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135)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135화(135/171)
135화 교환
흠칫.
라냐 비셰나는 놀라서 페르세타를 쳐다보았다.
그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통로를…… 닫겠다고 하셨습니까?”
그의 목소리가 스산하게 들렸다.
차갑게 얼어붙은 분노.
페르세타가 이렇게 화내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라냐가 품고 있는 마나마저 두려움에 짓눌린 듯 지잉지잉 요동을 쳤다.
하지만 거대한 명왕은 그런 그의 분노를 느끼지 못하는 건지 아니면 무시하는 건지, 태연하기만 했다.
– 어찌할 테냐?
페르세타의 입가가 비틀렸다.
“명왕 어르신. 일이 이렇게 된 건 저도 대단히 죄송하지만, 세계 간의 통로를 연 것은 저와 어르신이 맺은 계약에 의거한 것입니다. 계약이라는 건 그렇게 일방적으로, 마음대로 파기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분명 화가 난 게 분명해 보였지만, 페르세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는 흥분을 드러내지 않고, 조근조근 말을 뱉었다.
– 계약? 내가 맺은 계약이니 내가 취소할 수도 있는 것이지. 여기는 명계이고, 모든 것은 나의 뜻대로 이루어진다. 그게 명계의 법도이다.
“이 명계에서 명왕께서 지니고 계신 위상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명계 출신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와 맺은 계약은 명왕의 권위로 마음대로 취소하고 그럴 수 있는 게 아니지요.”
– 내 세계의 문을 내가 닫겠다는데 네가 뭘 어찌할 테냐?
페르세타는 5초 정도 말없이 명왕을 노려보았다.
명왕은 여전히 네가 노려보면 어쩔 거냐는 시선으로 페르세타를 심드렁하게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페르세타의 입이 열렸다.
“명왕 어르신이 13대 명왕이시죠? 선임자가 12명이 있었고.”
– 그렇지. 영혼만이 존재하 명계라 하나, 영혼도 때가 되면 새로 태어나야 하는 법이니. 내가 명계를 다스린지도 벌써 10만년이 흘렀구나.
명왕의 커다란 입꼬리가 비틀렸다.
무려 10만 년을 살며 명계의 모든 것을 좌우해 온 신. 그것이 명왕이었다.
그는 고작 50년도 살지 못한 어린 인간 마법사를 손가락 하나로 뭉개 버릴 수 있다는 듯이 위압적인 기세를 풀풀 풍겼다.
“그렇군요. 13대 명왕. 그럼 이제 곧 14대 명왕이 필요하겠군요.”
– 뭐라……?
우우우웅!
페르세타는 더 이상 말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사방으로 마법진을 펼쳐 낼 뿐이었다.
그의 입에서 나직하게 주문이 흘러나왔다.
“때가 오면 멈춰 선 것은 움직이고 작은 것은 커지며 변화하고 변화하며…….”
명왕의 눈이 가늘어졌다.
– 너……. 그 주문. 설마 나를 환생시키겠다는 거냐? 네가? 나를? 이 명계에서?
드드드득!
명왕의 뒤에서 땅이 갈라졌다. 수많은 악령들이 풀려남과 동시에 구슬프게 우는 귀곡성이 울려 퍼졌다.
그 둘의 살벌한 기세 사이에서, 모르앙과 어머니의 영혼은 도망칠 곳도 찾지 못한 채 바닥에 웅크려서 서로를 끌어안은 채 벌벌 떨고 있었다.
“잠깐! 잠깐만요! 두 분 모두 진정하세요!”
결국 참다 못한 라냐 왕세녀가 페르세타와 명왕의 사이에 끼어들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주문을 빼곡하게 쌓아 올린 상태였다.
강력한 마력의 집약으로 시공간의 왜곡도 만들고, 영수계와 설화계의 힘까지 빌려와 방어 결계를 펼쳤다.
치지직! 치익!
페르세타의 마법진과 라냐의 마법진, 그리고 명왕이 뿜어낸 죽음의 기운이 서로 부대끼며 때론 타오르고 때론 차게 얼어붙었다.
라냐는 어깨를 움츠리고 소리를 빽질렀다.
“이렇게 사소한 일로 죽어라 싸우실 거예요?!”
– 사소하지 않다. 저 마법사가 명계에서의 나의 권위를 부정했다.
“우리 사이에 맺은 신성한 계약을 먼저 부정한 건 명왕 어르신이죠.”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두 존재.
라냐는 소리를 높였다.
“두 분 자존심 싸움은 나중에 하시고요! 일단 직접적인 발단부터 해결하자고요! 그러니까, 명왕께서는 죽은 자와 접촉한 생자를 그냥 보낼 수 없다는 거잖아요?!”
– 그렇지.
“우리 입장은 저 가엾은 아이를 데려가야 한다는 거고요.”
“맞습니다. 왕세녀님. 저희가 저지른 실수에 대해선 얼마든지 보상할 용의가 있지만, 죄도 없는 어린 아이의 목숨을 앗아가는 건 안 될 일입니다.”
다시 차갑게 부딪히는 명왕과 페르세타의 시선.
라냐는 그 사이에서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저 아이의 기억을 잘라서 이곳에 두고 가는 겁니다.”
– ……기억을?
명왕이 먼저 관심을 드러냈다.
“네. 기억이란 영혼의 일부. 명왕께서 꼭 그 아이의 영혼을 거두셔야겠다면, 이 명계와 얽힌 부분만 거둬가시지요. 어머니에 대한 기억만 가져가시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소란에 대한 배상은 저희 비셰나 왕국이 책임지고 하겠습니다.”
그 말에 어머니의 혼령을 붙들고 오들오들 떨고 있던 6살 아이, 모르앙이 자지러지듯 소리쳤다.
“안 돼요!!!”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아이의 목소리가 힘을 가질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페르세타가 먼저 사방으로 떠올렸던 마법진을 해제했다.
“……그런 조건이라면 저도 받아들일 수 있겠군요.”
명왕도 잠시 생각을 하다가 시커멓게 피워올렸던 사기(死氣)를 가라앉혔다.
– 일리가 있어.
이 극적인 타협안에 결코 동의할 수 없는 건 6살 아이 모르앙뿐이었다.
“안 돼! 안 돼요! 나 그냥 여기 있을래요! 명계에서 엄마랑 살 거야! 안 돼!”
하지만 정작 아이가 매달리고 있던 어머니의 혼령은 매몰차게 모르앙을 뒤로 밀어냈다.
“어, 엄마? 엄마!!?”
혼령은 아예 등을 돌렸다. 그러곤 모르앙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울며 말했다.
– 명왕님……. 부디 이 아이를 인간계로 돌려보내 주세요. 저에 대한 기억은 다 잊게 하고…….
명왕이 그런 혼령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말했다.
– 괜찮겠느냐? 너는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겠지만, 이 아이는 너의 아들이었다. 명계에서 함께 사는 것도 나쁘진 않을 텐데?
– 아뇨. 아니에요. 제 기억이 온전하지 않은데도……. 저 아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가슴이 미어지게…….
혼령은 말을 다 맺지도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하얀 연기같은 눈물 방울이 바닥으로 뚝뚝 떨어져서 흩어졌다.
결국 명왕은 고개를 끄덕였다.
– 오냐. 네 뜻대로 해 주마.
“안 돼!!!”
모르앙이 자지러졌지만, 아이는 어른들의 결정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법.
명왕이 모르앙을 향해 손을 뻗자 아이의 정수리에서 희끗한 무언가가 빠져나왔다.
“아……. 아아…….”
모르앙의 머릿속으로는 엄마와 함께 보낸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 왜 나는 아빠가 없어?
– 그건, 내가 다른 엄마들보다 3배는 더 좋은 엄마라서 그래! 여기에 아빠까지 있으면 너무 불공평 하잖아?
– 엄마. 나 안아 줘.
– 이리와! 우리 강아지! 아~ 손님 오셨어요? 네? 아유. 안 무거워요.
모르앙에게 엄마는 커다란 나무였다.
아무리 타고 올라서 놀고 장난쳐도 결코 쓰러지지 않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항상 햇볕을 막아 주고, 싸르륵 싸르륵 자장가도 불러 주고, 향기도 좋은.
그런데 어느날.
시장에서.
그 커다란 나무가 쓰러졌던 거다.
이마를 만졌을 때의 펄펄 끓던, 그 불덩이 같은 온도.
그 모든 추억이,
슬픔이,
정수리를 통해 빠져나갔다.
그 모든 것들은 명왕에게로 빨려들었다.
명왕은 자그마한 구슬로 뭉친 모르앙의 기억을 입에 털어 넣었다. 아이는 스르르 잠에 들 듯 혼절했다.
라냐는 얼른 다가가 아이를 품에 안았다.
– 흐윽……. 흑……. 흐으윽…….
여인의 혼령은 구슬프게 울며 라냐의 품에 안긴 모르앙을 향해 손을 뻗었다.
– 그만. 또다시 산 자와 접촉을 한다면, 나는 저 아이를 명계의 주민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
명왕의 싸늘한 한 마디에 여인의 혼령은 뻗었던 손을 황급히 가슴으로 가져와 붙였다.
그러곤 그저 라냐의 품에 안긴 모르앙을 애타게 바라보고 또 바라볼 뿐이었다.
– 내가 삼킨 기억은 나중에 그 아이가 정식으로 명계의 주민이 되면, 그때 돌려주지.
명왕이 커다란 손가락으로 저 너머 통로가 있는 쪽을 가리켰다.
– 이제 가라. 내 세계를 더 더럽히지 말고.
라냐는 모르앙을 안은 채 여인과 눈빛으로 인사를 나눴다. ‘이 아이는 제가 잘 보살필게요.’
여인은 그 뜻을 알아들었는지, 연신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전했다.
페르세타와 라냐는 그렇게 다시 아픔의 비탈을 지나 명계를 떠나갔다.
우두커니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명왕은 뒤늦게 파르르 떨리는 손을 주무르며 한숨을 토했다.
– 괴물 같은 자식……. 하마터면 정말 은퇴할 뻔 했군.
* * *
동이 트기 직전까지 시장에 모여 있던 군중들은, 마침내 통로를 통해 빠져나오는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왔다! 나왔어!”
기사.
마법사.
기사.
또 마법사.
한 명, 한 명, 통로를 빠져나올 때마다 군중들은 환호성을 보냈다.
하지만 줄줄이 나오던 행렬은 어느 순간 뚝 끊기고 말았다.
“어?”
“왕세녀님은?”
왕이 눈에 띄게 초조한 모습을 보였다.
모두가 긴장한 채 통로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불쑥-
통로를 헤치고 페르세타가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6살짜리 어린아이를 품에 안은 라냐 왕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와아아아아-!”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는 듯 커다란 환호성이 쏟아졌다.
푸르른 새벽인데도 온 성이 축제를 맞이한 듯 시끌벅적해졌다.
“마음도 고우시지.”
“신하 하나 백성 하나 놓치지 않으셨어.”
“누가 명계까지 뛰어들어서 저들을 구해 올까…….”
라냐 왕세녀와 페르세타 덕에 목숨을 구한 기사와 마법사들이 헐레벌떡 달려와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그러자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다른 기사들과 마법사들까지 분위기를 타고 라냐 왕세녀 앞에 무릎을 꿇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비셰나에 영광을!”
엄청난 환호가 그 뒤를 따랐다.
인공위성 제작에 애를 먹고 있던 라냐 비셰나에게 압도적인 지지가 쏠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라냐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그녀는 페르세타를 돌아보며 말했다.
“선생님.”
“예?”
“선생님께는 모든 세계를 연결하는 게 중요한 거죠? 더 넓은 차원의 우주를 탐사하기 위해서.”
페르세타는 흠칫 놀랐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라냐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쩐지. 그렇게 화를 내시는 모습은 처음 봤거든요. 선생님께 그게 얼마나 중요하면 그러셨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곤 결의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도울게요. 덕분에 제 영향력도 더 커진 거 같으니까. 도울 수 있을 거예요. 우리도 인공위성을 만들 거니까. 우주로 쏘아올릴 발사체 제작은 저희에게 맡겨 주세요!”
페르세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애캘슨도 그렇고, 라냐도 그렇고, 이렇게 제자들이 도와준다면, 그의 염원은 더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고마움의 표시를 담아 고개를 끄덕인 페르세타는 문득 라냐의 품에 안긴 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 아이는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제가…… 마법사로 키워 보려고요.”
“마법사로요?”
“네. 언젠가, 이 아이도 선생님만큼 뛰어난 마법사가 되면, 명왕에게 빼앗아 간 기억을 되돌려달라고…… 요구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아.”
사실 라냐는 신경 쓰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들의 사정을 위해 한 아이의 가장 소중한 기억을 빼앗았다는 사실을.
그녀는 아이를 꼭 품에 안으며 각오가 서린 눈빛으로 말했다.
“제가 꼭. 이 아이를 대마법사로 키워 낼 거예요.”
그간 많이 약해졌던 라냐의 두 눈동자에, 다시 한번 뜨거운 불꽃이 깃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