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11)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11화(11/171)
11화 이게 되네.
살리넬르는 요정 작물 경매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 것보다는 자기가 맡은 일에서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처음에는 자괴감도 들었다.
풍운의 꿈을 품었던 자신이 이런 촌동네 남작가에서 영지 마법사나 하고 있다니······.
그런데 이상하게 막상 일을 해보니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었다.
무려 30년이었다.
스승님을 따라다니며 마법 공부만 했던 세월이.
무언가를 머리에 집어넣기만 하고 세상 밖에 꺼내놓지 않았던 그 기나긴 시간.
그랬던 살리넬르에게 있어서, 자신의 지식과 능력을 발휘해 영지를 변화시키는 일은, 처음 느껴보는 재미와 보람으로 가득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경매장에는 가지 않고 평소 하던 자신의 업무를 이어서 계속하는 중이다.
‘뭐. 어차피 내가 할 일은 다 끝내두고 왔으니, 나머지는 남작가에서 알아서 할 일이지.’
그는 어려서부터 전 대륙을 둘러본, 견문 넓은 마법사였다.
심지어 아란드리아 대도서관의 자격 시험을 통과해, 1년 간 각종 진귀한 서적을 탐독한 적도 있을 정도로.
그런 그였기에, 요정 작물에 대해서도 조언을 해줄 수 있었다.
가문 대대로 요정 작물을 팔아온 플리안 남작조차 몰랐던 요정 작물의 효능과 역사를 낱낱이 알려주고 왔으니, 경매에 큰 도움이 될 게 틀림없다.
그 사실에, 살리넬르는 뿌듯한 우월감을 느꼈다.
‘페르세타. 지금쯤 경매장이겠지? 잘 보고 배워라. 마법사가 마법만 잘 한다고 전부가 아니야. 마법사는 학식도 뛰어나야 하는 법이거든.’
괜히 제국에서 최고의 마법사에게 ‘현자’라는 칭호를 내리겠는가.
마법사는 마법의 전문가인 동시에 온 우주의 역사와 비밀을 꿰고 있는 자가 되어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살리넬르는 이 부분에 있어서만큼은 자신이 페르세타를 앞지르고 있다고 자신했다.
아무리 페르세타가 바르덴테의 제자라지만, 그는 평생 작은 탑에 갇혀 공부해온 우물 속 개구리가 아니던가?
그 탑에 책이 있어봐야 몇 권이나 있었겠는가?
온 세상을 돌아다닌 자신과는 감히 비교할 대상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현대사는 물론 고대사에도 정통했으며, 비밀로 가득한 신비의 역사에도 조예가 깊었으니까.
그 기분 좋은 우월감이 살리넬르의 업무 효율을 더욱더 끌어올려주고 있었다.
현재 그가 있는 곳은 뜨거운 대장간.
남작가의 솜씨 좋은 대장장이들을 다 모아두고 그는 한바탕 강의를 하는 중이었다.
“잘 보시오. 이게 불의 정령의 힘을 끌어온 새로운 풀무요. 이 불로 단련을 하면, 쇠를 마치 찰흙처럼 쉽게 가공을 할 수 있지.”
“오오오······!”
수염이 덥수룩한 장인들이 어린애처럼 감탄을 표했다.
대장일은 단단하고 뜨거운 쇠를 두드리고 또 두드려서 모양을 잡는 것이 큰 고생이다. 헌데 그걸 쉽게 해준다는 말이니, 반가울 수밖에.
“또 이건, 물의 정령의 힘을 담은 새로운 물그릇이요. 이 물그릇의 물로 담금질을 하면 쇠의 질이 몰라볼 정도로 좋아지게 되지. 심지어 미약하나마 악운을 뿌리치는 힘까지 지니게 되어 고대에는 이런 물그릇으로 담금질한 검을 ‘액막이 검’이라고도 하였소.”
“오오오······!”
“그럼 훨씬 비싸게 팔 수 있겠습니다!”
“바로 그것이지. 늘상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이들은 미신에 약한 법이니.”
“오오오······!”
“이제 그대들은 단순히 남작령에 쇠붙이를 공급하는 것을 넘어, 다른 영지로 수출까지 하게 되는 것이요. 정령의 풀무 덕에 작업 속도가 5배는 빨라지게 될 터이니, 물량도 금세 금세 뽑아낼 수 있겠지. 그럼 당신들 호주머니도 두둑해지지 않겠소?”
“오오오오!”
“과연! 마법사님! 정말 마법같은 일입니다!”
“후후후후······. 이게 마법이라는 거지.”
정말이지 보람찬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살리넬르는 이런 식으로 온 영지를 돌아다니며, 영지 산업을 한 단계, 아니 두 세 단계는 업그레이드 시켜줄 각종 인프라를 만들어냈다.
“자, 이제 정령 화덕이 완성 되었소. 한 번 시험 보시오.”
“와아! 너무 멋져요. 이 은은한 정령의 빛! 마법사님. 이건 어떤 효과가 있나요?”
“우선 빵이 빨리 구워질 거요. 한 3배 정도 빨리?”
“세상에······.”
“심지어 더 폭신하고 바삭하고 달콤하게 구워질 것이요. 소화도 잘 될 뿐더러, 여름에 먹으면 더위에 강해지고 겨울에 먹으면 몸이 따듯해지지.”
“너무 좋군요!”
“이걸로 부지런히 빵을 만들어 다른 영지에도 팔도록 하시오. 잘 팔릴 거요.”
빵 굽는 여인이 존경의 시선을 보내자, 살리넬르는 픽 웃으며 등을 돌렸다.
“이게 마법이라는 것이오.”
걸음걸음마다 자부심과 자신감이 뚝뚝 떨어졌다.
그러던 차에 그는 우연히 경매장 주변을 지나게 되었다.
“뭐야? 왜 이리 시끄러워?”
경매장이 아니라 검투장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가 아닌가?
“이렇게 시끄러울 일이 있어?”
짐짓 호기심에 이끌린 그는 슬쩍 경매장 안으로 걸음을 들였다.
안에 들어서자마자 그가 마주한 건, 서로에게 악다구니를 써대는 상인들의 난투극이었다.
“씨이팔! 누가 요정 찻잎 한 상자에, 2만 데나르를 태워!? 그게 뉘집 개이름이야?! 상도덕을 이렇게 해쳐? 내가 가만 둘 줄 알아!!!”
그 말에 살리넬르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2만 데나르?’
황금으로 치면, 1,000달론이었다.
황금 10g이 1달론이니까······.
‘황금 10kg?’
고작 찻잎 한 상자에?
말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그가 예상한 최대 가격은 한 상자에 5,000 데나르 정도였다. 근데······ 그걸 4배나 뛰어넘었다고?
하지만 상인들은 돈이 없는 게 문제지, 가격이 문제라고 여기지 않는 듯 했다.
“남작이면 다야!!! 혼자 다 처먹으려고 하고!!!”
“방금 누구야!”
심지어 상인 중에 귀족이 끼어있는 걸로 보였는데도 언행들이 거침없었다.
다들 도박 중독자처럼 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살리넬르는 멍하니 연단 위를 바라보았다.
‘페르세타?’
그곳에선 페르세타가 마침 다음 상품을 소개하는 중이었다.
“이 요정 호박으로 말할 것 같으며, 설화계의 영웅들이 전장에 나가기 전 꼭 호박 스프로 끓여먹는 그런 호박이지요.”
뭐? 요정 호박이 그렇다고?
살리넬르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으니까.
“이걸 먹은 자는 신비한 힘으로 보호를 받게 되어 쉬이 상처를 입지 않습니다. 자, 즈바르트!”
“어······. 어, 형. 진짜 해?”
“해. 빨리.”
“으음······.”
즈바르트가 주저주저하며 윗옷을 벗었다. 잘 단련된 기사의 조각같은 근육이 만천하에 드러난다.
하지만 상인들은 그런 것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곧 일어날 일에만 이목을 집중할 뿐.
페르세타는 그 시뻘건 시선들 앞에서도 기 죽지 않고 제 할 말을 잘만 이어갔다.
“여기! 잘 단련된 기사의 몸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단련이 되었다 해도, 피부는 약하게 마련이죠.”
찰싹!
페르세타가 낭창낭창한 나뭇가지로 즈바르트의 등을 때리자, 등 위로 빨갛게 자국이 남았다.
“하지만! 이 호박을 먹으면 어떻게 될까요? 사실 호박죽을 끓여 먹어야 진짜 효과가 드러나지만, 이런 특등픔은 생으로 먹어도 효과가 상당하죠.”
즈바르트가 호박을 잘라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그리고 다시 찰싹!
“오오오오오!”
상인들이 탄성을 질렀다. 등 위로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은 것이다.
“그, 그거 그냥 사기치는 거 아냐! 두 번째는 소리만 크게 나게 살살 친 거 아니냐고!”
비델 남작이 경쟁자들을 떨어뜨리기 위해 터무니 없는 음해를 했지만, 페르세타는 차분하고 단호하게 응대할 뿐이었다.
“비델 남작님. 아까부터 지켜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 번만 더 진행을 방해하거나, 다른 참가자를 겁박하면, 남작님께는 단 하나의 상품도 팔지 않겠습니다.”
“억······! 아, 아니······. 그······ 미, 미안하네.”
비델 남작이 바로 꼬리를 내렸다.
일반적으론 파는 사람이 을이고 사는 사람이 갑이지만, 판매하는 물건이 너무나 크고 희소한 가치를 가졌을 땐, 그 관계가 역전되는 법.
하지만,
아직 페르세타의 말을 믿지 못하고 의구심을 품고 있는 사람이, 아직 한 명 더 남아 있었다.
‘정말? 일단, 요정 호박이 몸을 보호해 주는 건 맞아. 그건 책에서 읽었어. 그래서 요정 작물 중에서도 가장 비싸. 하지만······. 설화계의 영웅들이 전장에 나가기 전에 저걸로 스프를 해 먹는다고?’
살리넬르였다.
자신이 읽은 그 어떤 책에서도 보지 못한 그 이야기였기에, 그는 믿을 수 없었다.
살리넬르가 눈을 번뜩였다.
‘페르세타. 물건을 비싸게 팔겠다고 거짓을 말해······?’
마법사의 수치다!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
품에서 잘 조각된 옥그릇을 하나 꺼내고 그 위에 물을 부었다.
곧장 자리에 주저앉아, 주문을 외웠다.
“위대한 근원을 비추는 정령의 뜰이여, 나 이곳에서 소원하노니, 위대한 지식의 문을 열지어다.”
파아앗-!
주문의 완성과 함께, 눈부신 빛의 환상이 물그릇 위로 떠올랐다.
“어? 뭐야?”
“마법?”
“통신 마법의 일종 같은데······?”
“와······. 근데 저 환영 속 건물 양식은······. 설마!”
경매에 여념이 없던 상인들마저 모두 돌아보게 만드는, 장엄한 빛이요, 아름다운 환영이었다.
모두의 시선을 끌어모으는데 성공한 살리넬르는 비릿하게 웃으며 환영 속을 들여다 보았다.
곧 환영 속에 베일을 쓴 ‘사서’가 모습을 드러냈다.
– 오랜만이군요. 살리넬르 회원님. 무슨 일로 연락하셨습니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위대한 아란드리아의 사서시여. 한 가지 질문을 드릴 것이 있어 연락드렸습니다.”
그 말에 상인들이 일제히 경악했다.
“아란드리아의 사서?!”
“그럼 저 마법사가 아란드리아 대도서관의 회원이라는 건가?”
“내 오늘 정말 진기한 구경을 하는군!”
웅성거림 속에서,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로 아란드리아의 사서가 대답했다.
– 네. 말씀하시지요. 살리넬르 회원님.
“다름이 아니라, 특등품의 요정 호박을 설화계의 영웅들이 좋아한다는 말을 들어서, 그 점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리 질문하며, 살리넬르는 페르세타를 쏘아보았다.
그는 그게 사실일 리 없다고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아란드리아에서 설화계와 관련한 책을 모조리 읽어보았지만 완전히 금시초문. 그런 걸 평생 탑에 갇혀 있던 페르세타가 알 리 없지 않은가?
– 어······?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살리넬르님의 회원자격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지식이었을 텐데.
“······네?”
– 사실입니다. 늘 진실을 확인해줘야 할 의무가 있는 아란드리아 사서의 이름을 걸고 사실임을 보증합니다.
“······영령들이 전투에 나서기 전에 진짜 호박 스프를 해 먹는다고요?”
– 굉장히 정확히 아시네요. 네. 사실입니다.
어?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4만 데나르!”
비델 남작이 1번 번호판을 들어올렸다.
**
‘와······. 저런 방법이 있었을 줄이야.’
페르세타는 살리넬르의 지혜에 감동했다.
그가 아란드리아 대도서관의 회원이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걸 이용해서 이렇게 분위기를 띄워줄 줄이야······.
덕분에 경매가가 다시 치솟았다.
페르세타는 기분 좋게 웃으며 즈바르트의 어깨를 툭, 쳤다.
“수고했어. 즈바르트.
“어, 아냐. 형.”
퍼뜩 정신을 차리고 벗어둔 상의를 다시 집던 즈바르트는 무언가를 깨닫고 멈칫, 페르세타를 돌아보았다.
“어? 근데 형······.”
“왜?”
“아, 아냐. 아무것도.”
말론 아무것도 아니라 했지만, 그는 묘하게 기뻐했다. 옷을 여미고 뒤로 물러서는 발걸음마저 가벼웠다.
‘왜 저러지······?’
페르세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음 경매를 준비했다.
“자! 여러분! 다음은 이 요정 베리입니다! 피부 미용에 탁월한 효과가 있어 신계의 천사들이 화장품 원료로 사용하지요.”
그리곤 일리안느를 돌아보며 말했다.
“자! 여기! 오늘 종일 경매 업무를 보느라, 얼굴이 거칠한 여인이 있습니다! 이 여인의 얼굴 반쪽엔 요정 베리 즙을 바르고 나머지 반은 그대로 두어 한 번 비교를 시켜드리겠습니다!”
페르세타가 눈짓을 하자 일리안느가 주춤주춤 그의 옆에 와서 섰다.
그녀는 입으론 웃으면서 복화술이라도 하듯 자신의 오빠에게 분노를 드러냈다.
“오쁘아······. 느 이그 진쯔 흐여해?”
차라리 즙을 전부 다 발라주든가!
반만 바르고 반은 안 바르면 그 꼴이 얼마나 웃기겠는가?
하지만 페르세타는 단호했다.
“네가 내 동생이잖아. 너니까 내가 이런 부탁도 할 수 있는 거지.”
그 말에,
“어?”
일리안느가 펄쩍 뛰었다.
페르세타는 덩달아 놀랐다.
“왜, 왜 그래?”
일리안느의 눈동자가 흔들리더니, 그녀가 곧 환하게, 정말 환하게 웃었다. 요정을 처음 봤던 그날처럼.
“오빠. 이제 말 놓네?”
“어?”
스스로도 알지 못했던 페르세타는, 자기 입술을 매만지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 말이 놓아지네.”
일리안느가 그런 페르세타의 허리를 꼭 안아버렸다.
“이제······. 이제야 내 오빠 같다! 오빠야! 정말. 정말 잘 돌아왔어!”
페르세타는 그 따스함에 뺨을 긁적이다가 이렇게 물었다.
“그럼······. 반반 해 주는 거지?”
“오빠!”
일리안느가 페르세타의 발을 콱! 밟아버렸다.
솜털이 삐죽 설 만큼 아팠다.
그래도, 페르세타는 원하는 걸 얻었다.
“자! 이 확연한 차이가 보이십니까?”
환한 마법 조명 아래. 일리안느는 반은 투명하고 깨끗한 피부를 드러내고 반은 거칠한 얼굴을 드러낸 채, 100명이 넘는 상인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진짜······. 오빠니까 들어주는 거야······. 진짜······. 오늘 말 놓았으니까 들어준 거라고······!”
작은 어깨를, 바들바들 떨면서.
그렇게 그날의 경매는, 드블랑 왕국의 동쪽 지역을 완전 뒤집어 놓을 만큼, 어마어마한 매출을 기록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