니는 게 당연해질 겁니다. 모든 집에, 모든 거리에, 마법이 깔려 여러분들의 삶도 마법과 같아질 것입니다.”
페르세타는 뚜벅뚜벅 걸어 ‘마력의 달’ 앞에 섰다.
마치 그 연두빛 세계가 후광처럼 페르세타의 뒤를 덮는다.
“우리가 이걸 만들어 낸 방식에도 삿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모든 마법사가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가 우리의 세상을 공부했습니다.
이 마력의 달 속에 들어간 마법은 봄에 피어나는 꽃, 비를 피하는 나비의 날갯짓, 여름의 소나기, 겨울의 첫눈, 그런 곳에 담긴 마법과 다르지 않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이 마력의 달을 보며 무언가를 떠올리고 무언가를 느끼고 있다면, 그건 바로 이 안에 바로 그런 것들이 들어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페르세타의 말은 하나하나 조리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말에 큰 설득력을 더해 주는 것은 바로 ‘마력의 달’ 그 자체가 뿜어내는 환상적이고 경이로운 기운이었다.
마력의 달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증거였다.
사람들은 생각했다.
아, 내가 오해를 하고 있었구나.
그래. 저런 느낌을 주는 마법이 나쁜 마법일 리가 없지.
그렇게 흘러가는 분위기.
페르세타와 군중들 사이의 긴장이 봄바람처럼 흩어지고 그 안에 신뢰와 기대감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어린아이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극적인 변화였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 변화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속지 마시오! 악마의 간교한 유혹일 뿐이오! 기억하시오! 악마는 가장 매력적인 얼굴로 찾아오는 법!”
군중들 사이에 섞여 있던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
천사 성교회의 신학자.
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도왕! 죄 중에 가장 큰 죄가 무엇인지 아시오?!”
그중에서도 하얀 수염을 배꼽까지 기른 나이가 지긋한 신학자가 서릿발 같은 시선으로 페르세타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입은 복장으로 보니 단순한 신학자가 아니었다.
백색 옷에는 화려한 금테가 둘러져 있었고, 손에는 하얀 가죽에 금을 박아 만든 성서가 들려 있었다.
제국의 수도 리세아룬을 담당하는 신학회 학회장이 틀림없었다. 천사 성교회 전체로 보아도 세 손가락에 꼽힐 높은 서열의 인물.
페르세타는 그를 담담히 바라보며 대답했다.
“네. 저 역시 성서를 읽어 보았기에 알고 있습니다. 가장 큰 대죄는 ‘오만’이 아닙니까.”
“그렇소! 마력의 달이라니? 이 세계를 모방한다니?!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오만이 아니라면 무엇이겠소!”
웅성웅성-
학회장의 말에 진정되었던 군중들이 다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천사 성교회의 역사는 마법의 역사보다도 오히려 길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긴 세월 동안 사람들과 함께 동고동락을 함께하고 위로와 치유를 전해 온 게 천사 성교회였다. 그들이 민중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절대적’이라는 말이 결코 부족하지 않을 정도였다.
“학회장님이 저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면…….”
“정말. 악마가 만든 것이라 해도 믿을 정도야. 너무 아름답잖아?”
페르세타 쪽으로 기울었던 군중들의 마음이 급격히 흔들렸다.
아무래도 두렵고 잘 모르는 페르세타보다는 늘 그들을 지켜 주고 함께 해 왔던 천사 성교회의 말에 먼저 신뢰가 가는 탓이었다.
“으음…….”
페르세타는 뺨을 긁적였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건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그 증거로…….”
페르세타가 뭐라 말하며 앞으로 나설 때였다.
“잠시. 선생님.”
성녀 샤라 엘리프가 그의 발걸음을 막아 세웠다.
“여기는 저에게 맡겨 주세요.”
페르세타는 샤라를 돌아보았다.
몇 년 새 그녀도 많이 변했다.
저기 고리눈을 뜨고 노려보고 있는 신학회 학회장을 보니 그 차이가 더 명료하게 드러났다.
항상 벗지 않았던 성녀로서의 복식을 벗어 던진 지 오래였다.
천사 성교회에 있을 땐 늘 단정하게 묶고 다니던 백금발의 머리칼도 짧게 단발로 친 상태였다.
누가 보아도 지금의 그녀는 한 명의 마법사일 뿐이지, 성녀 같은 게 아니었다.
왼쪽 허리에 차고 있는 성검 라하트헤렙이 아니었다면, 천사 성교회의 사람마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였다.
그걸 깨달은 신학회 학회장의 눈매가 더욱더 날카로워졌다.
“거기 계신 것은 설마 성녀시오? 본단에서 그대를 소환한 것을 듣지 못했소? 아직 늦지 않았소. 나와서 죄를 소명하시고 천사님의 품으로 돌아오시오!”
협박이라도 하듯 으름장을 놓는 그 말에, 성녀는 웃었다.
웃으며 걸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허공을 춤추며 수놓고 입속에는 노래와도 같은 주문이 흘러나온다.
그녀는 주문을 외우다 잠시 멈추며 신학회 학회장에게 대꾸했다.
“천사님 품으로 돌아오라 하셨소? 난 대체 그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말이오?”
“불경하다! 길 잃은 양이여! 천사님의 품을 떠나 네가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러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바쁘게 움직이던 성녀의 손이 멈추고, 그녀는 멈춰 서서 양팔을 좌우로 쫙 벌렸다.
“천사님은 항상 내 곁에 계신데, 누가 누구 품을 떠났다는 것이냐?”
팔랑-
그것은 마치 구름 속에 숨어 있던 해가 구름을 벗어나 스르르 햇볕을 내리는 듯한 광경이었다.
하늘에서부터 시작된 서광이 성녀의 몸을 하얗게 물들이고, 어느덧 봄 햇살처럼 드러난 천사 하나가 성녀의 뒤에 서서 한 쌍의 날개를 펼쳤다.
빛나는 깃털 몇 개가 주변에 흩날렸다.
팔랑- 팔랑-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아니, 단 한 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 좋게 떠들던 신학회 학회장만큼은 얼굴을 하얗게 물들인 채 입을 쩍 벌렸다.
하얀 얼굴의 천사가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눈동자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제국의 수도에 강림한 천사.
500년 만의 대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