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132)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132화(132/171)
132화 명계
“그러니까. 이게 모두……. 제국의 달무리라는 저항 조직의 마법사들이 정리한 자료라는 거죠?”
“예. 물론. 그들은 이게 보다 값싸고 위력적인 마법 무기를 만들기 위한 소재 연구로 알고 있지만요. 아! 물론 이걸로 마법 무기도 만들 겁니다. 다만 겸사겸사 선생님 연구도 돕는 거죠.”
페르세타는 흔들리는 눈동자가 애캘슨이 넘겨준 자료를 다시 한번 빠르게 훑었다.
한 번 한 번의 실험이 어렵지는 않지만, 수없이 많은 소재들을 실험해야 하는 노가다 작업이었다.
심지어 각각의 소재에 대해서도 수없이 다른 가공법을 적용해 그 결과를 기록해야 했으며, 때로는 여러 소재를 섞어서 나오는 결과도 정리해야 했으니…….
그게 얼마나 지난 작업일지는 페르세타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페르세타가 미처 그 연구를 위한 예산을 책정하고 본격적으로 밀어붙이기도 전에, 애캘슨은 이미 상당히 진행된 연구 자료를 가지고 찾아왔다.
“정말. 이 정도 자료라면 말씀하신 지원금을 드려도 100분의 1 수준이네요.”
“물론입니다. 선생님.”
“정말 감사합니다. 애캘슨 님.”
“에이. 이미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까. 저는…….”
“알아요. 빚을 갚겠다고 하신 것. 하지만 저도 꼭 알려 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지금 느끼는 감격은 애캘슨 님이 짐작한 것보다 훨씬, 훨씬 더 클 겁니다.”
페르세타와 애캘슨의 눈이 마주쳤다.
애캘슨은 넉살 좋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지원금을 더 팍팍 늘려 주시죠. 저도 그만큼 더 많이 조사해 오겠습니다.”
“예 맡겨 주시죠!”
“기대하겠습니다. 이로써, ‘제국의 달무리’ 안에서 선생님의 평판도 좀 올라가겠군요.”
“음? 제 평판이 별로였나요?”
그 말에 애캘슨은 코를 긁적였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좀…… 좋지는 않았습니다만, 이젠 괜찮을 겁니다. 자고로 돈 주는 사람 싫어하는 이들은 없으니까요.”
“그들은 제가 이런 대가를 받는다는 사실은 까맣게 모르고요?”
“겸사겸사죠. 어차피 백성이 중심이 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지금의 이념 자체가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으면 성립을 안 했을 건데요 뭘.”
그는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아무튼 또 다음에 자료 들고 오겠습니다. 선생님도 저희를 위해 가르쳐 주실 게 있으면 몇 개 찔러 주세요!”
“기꺼이 그러겠습니다.”
애캘슨이 나가고, 페르세타는 잠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 페르세타. 뭐 좋은 일 있어? 네가 콧노래를 다 부르네?
그러자 불쑥 나타난 요정 공주, 히나리리리아네가 물었다.
그제야 페르세타는 자신이 콧노래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그쵸. 좋은 일. 있었어요.”
신이 난다.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 빠르게 일이 척척 진행되다니.
다른 사람들이 내 등을 밀어주는 게 바로 이런 기분이구나.
지금껏 해 보지 못했던 경험에 페르세타는 정말로 신이 났다.
히나리리리아네는 페르세타의 입가에 피어오른 미소를 바라보다가 날개를 팔락거렸다.
– 네가 기분 좋으니까. 나도 좋다.
“그래요? 그럼 더 기분 좋게 해 드릴까요?”
– 응?
“이제 슬슬 다른 세계와 인간계도 연결할 거예요. 물론 요정계도 포함이죠.”
– 꺅! 드디어!
페르세타의 어깨위에서 폴짝 뛰어 올라 온 방안에 반짝이는 빛을 뿌리며 날아다니는 히나리리리아네.
페르세타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다가 다시 펜을 손에 쥐었다.
* * *
“정말 쉽지 않네…….”
그때, 라냐 비셰나 왕세녀는 골머리를 썩이고 있던 차였다.
“보고 배우고 느낀 게 너무 달라. 같은 마법사라고 해도 수준 차이가 너무 커…….”
페르세타에게서 하산하고, 자신의 왕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요즘 페르세타 밑에 있던 마법사와 고국의 마법사들의 차이에 절망을 하는 중이었다.
“정말 이들을 데리고 인공위성을 만들 수 있을까……?”
페르세타 밑에 있을 땐 이렇지 않았다.
척! 하면 착! 하는 게 당연했고.
어? 하고 이해를 못하는 마법사도 한두 번 설명하면 아하! 하고 두 눈을 빛냈다.
하지만 자신의 고국인 무려 ‘마법’ 왕국 비셰나의 마법사들은 그렇지가 않았다.
분명 귀족과 평민을 가리지 않고 재능 있는 마법사들을 뽑아 모아 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보여주는 이해력과 통찰력은 라냐의 기준에서는 한숨이 나오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후……. 선생님이 정말 우리를 어떻게 가르치신 건지. 이제야 그 고충이 이해가 가네.”
분명 자신들도 처음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페르세타 덕분에 마법과 이 세계에 대한 고정 관념을 몇 번이나 깨부수면서 겨우 지금의 시야를 획득할 수 있었던 것이니까.
반면에 왕국의 마법사들은 페르세타에게 직접 배운 이들이 아니라, 그 지식을 간접적으로 얻어 배운 이들.
지식을 조금씩 잘못 알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마법을 연구하는 자세와 관점부터가 잘못된 경우가 많았다.
라냐는 그걸 고치려고 했으나, 그게 단시간에 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름의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왕국 마법사들은 자꾸 자신들이 틀렸다고 지적을 하는 라냐에게 반감을 갖는 모습까지 보였다.
연구를 하는데 반감이라니…….
그런 사적인 감정은 연구를 더욱더 둔화시킬 뿐이었다.
덕분에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겠다던 라냐의 계획은 시작부터 엄청난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뭔가……. 뭔가 계기가 있으면 좋을 텐데.”
마법사들이 자신들이 얼마나 무지한지 깨달을 수 있는 계기.
기존의 상식을 무너뜨리고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계기.
마법의 원천인 무한한 호기심을 일깨울 수 있는 계기.
하지만 그런 계기가 하늘에서 뚝 떨어질 리 없었다.
어떻게든 라냐가 홀로 해내야 하는 일.
바로 그 점 때문에 그녀는 그만 울고 싶었다.
“……다들 보고 싶다…….”
승부욕이 넘치면서 때때로 누구도 생각 못했던 관점을 제시하던 비앙카.
그냥 무언가를 배우고 적용하는 데 있어서는 타고난 천재였던 성녀.
마법을 연구하는 방식을 그 누구보다도 깊이 체화하고 있는 살리넬르.
그리고…….
그들 모두를 언제나 앞에서 이끌어 주던 페르세타.
라냐는 정말이지 자신이 그들을 이토록이나 그리워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그렇게 밤이 늦도록, 내일은 말 안 듣는 마법사들과 어떻게 논쟁을 벌어야 할지 고심을 하며 머리를 쥐어짤 때였다.
– 라냐 비셰나 왕세녀 님? 접니다. 페르세타.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라냐는 처음엔 자신이 환청이라도 듣는다고 생각했다.
– 왕세녀 님?
두 번째로 자신을 부른 그 목소리에서야 이게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페르세타 님!”
자기도 깜짝 놀랄 만큼 큰 목소리로 그 이름을 불렀다.
– 아, 아 예. 접니다.
“페르세타 선생님. 반가워요……. 흐으……. 반가워요.”
조금만 정신을 놓았으면 그만 눈물을 흘릴 뻔했다는 사실에 라냐는 당황하며, 간신히 호흡을 가라앉혔다.
다행히 페르세타는 라냐의 이상행동을 꼬치꼬치 캐묻지 않고 자신의 용건을 조곤조곤 밝혔다.
“그러니까. 선생님. 다음 통로를……. 저희 왕국에 설치하시겠다고요?”
라냐 비셰나는 머리칼이 곤두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 예. 정확히는 다음은 아니고요. 다다음이에요. 지금은 우리 베리타 백작령에 요정계 통로를 설치하러 가는 중이어서요.
하산한 이후 반년 넘게 연락을 하지 않았던 페르세타의 갑작스러 통신.
제국을 주름잡는 마도왕의 통신은 그 자체로도 큰 사건인데, 심지어 그가 가져온 소식이 신비 세계와 통하는 통로에 관한 거라니?!
라냐는 자리에서 펄쩍 뛰며 대답했다.
“해요! 무조건 해요! 아바마마는 제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설득할 테니까요! 제발 저희 왕국에 설치해 주세요!”
그녀의 머릿속으로 여러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계기!
그래. 계기를 간절히 찾고 있지 않던가!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계기였다.
정체되어 있는 왕국의 마법사들을 자극할 수 있는!
라냐는 설레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어떤 세계랑 연결하실 건가요?”
– 아. 명계요.
“예?”
하지만 이어지는 페르세타의 대답에는 그만 조금 몸이 뻣뻣해질 수밖에 없었다.
* * *
마법 왕국 비셰나.
페르세타의 제자인 라냐 비셰나의 나라.
그곳은 요즘 연일 시끄러웠다.
“저게 명계랑 통하는 문이라는 거지?”
“명계면……. 죽은 자들이 가는 세계?”
“그렇다니까.”
제국 수도에 설치된 환요계와의 통로가 대륙 전체에 엄청난 이슈를 불러온지도 벌써 꽤 시간이 지난 때였다.
옛날이야기에나 나오던 요괴들이 인간계로 나와 시장을 차리고 거래를 한다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정말로 그때부터 시장에 귀하디 귀한 환요계의 자원들이 풀리기 시작했으니 그걸 믿지 않을 도리도 없었다.
낭만이 가득한 젊은이들은 죽기 전에 요괴는 한번 봐야 하지 않겠냐며 보따리 하나를 싸 들고 제국의 수도로 달려가기도 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중년들은 그 모습을 보며 ‘에잇! 철부지들 쯧쯧쯧.’
하고 혀를 찼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그 젊은이들을 부러워했었다.
다른 세계라니!
다른 세상에서 건너온 요괴라니!
그들의 물건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시장이라니!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가슴이 설렐 수밖에 없는 이야기였던 것이다.
다만 생계를 팽개칠 수 없었기에 신포도 보듯이 했을 뿐이지.
그러던 차에 생긴 일이었다.
그 이름도 유명한 마도왕 페르세타가 비셰나 왕국의 수도에 나타나 대뜸 마법의 통로를 설치한 게.
그 통로는 무려 죽은 자들의 세계인 명계와 통한다고 했다.
사람들은 설렜고동시에 오싹함을 느꼈다.
“그럼……. 저기선 귀신이 나오는 건가……?”
“……기다려 보면 알겠지. 자정이 되면 나올 거라고 하니까.”
깊은 밤.
평소 같았으면 시장을 다 접고 집에 들어가서 자고 있을 시간이었지만, 시장은 어전히 마법 조명으로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명계의 존재들은 낮을 싫어했기 때문에 자정 이후에 거래를 하러 나올 거라는 언질이 있었던 탓이었다.
때 아닌 야시장이 열린 것.
긴장 속에서 시간이 흘렀다.
11시 50분.
11시 55분.
그리고 마침내,
12시 00분.
데에에엥-!
데에엥-!
비셰나 왕성의 종탑에서 12시를 알리는 종소리가 진중하게 울려 퍼졌다.
종지기도 오늘의 중요함을 아는 탓일까?
어쩐지 종소리가 평소보다 더 크고 무겁게 들리는 것 같았다.
시장에 파견되어 있던 기사와 마법사들도 그 종소리와 함께 일제히 몸을 곧추세우고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그 한켠에는 심지어 왕위 계승 서열 1위인 라냐 왕세녀와 그녀의 스승 마도왕 페르세타의 모습도 보였다.
시장 상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제히 마른침을 한 번 꿀꺽 삼켰고, 마침내 명계와 이어진 통로가 일렁거렸다.
스르르-
통로 밖으로 발을 내딛는 존재들.
하나같이 검은 옷에 검은 모자를 둘러썼다.
발은 둥실 떠서 땅에 닿지 않았다.
어떤 이는 칼을 찼고 어떤 이는 낫을 들었다.
모자 아래로 보이는 얼굴은 죽은 시체처럼 하얗거나, 아예 뼈밖에 남지 않은 해골이었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내질렀다.
“사, 사신이다…….”
“저승의 차사…….”
심약한 몇몇은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고, 또 어떤 이들은 후다닥 뒤로 물러서 도망칠 준비를 하기도 했다.
인간계와 명계가 연결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