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118)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118화(118/171)
118화 현재라는 것
비앙카는 녹초가 될 때까지 울었다.
처음에는 시간의 이상한 속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고 서러워서 울었고……. 나중에는 페르세타 때문에 울었다.
‘이 인간은 왜 지금 나타나가지고!’
애처럼 우는 모습을 페르세타에게 들키다니.
수치스러워서 죽고 싶어졌다.
그러자 우습게도 눈물이 더 나왔다.
‘나 대체 뭐 하고 있냐…….’
분명 처음 페르세타에게 접근했던 것은 페르세타의 마법솜씨를 시험해 보고 싶어서였다.
그를 꺾고 자신이 더 대단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그녀는 살리넬르처럼 그 속셈을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사실은 그랬다.
그래서 페르세타가 참석한다는 파티에 가서 함께 춤을 추었고, 페르세타가 주관한다는 포럼에도 누구보다 먼저 찾아갔던 것.
하지만.
하지만 이게 뭐야.
페르세타를 이기긴커녕 모여든 마법사들 사이에서 최고가 되지도 못하고.
그게 서러워서 울고 있다가 그 모습을 페르세타에게 들키기까지 하고.
‘그냥 다 때려칠까…….’
애초에 그녀의 아버지는 처음부터 그녀가 마법에 관심을 보이는 걸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자기처럼 검을 익히라고 수도 없이 강요했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싫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좋아하는 검을 익히고 싶지 않아서 고집을 부렸다.
게다가 마법이 좋았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바르덴테가 현자이던 시절 그의 마법을 보며 홀딱 반했고, 그렇게 늘 마법사가 되는 꿈을 키웠다.
근데 내가 왜 울고 있지?
그것도 페르세타 앞에서?
어느새 눈물도 마르고 온몸이 오싹오싹 부서져 내릴 것 같아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을 때, 페르세타가 입을 열었다.
“다 울었어요?”
“…….”
비앙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죽고 싶었다.
“알아요, 비앙카 님. 당신이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날 뛰어넘고 싶었던 거죠?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는 것 같아서 힘든 거죠?”
“아……?”
비앙카는 흠칫 놀라서 페르세타를 올려다보았다.
뭐야? 알고 있었어?
페르세타는 흑청색 눈동자로 다정한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당신은 절 이미 뛰어넘었어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아요.”
“아니. 진짜 어떤 면에선 정말 그래요. 당신뿐만이 아니죠. 여러 마법사들이, 모두 저를 뛰어넘은 셈이에요.”
비앙카 애시의 눈이 가늘어졌다.
날 놀리는 건가?
하지만 페르세타는 전혀 흔들림없이 말했다.
“저는요. <첼레스티움>을 집필하는데 5년. <프린키피아>를 집필하는 데 5년이 걸렸어요. 그런데 여러분은 어떻죠? 두 개 합쳐서 5년이 걸리지 않았어요. 심지어 제가 만든 것보다 더 풍부한 지식과 응용법 그리고 수식들을 만들어 냈죠.”
역시.
비앙카는 역시 자신이 놀림당하고 있는 거라 확신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뾰족해졌다.
“장난하세요? 페르세타 선생님은 그걸 어린 나이에 혼자 하신 거고, 우리는 그걸 다 함께 연구해서 한 거잖아요. 심지어 선생님한테 배워 가면서!”
그 말에 페르세타가 쓰게 웃었다.
“그래서. 부러운 겁니다. 저는 함께 연구할 사람이 없었거든요.”
“아.”
비앙카는 또 흠칫 어깨를 떨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페르세타는 5살 때 탑에 들어가 35살에 나왔다.
그 시간 동안 홀로 우주의 진리를 들여다보며, 수많은 난제들과 맞섰을 것이다.
비앙카가 오늘 맞닥뜨렸던 시간의 동시성 문제 같은 것도 페르세타는 벌써 예전에, 그 좁은 탑에서 혼자 부딪혀서 끙끙 앓으며 뛰어넘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문득 페르세타가 가여워졌다.
얼마나 외롭고 힘든 싸움이었을까.
싸움.
그래. 그에겐 정말 공부라는 게 하나의 투쟁과도 같지 않았을까.
“그러니까 비앙카. 자신이 가진 걸 더 적극적으로 이용해 보세요. 나랑 달리 당신에게는 함께 연구할 수 있는 동료들이 많잖아요. 굳이 혼자할 필요가 있을까요? 지금까지 같이해서 이렇게나 많은 성과를 만들어 냈는데?”
비앙카는 페르세타의 얼굴을 멍하니 들여다봤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페르세타라는 사람을 과연 얼마나 알고 있었던 걸까?
비앙카는 눈을 쓱쓱 닦고 일어섰다.
“네. 선생님! 그렇게 할게요. 다른 분들하고 함께 상의하고 연구할게요.”
그 말에 페르세타는 웃었다.
“역시. 부러워요.”
비앙카는 그런 페르세타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고 방을 빠져나왔다.
어쩌면 처음으로 아주 정중하게 존경의 마음을 담은 인사였다.
* * *
“……시간이 저를 능멸하는군요.”
비앙카가 가지고 온 새로운 문제.
그 앞에서 라냐 왕세녀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환술인가? 우린 사실 모두 환술에 걸려 있는 것인가? 어떻게 이게 사실일 수가 있어…….”
살리넬르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현실을 부정했다.
“허어……. 이것은 참으로……. 허어…….”
늘 침착한 현자 시에넬조차 이번에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만큼 정말 기이하기 짝이 없는 현상이었다.
“하, 한 번 더 해 봐요! 이번엔 제가 요술에 걸려 볼게요!”
일리안느는 홀린 것처럼 반복 실험을 주장했다.
– 그, 그럼 할게요.
이번에 나선 것은 원숭이 요괴 중 둘째였다.
첫째는 이미 요술을 너무 많이 써서 탈진한 상태.
둘째도 많이 힘든지 다리를 부들부들 떨었지만, 쓰러져서 말도 못하는 첫째보다는 상황이 나았으니 자신이 나섰다. 막내는 아직 요술에 익숙하지 못해서 이런 강행군을 견딜 수 없었으니까.
부우우웅!
둘째의 요술은 정면에서 오는 공격을 피해 내기 위한 요술이라고 했다.
요술의 원리는 첫째와 비슷했다.
자신의 등 뒤로 가짜 공간을 엄청나게 만든 뒤 그 뒤쪽으로 엄청난 속도로 자신을 가속시켜 공격을 피하는 요술.
정면에서 오는 모든 공격은 텅 비어있는 가짜 공간 속에서 흩어지는 그런 요술이었다.
대단한 요술이지만, 효율성이 극히 나쁜 요술이기도 했다.
공격 한 번 피하는 것치고는 요력을 너무 많이 사용하는데다가 후방에서 오는 공격에는 취약했기 때문에 모두가 쓸모없다고 비웃었다.
물론 이곳에 모인 마법사들은 그렇지 않았다.
요술 시연이 다시 시작되자, 괴로워 하던 마법사들은 다시 눈빛을 진지하게 고치며 관찰에 들어갔다.
쑤우우욱!
일리안느가 뒤쪽으로 엄청난 속도로 가속되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일리안느가 순식간에 작아진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임시로 만들어 낸 가짜 공간 속에서 가속했기에, 보이는 것은 똑같았다.
그저 가속했다는 결과만이 남았을 뿐.
그리고 이 요술은 아주 이상한 현상들을 만들어 냈다.
“또…… 홀쭉해지네.”
성녀 샤라 엘리프가 눈살을 찌푸렸다.
등 뒤쪽으로 가속된 일리안느는 마치 앞뒤로 눌린 것처럼 홀쭉해졌다.
허차원 방향으로 가속시키는 것이던 첫째의 요술에서는 관측할 수 없던 현상이었다.
“비앙카 님의 말이 맞나봐요.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서 시간…… 심지어 공간까지도 변화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여기까지 알아낸 게 어디에요?”
샤라는 침착하게 말했고, 비앙카와 살리넬르는 동시에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여기까지 알아낸 거 좋죠. 그런데 이 다음은 전혀 실마리도 안 잡히니까 그러는 거잖아요.”
비앙카는 투덜거렸고,
“젠장……. 젠장. 뭐가 문제지? 대체 뭐지?”
살리넬르는 다시 머리를 쥐어뜯었다.
“살리넬르 교수님. 그러다가 대머리 돼요.”
시에넬의 제자 알 아드네가 자기 딴엔 걱정한다고 한 소리를 했다가 스승의 지팡이에 머리를 얻어맞았다.
그리고,
“쉿! 시작됩니다!”
샤라 엘리프가 산만한 분위기를 다 잡으며 일리안느에게 집중했다.
그래.
시작되고 있었다.
[실드]!일리안느가 실드 마법을 전개한 것.
실드마법은 언제나 정확한 구를 만들며 동시에 몸을 감싼다.
그런데…….
“이번에도 정면에 먼저 실드가 완성되고 뒤늦게 등 쪽 실드가 완성되네요.”
지금 일리안느가 펼친 실드는 그런 상식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있었다.
정면쪽 반구가 먼저 만들어지고 등 쪽 반구가 뒤늦게 완성되었던 것.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몸을 아예 옆으로 돌린 일리안느가 이번에는 양손을 들고 섬광 마법을 터뜨렸다.
번쩍! 번쩍!
왼손에서 섬광 마법이 먼저 터지고 그 다음에 오른손에서 섬광 마법이 터졌다.
그게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땠어요? 어땠어요?”
요술이 끝나고 일리안느는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분명 동시였죠? 제가 두 눈으로 똑똑히 확인했어요. 실드도 앞뒤가 동시에 완벽한 구로 만들어졌고, 섬광마법도 왼손 오른손 정확히 동시에 터뜨렸어요.”
요술의 대상이 되었던 일리안느는 전혀 다른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샤라 엘리프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이번에도 따로따로였어. 왼손이 먼저. 조금있다가 오른손.”
“진짜요? 진짜?”
“영상 기록해 뒀으니 확인해 봐.”
샤라 엘리프가 영상 마법을 펼친다.
그리고 일리안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정말 영상 속의 자신이 마법을 따로따로 발현하고 있었으니까.
모두가 한숨을 쉬었다.
이미 몇 번이나 반복된 상황이었다. 다들 자기 눈에 보이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현자 시에넬이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우리 이제 현실 부정은 그만하지. 여기 실험 결과가 명확히 나왔으니 그걸 받아들이고 설명을 시작해보자고.”
과연 그녀는 현자답게 혼란에 빠진 마법사들을 바로잡으며 눈을 번뜩였다.
“확인된 사실은 이렇다. 빠른 속력으로 날아가는 대상이 경험한 현실과 그걸 관찰한 우리의 현실이 서로 다르다.”
살리넬르가 그 말을 이어받아 부연설명을 더했다.
“움직이는 대상이 동시라고 관찰한 사건을 우리는 시간차를 두고 따로따로 일어난 사건으로 관찰했죠.”
그러자 라냐 왕세녀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진실이 두 개일 수는 없습니다. 둘 중 하나는 틀렸다는 거겠죠. 빠른 속력으로 인해 관찰자의 관측에 오차가 생긴 것이거나 이동 중인 사람의 인식에 변화가 생긴 것 아닐까요? 이 두 가지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진실은 하나니까요.”
그 말에 반란군 수괴였던 애캘슨이 이죽거렸다.
“왕세녀여서 그런가. 왜 진실이 하나라고 생각하시오? 나는 전장을 떠돌며 수없이 많은 진실들을 보았지. 진실은 하나가 아니야. 보기에 따라 달라지기 일쑤라고.”
그 말에 라냐 왕세녀가 발끈했다.
“당신은 매번 반란군이었던 걸 자랑이라도 하는 듯하군! 그리고 이건 엄밀한 마법적 사건에 대한 이야기요! 답을 알 수 없는 복잡한 인간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란 말이오!”
“아니. 우리가 잘 알지도 못하는 현상인데, 진실은 하나니 확정 짓고 시작하는 게 안 좋아 보여서 한 말이지.”
애캘슨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라냐와 애캘슨은 투닥거리고,
“아아……. 천사님이라면 어떨까. 천사님이 보시면 다르게 보이려나…….”
성녀 샤라 엘리프는 도움이 되지도 않는 말만 혼자 중얼거렸다.
일리안느가 찝찝한 얼굴로 비앙카를 돌아보았다.
“쉽지 않네요. 언니. 함께 머리를 맞대면 뭔가 좋은 생각이 나올 것 같다고 하셨는데……. 다들 혼란에 빠졌어요.”
그런데.
“아……!”
비앙카는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떨고 있었다.
“언니?”
“아! 그래! 그거야! 애캘슨 님의 말이 맞아! 진실이 하나일 필요는 없잖아!”
“네?”
모두가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며 비앙카를 돌아볼 때, 비앙카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외쳤다.
“기준! 그래! 이번에도 기준의 문제예요! 지구를 기준으로 삼으면 신비 세계의 운동을 설명할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가 정지해 있다고 생각하면 시간의 상대적 흐름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처럼!”
그녀가 손을 마구 휘젓자 허공에 빛나는 선 하나가 그어졌다.
“우리는 ‘현재’라는 기준이 하나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이것만이 현재라고 생각했다고요.”
현자 시에넬이 눈을 번뜩였다.
“그 말은 설마……?”
“예!”
비앙카가 허공에 여러개의 선을 사선으로 그었다. 서로 평행하지 않은 선들이 어지렇게 그어진다.
“하지만 사실 그 기준은 하나가 아니었던 거예요! 움직이고 있는 대상마다 모두 각자의 ‘현재’를 가지고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게 해결됩니다!”
모두 각자 다른 ‘현재’를 가지고 있다. 그 말이 마법사들의 가슴을 울렸다.
비앙카는 신이 나서 외쳤다.
“그러니까 사실 모두가 합의할 수 있는 ‘현재’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던 거예요! 우리가 현재라고 동시에 일어났다고 보는 어떤 사건은 다른 누군가의 눈에는 순차적으로 일어난 전혀 다른 시간선의 사건이 될 거라는 거죠!”
아주 대담한 제안.
하지만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그 하나의 논리에서 파생된 그 가설에, 이 자리에 모인 마법사들은 모두 강한 울림을 느꼈다.
“현재라는 건! 없어요!”
비앙카의 목소리가 연구실을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