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127)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127화(127/171)
127화 도로테아 세이린
비앙카 애시, 아니, 도로테아 1황녀는 황궁을 찾기 전, 페르세타를 먼저 찾아와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때,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선생님. 사실 제가 처음 이곳을 찾아온 건 분해서였어요.”
“분하다고요……?”
“네. 저는 항상 제가 선대 현자, 바르덴테 님의 진정한 제자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녀는 가장 재능 넘치는 황족이었고, 어려서부터 황제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다만 검의 극한을 추구했던 황제와 달리 그녀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마법에 매료되었다.
황제는 집요하게 그녀에게 검을 가르치려 했지만, 그녀는 끝까지 마법을 고집하며 성취를 보였다.
아무도 마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홀로 황실 서고를 뒤져가며 마법을 독학해 경지에 올랐던 것이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천재라는 칭호에 가까이 서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중에는 황제마저 그녀의 마법 사랑을 인정하고 말았다.
“그래. 마법 역시 인간만의 힘이기는 하지. 마음대로 하거라. 하지만 성과를 보여야 할 거다.”
물론 단서를 붙이긴 했지만.
어쨌든 도로테아는 마법을 사랑했고, 그걸 마음껏 추구할 자유를 얻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가장 존경했던 마법사가 바로 전대의 현자 바르덴테였다.
“뭐?! 바르덴테 님의 새로운 기록을 구했다고??!”
그녀는 황실 서고에 있던 바르덴테의 책을 수십, 수백 번씩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사람을 시켜 전 세계에서 그와 관련한 모든 기록을 수집해 왔다.
심지어 마법과 관련 없는 편지 같은 것까지도 수집하며, 바르덴테라는 사람의 사고방식과 관점을 모조리 흡수하려고 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르덴테의 연구 성과를 곱씹고, 밤에 잠이 들 때면 바르덴테가 고민했던 문제를 똑같이 고민하며 잠에 드는 황녀.
그렇게 15살이 됐을 때, 그녀는 더는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바르덴테 님을 만나고 싶어!”
바르덴테는 그녀의 정신적 어버이와도 같았다.
애초에 황제의 뜻마저 뿌리치고 마법의 길을 걸었던 계기부터가 바르덴테가 남긴 마법 도구들에 있었으니까.
당연히, 바르덴테를 만나고 싶다는 열망은 그녀의 안에서 점점 커져만 갔다.
그녀의 마음 속에서, 이미 바르덴테는 그녀의 스승이었다.
하지만 가지고 싶은 것이라면 무엇이라도 가질 수 있었던 황녀였음에도 불구하고, 바르덴테 만큼은 만날 수조차 없었다.
“황송하옵니다, 전하. 바르덴테 님께선 20년도 더 전에 폐관에 들어가셨습니다. 바르덴테 님의 평안을 방해하지 말라는 것은 황제 폐하의 명입니다. 아무리 전하라고 해도 폐관이 끝난 다음에나 바르덴테 님을 만날 수 있으십니다.”
“폐관! 폐관! 그놈의 폐관! 벌써 20년도 더 지났잖아! 대체 그 폐관은 언제 끝나는데!”
“그것이…….”
“편지만 전달해다오! 그럼 나도 더는 조르지 않으마! 바르덴테 님께 여쭈고 싶은 것이 한가득이란 말이다!”
“그게…….”
“그것도 안 된다는 말이냐!”
“……알겠습니다. 폐하께 여쭤보겠습니다.”
몇날 며칠을 우기고 떼를 쓴 끝에, 그녀가 얻어 낼 수 있었던 기회는 겨우 한 장의 편지가 전부였다.
“폐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딱 한 번. 단 한 번만 허락하시겠다고요. 편지를 주시면 제가 전달드리겠습니다.”
“아니다! 내가 내 손으로 직접 전달 드려야겠다!”
그렇게 도로테아는 베리테 남작령으로 향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바람과 달리 그녀는 바르덴테와 만날 수 없었다.
그녀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바르덴테와 페르세타가 폐관 중인 탑으로 가서, 매일 올려 보내는 음식 바구니에 그녀의 편지를 끼워 넣는 것이 전부.
그래도 그녀는 자신이 있었다.
매일 똑같은 상상을 했다.
바르덴테가 자신의 편지를 보고, 폐관을 깨고 뛰쳐 나오는 모습을.
뛰쳐 나와서 자신을 보고,
“이걸 정말 황녀님이 생각하신 겁니까?! 어허허! 진짜 천재가 여기 있었군요! 페르세타라는 멍청한 놈은 20년동안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습니다! 이제부터 제 수제자는 바로 황녀님입니다!”
이렇게 외치며, 자신에게 마법의 비밀을 가르쳐 주는 모습을.
정말이지.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바르덴테의 모든 책을 한 글자도 빠짐없이 외웠고, 그의 사고방식에 완전히 통달한 ‘진짜 천재’였으니까.
바르덴테라면 그녀가 편지에 써 내려간 마법 이론에서 자기 자신의 흔적을 알아볼 수밖에 없을 테니까.
하지만.
하루.
이틀.
일주일.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바르덴테는 뛰쳐 나오지 않았다.
아니. 편지에 답장조차 없었다.
“황녀님 이만 가시지요. 폐하께서 허락하신 건 딱 한 번의 편지일 뿐이었습니다.”
“하, 하지만! 답장이 없잖아! 편지가 전달 안 된 거 아니야?!”
“전달이 안 되었다고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허락 받은 것은 한 번이고. 이미 그 한 번을 사용했습니다. 내일 황궁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황녀는 입술을 악물었다.
그날 밤. 그녀는 마법을 써서 수행원들 몰래 빠져나와 바르덴테가 머물고 있는 탑으로 향했다.
그녀는 직접 메시지 마법을 부려 탑의 창문으로 들여보냈다.
그게 굉장히 무례한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참을 수 없었다.
자신의 편지가 전달되지 않은 게 분명했으니까.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아무 반응도 없는 게 이해가 안 되니까.
여기까지 말했을 때,
비앙카 애시는,
아니, 제1황녀 도로테아 세이린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페르세타 선생님. 그게 아니었어요. 바르덴테 님은 제 편지를 못 읽으신 게 아니었어요. 읽었는데……. 딱히 할 말이 없었던 것뿐이었어요. 제 아이디어 같은 건 그분의 주의를 조금도 끌 수 없었던 거예요. 그날, 메시지 마법으로 몇 마디를 주고받으며 그 사실을 깨닫게 됐죠.”
그렇게 말하는 도로테아의 얼굴에는 씁쓸함이 가득 묻어났다.
“그래서였어요. 페르세타 선생님이 마침내 폐관을 깨고 나왔다고 했을 때……. 정체를 숨기고 여기까지 달려온 이유가. 제 눈으로 보고 싶었거든요. 대체 얼마나 잘났길래…….”
그녀는 쓰게 웃다 못해, 그때의 자기가 어처구니가 없는지 허허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런데 웬걸. 여기서 저는 바르덴테 선생님을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네요. 선생님은 저를 완전히 마법의 새로운 세계로 이끌어 주셨어요. 그래서 묻고 싶은데……. 전 비록 바르덴테 님의 제자는 되지 못했지만, 페르세타 선생님의 제자가 된 건 맞죠?”
페르세타는 가만히 도로테아를 바라보았다.
사실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자신은 5살 때 스승님에게 낙점되어 당연하다는 듯 제자가 되었기에……. 그 사실을 그토록 질투하고 부러워했던 누군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잠시 멍하니 있는 그를 도로테아가 재촉했다.
“저. 맞죠? 제자. 페르세타 선생님의.”
페르세타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네. 제 가장 자랑스런 제자 중 한 명입니다.”
“제자 중 한 명…….”
도로테아는 조금 분하다는 듯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이내 활짝 웃었다.
“그래요! 그거면 됐어요. 나는 페르세타 선생님의 제자.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죠!”
그 웃음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미련없이 황궁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페르세타는 어쩐지 묘한 감상에 사로잡혀 그녀의 등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 * *
비앙카 애시.
아니. 세이린 제국의 제1황이자, 황제가 가장 사랑하는 딸, 도로테아 세이린.
그녀가 말했다. ‘황위를 계승하려 한다고.’
대전은 차갑게 얼어붙었다.
황위를 계승한다니.
아무리 좋게 해석해도 반역이 아닌가?
권력은 자식과도 나눌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
황제가 아무리 도로테아 황녀를 사랑한다고 해도 과연 이런 참람한 말까지 용서할 것인가?
당장 그가 검을 뽑아 그녀의 목을 날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황제는 때론 관대하지만,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자는 결코 용서하지 않았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황제의 얼굴에는 기이한 미소가 그려졌다.
올라간 입꼬리 하지만 그의 눈은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도로테아 세이린을 찬찬히 살피고 있었다.
“황위를 계승해? 네가? 내가 너에게 그런 권한을 주었던가?”
맹수를 앞에 둔 것처럼, 제국의 제1황녀 도로테아의 온몸이 빳빳하게 긴장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시선을 피하지도 목소리를 떨지도 않고 똑바로 황제를 마주 보았다.
“권한을 주셨죠. 저는 이 제국의 제1계승권자니까요.”
“그건 내가 정한 것이다. 내가 물려주고 싶다면 길가의 거지도 황제가 될 수 있고, 내가 원치 않으면 너는 당장이라도 제국에서 가장 비천한 신분으로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럴 리 없죠. 아바마마께서는 제국을 사랑하시니까요. 그리고 자존심이 있으시죠.”
“도로테아. 내가 널 무척 사랑하지만……. 나에 대해 함부로 확신을 품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구나.”
황제의 차분한 경고.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지금 황제가 무척이나 인내하고 있다는 사실을.
만약 상대가 그가 어려서부터 가장 아끼던 첫째 딸이 아니었다면, 벌써 이 대전은 피로 물들었을 것이다.
모두들 황제의 눈치를 보며 제1황녀 도로테아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황녀님. 여기까지만 하시죠!’
‘황녀님! 폐하께서 봐주실 때 사죄하고 물러서세요!’
하지만 도로테아는 오히려 고개를 바짝 치켜들고 앞으로 도발적으로 한 걸음 더 걸었다.
채채채챙!
근위기사들이 일제히 칼을 뽑았다.
황제의 허락도 없이 그에게 다가가는 것은 제아무리 황녀라 해도 허락되지 않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나 도로테아는 살벌한 기사들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똑바로 황제를 직시하며 말했다.
“아바마마께서는 승부를 좋아하시지요. 더 위대한 것이 그렇지 못한 것을 지배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지고 계시고요.”
“그래서. 지금 네가 나보다 더 위대하다고 주장을 하는 거냐?”
“아뇨. 저에게 기회를 달라고 말씀 드리는 겁니다.”
“기회?”
“예. 아바마마께서는 황제로 제위하며 자신의 위대함을 증명할 기회가 있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없었고요. 말로만 황녀 ‘전하’라고 불릴 뿐, 실제 왕이나 대공과 같은 권한은 누리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제게 기회를 주십시오.”
“그러니까……. 한 자리를 달라는 거구나. 이 제국의 대공급으로 말이지.”
“예. 그럼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이 제국에 더 필요한 지배자가 누구인지. 길게 말할 것 없이, 그렇게 승부를 내보면 명확하지 않겠습니까?”
“승부라……. 내 앞에서 그 말을 잘도 꺼내는구나.”
황제의 기도가 변했다.
쿠구구궁!
그의 어깨를 타고 오러가 넘실거리며, 광폭한 기세가 대전을 짓눌렀다.
“흡……!”
“어헉……!”
무예를 익히지 않은 몇몇 대신들은 자신을 직접 향하지도 않은 그 기세에 짓눌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몸을 벌벌 떨었다.
황제가 호랑이처럼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말했다.
“내가 승부를 좋아한다는 것은 잘 아는 너니까. 이것도 잘 알겠지? 내가 승부에서 진 패배자들을 어떻게 했는지?”
후우우웅-
그때, 도로테아의 몸에서 마력이 퍼져 나갔다.
그녀가 짜 올린 마력은 순식간에 여러 신비세계와 통로를 만들고 그곳에서 힘을 빌려 왔다.
요정계의 요술이 벌벌 떠는 대신들의 마음 속에 반짝이는 즐거움을 심고,
설화계의 영웅들에게서 빌려온 용기와 기개가 대전을 감싸고,
영수계의 초월종들이 가진 권능이 황제의 힘을 견제했다.
금방이라도 가슴을 부여잡고 쓰러질 듯 했던 대신들의 얼굴이 편안해지고, 꺽꺽 대던 호흡이 돌아왔다.
“바로 이런 점이 제가 아바마마의 방식을 싫어하는 이유입니다. 힘으로 상대를 누르면 편안해지는 것은 오직 내 한 몸뿐입니다. 저는 이 한 몸이 아니라, 제국 전체가 평안해지는 그런 정치를 하고 싶습니다.”
“벌써 나를 가르치는구나. 하지만 딸아. 이 세상에서 가장 허망한 것 중 하나가 힘이 없는 정의란다.”
“…….”
“그래. 딸아. 내가 옳다. 내가 직접 손을 쓰기에는 내가 널 너무 많이 사랑하고 있지. 그걸 아니까 너도 이렇게 까부는 걸 테지. 하지만 이러면 어떠냐.”
황제가 시선을 돌렸다.
자신의 옆에 기사 조각상처럼 미동도 없이 서 있는 근위기사단장을 불렀다.
“근위기사단장. 그대는 그대의 할 일을 하라.”
“예. 폐하.”
스르릉-!
근위기사단장이 칼을 뽑는 소리가 섬뜩하게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척! 척!
대전 곳곳에 흩어져 있던 근위기사들이 일제히 무기를 앞세우고 제국의 제1황녀, 도로테아 세이린을 포위했다.
근위기사단장이 준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근위기사단은 당장 저 역도를 포박하라.”
우우웅-!
기사들의 검에서 마법의 천적이라 불리는 오러가 뿜어져 나왔다.
도로테아는 그 모습을 쭉 둘러보며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아바마마. 이 정도로는 저를 잡을 수 없을 겁니다.”
그녀는 끝까지 굴하지 않고, 등을 꼿꼿하게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