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134)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134화(134/171)
134화 재회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지나 새벽 3시.
허나 이곳에는 아직도 사람들이 득실거렸다.
“크흐흠! 여기. 벚나무와 난초, 그리고 꿀벌집이 있소. 이거면 사몽꿀을 얼마나 줄 수 있소?”
– 아주 생명력이 풍부한 꽃과 벌이군요. 이거라면 사몽꿀 500mL는 드릴 수 있습니다.
명계에서 건너온 존재들과 비셰나 왕국 상인들의 거래가 아직도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인들은 명계의 존재들을 두려워했지만, 거래를 마칠 때면 하나같이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이렇게 남는 장사가……!’
환요계와의 거래에서는 주로 금화가 쓰인다고 들었다.
금화를 주고 더 값진 환요계의 물건들을 사는 것이니 그 역시 크게 남는 장사였지만, 명계와의 장사와는 비교할 수가 없었다.
명계의 존재들은 황금 같은 것에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관심을 보이는 것은 오로지 섬세하게 피어난 생명력뿐.
그들은 꽃이나 꿀벌통 같은 것으로 거래를 했는데, 그 대가로 돌아오는 것이 굉장했다.
사몽꿀만 해도 그렇다. 명계의 벌이 만들어내는 이 우윳빛의 꿀은 한 숟가락만 먹어도 모든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숙면을 취하게 되는 꿀.
불면증 환자가 많은 귀족들이 혈안이 되어 찾는 물건이었고, 술에 조금씩만 타서 마셔도 술맛을 몇배는 더 좋게 만들어 주었기에 모두에게 환영받았다.
들판에 널린 꽃과 꿀벌통으로 이런 것을 살 수 있다니. 엄청나게 남는 장사가 아닐 수 없었다.
사몽꿀만이 아니었다.
한없이 가벼우면서도 질긴 혼철은 특별한 무기를 만들 수 있는 전략 물자였다. 그리고 공기보다 가벼워서 저절로 떠오르는 나무인 망각목은 건축과 가구, 수레를 제작하는 데 있어서 그야말로 혁명을 불러올 수 있는 소재였다.
이렇게 귀한 명계의 물건들이 가득 펼쳐져 있으니,
심지어 그것들을 값싼 꽃과 꿀법통으로 살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상인들에게는 이곳이 곧 천당이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상인들은 한껏 기뻐하면서도 이따금씩 걱정스러운 얼굴로 흘깃흘깃 명계로 통하는 통로를 돌아보았다.
그 너머로 열 명도 넘는 사람들이 뛰쳐들어 갔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왕국의 보물인 라냐 비셰나 왕세녀가 그들을 구하겠다고 뒤따라 들어갔으니…….
‘괜찮으실까……?’
‘명왕이 그토록 무시무시하다던데…….’
‘명왕께서는 산 자와 죽은 자가 섞이는 걸 극도로 싫어하신다고 하셨지?’
‘명계에 들어가면 살아나올 수가 없다는데…….’
행여나 큰일이 벌어져 왕국이 어지러워질까 봐, 상인들은 웃다가도 흠칫흠칫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그중에는 과일가게를 하는 상인도 끼어 있었다.
“모르앙…….”
작년에 어머니를 잃고 고아가 된 소년. 이곳 시장 상인들이 함께 기르고 있는 거나 다름없는 그 아이가 걱정되어서, 그는 명계와 거래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자꾸만 통로를 바라보고 눈물을 훔쳤다.
* * *
후회의 구덩이는 기묘한 곳이었다.
“저 위가…… 저렇게 화려했었나요?”
라냐 왕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그녀가 구덩이로 뛰어들었을 때, 그곳은 어두웠고 삭막했었다.
하지만 구덩이의 바닥까지 내려와 고개를 들어보니 보이는 풍경이 전혀 달랐다.
그녀가 들어왔던 구멍에선 가슴이 따뜻해지는 희망찬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고, 그 주위로 향기로운 꽃나무들이 울긋불긋 피어나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페르세타가 라냐를 따라 구덩이 위쪽으로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후회란 그런 거니까요. 손에 닿지 않게 된 그것은, 언제나 아름답고 그리운 법이죠. 실제 어떨지는 관계없이.”
“아…….”
“제가 한 말은 아니고. 명왕 어르신이 해 준 말이에요.”
“며, 명왕? 명왕도 만나 보셨습니까?”
“네. 무서운 분이시죠. 저도 별로 만나고 싶진 않은 분이에요.”
“아…….”
“그러니 빨리 구해서 가죠.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명왕 어르신의 심기가 더 불편해질 테니까.”
“예……! 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페르세타의 예측이 맞았다.
명계로 건너온 인간들 대부분이 바로 이곳 후회의 구덩이 속에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으음……. 안쓰럽습니다.”
“그러네요. 왕세녀 님. ……가까운 사람을 잃는다는 건 저런 것일까요?”
라냐와 페르세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애처로운 모습들이었다.
“미안. 미안해……. 정말 미안해……. 지켜 주겠다고 약속해 놓고. 그래 놓고…….”
“이 아비를 용서하렴. 이 아비를 용서하렴. 얘야. 얘야…….”
후회의 구덩이는 들어오는 통로는 여러 개였으나 모두 하나의 커다란 공동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명계로 들어온 기사들과 마법사들은 그 밑바닥에서 맨 손으로 땅을 파고 있었다.
땅에는 유리알같이 투명한 모래가 가득했는데, 그 밑에 대체 무엇이 비쳐 보이는 건지, 아무것도 없는 바닥을 맨손으로 파고 또 파내었다.
두 손은 이미 까지고 짓물러서 피투성이었지만, 그 고통조차 느껴지지 않는지 그들은 울며 미친 사람처럼 땅을 파냈다.
“다들 정신 차리세요! 빨리 여기서 나가야 합니다! 어서……!”
크게 외쳐며 그들에게 다가가던 라냐가 몸을 움찔 떨었다.
거침없이 나아가던 그녀의 무릎이 꺾이고 어깨가 축 늘어졌다.
마치 무거운 자루를 짊어지기라도 한듯.
그녀가 가녀린 목을 간신히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 그런데……. 여기는 왜 이렇게 몸이 무겁죠?”
“후회의 구덩이니까요. 밑바닥에 가까울수록 점점 더 몸이 무거워집니다.”
“아…….”
라냐는 탄식하며 땅을 파고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들의 몸도 꼭 무서운 무게에 짓눌린 것처럼 힘겨워 보였다.
그런 와중에도 그들은 꺾이는 어깨와 허리를 바로 세우며, 투명한 유리알 같은 모래를 한 움큼 계속 퍼내고 있었다.
페르세타가 앞으로 나섰다.
“어쩔 수 없군요. 이미 정신이 온전치 않은 듯 하니, 기절을 시켜서 끌고 나가야겠습니다.”
그가 치켜든 손바닥 위로 마력이 일렁거렸다.
라냐는 그만 다급해져서 그의 손을 붙들었다.
“잠시만! 잠시만요!”
“……? 왜 그러십니까?”
라냐가 촉촉한 시선으로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저 사람들. 이대로 나가면 폐인이 될 거예요.”
“폐인이요?”
“네. 잃어버린 사람들이 그리워서 명계까지 뛰어든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이렇게 후회의 구덩이만 헤매다가 돌아가면……. 그 고통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아.”
페르세타는 생각했다.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 그에게도 그런 경험이 한 번 있었다.
폐관을 마쳤을 때, 그의 스승 바르덴테는 이미 죽어 백골이 된 상태였으니까.
하지만.
그때의 페르세타는 그렇게까지 슬프지는 않았다. 스승님은 매년 약해지고 계셨고, 그가 결국 떠날 것이라는 걸 페르세타는 진작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만약.
그런 마음의 대비 없이 소중한 누군가를 잃는다면?
아버지 플리안이나,
어머니 로오루아나,
동생 즈바르트,
막내 일리안느…….
태어나서 처음 알게된 가족의 소중함을 알려 준 그들이 갑자기 어느 날 죽는다면?
그런 상상을 하자 아찔한 현기증이 돌았다.
“확…… 실히. 이대로 그냥 나가면 마음이 많이 아프겠네요.”
“네. 선생님. 그러니. 기왕 명계까지 왔으니. 저들이 그리워 하는 사람을 잠깐이라도 만나게 해 주면 어떨까요?”
하지만 페르세타는 고개를 저었다.
“안 될 말입니다. 명왕 어르신은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십니다. 명계 전체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행위니까요.”
“그, 그럼. 만나지는 않더라도 목소리로 대화만이라도 할 수 있게.”
“마찬가지입니다. 대화를 주고 받으면서 소통을 나눈다면 그건 이미 만난 것과 다름이 없어요. 명왕 어르신이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그런…….”
“아쉽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페르세타가 다시 손을 펼칠 때였다.
“잠깐만! 잠깐만요. 선생님!”
라냐가 완고한 표정으로 말했다.
“선생님. 영혼들……. 찾아주실 수 있죠?”
“그건 가능하죠. 하지만 아까 말했다시피 소통을 하는 건…….”
“찾아만 주세요. 나머지는 제가 할게요. 일절 소통은 없을 거예요. 그래도 저들을 좀 위로할 수는 있어요.”
페르세타는 잠시 라냐를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저들을 그냥 기절시켜 끌고 나가는 게 마냥 좋았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잠시 뒤.
페르세타의 마법 위에, 라냐의 마법이 덧씌워졌다.
이곳 명계 어딘가에 존재하는 죽은 자들의 영혼과 연결되는 마법.
그리고…….
“어……? 어어? 여기. 여기 있어? 에렌시아? 너 맞아?”
“딸? 너니? 여기 있니?”
미친듯이 땅을 파던 사람들이 고개를 들었다.
눈물을 줄줄 쏟으며 아무도 없는 주변을 바라보았다.
“아아아……. 에렌시아……. 아아…….”
“딸…….”
“여보…….”
자신의 가슴을 끌어안고 우는 사람들.
라냐가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아 내며 한숨을 흘렸다.
“다행히 잘 됐네요.”
페르세타는 그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그는 침묵 끝에 진심어린 감탄을 섞어 말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죠?”
“생명에 대해 연구를 좀 했잖아요. 사람의 후각은, 기억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까요.”
죽은 자의 혼과 산 사람을 직접 만나게 해서도 안 되고, 음성으로 대화를 하게 해서도 안 되는 조건.
그 상황에서 라냐가 떠올린 건 ‘향기’였다.
죽은 그 사람이 생전에 가지고 있던 체취. 두 사람의 추억이 깃든 나무 아래에서 불어오던 바람의 냄새. 널어둔 빨래가 마르는 냄새. 함께 술 한 잔 했던 밤의 비 냄새.
그녀는 단지 영혼의 기억 속에서 냄새를 추출해 저들에게 선사해 준 것이다.
그러자 땅을 파던 사람들은 엉엉 울었다.
무언가를 떠나보내듯이, 무언가를 가슴에 새겨 넣듯이, 몸을 흔들며 엉엉 울어 댔다.
그들은 너무 울어서 탈진했는지, 라냐가 다가와서 끌어내자 순순히 따라나섰다.
라냐는 그들의 숫자를 한 번 세보고는 페르세타에게 말했다.
“이제 한 명 남았네요.”
페르세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꼬마 아이가 하나 있었죠? 아무래도 그 애……. 아픔의 비탈길을 내려간 거 같네요.”
* * *
“엄마……. 엄마…….”
한편, 6살 아이 모르앙은 아픔의 비탈을 넘어 망각의 강가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곳에서 꿈에 그리던 어머니를 만나고야 말았다.
“엄마!!!”
자꾸만 자기를 붙잡으려고 드는 온갖 귀신들을 밀어내고 마침내 찾아낸 엄마.
모르앙은 엄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 넌……. 누구니? 누가…… 자꾸 날 부르는 것 같았는데……. 그게 너니?
모르앙의 어머니는 모르앙을 알아보지 못했다.
“엄마 왜 그래! 엄마!”
어머니의 다리에 매달려 엉엉 우는 모르앙.
여인은 그런 모르앙을 혼란스러운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 나……. 왜 눈물이……. 나지? 대체……. 나는…….
혼란스러워하던 여인이 울고 있는 모르앙을 달래 주기 위해 몸을 굽힐 때였다.
– 그만.
천둥 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망각의 강. 일명 레테의 강이 그 고함 소리에 흔들리며 일렁거렸다.
– 며, 명왕님.
여인이 황급히 몸을 낮추었다. 동시에, 어린 모르앙을 붙들어 자신의 뒷춤에 감추었다.
쿵.
5m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대한 남자는 검은 수염에 이글거리는 검은 눈동자를 하고, 손가락뼈로 만들어진 왕관을 썼다.
그는 덜덜 떠는 여인의 영혼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 호오……. 레테의 강물을 마시고도 전생의 기억이 남아 있는 것이냐. 제 아이를 지키려고 드는구나.
– 며, 명왕님. 이건…….
여인은 두려움에 떨며 무언가 말을 하려 했고, 명왕은 고개를 저었다.
– 됐다. 말할 것 없다. 산 자와 죽은 자가 만나고 서로를 알아보았으니. 간단한 일이지. 그 아이도 죽은 자가 되면 되는 것이다. 어미 곁에 머무를 수 있으니 녀석도 싫진 않겠지.
명왕의 커다란 손이 모르앙을 향해 뻗어 나갔다.
여인의 영혼은 온몸을 웅크려 모르앙을 끌어안으며 외쳤다.
– 명왕님! 명왕님! 잠시만!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여인을 손가락 끝으로 떼어낸 명왕은 무감정한 손길로 모르앙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명왕 어르신 오랜만입니다.”
그 무엇에도 멈추지 않을 것 같았던 명왕의 손이 허공에서 멈춰 섰다.
명왕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에 불쾌함이 깃들었다.
– 네놈이구나 페르세타. 네놈 때문에 내 세계가 혼란스러워질 뻔했다. 역시 통로 같은 것을 허락해 주는 게 아니었는데…….
“죄송합니다. 어르신. 하지만 그 아이는 아직 인간계에 속한 아이. 저희가 데려가야겠습니다.”
– 데려가겠다고? 그래. 네가 데려가겠다면 데려갈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럼 즉시 인간계와의 통로를 닫을 생각이다.
명왕이 페르세타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말했다.
– 어찌할 테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