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129)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129화(129/171)
129화 칼슈슈 대공
차원의 우주 속에서 만난 두 개의 심상.
이곳은 현실이면서도 현실이 아닌 장소.
마법사의 정신세계.
페르세타를 응시하는 도로테아의 눈동자가 파르르 떨렸다.
“스승님!”
그녀의 외침에 페르세타는 살짝 놀랐다.
스승님?
그녀는 한 번도 자신을 스승님이라고 부른 적이 없었으니까.
그는 이에 관해 뭔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걸 곧 깨달았다.
지금도 도로테아는 근위 기사단의 매서운 공격에 위태위태한 상황이었으니까.
페르세타는 빠르게 말했다.
“도로테아 님. 잘 들어요. 오러 소드는 마나 태양의 원리와 닮은 힘이라고 제가 말했죠? 마나가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막대한 힘을 뿜어내는 것인데…….”
그런데 도로테아가 싱긋 웃으며 그의 말을 끊었다.
“그렇다면, 그 연쇄 반응을 멈추면 소멸시킬 수도 있겠죠.”
페르세타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알고…… 계셨군요?”
“가장 뛰어난 제자니까요.”
“제가 괜히 오지랖을 부렸네요.”
“아니요. 감사해요. 찾아와 주셔서. 정말로.”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요?”
“한 게 없긴요. 모든 걸 해 주셨어요.”
공포에 잠식되어 가던 도로테아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응원 고마워요. 스승님.”
심상 속에서.
그녀는 페르세타에게 한 발 한 발 다가가 자신의 이마를 그의 가슴에 콩! 하고 한 번 부딪혔다.
“이기고 올게요.”
* * *
반개한 채 흰자위를 내보이고 있던 도로테아의 두 눈에 다시 초점이 잡혔다.
“음…….”
“호오?”
근위 기사단장과 황제가 동시에 소리를 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위태위태하던 도로테아의 기세가 확연하게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두 눈이 별빛을 담은 듯 반짝거렸다.
“죽어어어어!”
제1황자 제르니 세이린은 그녀의 이런 변화를 전혀 몰라본 채, 이글거리는 오러 플레임으로 그녀의 목을 노렸다.
그리고,
턱!
그 검이 도로테아의 손에 붙잡혔다.
“어……?”
이글거리던 오러 플레임이 봄날의 꽃잎처럼 하늘하늘 흩어졌다.
그걸 본 황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지난날, 페르세타가 자신의 오러 블레이드를 가볍게 소멸시켜 버리던 그 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제르니는 계속해서 오러를 피워 내기 위해서 몸이 떨리도록 힘을 줬지만 소용없었다.
그의 검은 그저 차갑게 식어 있을 뿐이었다.
“뭐, 뭐야. 너……. 무슨 짓을……!”
당황한 그의 눈동자가 자신의 검과 도로테아 사이를 빠르게 오갔다.
“별거 아니다. 동생아. 오러 소드라는 건, 마나의 연쇄 반응으로 생기는 힘이거든. 그런데 만약, 시공간을 살짝 비틀면 어찌 되겠니?”
“시, 시공간?”
“그래. 정확한 때에, 정확한 장소가 맞물려야 연쇄 반응이 생기는 건데, 그 시공간 비틀리는 거야. 그럼 어떻게 돼? 연쇄 반응이 일어나지 않겠지?”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무슨 소리긴. 이게 바로 <레라티비테트>의 위대함이라는 거지.”
도로테아는 그리 말하며 오른 주먹을 꾹 움켜쥐었다.
“너는 날 죽이려 했지. 하지만, 나는 널 죽이고 싶은 생각이 없어. 그러니까……. 한 대만 맞자.”
쩌어어억!
벼락처럼 뻗어 나간 그녀의 주먹이 제르니의 왼쪽 뺨을 뭉개고 지나갔다.
“커허어어억!”
하얀 이빨이 허공으로 후드드 쏟아지고, 제르니는 바닥에 엎어져서 움찔거렸다.
그녀는 쓰러진 제르니를 밟고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바짝 긴장한 근위 기사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제부터는 쉽지 않을 겁니다.”
그녀의 기세에, 근위 기사단장은 한숨을 푹 내쉬고 앞으로 나섰다.
“이제부터는 저도 참전하도록 하죠.”
“영광입니다. 단장님.”
하얗게 타오르는 오러와 까맣게 번지는 어둠이 대전을 흑백으로 물들였다.
* * *
“하아……. 하아……. 하아…….”
도로테아의 모습은 참담했다.
온몸 이곳저곳을 베여 피가 뚝뚝 떨어졌고, 왼쪽 눈두덩이가 부어올라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허덕거렸다.
용의 힘을 빌려와 계속해서 치유되던 몸도 이제는 한계에 이르렀는지, 흐르는 피가 멎질 않았다.
그런 그녀의 앞에 근위 기사단장이 석상처럼 엄숙한 모습으로 검을 빼어 들고 버티고 서 있었다.
다른 모든 근위 기사들은 도로테아의 주먹과 발길질에 얻어맞아 기절한 채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지만, 근위 기사단장은 여전히 한 점 흔들림 없는 모습으로 꼿꼿이 서 있었다.
도로테아는,
그런 근위 기사단장에게 뚜벅뚜벅 걸어가 그의 눈앞에 손을 휘휘 흔들었다.
하지만 근위 기사단장은 마치 박제당한 짐승처럼 두 눈을 깜빡이지도 않은 채 그대로 얼어붙어 있을 뿐이었다.
도로테아는 그제야 온몸에 바짝 들어가 있던 힘을 빼고 긴장을 풀었다.
“하……. 선 채로 기절한 거야? 두 눈을 부릅뜨고? 아바마마. 근위 기사단장이 대단하긴 하네요.”
황제가 재밌다는 듯이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그야 당연하지. 나를 지키는 근위 기사단장인데.”
“하지만. 결국 제가 이겼네요.”
도로테아가 손을 뻗어 기사단장의 이마를 밀자, 기사단장은 그대로 뻣뻣한 나무토막처럼 쿵!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갔다.
황제가 그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입을 뗐다.
“많이 강해졌구나.”
“페르세타 님의 제자니까요.”
“헌데 원래도 체술을 그렇게 잘했느냐? 설마 나의 기사들을 주먹으로 패서 때려눕힐 줄은 몰랐는데. 마지막에 보니, 오히려 근위 기사단장이 네 체술을 못 따라가더구나.”
“아뇨. 설화계 영웅의 힘을 빌려왔을 뿐입니다. 전설에 이름을 남긴 영웅의 체술이니까, 근위 기사단장이라 해도 쉽지 않았겠죠.”
“설화계의 영웅이라……. 한번 붙어 보고 싶군.”
황제가 손끝을 꿈틀거렸다.
호승심을 느낄 때면 늘 하는 버릇이었다.
“뭐, 저희 스승님이 신비 세계를 모두 연결하면 붙어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그래. 그렇겠지……. 아주 재밌겠어.”
황제는 빙그레 웃음을 짓다가 대신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무튼 스스로의 자격을 증명했으니, 그에 걸맞게 대우를 해 주는 게 맞겠지. 여봐라. 제1황녀 도로테아를 칼슈슈 대공에 봉할 것이다.”
대신들은 어깨를 흠칫 떨 정도로 놀랐다.
“칼슈슈 대공이라면…….”
“그래. 지난 전쟁에서 정복한 칼슈슈 왕국 전체를 칼슈슈 대공령으로 삼는다.”
지난번, 페르세타가 제2차 포럼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제국은 세계 전체를 정복하려는 기세로 대전쟁을 일으켰었다.
칼슈슈 왕국은 가장 먼저 제국에 이빨을 들이밀었던 호전적인 국가였고, 끝내는 황제, 칼리슈트 세이린이 직접 나서서 멸망시켰다.
황제는 지금 그때 획득한 영토인 예전 칼슈슈 왕국의 영토 전체를 도로테아에게 주겠노라고 선언한 것이다.
대신들은 아무리 대공이라고 해도 그 넓은 영토 전체를 영지로 삼는 건 너무 과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며 눈동자를 굴렸지만, 험악한 분위기에 함부로 입을 열지 못했다.
당장 눈앞에 황녀가 피투성이로 비틀거리고 있고, 바닥엔 이가 몽땅 깨진 황자와 근위 기사단이 널브러져 있는데……. 이런 분위기에서는 아무리 대쪽 같은 신하라 해도 입을 열 수가 없는 법이었다.
그런데 정작 이런 엄청난 영지를 받게 된 도로테아는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
“감사합니다. 아바마마. 그런데 한 가지 청을 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황제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자신에 대한 무례도 기꺼이 용서하고 남들이 다 깜짝 놀랄 만한 상을 내려 줬는데……. 거기에 또 청을 더한다?
이쯤 되니 오히려 궁금했다.
“그래. 청이 무엇이냐. 나의 딸 도로테아.”
“대공령의 세금을 면제해 주십시오.”
대전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분위기 때문에 눈치를 보던 대신들도 지금만큼은 침묵을 지키지 못했다.
“이 무슨 참람한!”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옵니다!”
“어찌 제국의 일원이 황제 폐하께 바쳐야 할 의무를……!”
하지만 황제는 한 손을 들어 그들을 침묵시킨 뒤 도로테아를 가만히 응시하며 물었다.
“이유가 무엇이냐?”
“경쟁을 위해서입니다. 제가 대공령을 받은 것은 제 지배가 아바마마의 그것보다 더 나음을 증명하기 위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대공령에서 세금을 거둬 아바마마께 바쳐야 한다면, 그것은 형평성에 어긋납니다.”
황제는 헛웃음을 지었다.
“정말 뻔뻔하구나.”
“제가 누구 딸이겠습니까.”
둘은 잠시 서로를 노려보았고, 먼저 손을 내저은 건 황제였다.
“좋다. 네 청을 들어주겠다. 칼슈슈 대공.”
“감사합니다. 폐하.”
“이만 물러가서 상처를 돌보도록 하라.”
“다음엔 결과를 들고 오겠습니다.”
끝까지 한마디를 지지 않고 돌아서서 나가는 도로테아.
황제는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나를 닮아서 저러는 건지…….”
쓰러진 자신의 기사단을 바라보면서도 황제의 입가에는 엷은 웃음이 매달렸다.
* * *
“……이겼네요.”
“이겼나요?”
“네.”
페르세타는 감았던 눈을 뜨며 기지개를 켰다. 그녀의 옆에 앉아서 논문을 들여다보던 성녀, 샤라 엘리프가 눈을 반짝거렸다.
“어땠어요?”
“뭐, 겨우 이겼습니다. 설화계에서도 손에 꼽히는 영웅에게 힘을 빌려왔던데, 그게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졌을 거예요. 근위 기사단장이 많이 강하더군요.”
“대단하네요! 비앙카! 아니지……. 도로테아 황녀.”
그 말에 페르세타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대단하죠. 칼슈슈 대공으로 봉해졌어요. 진짜 대단한 거 같아요. 누구 제자인지…….”
“흐음!”
샤라 엘리프가 페르세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선생님. 잊지 마세요. 선생님의 곁에 남은 수제자는 바로 저. 샤라 엘리프라는 걸.”
그에 페르세타는 조금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그……. 도로테아 님은 저더러 스승님이라고 하던데…….”
“뭐라고요?!”
샤라가 눈을 치켜떴다.
그 비앙카가……. 아니. 도로테아 황녀가 페르세타 선생님을 스승님이라고 불렀다고?
맨날 페르세타 선생님에 대한 불평불만을 쏟아 내던 그녀가?
뭐랄까.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기분이 샤라의 가슴에 휘몰아쳤다.
“그……. 저도 스…… 승님이라고 부를까요?”
그녀가 눈치를 보며 말하자, 페르세타가 양손을 저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뇨. 그게……. 좀. 많이 어색하더라고요.”
“그쵸?”
“예.”
둘 사이에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샤라가 슬쩍 페르세타의 눈치를 보고, 페르세타가 멋쩍어하고.
그러다가 샤라가 슬쩍 입을 열었다.
“스……. 큼! 크흠! 아니. 선생님.”
“예?”
“그럼 다음 신비 세계의 통로는 칼슈슈 대공령에서 여는 건가요?”
페르세타가 웃었다.
“물론이죠. 저도 힘을 보태 줘야지요.”
“그렇군요. 그럼 당분간은 신비 세계의 통로를 만들며 보내면 되겠네요?”
“그것도 그런데…….”
페르세타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샤라를 바라보았다.
“통로는 제가 신경 쓸 테니, 성녀님은 다른 걸 연구해 주세요.”
“어떤 걸요?”
“탐사선이요.”
“탐사…… 선?”
“네. 우리의 마나 태양계를 벗어나 그 너머의 세계와 링크를 만들어 낼. 성간 우주선이요.”
샤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번에 말씀하시긴 했지만, 갑자기 계획이 앞당겨진 건가요?”
“예. 다들 너무 열심히 잘해 주고 있어서요. 생각보다 빠르게 자원과 인재를 모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니, 우리 계획도 앞당겨야죠.”
페르세타는 눈을 반짝이며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데리고 있던 마법사들을 하산시키기로 한 결정은 정말 잘한 것 같았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 우주의 끝을 보고 싶다는 페르세타의 꿈을 이뤄 줄지도 모를 만큼 빠른 속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