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111)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111화(111/171)
111화 부적이 되어 버린 남자
차가운 하얀색 공간이었다.
하얀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바닥과 벽면과 천장.
– 키이이……. 키익? 뭐, 지……. 키릭!
난데없이 알 수 없는 장소로 소환되어 버린 뱀 요괴는 몸을 떨었다.
기분 탓인가?
어쩐지 춥게 느껴졌다.
주위 온도는 낮지 않은데…….
뱀 요괴는 곧 깨달았다.
온도 때문에 추위를 느끼는 게 아니었다.
언제나 몸을 가득 채우고 있던 요력이 딱딱한 돌처럼 봉인되어 버렸기 때문에 추운 거였다.
늘 몸을 감싸고 있던 옷가지가 다 벗겨져 버린 것처럼, 뱀 요괴는 황망함 속에 벌벌 떨기만 했다.
– 대체……. 여기가 어디……. 키릭!
혀를 날름거리며 고개를 드는 뱀 요괴.
그런 그의 앞에 돌연, ‘그’가 앉아 있었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분명 아까 전만 해도 없었던 남자가 원래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이 앉아서 허공에 떠오른 문자열을 읽었다.
“흐음…….”
페르세타는 흑청색의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눈앞의 뱀요괴를 바라보았다.
“인간계에 넘어온지 5분만에 지정구역을 벗어나, 인간을 덮치려 함. 볼 것도 없이 죄질이 아주 나쁘네요. 어떻게 처리할까요?”
페르세타가 고개를 돌리자, 홀연히 두 여자가 그의 옆에 나타났다.
비앙카 애시와 라냐 비셰나 왕세녀였다.
라냐 왕세녀가 먼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런 일은 처음부터 일벌백계를 하는 게 중요합니다. 당연히 사형해서 환요계에 효수해야 합니다.”
비앙카 애시도 차분한 어조로 조금 다른 의견을 냈다.
“환요계의 요술은 굉장히 유용한 힘입니다. 죽이는 것보다는 일정 시간동안 가둬 놓고 노역형에 처하는 게 어떨까요. 시간이 지나 풀려나더라도, 이 요괴가 노역형의 끔찍한 경험을 말하고 다니면 그건 그것대로 경계가 될 겁니다.”
두 사람의 말에 뱀요괴는 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어 댔다.
– 치이이! 이 놈들! 내 숙부가 이무기시다! 나에게 그런 짓을 하면 용서할 것 같으냐!
페르세타가 그런 뱀요괴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흠……. 노역형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저러는 걸 보니까, 안 될 거 같습니다. 우리가 자기들을 건드리는 걸 두려워한다고 착각할 수도 있겠네요.”
비앙카 애시도 눈살을 찌푸리며 그 의견에 동조했다.
“확실히 그렇겠네요. 제 불찰입니다.”
뚜벅.
페르세타가 자리에서 일어나 턱을 매만졌다.
“그럼 이렇게 하죠. 마침 실험해 보고 싶은 것도 있었으니까요.”
“실험 말씀이십니까?”
“실험?”
라냐와 비앙카가 되물었다.
페르세타는 웃으며 손을 뻗었다.
“요괴는 요력을 타고 나잖아요. 늘 궁금했습니다. 요력이 있기에 요괴인 것인가. 아니면 요력이 없어도 요괴인 것인가.”
“……예?”
뚜벅.
페르세타가 뱀 요괴에게 다가갔다.
벰 요괴는 자지러지듯 몸을 비틀며 애원했다.
– 다, 다가오지 마! 내가 잘못했어! 안 돼! 자, 잘못했습니다! 요력은 요력은 안 돼. 차라리 그냥 죽여주세요!
하지만 페르세타의 손은 무정하게 뱀의 머리를 향해 뻗어지고, 화아아악-!
거기서 뿜어져나온 빛이 뱀요괴를 감쌌다.
– 키리릭! 키에에엑!
소금이 뿌려진 지렁이처럼, 뱀요괴는 몸을 마구 뒤틀었다.
놈의 커다랗던 몸체가 형편없이 쪼그라든다.
– 안 돼……. 안 돼……. 내 근원을……. 안…….
절규하던 요괴의 목소리가 점점 잦아들고.
마침내 남겨진 것은 초라하고 평범한 한 마리의 뱀일 뿐이었다.
페르세타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요력은 요괴의 근원이었네요. 뽑아버리니까 그냥 평범한 뱀이 되어 버리는군요.”
페르세타의 손에서는 그가 뽑아낸 요괴의 요력이 푸르게 넘실거리고 있었다.
비앙카와 라냐는 그 모습을 조금 질린 채로 바라봤다.
문득 뱀 요괴에게 감정 이입이 된 탓이었다.
만약 초월적인 누군가가 내 안의 무언가를 뽑아내 나를 단순한 원숭이로 만들어 버린다면?
상상만 해도 저절로 어깨가 부르르 떨렸다.
그런데도 페르세타는 태평하게 손에 감고 있던 요력을 시험관에 담으며 말했다.
“이 뱀은 환요계로 추방하도록 하죠. 충분한 경계가 될 겁니다. 아, 그리고 요력을 뽑아내는 법을 알려드릴 테니, 앞으로는 두 분이 이 일을 맡아 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맡겨만 주십시오!”
“영광입니다!”
라냐와 비앙카는 섬뜩해 하던 감정도 잊고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사실 페르세타가 만든 ‘위시’의 시스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페르세타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둘을 이곳에 불러온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대신이라고 하기는 뭣하지만, 여기에 계시면서 제가 구축한 위시를 마음껏 뜯어 보셔도 됩니다. 그런데 두 분은 어째서 이 위시에 이렇게까지 관심을 보이십니까? 위시라면 마력의 달을 만들 때도 많이 접해 보셨잖아요.”
그 물음에 라냐가 달아오른 얼굴로 대답했다.
“이런 식의 응용 방식은 생각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상을 구분해서 저장하고 상황에 맞게 반응하는 위시……. 이걸 잘 이용하면 왕국을 운용하는 행정 체계에 엄청난 혁명이 일어날 겁니다.”
“오……. 행정에? 그런 생각은 미처 못했네요. 아무래도 위시가 있으면 많은 인력을 아낄 수 있겠죠.”
“단순한 인력의 문제가 아닙니다. 행정에서 발생하는 많은 문제들은 사실 법의 문제라기보다는 사람의 문제니까요. 사람은 감정과 욕구가 있기 때문에 규칙을 잘 따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위시 마법으로 그렇게 사람이 개입할 여지를 줄일 수 있다면, 훨씬 더 공정한 세계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페르세타는 라냐의 말이 무척 흥미로웠다.
그는 원리를 밝히는 데에 능한 마법사였지 그걸 응용하는 데 익숙하지는 않았으니까.
이렇게 다른 재능있는 마법사들이 자신의 마법을 사용하는 방법들을 볼 때마다 그 역시 크게 자극을 받는 기분이 들어서 좋았다.
“그럼 비앙카 님은요?”
“저는 선생님이 만든 것 같은 시스템을 다른 도시에도 적용하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데, 이런 감시형 위시가 존재하면 가장 한 약한 사람도 언제든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될 테니까요.”
“호오…….”
“모두가 힘을 가지면 공평해지고, 자유로워지죠. 저는 이 위시에서 그 가능성을 봤습니다.”
페르세타는 박수를 쳤다.
“두 분은 언제나 제게 기쁨을 주십니다. 부디, 그 연구가 성과를 내길 기대합니다. 그럼 잘 부탁드립니다.”
“네! 맡겨 주십시오!”
그날부터, 환요계의 요괴가 넘어와 사고를 칠 때마다, 라냐와 비앙카가 나서서 재판을 했다.
“마도왕 페르세타의 이름으로 선포한다. 너는 요력을 잃고 한낱 미물이 되리라.”
– 키에에엑! 안 돼애애애!
둘의 칼 같은 판결과 처벌로 매일같이 영락한 요괴들이 환요계로 쫓겨 갔다.
환요계에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 저……. 낡은 칼은 뭔데 통로 앞에 꽂혀 있어?
– 아. 저거 그 유명한 칼도깨비래. 만요살의 칼도깨비 있잖아.
– 뭐? 근데 왜 저런 꼴이…….
– 인간계에 가서 잘못을 저질렀다가 페르세타에게 요력을 다 빼앗기고 영락했다나 봐. 요새 많이 보이잖아. 영락한 요괴들.
– 헉……!
인간계에서 허튼 짓을 했다간 페르세타에게 잡혀 간다.
요괴들은 그 이름 앞에 벌벌 떨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제도 리세아룬 안에도 소문이 돌았다.
“그 웃기지도 않은 주문이 진짜 효과가 좋다는데?”
“요괴들은 그냥 페르세타 님 이름만 나와도 경기를 일으킨다더라고.”
페르세타.
그 네 글자의 이름은 요괴로부터 인간을 수호하는 주문 그 자체가 되었다.
급기야는.
“부적 팝니다! 부적 팔아요! 어떤 흉하고 험한 것이 찾아와도 이 부적만 있으면 안심할 수 있습니다! 무병장수! 복이 지극하게 들어와요!”
돈 냄새를 맡은 상인들이 빠르게 움직였다.
페르세타의 이름이 들어간 부적을 팔고, 페르세타의 초상을 팔았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요괴를 막기 위해 그 이름이 적힌 부적과 초상을 집 앞에 붙이거나 몸에 지니고 다녔으나, 나중에는 온갖 재액을 막고 복을 비는 것으로 그 의미가 변화혔다.
당연히 인간계로 넘어온 요괴들은 집집마다 붙은 페르세타의 이름과 초상을 볼 때마다 벌벌 떨며 어깨를 움츠리고 지나갔다.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부적의 효험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은 깊어져 가기만 했다.
* * *
“환요계가 난리가 나겠습니다.”
현자 시에넬은 환요계와 이어지는 통로 근처에 자리잡은 상점들을 바라보며 입술을 열었다.
그녀의 눈에는 페르세타의 이름이 적힌 부적과 초상화가 곳곳에 걸려 있는 풍경이 들어온다.
하지만 정작 페르세타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허허. 환요계의 요괴들이 스승님의 이름을 귀신보다도 더 무서워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스승님 이름자 적힌 종이 쪼가리만 봐도 벌벌 떠는 치들인데……. 스승님을 직접 보면 어찌 되겠습니까?”
“음……. 그런가요? 아, 맞다. 현자님. 실험 도구들은 잘 준비해 두셨죠?”
“예. 꼼꼼히 준비해 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정밀한 시간 측정 장치들이 왜 필요한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말에 페르세타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이제부터 일어날 일이 너무나 기대된다는 듯이.
“그런 게 있어요. 환요계에 도착하면 바로 연구실부터 세우고 측정을 시작할 겁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완전 새로운 마법의 세계를 접하게 될 거예요. 지금까지의 상식이 와르르 무너진달까?”
“흐음……. 뭐, 아무튼 인간계와는 다른 세계이니 꼼꼼히 지켜봐야겠지요. 물론 스승님이 <프린키피아>에서 말씀하신, 모든 관성계에서 마법적 현상은 동일하게 관찰된다는 상대성의 원리를 생각하면 환요계라 해도 별 다를 바 없을 거 같긴 하지만요.”
“그렇죠. 바로 그래서 시계를 가져오라고 한 겁니다. 상대성의 원리는 사실 여러분들의 짐작보다 더 이상하고 심오하거든요.”
시에넬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면에 지난번에 페르세타에게 들은 말이 있었던 살리넬르는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심장이 자꾸 두근거려서 표정이 굳었다가 달아올랐다가, 아주 요란했다.
“선생님. 정말……. 선생님 말대로 될까요? 환요계에서는 정말로 시간이 다르게…….”
“자자, 이제 무슨 말이 필요 있나요. 환요계로 갑시다. 가서 봅시다!”
그렇게 페르세타가 이끄는 일단의 마법사들은 통로를 넘어 환요계로 진입했다.
– 어? 인간?
– 인간이다. 냄새 너무 좋아…….
– 인간이 여기로 넘어오기도 하는구나.
– 꿀꺽……. 근데 여기엔 페르세타도 없으니…….
– 미쳤냐? 인간들 건드리면 구미호 님과 망태 님이 가만 둘 거 같아?
– 그, 그래도 냄새가 너무.
수근거리던 요괴들.
그러다가 문득 그들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통로를 넘어오는 한 남자에게 꽂혔다.
– 엑?!
– 으헉!
– 꺄아아악!
– 페르세타다!
페르세타가 환요계에 나타났다.
불야성의 한복판.
언제나 북적이던 통로 근처의 시장에서, 요괴들이 썰물 빠지듯이 빠져나갔다.
급하게 도망치느라 여기저기 짓밟혀서 부러지는 요괴들도 속출했다.
“어? 갑자기 길이 한산해졌네요? 좋다. 빨리 가서 시계부터 설치합시다!”
잔뜩 들뜬 페르세타는 마법사들을 데리고 희희낙락 불야성을 가로질렀다.
페르세타가 가는 길을 따라 요괴들이 황급히 몸을 피하는 소란이 벌어졌지만, 페르세타의 눈에는 그런 것 따윈 들어오지 않았다.
‘드디어 <레라티비테트>의 첫 발을 떼는 거야.’
이곳이 환요계고, 이곳에 연구하러 온 마법사들이 잔뜩 있다는 그 사실.
그 사실만으로도 페르세타의 가슴을 터질 듯이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