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130)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130화(130/171)
130화 절박하게
제자들이 하산한 이후, 페르세타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인간계를 벗어나, 태양계도 벗어나, 머나먼 외우주를 탐사하기 위한 우주선을 쏘아 보내겠다는 일념.
그것 하나로 오히려 예전보다 더욱더 바쁜 나날을 보냈다.
“저번에 말씀 드린 자료 조사는 끝이 났나요?”
“엇. 아, 아직 끝내지 못했습니다.”
“지금 어디까지 됐죠? 보여 주세요.”
“여, 여기 있습니다.”
마법사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서류를 넘기자 페르세타는 엄청난 속도로 종이들을 파라락 넘겨서 확인하고 말했다.
“흠……. 아직……. 예. 알겠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하겠습니다.”
“예?”
“수고하셨어요.”
그러곤 쌩 돌아서 다시금 서류를 파라락 넘기며 사라지는 페르세타.
마법사는 그의 등을 허탈하게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그럼 난 이제 뭘 하죠……?”
그런 일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전에 부탁드린 계산은 끝났나요?”
“네! 끝났습니다!”
“음……. 으음……. 나쁘진 않은데…….”
페르세타는 미간을 구기고 마법사가 준비한 수식들을 살펴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냥 제가 다시 할게요. 수고하셨습니다.”
“예?”
마법사는 매우 당황했지만, 페르세타는 서류에만 고개를 박은 채 복도로 뚜벅뚜벅 걸어 나갔다.
그런 그의 등 뒤로 다른 마법사들에게 수거해 온 수많은 연구 자료가 둥실둥실 떠서 뒤따르고 있었다.
뚜벅뚜벅뚜벅성큼성큼 걸어가는 깨끗한 구두.
복사뼈 위로 멋들어지게 떨어지는 바지핏.
복도를 성큼성큼 걸어가는 페르세타의 걸음걸이에는 언제나 활력이 있었지만, 그의 미간은 언제나 찌그러져 있었다.
고개는 45도쯤 숙이고, 뭔가를 생각하는지 이따금 턱을 쓰다듬었다.
그런 그의 앞을 일단의 마법사들이 가로막았다.
뚜벅.
뚜벅.
뚜…….
마법사들을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부딪힐 뻔했던 페르세타가 가까스로 멈춰 서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십니까?”
“선생님!”
길을 막은 마법사들은 긴장한 얼굴이었고 초조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은 결심했다는 듯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네. 말씀하시죠. 제가 시간이 좀 없어서.”
“선생님. 다음 연구로는 뭘 수행하면 될까요?”
“네?”
“다음 과제 말입니다. 선생님께서 저희 과제를 다 가져가셔서요…….”
“아…….”
페르세타는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덥수룩한 머리를 긁적였다.
“어. 음. 어…….”
그는 고장 난 듯 입술을 달싹거렸고 마법사들은 바짝 긴장한 채로 그가 입술을 한 번 열 때마다 몸을 그에게로 기울였다.
말 못하는 페르세타와 무슨 말이라도 듣고 싶은 마법사들 사이의 기묘한 대치.
그 끝에 페르세타는 자기 머리를 헝클며 말했다.
“나중에. 나중에 드릴게요. 일단 정리부터 해 보고.”
페르세타는 자기 등 뒤에 둥실 떠 있는 산더미 같은 연구 자료들을 가리키고는 도망치듯 걸음을 옮겨 자리를 떠났다.
마법사들은 멀뚱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후우…….”
“하…….”
“우리가 도움이 전혀 안 되는 걸까.”
“그러게……. 자괴감 드네…….”
어깨를 축 늘어뜨리는 마법사들.
그리고,
툭-
그들의 어깨를 한 번씩 꽉 잡아 주며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작은 키. 작은 손. 단발이면서도 화려하게 흩날리는 백금발의 머리칼.
허리춤에서 흔들리는 성검 라하트헤렙.
“성녀님!”
성녀, 샤라 엘리프가 하얀 정장을 입고 그들을 가로지르며 등 뒤로 손을 흔들어 보였다.
“너무 속상해 마십시오. 제가 선생님하고 얘기해 보겠습니다.”
그녀가 남긴 경쾌한 구두 소리가 높은 유리창 가득한 복도로 선선하게 흩어졌다.
* * *
연구실로 돌아온 페르세타는 자신의 등 뒤로 줄줄이 따라 들어오는 연구 자료들을 보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는 노련한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손을 이리저리 휙휙 움직여 연구 자료를 곳곳으로 날려 보냈다.
주제별로, 중요도 순으로, 연구실 곳곳에 깔끔하게 정리해서 배치했다.
하지만 자료의 양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상당히 넓은 페르세타의 연구실이 가득 차는 느낌이 들었다.
“후…….”
한 번 더 한숨을 쉰 페르세타가 자리에 앉았다. 그가 손을 까딱하자 가장 가까운 곳에 놓인 연구 자료가 새처럼 팔랑팔랑 날아와 그의 앞에 내려앉았다.
그가 막 고개를 박고 그것을 읽어 보려던 찰나,
“선생님!”
문이 열리고 단발의 백금발을 휘날리며 샤라 엘리프가 들어섰다.
“아. 성녀님.”
페르세타가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서며 연구실 한 켠의 쇼파를 권했다.
“거기 앉으시죠.”
“아뇨. 괜찮고요.”
샤라는 페르세타의 권유를 가볍게 거절하고 그대로 뚜벅뚜벅 걸어서 페르세타의 책상 앞에 손을 기대고 섰다.
“선생님. 왜 이렇게 서두르세요?”
“제가요?”
“네. 태양계 밖을 탐사하는 것에 무슨 시간제한이 있는 것도 아닌데 서두르시다 못해 초조해하시는 것 같아서요.”
샤라는 그렇게 말하며 연구실에 가득 싸여 있는 자료들을 스윽 둘러보았다.
“이걸 혼자 다 보시겠다고요?”
“예. 그편이 더 빠르니까요.”
“하지만……. 천천히 하더라도 더 꼼꼼히 하는 편이 낫지 않겠어요? 어차피 하루 이틀에 될 일도 아니잖아요. 다른 마법사들을 믿고 시간을 충분히 주시는 건 어때요?”
의자에 앉아 있는 페르세타가 자신의 책상에 기대 서 있는 샤라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몇 번 눈을 깜빡이다가 말했다.
“그렇죠. 태양계 밖의 탐사라니. 단 한 번도 시도해본 적 없는 거대한 프로젝트죠. 충분한 속도로 탐사선을 날려 보내기 위한 에너지, 탐사선 안에 들어갈 장비, 경로 계산……. 그 난이도로 따지면 인공위성 같은 건 비교도 안 될 정도죠.”
“그러니까요. 더 시간을 들여서……!”
“하지만 성녀님. 절박하게 바라고, 도전하지 않으면 결코 실현되지 않을 일이에요.”
페르세타의 두 눈이 선명하게 찍힌 잉크처럼 샤라를 응시했다.
“인공위성이랑은 또 달라요. 인공위성은 이 세계에 막대한 마력을 제공하기라도 하잖아요. 쓸모가 있다는 거죠. 근데 태양계 밖 탐사는요? 과연 이 세상에서 몇 명이나 거기에 관심을 기울일까요? 사람들은 인간계에서 살아가는 것에 다들 만족하고 있는데.”
“선생님…….”
“그러니 누군가는 밀어붙여야 해요. 모두가 미쳤다고 해도. 절박하게 도전해야 해요. 그래야 가능해집니다. 아마 그래서 제가 초조한 거겠죠. <레라티비테트>까지 전수했으니, 이미 필요한 이론은 다 있잖아요? 그럼 남은 건 밀어붙이는 것뿐이에요.”
샤라는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이. 태양계 너머를 바라보며 그곳으로 진출할 발판을 만드는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페르세타가 기다리고 또 기다려 왔던 그 순간이라는 것을.
그렇기에, 그에게 속도 조절을 하자는 말 같은 건 먹히지 않을 것이었다.
페르세타는 이미 여태 교육을 위해 속도 조절을 해 왔었다.
하지만 그의 진정한 목표가 보이는 지금은, 뒤를 돌아볼 여유가 없는 것일 테다.
따라올 사람만 데려가고, 혼자서라도 먼저 앞서가겠다는 마음으로, 연구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샤라는 더는 그를 말릴 수가 없었다.
“……알겠습니다. 선생님.”
결국 그녀는 깍듯하게 고개를 숙이고 페르세타의 연구실을 빠져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 * *
페르세타가 머물고 있는 마법 궁전.
그곳에 있는 마법사들은 여태까지 페르세타의 교육과 시험을 통과한 엘리트 중의 엘리트들이었다.
누가 뭐래도 최선두에 서서 마법의 발전을 이끌어 나가는 진짜배기들.
하지만 요즘 그들은 많이 주눅 든 상태였다.
페르세타가 그들의 연구를 모두 걷어 갔으니까.
그건, 자신들의 연구 성과가 페르세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니까.
샤라 엘리프는. 그렇게 어깨가 축 처진 마법사들을 커다란 강당에 모두 불러 모았다.
마법사들은 기대를 품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았다.
“성녀님! 혹시 새로운 과제를 받아 오셨나요?!”
“이, 이번엔 더 잘해 보겠습니다!”
성녀가 그런 그들을 매섭게 바라보며 말했다.
“잘해 보겠다고요?”
“예……!”
“지난번엔 안 됐는데. 이번이라고 그게 되겠습니까?”
마법사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정곡이었다.
사실 그렇지 않은가?
지난번이라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던 게 아니었다.
그런데 결론은 “제가 하겠습니다.”
라는 페르세타의 차가운 말 한마디.
과연 새로운 과제가 주어진다고 해도 페르세타의 눈높이에 맞출 수 있을까?
솔직히 다들 자신이 없었다.
샤라가 그런 마법사들 하나하나와 시선을 마주치며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의 속도와 퀄리티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그녀가 손을 흔들자 허공에 황금빛 글자들이 떠올랐다.
그건 마법사들의 명단이었다.
4~5명의 이름이 한 팀으로 엮여 정리된 명단.
“여러분의 연구 성과와 특기를 고려해 제가 팀을 짜 봤습니다. 한 명 한 명의 능력이 부족하다면, 팀을 이뤄서 비벼 봐야죠.”
그녀는 도발이라도 하듯 입술을 비틀어 웃으며 말했다.
“우리의 목표는 하나입니다. 페르세타 선생님이 뭔가를 시키기 전에, 그가 만족할 수 있는 연구 성과를 우리가 알아서 내는 것! 이걸 못할 거 같으면 그냥 지금 다들 짐 싸서 나가세요. 방해만 되니까.”
마법사들이 웅성거렸다.
대부분 당혹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저, 성녀님. 연구 성과라는 게 4명이 된다고 4배가 되고 그런 건 아니지 않습니까……?”
“오히려 안 하던 합동 연구를 하면 효율이 더 나빠질 가능성도…….”
“아!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샤라 엘리프가 팔을 좌우로 벌렸다.
동시에 천장에서 은은한 빛이 내려오고,
하얀 깃털들이 흩날리고,
두 명의 천사가 그녀의 좌우로 내려앉았다.
성녀는 그들을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어서 오세요. 주품 천사 루아엔 님. 시루스 님.”
마법사들은 깜짝 놀랐다.
“처, 천사?”
“천사를 소환했다고?”
“그것도 주품 천사면……. 9품계 중에서도 4번째인 높은 위계의 천사가 아닌가?”
“성녀가 <레라티비테트>를 익히면 저런 것도 가능해진다고?”
성녀는 마법사들의 경악을 가볍게 무시한 채, 천사들에게 말했다.
“미리 말씀드린 대로, 저들의 용기와 협력을 도와주시면 됩니다. 그러니까. 수호천사 같은 거죠.”
그녀의 말에 두 명의 천사가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음. 샤라 엘리프여. 그대의 뜻은 잘 알겠다. 하지만 천사가 이 땅에 강림하여 가르침을 베푼 지 오래되었는데, 몇 명의 마법사들만을 돌볼 수는 없지 않겠는가?”
“그렇다. 샤라 엘리프여. 그대의 뜻대로 마법사들은 틈틈이 보살피겠다. 하지만 우리의 사명은 인간계를 올바른 길로 이끄는 것. 대륙을 주유할 것이니 그리 알라.”
그 말에, 샤라가 눈을 희번덕하게 뜨고 두 주품 천사를 노려봤다.
“저기요. 흰소리하지 말고 계약대로 하시죠?”
“서, 성녀?”
“지금은 공적으로 소환한 사이니까. 성녀라 하지 마시고, 계약자 샤라 엘리프라고도 불러 주시죠?”
그녀가 두 천사를 각각 손으로 잡아 가까이 잡아끌며 속삭였다.
“제가 소환으로 드린 대가가 결코 작지 않을 텐데요? 그것 때문에 천사 성교회에서 오랫동안 모아 왔던 재물을 깨나 썼거든요. 그러니까. 받은 만큼 똑바로 일하시라고요.”
그녀의 기세에 눌린 두 천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샤라는 그제야 생긋 웃고 다시 시선을 앞으로 던졌다.
천사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마음속으로 의념을 나눴다.
– ……루아엔. 저 여자가 그 성녀 샤라 엘리프가 맞나?
– ……그러니까 시루스……. 그 착하고 고분고분하던 아이가 어쩌다가…….
두 천사는 인간은 너무 쉽게 변한다며 한참이나 한탄을 나눴다.
* * *
“흠……. 결국 문제는 ‘위시’ 마법이네.”
페르세타는 자신의 연구실에서 골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탐사선을 쏘아 올리기 위해서는 수많은 과제를 해결해야 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과제가 바로 위시 마법이었다.
“전에 만든 10억 개의 스위치가 있는 위시 마법으로도 안 돼……. 그것보다 훨씬 발전해야 돼. 마나는 아무리 많아도 10분의 1수준으로 사용하면서 퍼포먼스는 그 이상이 나오는…….”
페르세타는 머리가 아파 미간을 주물렀다.
그때 그 ‘위시’를 제작하기 위해서 가속된 시간 속에서 무려 1년을 보내야 했으니까.
이번에도 천사와 악마에게 부탁해서 또 시간을 그렇게 보내야 할까?
얼마나?
2년? 3년?
그걸 하는 것 자체도 보통 일이 아닌데, 대가는 또 뭘로 지불해야 하지?
마음이 초조했다.
똑똑-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온 게 바로 샤라 엘리프였다.
“성녀님?”
“페르세타 선생님.”
그녀는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뚜벅뚜벅 걸어와 연구 자료 하나를 그의 책상에 올려놓았다.
“이건…… 뭐죠?”
“탐사선에 들어갈 위시 마법 제작을 위한 기획안입니다.”
“위시 마법이요?”
페르세타가 눈을 반짝이며 종이를 넘겼다.
그가 자세를 고쳐앉았다.
눈빛이 점점 깊어졌다.
“이, 이건……. 저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법인데. 어떻게……?”
정말 놀랐는지 입까지 헤 벌리고 묻는 페르세타를 향해 샤라는 생긋 웃었다.
“절박하게 바라고 도전하지 않으면 결코 오지 않는다면서요? 그래서 해 봤어요. 절박하게. 도전.”
페르세타는 다시 기획안을 살펴보았다.
그 안에는 그 자신조차 떠올려 본 적이 없었던 훌륭한 통찰과 이론적 배경, 선명하고 핵심적인 목표, 그리고 실행을 위한 계획들이 합리적으로 서술되어 있었다.
이 정도면 정말 믿고 맡겨도 괜찮을 정도로.
“성녀님……!”
“예. 여기 있습니다. 선생님.”
의기양양하게 대답하는 샤라.
그때, 페르세타는 어쩐지 샤라가 반짝반짝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