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12)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12화(12/171)
12화 용돈
경매가 끝나고.
벌어들인 돈을 정산하는 데도 상당히 시간이 걸렸다.
금화 한 닢, 은화 한 닢, 빠뜨리는 것 없이 일일이 세고 무게를 달아 확인했다. 그 후엔 숫자를 맞춰 상자에 넣어 봉한 다음, 페르세타가 금고에 마법적인 방비까지 마쳤다. 그러고 나서야 정산 작업이 모두 끝이 났다.
힘들게 벌어들인 돈이 혹시나 새어나가진 않나, 가문 모두가 눈을 부릅 뜨고 당번을 정해 감시감독을 했던 시간이었다.
“84만 데나르라니!!!”
그리고 마침내 모든 작업이 끝났을 때, 플리안 남작은 미뤄두었던 기쁨을 한껏 토해냈다.
어마어마한 수익이었다!
모든 상품이 원래 예상했던 액수보다 2~6배 가격에 팔려나갔다.
심지어 요정 포도 같은 것은 예상했던 것의 10배를 기록했다.
비델 남작이 초반부터 4천 데나르를 부르며 기선제압을 시도했지만, 바로 뚫리고 그 가격이 2만 데나르까지 치솟았던 것이다.
그 결과 가문의 빚을 다 갚고도 한참 남는 돈을 벌어들였다.
84만 데나르면 1핀(5g)짜리 은화로는 840만 닢이요, 왕국 금화로는 8만 4천 닢이었다.
황금으로만 따져도 420kg!
베리테 남작가가 잘 나가던 시절을 기준으로 잡아도 7년치 수입!
요즘처럼 힘들던 시절을 기준으로 하면, 무려 14년치 수입!
고작 한 번 수확했을 뿐인데······.
요정 작물을 보통 1년에 5번까지도 수확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말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아들. 다 네 덕분이다. 이제 가문은 부강해질 것이다. 잘만 하면 펠릭스 자작가와의 문제도 잘 해결 되겠지.”
“예? 펠릭스 자작가와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아, 신경 쓸 것 없다. 아들아. 난 그저 네가 자랑스럽구나.”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인 플리안 남작은, 다시 페르세타를 뜨겁게 끌어안았다.
그는 이 기적이 잘 믿기지 않았다.
아들이 떠나있던 30년 간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던가?
처음에는 걱정과 기대가 반반이었다.
바르덴테라는 세계 제일의 마법사가 아들을 수제자로 삼겠다니 당연히 기대가 되고 기뻤다.
그 위세와 행운에 놀라 고작 5살짜리 아들을 폐관수련시킨다는 말에도 감히 거절도 못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어찌 걱정이 안 되었으랴.
고작 5살이 아니던가?
엄마 품에서 놀아야 할 나이 아니던가?
하루하루 걱정과 후회로 마음을 졸이며 바르덴테와 페르세타가 들어간 탑 앞을 서성이곤 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새로 태어난 아들, 즈바르트가 다섯 살이 되었다.
혹시 나오려나 싶었으나 나오지 않았다.
다시 6년이 지났다. 일리안느가 태어났다. 이젠 진짜 진짜 나오겠지 했으나 끝내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30년이 흘러, 모두가 페르세타를 둔재라 비웃었을 땐, 그냥 모든 게 다 원망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그 30년의 세월은 여전히 아쉽고 그립게 남았지만, 그래도 이젠 확실히 깨달았다. 적어도 그 시간이 헛된 시간은 아니었다는 걸.
마법으로는 요정 농장에 기적을 가져왔으며, 대단한 마법사 살리넬르를 굴복시켰고, 학식으로는 그 잔뼈 굵은 상인들을 가지고 놀았다.
이젠 설령 마법 실력을 감춘다고 해도, 그 학식만으로도 페르세타를 무시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의 지혜를 구하기 위해 전 대륙에서 사람들이 몰려 올지도 모른다.
영주가 아닌, 한 명의 아버지로서는, 큰 돈을 번 것보다 그 사실이 더욱더 기뻤다.
“정말······. 정말 수고했다. 페르세타······.”
페르세타는 아버지의 품에 안겨 어색하게 그의 등 위에 손을 올렸다.
그는 문득 스승님께 배운 역사와 철학, 그리고 정치와 관련한 내용들을 떠올렸다.
‘이래서 항상 핏줄을 중심으로 인간의 역사와 정치가 발전했던 거였구나.’
사실 스승님께 배울 때 가장 이해가 안 되던 부분 중 하나였다.
왜들 그리 혈연에 집착하는지.
혈연에 대한 집착만 버리면 훨씬 더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을 텐데······.
안타깝기도 하고 바보같다 여기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탑을 나서서 가족들의 사랑을 느껴보자, 이제야 그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사람은 합리성만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야. 이런 거였구나······. 비합리적이지만, 이 역시도 아름답고, 좋다.’
새로운 깨달음에 페르세타는 기뻤다.
비록 이 세상은 마법에 관해선 배울 게 없었지만, 그래도 다른 것들은 배울 게 참 많았다.
문득 아버지가 물었다.
“그런데 대체, 얼마나 성취를 이루고 나온 거냐? 대체 네가 뭘 얼마나 배운 건지 짐작도 되지 않는구나.”
그 질문에 페르세타는 잠시 생각하다가 솔직하게 대답을 했다.
“음······. 일단 <알마게스트>는 열 다섯 살에 뛰어넘었어요.”
“뭐······? 하하하! 그렇지! 그렇지! 역시 우리 아들은 천재구나! 하하하하!”
플리안 남작은 그걸 아들의 귀여운 허풍이라고 생각했다.
**
그리고 그 날이 왔다.
가문의 빚을 갚는 날.
플리안 남작가의 빚은 무려 15만 데나르에 이르렀다.
근 5년간 가문의 수입이 연간 6만 데나르에 불과했다는 걸 감안하면, 사실상 갚는 게 불가능한 액수였었다.
심지어 매년 가문 지출은 7만 데나르로 만성 적자였으니까.
물론 남작도 노력을 했다. 필수적인 지출을 빼고 모조리 폐했다. 귀족으로서 체면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허리띠를 졸라맨 시간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곳은 동부 중에서도 변방.
괴물들의 영역인, ‘칼라 산맥’의 발치에 자리잡은 땅이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베리테 남작 가문이 귀족 서임을 받은 것도 이 험지를 개척한 공로 덕분이었다.
지금에 와서는 아주 위험한 지역은 아니었으나, 그래도 주기적으로 마물을 소탕하고 요새와 성벽을 보수하지 않으면 영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다.
결국 상당한 양의 방위 예산이 늘 고정비로 빠져나갔다.
그렇게 수입이 6만 데나르. 줄이고 줄인 지출이 7만 데나르.
사실, 빚을 질래야 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 이상 빚을 지려면 영지를 담보로 내놓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빌렸다!
이미 빚이 5만 데나르가 있는 상황에서 추가로 10만 데나르를, 담보도 없이, 저리에! 빌렸다!
그 돈으로 요정계 공명 마법진도 설치할 수 있었고, 영지의 운영도 꾸려나갈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런 큰 돈을 빌려준 상인이 오는 날이었다.
그래서,
플리안 남작은 아침부터 페르세타를 붙들고 신신당부를 했다.
“아들아. 오늘 올 상인, 글라우베는 나와 어릴 적부터 죽마고우였던 친구란다. 내가 힘들 때마다 항상 조건없이 도와준 고맙디 고마운 친구지. 비록 신분은 평민이라 하나, 나의 형제와도 같은 이니, 너도 삼촌을 대하듯 예를 다하거라.”
“예. 알겠습니다. 아버지.”
어찌보면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였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상인 글라우베를 만난다는 생각에 무척 들뜬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페르세타는 그 모습을 보며 글라우베라는 사람이 새삼 궁금해졌다.
마침내 글라우베 씨가 남작성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페르세타는 어쩐지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았다.
‘아······. 저게 좋은 인상이라는 거구나.’
경매장에서 본 상인들의 가면을 쓴 듯한 웃음과는 많이 달랐다.
그저 소탈하고 그저 편안하게 웃는 얼굴이었다. 그러면서도 눈빛은 반짝였고 한 마디 한 마디 뱉는 말은 신중하면서도 무거웠다.
“남작님. 이렇게 좋은 일로 뵙게 되어 소인이 너무 기쁩니다.”
“이 사람아. 언제까지 날 남작이라고 부를 건가. 그냥 편하게 플리안이라고 부르라니까.”
“사람은 친하고 소중할수록 예를 다해 사귀어야 합니다. 그래야 오래가는 법이지요. 소인은 남작님과 오래 가고 싶습니다.”
“허어······. 이 사람이 정말.”
페르세타는 감탄했다.
글라우베의 예가 참으로 절묘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귀족을 대하는 예법을 다 지키면서도 아버지가 서운하지 않도록 부드럽게 아버지의 눈을 보고 뜨겁게 그 손을 잡았다.
예를 다하고는 있지만, 사실 내 마음도 당신과 다르지 않습니다. 라는 걸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달까.
그게 페르세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은 언어가 아닌 것으로도 이토록 상세하고 절실하게 전달이 될 수 있구나.
그렇게 페르세타는 또 하나의 깨달음을 기억 속에 새겨넣었다.
글라우베는 플리안 남작과 친근한 인사를 나눈 후엔 자연스럽게 화제를 바꾸었다.
“이번에 남작님 영지에서 큰 경매가 열렸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욕심나는 물건이 있었으나, 마무리 짓지 못한 상행이 있어 이제야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대단한 경매였다는데,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러자 플리안 남작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내 그래서 준비한 게 있지. 페르세타!”
“예. 아버지.”
페르세타가 손가락을 휘릭! 움직이자, 수레를 가리고 있던 천이 휙! 벗겨졌다.
“허어······! 이것은?”
글라우베가 정말 깜짝 놀랐는지 두 눈을 부릅 떴다.
“자네를 위해 따로 빼둔 물량이지. 일단 첫번째 수레는 극등품의 상품들을 골고루 모아둔 수레일세. 자네라면 이걸 잘 쓸 수 있을 거야.”
“허어······. 잘 쓸 수 있다 뿐입니까? 이걸 팔기만 해도 이문을 두 배는 남길 자신이 있고, 이걸 잘 선물하면 서너배의 이득도 뽑아낼 자신이 있습니다. 이미 베리테 남작가의 요정 작물 이야기로 천하가 들썩이고 있는 걸요.”
“하하하. 그리 들으니 정말 기분이 좋군. 보람이 있어. 그리고 두 번째 수레는 이번에 아주 인기가 좋았던 특등품 요정 포도일세. 이건 그냥 파는 것보다는 포도주로 가공해서 파는 게 훨씬 이득일 걸세.”
“아······. 소문을 들었습니다. 색욕의 악마 아모릭스라니······. 이건 정말, 귀중한 물건입니다.”
글라우베는 자신의 눈을 믿지 못 하겠다는 듯 몇 번이고 수레와 플리안 남작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헌데······. 이 귀한 것을 파시지 않고 따로 떼어놓으셨다니······. 제가 너무 죄송스럽습니다.”
“우리 사이에 그런 말 말게! 그리고 값도 받을 것이야! 다 해서 7만 데나르를 내놓게. 한 푼도 깎아줄 수 없네!”
본래 경매에서 저 물건들이 팔린 가격은 10만 데나르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도 플리안 남작은 오히려 7만 데나르를 부르면서도 자신이 무슨 악독한 상인이라도 된 것처럼 짐짓 위악을 부리고 있었다.
글라우베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았다.
그래서 남작이 빚을 갚겠다고 상품 대금인 7만 데나르를 제외한 8만 데나르, 그러니까 8천 닢의 왕국 금화를 내놓았을 때, 글라우베는 바로 그 자리에서 금화 상자를 열었다.
“허허. 그렇지! 아무리 친구 사이여도 계산은 정확히 해야 하는 거네. 잘 세보게! 사실내가 금화 몇 닢씩을 빼돌렸네.”
플리안 남작의 농담에 글라우베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세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
글라우베는 눈 짐작으로 상자 안의 금화들을 확인하곤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히 2만 데나르씩 총 4상자로군요.”
“그렇지.”
“그러면.”
글라우베가 네 개의 상자중 두 개를 번쩍 들었다. 금화의 무게만 해도 20kg에 이르는데 전혀 무거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호리호리한 몸매인 데도 힘이 아주 옹골찬 게 직접 뛰는 상인다웠다.
“남작님께서 깎아주신 3만 데나르에 제 마음 1만 데나르를 더 얹었습니다. 여기 금화 두 상자를 페르세타 도련님께 뇌물로 바칩니다.”
“네?”
페르세타는 자신 앞에 내밀어진 두 개의 상자를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글라우베가 페르세타와 눈을 마주치며 장난스레 웃었다.
“어서요. 이 늙은이 팔이 떨어지려 합니다.”
그 말에 허겁지겁 상자를 받아드는 페르세타.
덩치에 비해 힘이 약한 그는, 상자까지 치면 20kg을 훌쩍 넘는 그 무게에 그만 휘청하고 말았다.
글라우베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반면에 플리안 남작은 호통을 쳤다.
“아니! 글라우베! 이게 무슨 짓인가? 내가 기껏 성의를 보였더니 그걸 왜 돌려줘?!”
그 말에 글라우베가 정색을 했다.
“돌려주다니요? 돈은 남작님이 주셨고 저는 그것을 제 판단에 따라 도련님께 뇌물로 바친 것인데요?”
“뇌물?”
“예. 저도 귀가 있습니다. 페르세타 도련님이 범상치 않은 마법사라는 걸 아주 잘 알고 있지요. 하지만 아직은 그 사실을 아는 이보다 모르는 이가 더 많지 않습니까? 그러니 바로 이럴 때 미리 뇌물을 먹여둬야 하는 것이지요.”
글라우베가 페르세타를 보며 짐짓 간사한 미소를 지었다.
“잘 부탁드립니다요. 도련님.”
“아, 아저씨······.”
페르세타는 어찌할 줄을 모르고 난감해 했다.
글라우베는 껄껄 웃으며 그런 페르세타의 부담을 덜어준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심입니다. 도련님은 크게 되실 분이세요. 가문이 이번에 돈을 많이 벌었다지만, 그것은 가문의 돈이고 도련님의 돈이 아니지 않습니까? 큰 일을 이루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 법. 부족하나마 그것으로 일단 필요한 곳에 쓰십시오. 그리고 훗날 일이 잘 풀린다면, 그때 저를 기억해주시면 됩니다.”
글라우베가 이렇게까지 말하자 플리안 남작도 더는 뭐라 말을 하지 못했다.
페르세타만 혼자 어쩔 줄을 모르고 상자를 든 채 끙끙거렸다.
“페르세타.”
“예, 예. 아버지. 그게. 제가 이걸 받으려고 한 게 아니고. 이게. 무거워 보여서. 실제로도 무겁네요······.”
“삼촌. 감사합니다. 하거라.”
“예?”
“어서.”
“아, 예. 글라우베 삼촌. 감사합니다.”
“허허. 삼촌이라니요. 이 소인이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허리를 숙이는 페르세타와 그보다 더 깊이 허리를 숙이는 글라우베.
페르세타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용돈을 받아보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