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136)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136화(136/171)
136화 고마움
“마법사를…… 키운다.”
이상하게 인상적이었다.
라냐가 6살 짜리 아이를 품에 안고 두 눈을 빛내던 그 모습이.
“음. 오랜만에 집에 들러야겠어.”
그래서 생각이 났다. 고향 베리타 영지에 세운 글라우베 마법 대학이.
얼추 전해듣기로는 여전히 제자들이 돌아가며 돌보고 있고, 제자들도 꾸준히 모집해 마법사들을 길러 내고 있다는 것 같았다.
한동안 연구에 바빠 신경을 쓰지 못했지만, 갑자기 왠지 보고 싶어졌다.
바로 얼마전에 요정계와 이어지는 통로를 만들기 위해 베리타 영지에 들르긴 했지만, 그땐 마법 대학까지 둘러보지는 않았으니까.
화아아악-!
– 아! 좋다! 고향 냄새!
공간을 넘어서 순식간에 베리타 영지에 도착했다.
히나리리리아네가 무지개빛 날개를 활짝 펼치고 뛰쳐나와 사방으로 날아다녔다.
덩실덩실.
얼마나 신이 나는지 비행 궤적은 똑바르지 않고 나비보다도 더 정신없이 위아래로 오간다.
만면에 지은 웃음.
여기에 앉았다가 저걸 만졌다. 내면의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포르르 날아다니는 그 모습을 보니 페르세타도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베리타 영지에 요정계와 이어지는 통로를 열어서 그런지, 히나리리리아네는 잔뜩 들뜬 모습이었다.
– 페르세타! 페르세타!
괜히 페르세타를 부르고,
– 여기 여기!
그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더 자주 와야겠다.’
공간 마법을 쓰면 오가는 게 어렵지도 않은데 여태 왜 이렇게 나와볼 생각을 안 한 걸까.
페르세타는 작게 반성하며 히나리리리아네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그녀가 너무 사방팔방 날아다녀서 빨리 걸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그녀를 재촉하고 싶지도 않았고.
결국 페르세타는 연구자료를 꺼내들어 읽으며 걷기 시작했다.
남들이 보면 기껏 고향에 와서 또 연구냐며 학을 뗄지 몰라도, 페르세타에게는 이것도 제법 기분 전환이 되었다.
다른 풍경에서 슬슬 걸으며 연구 자료를 읽다니?
이 상쾌하고 여유로운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가?
평소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지나갔던 부분들도 시야에 들어왔다.
자료들은 모두 그 내용을 요약한 초록들이 달려 있었다.
초록의 작성자는 하나같이 현자 시에넬.
페르세타는 자료를 빠르게 넘겨 초록들만 살펴보며 내심 감탄했다.
‘이제 보니. 자료들이 다 적절하네.’
하나같이, 페르세타가 좀 참고 했으면 좋겠는데? 라고 생각했던 자료들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 초록을 작성한 건 전부 시에넬이고.
‘현자님이 아무래도 연구 주제나 방향 같은 걸 잡아 주는 모양이다.’
만약 그런 것 없이 자율에 맡긴 연구였다면 이렇게 모든 자료가 자기 마음에 쏙 들 수는 없었을 것 같았다.
‘안 보이는데서 계속 힘써 주고 계셨구나.’
종이를 매만지는 페르세타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누군가 나를 신경 써 준다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었으므로.
그렇게 천천히 천천히 걸어서 글라우베 마법 대학에 갔다.
툭-!
정신없이 연구 자료를 읽으며 걷던 페르세타는 마찬가지로 뭔가를 읽으며 허겁지겁 걸어가던 한 마법사와 어깨를 부딪혔다.
“아. 죄송합니다.”
페르세타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지만, 상대 마법사는 뭐가 그렇게 급한지 페르세타의 얼굴만 슬쩍 보고는,
“죄송.”
한마디만 얼렁뚱땅 남기고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다들 열심히 연구를 하는구나.’
그냥 그렇게 생각하고 지나가려던 때, 지나쳤던 마법사가 갑자기 끼기긱 멈춰 서서 뒤를 돌아봤다.
그의 얼굴이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하얗게 질렸다.
“페, 페르세타 선생님?”
“네?”
“끼아아아악!”
이상한 비명을 지른 그는 허리를 넙죽 숙이며 우렁차게 외쳤다.
“페르세타 선생님을 뵙습니다!!!!”
페르세타가 움찔! 놀랄 만큼 큰 목소리였다.
그리고,
드르르르륵!
우르르르!
조용하던 글라우베 마법대학이 소란스러워졌다.
“페르세타 선생님?”
“마도왕 전하?”
글라우베 마법학교 학생들에게 있어서 페르세타의 존재는 우상이자 전설이자 신화 그 자체.
학생 교수 가릴 것 없이 모두가 페르세타를 영접하기 위해 양말 바람으로 밖으로 뛰쳐나왔다.
순식간에 사람들에 둘러싸인 페르세타는 어쩐지 멋쩍어서 코를 긁적거렸다.
뭐라도 말해야 할 것 같았다.
“저……. 그러면, 연구 진행 상황이라도 들어볼까?!”
“옛!!!”
다 큰 마법사들이 어린 새들처럼 일제히 입벌려 대답하는 그 모습이, 페르세타는 조금 귀엽다고 생각했다.
* * *
“그러니까. 이 연구 주제를 잡아준 게 현자님이라는 거죠?”
페르세타의 질문에 마법사들의 대답이 쏟아졌다.
“예. 1주일에 한 번씩은 오셔서 같이 검토해주고 계십니다. 저희가 어떤 연구를 어떻게 할지 계획을 세우면 오셔서 피드백을 주고 계세요.”
“진짜 대단하십니다. 한 마디 한 마디 놓칠 게 없어요. 저희의 관심사를 정확히 짚어내시면서 그걸 더 큰 차원으로 연결하세요.”
“제가 알기로는 저희 뿐만 아니라, 비셰나 왕국이나 다른 지역 마법사들에게도 그렇게 피드백 해주고 계신 걸로 압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페르세타의 감탄은 점점 커졌다.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그렇게 잘 이끌 수 있는 걸까?
페르세타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연구를 보면 그냥 답답해져서, “제가 할게요.”
하고 마는 경우가 많았었다.
하지만 현자는 그걸 바른 방향으로 이끌고 심지어 페르세타의 연구와 연결되게 만들었다는 게 아닌가?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
‘내가 그 나이가 되면 나도 그럴 수 있을까?’
페르세타는 솔직히 그럴 자신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단지 경험이 쌓이고 나이가 많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았다.
뛰어난 지혜와 부드러운 리더십을 타고 나야 가능한 일.
페르세타는 새삼 생각했다.
자신이 태어난 이 시대에 현자 시에넬이 존재하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가.
그런 생각은 글라우베 마법학교 시찰을 마치고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자리까지 계속 되었다.
“아들아. 밥은 먹으면서 생각하거라.”
“아, 예. 죄송합니다.”
또 생각을 하다보니 포크를 내려놓고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버지 플리안은 그런 페르세타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들아.”
“예. 아버지.”
“이만 하면 되지 않았느냐?”
“예?”
“마법 연구 말이다. 이미 인류는 역사상 누려본 적 없는 엄청난 마법 발전을 이루었지.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모든 게 편안해졌다. 마법의 발전은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느냐는 말이다.”
플리안이 자세히 설명을 했지만, 페르세타는 여전히 그 말을 알아듣기 어려웠다.
“충분…… 하다는 게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어요.”
“마법으로 이룰 수 있는 건 다 이룬 셈 아니냐는 뜻이다. 이보다 마법이 더 발전한다고 해서 삶이 얼마나 더 편안해지겠느냐. 이미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편안해졌는데. 이제는 연구도 좋지만, 조금은 느긋하게 인생을 즐기면서 사는 게 낫지 않겠느냐?”
“아.”
페르세타는 그제야 아버지가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 건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전에 일리안느가 했던 말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인생의 대부분을 탑에 틀어박혀서 연구만 했던 아들이 폐관을 마친 이후에도 연구에만 매진하는 게 안쓰러우셨던 거다.
이제는 그동안 못누려본 다양한 경험들을 즐기며, 삶을 만끽하기를 바라는 것.
하지만 페르세타는 부드럽게 고개를 저었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으니까.
“아버지. 저는 연구할 때 행복해요.”
그 말을 들은 플리안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냐는 듯이 눈을 끔뻑거렸다.
그에게 있어서 마법 수련과 연구는 고통과 고행의 연속이었으니 당연한 일.
하지만 페르세타는 진심이었다.
“전, 연구란 대화라고 생각하거든요.”
“대화?”
“네. 이 세상과 나누는 대화예요. 알아가는 거죠. 왜 불은 뜨거울까? 왜 하늘은 푸를까. 왜 세상은 이렇게 생겼을까. 그렇게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는 거예요.”
플리안은 뭔가 반박을 하고 싶었지만 페르세타의 입가에 떠오른 기분좋은 미소를 보고는 입을 다시 다물었다.
“또 그 과정에서 사람들과도 대화를 나눠요. 너의 생각은 어떻냐. 내 생각은 이렇다. 내가 요즘에 새로 발견한 게 있다. 와. 정말 대단하다! 이러면서.”
페르세타는 쿡쿡 웃었다.
“그 과정에서 저는 제가 살아있음을 느껴요. 왜 그런 말이 있잖아요. 사람은 사람 사이에서 벗어나선 살수가 없다. 사람은 사람 사이에 있기에 사람이다. 정말 그렇다는 걸 느껴요.”
페르세타가 가만히 시선을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저 멀리 언덕에 서 있는 아담한 석탑.
바로 페르세타가 30년간 떠나지 않고 연구에 매진했던 그곳.
그때의 삶도 나쁘진 않았다.
세상과 대화하고 다른 신비존재와 대화하고, 또 스승님과 대화하고.
하지만.
역시.
“그래서, 전 지금 너무 행복해요. 폐관을 마치고 나와서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연구를 할 수 있는 지금이 정말정말 행복해요.”
플리안은 살짝 입을 벌리고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상식으로는 페르세타의 말이 선뜻 공감이 가지 않았으나, 저토록 상쾌하게 웃는 아들의 말을 어찌 부정할 수 있을까.
아버지 플리안과 어머니 로오루아가 눈을 마주쳤다.
아들이 벌써 이렇게 컸네.
그런 뿌듯함이 둘의 시선에서 절로 묻어나왔다.
식사를 마치고, 어머니 로오루아는 페르세타를 불렀다.
“페르세타.”
“예. 어머니.”
“밥 다먹으면 내가 준비해둔 선물 가져가거라.”
“선물이요?”
“네 선물은 아니고, 현자님에게 드릴 선물이다.”
“아.”
“내가 듣자하니, 현자님이 널 위해서 애를 많이 써주신다고 들어서, 어머니 된 도리로 선물이라도 드려야지. 너도 항상 고맙게 생각하셔야 한다. 나이도 그렇게 많으신데, 그렇게 힘써 주시는 거. 결코 쉬운 거 아냐.”
“아. 네. 그럴게요. 감사합니다.”
페르세타는 어머니의 선물 꾸러미를 받아들었다.
안에 담긴 물건을 보니, 요정과 엘프가 합작을 해서 만든 각종 수공예품들이었다.
작은 나이프.
그릇,
부채…… 등등.
마법적 매개체로 쓰기에도 좋고 실용적으로도 좋으며, 예술성까지 갖추고 있어 좋은 선물이 될 것 같았다.
“아들. 잘하고 있어.”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 로오루아는 양팔을 벌려 페르세타를 안아 주었다.
적절하게 와닿는 온기와 몸을 누르는 압박감.
참, 기분이 좋았다.
* * *
페르세타는 마법의 궁전으로 돌아오자마자 현자 시에넬을 만나고자 했다.
그에게 느낀 고마움도 표해야 했고, 어머니의 선물도 전달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메시지 마법을 보내도 현자 시에넬에게서는 회신이 돌아오지 않았다.
“무슨 일이지?”
페르세타는 이번에는 타겟을 바꿔 현자 시에넬의 제자인 알 아드네에게 메시지 마법을 보냈다.
하지만 이번에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뭐지?”
또다른 제자 진 리안느에게 메시지 마법을 보냈다.
그러자 이번엔 대답이 돌아왔다.
– 훌쩍……. 사조님…….
“어? 울어요?”
쉬어버리고 잠긴 진 리안느의 목소리에 페르세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 스승님이……. 스승님이……!
담담하게 메시지를 보내던 페르세타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
그가 비틀거리고 그의 손이 힘없이 책상을 짚었다.
창밖에서는 까마귀들이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