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125)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125화(125/171)
125화 하산하다
페르세타는 마법의 궁전으로 돌아가고, 남은 마법사들은 끼리끼리 모여 여기저기 주점으로 흩어졌다.
비앙카도 가까운 마법사들과 근처 아무 가게로나 들어가 맥주를 들이켰다.
잔을 내려놓고 가게의 분위기를 살펴보자 이곳도 시장처럼 꿀꿀했다.
분노와 원망, 체념을 술로 잊고 있는 사람들.
비앙카는 그 분위기를 지켜보다가 입술을 열었다.
“그러니까…… 이만 하산하라는 거잖아요?”
그 말에 조용히 맥주를 음미하던 살리넬르가 깜짝 놀랐다.
“응? 하산?”
비앙카가 눈썹을 찌푸렸다.
“왜 몰랐다는 듯이 말해요?”
“아니. 그런 말이 있었나? 하산이라니?”
“……마법은 잘해도 눈치는 없을 수 있구나…….”
비앙카가 고개를 저었다.
다른 마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살리넬르 혼자 괜히 찔끔해서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라냐 비셰나 왕세녀가 담담하게 비앙카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 생각은 했죠……. 돌아보면 딱 적절한 타이밍이긴 합니다. <레라티비테트>를 통해 이제야말로 신비 세계와 온전히 소통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사실 <프린키피아>가 나왔을 때, 마법사들은 마침내 신비 세계의 좌표와 운동을 완전하게 기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게 마법의 끝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각 신비 세계와 인간계 사이에는 ‘시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상대적인 움직임의 차이와 마나 인력이 만들어 내는 시공간의 왜곡으로 인해 발생하는 시차.
<레라티비테트>는 그 시차마저 계산할 수 있게 해 주는 지식이었다.
각 신비 세계와 연결을 방해하고 있던 마지막 변수마저 통제하에 두게 된 것이었다.
이걸 이용하면 앞으로 얼마나 더 대단한 마법을 부릴 수 있을지 짐작도 가지 않을 정도.
라냐 비셰나는 바로 그 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선생님 말대로……. 이젠 우리도 이 세상을 바꿀 힘을 가졌으니까요. 배운 것을 우리의 뜻대로 펼칠 날이 온 거죠.”
그래.
그래서 하산이었다.
여태까지 페르세타는 계속해서 그들에 과제를 부여하며 마법을 가르쳐 왔는데, 이젠 더 이상 그러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제는 그간 배운 것을 가지고 각자 알아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내라는 말이었다.
“하산이라…….”
마법사들은 잠시 말없이 각자의 미래에 대해 생각에 잠겼다.
* * *
“과연……. 어떻게 되려나.”
페르세타는 예상 외로 싱숭생숭한 기분에 자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마법사들이 <레라티비테트>를 배우고 자신을 떠나는 순간,
이 순간을 그렇게나 기다려왔는데……. 왜 막상 이때가 오자 이렇게 허전한 기분이 드는 걸까.
물론 아직 가르쳐 줄 게 남아 있기는 했다.
<콴티지에옴>이 있으니까.
하지만 이건 여태까지처럼 데리고 다니면서 가르쳐 줄 필요는 없을 것이었다.
이제 다들 마법을 연구하는 방법에 익숙해졌으니까.
그냥 책으로 발표를 해도, 알아서 공부하고 해석하고 새로운 질문을 뽑아낼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래서 드디어, 여태 페르세타가 붙들고 있던 마법사들이 이 세상에 풀려날 때가 왔다.
그건 이 세상에 엄청난 변화를 가지고 오겠지.
“그래서 뿌듯한데……. 왤까? 왜 자꾸 이렇게 아쉬운 느낌이 들까?”
페르세타는 의자에 등을 기대고 고개를 꺾어 천장을 보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더 잘할 수 있었을 것 같아.”
참 부족함이 많았다.
때론 잔인하기도 했고,
자주 둔감하기도 했고,
툭하면 몹쓸 짓을 했다.
그땐 그게 옳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왜 이렇게 아쉽고 미안한 건지…….
“스승님께 감사해야겠네.”
만약 스승님의 가르침이 없었다면, 폐관을 마치고 지금까지 훨씬 더 많은 실수를 저질렀을 테니까.
세상을 지배하고 멋대로 주물렀을 테니까.
때론 잔혹하게, 아주 둔감하게.
그나마 스승 바르덴테 덕분에 최악은 면한 셈이었다.
그래도,
지금 알고 있는것들을 예전에도 알았다면 참 좋았을 텐데…….
“모두에게 고맙고 미안하네.”
페르세타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길게 한숨을 쉬었다.
* * *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께 받은 은혜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페르세타는 라냐 비셰나 왕세녀를 맞이해서 조금 당황했다.
마법 왕국 비셰나의 차기 왕이 될 그녀가 자신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었다.
“일어나세요.”
페르세타가 그녀를 일으키려했으나, 그녀는 바로 따라 올라오지 않았다. 그 상태로 깊숙이 한 번더 고개를 숙인 다음에야 페르세타의 손에 이끌려 일어섰다.
그녀가 말했다.
“선생님께 배운 모든 순간들이 꿈 같았습니다.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마법의 깊은 경지로 절 이끌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상상도 못 했던 그녀의 정중한 태도에 페르세타는 살짝 말문이 막혔다.
“……아닙니다. 이 부족한 사람 때문에 고생 많이 하게 만들어서, 제가 죄송한 게 많아요.”
하지만 라냐는 고개를 저었다.
“선생님. 설령 선생님께 부족한 점이 있다 해도, 설령 선생님께서 누군가를 서운하게 했다 해도, 선생님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것은 그보다 몇 배는 더 큽니다.”
라냐는 고요한 눈동자로 페르세타와 시선을 마주했다.
“이제는 제자가 아니라 동료로서, 선생님과 같은 꿈을 꾸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페르세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녀를 마주 바라봤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어떤 울컥함, 따뜻함이 그의 가슴을 적셨다.
그녀가 방을 나가고 얼마 뒤에 이번엔 살리넬르가 찾아왔다.
기세가 자못 흉흉했다.
“페르세타 선생님.”
“어서 오세요 살리넬르 님.”
“끝이 아니죠?”
“예?”
“<레라티비테트>가 끝이 아니죠?”
페르세타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물론 아닙니다. <콴티지에옴>이 남았어요.”
“휴우…….”
살리넬르는 그제야 안심했다는 듯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또 가르쳐 주실 거죠?”
“예. 이전처럼 데리고 다니며 가르치진 않을 생각이지만……. 책을 발표하긴 하겠죠.”
“복잡한 기분이네요.”
“뭐가요?”
“또 배울 게 남아 있다는 생각에 기쁘기도 하고……. 아직도 당신을 넘지 못했다는 생각에 분하기도 하고…….”
살리넬르는 씩 웃었다.
“두고 보십시오. <콴티지에옴> 이후엔, 제가 꼭 당신을 놀래킬 테니.”
“저도 그 날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럼 가 보겠습니다. 혼자서 당신을 뛰어넘을 자신은 없으니……. 최고의 연구팀을 꾸려야겠습니다.”
페르세타는 웃었다.
자신에게 배운 마법사들에게는 참 미안한 게 많았지만, 이상하게 살리넬르에게만은 그다지 미안하지 않았다.
그래.
라이벌에게 미안해할 수는 없지.
“많이 노력하셔야 할 겁니다.”
“두고 보십시오.”
살리넬르가 떠나고, 또 누군가 들어오고, 그렇게 한 명씩 한 명씩 페르세타를 찾아와 인사를 남겼다.
“선생님. 저는 정말 선생님께 놀랐습니다.”
“예? 무슨 말씀이십니까 애캘슨님?”
“선생님은 세상 전부를 손에 넣을 힘을 가지고 계시지요. 하지만 그걸 휘두르지 않으십니다. 다른 이들의 손에, 더 많은 이들의 손에 세상을 맡기셨지요.”
“학살자가 되고 싶진 않으니까요.”
“그래서 놀랍다는 겁니다. 덕분에 저도 제 갈길을 정했습니다.”
“무엇이죠?”
“한 사람이. 또 소수의 몇몇 사람이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는 세상. 그걸 만들 겁니다. 제가 평생을 바쳐 왔던 오마르 독립 운동은, 더 큰 대의 속에서 그렇게 완성될 겁니다.”
“음……. 마법에도 도움이 되겠죠?”
“됩니다. 제가 장담 드리죠. 제가 어디서 무얼 하든, 더 많은 마법사를 길러 내는 것. 그것 하나는 결코 잊지 않을 겁니다. 그게 바로 제가 진 빚을 갚는 길이니까요. 그럼. 가 보겠습니다. 앞으로 아주 바쁠 예정이라……. 또 언제 뵐지는 모르겠네요.”
페르세타는 그 말이 정말 든든하다고 생각했다.
애캘슨이 나가고 들어온 것은 현자 시에넬이었다.
“스승님. 이제는 당신의 꿈을 함께 꿀 마법사들이 모래알처럼 많습니다. 그러니 스승님. 더는 외로워 마세요.”
그녀는 페르세타에게 따스한 위로를 건넸다.
페르세타는 어쩐지 말문이 막혔다.
마법사들에게 미안한 게 참 많았는데……. 왜들 이렇게 나에게 잘해 주는 걸까?
그런 생각에 마음이 요동쳤기 때문이었다.
시에넬은 페르세타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들여다보더니, 그 마음을 안다는 듯 미소 지었다.
“스승님. 반성은 좋은 것이지만, 반성하느라 시야가 좁아지시면 안 됩니다. 우리도 마법사예요. 위대한 지식을 위해 기꺼이 스스로를 희생할 수 있는. 스승님이 그 마음까지 책임질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 돼요.”
페르세타는 어쩐지 마음이 한결 더 단단해진 기분이 들었다.
시에넬은 그런 페르세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이 늙은이도, 선생님의 꿈을 함께 이뤄 나갈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삶, 마지막까지 함께 꿀 수 있는 꿈이 있어서 영광되고 고맙습니다.”
그때, 페르세타는 생각했다.
아.
내가 정말 잘했구나.
폐관을 마치고 지금까지 해 온 모든 일이.
정말 가치가 있구나.
그 복잡한 마음을 말로 다 할 수가 없어서, 페르세타는 그저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많은 마법사들이 와서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떠났다.
그 모든 인사를 마치고 나자, 페르세타는 어쩐지 자신의 세계가 예전보다 커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지식을 얻은 것도 아닌데……. 어쩐지, 깊은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세상이 달리 보였다.
페르세타는 궁전의 꼭대기에 올라 밖을 내려다보았다.
그간 자신을 따라다니며 연구를 하던 마법사들이 짐을 챙겨 하나둘 떠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는 그 모습을 보아도 전처럼 그렇게 허전하진 않았다.
대신 기대가 되었다.
그들이 일으킬 변화가.
“선생님.”
그때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돌아보니, 성녀 샤라 엘리프가 서 있다.
“성녀님? 성녀님은 안 떠나시나요?”
페르세타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녀의 반응에 페르세타는 알겠다는 듯 손가락을 들었다.
“혹시 메아샤 님 때문입니까? 그분이 저를 따르라고 하셔서? 그런 문제라면……!”
“아뇨. 그런 게 아니에요.”
샤라 엘리프는 베시시 웃었다.
“저는 이제 더 이상 천사님들의 말씀을 계시처럼 따르지 않아요. 그들도 단지 우리와 같은 태양계에 속한 주민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 거든요. 인간보다 지혜롭고, 인간보다 강하지만, 그뿐이죠.”
“그럼……?”
“선생님이 저를 그렇게 바꿨잖아요. 천사만 아는 바보에서 마법만 아는 바보로. 그러니까……. 이젠 제 뜻으로 당신을 따를 거예요.”
“저를요?”
“네. 누군가는, 선생님 옆을 지켜야죠. 같이 연구도 하고.”
“떠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까?”
“네. 가라고 하셔도 안 가요. 성녀를 타락시킨 건 선생님이니까. 선생님이 책임지셔야 돼요.”
샤라 엘리프가 성큼 다가왔다.
새벽 공기처럼 청량한 향기가 났다.
샤라는 페르세타의 손을 잡고 가슴 높이로 들어올렸다.
페르세타와 똑바로 시선을 마주치며 말했다.
“이제야 말씀드려요. 감사해요. 제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 주셔서.”
페르세타는 가만히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따뜻하네요……. 손이.”
“성녀니까요.”
샤라가 웃었고, 페르세타도 웃었다.
바람 한 줄기가 페르세타의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다.
페르세타는 어쩐지 그 바람에서 나는 냄새가 익숙하다고 느꼈다.
아,
그렇지.
30년 만에 탑을 처음 나왔을 때, 그때도 이런 바람 냄새를 맡았던 것 같았다.
또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