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137)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137화(137/171)
137화 드림 다이빙
현자 시에넬이 사는 저택에는 햇살이 사선으로 기대서 있었다.
페르세타는 어쩐지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어 넥타이를 살짝 풀고 저택 안으로 들어섰다.
“사조님…….”
“사조님! 사조님! 빨리. 빨리 저희 스승님 좀 살려 주세요!”
회색 머리의 알 아드네가 핼쑥해진 얼굴로 페르세타에게 꾸벅 인사를 했고, 까만 단발머리의 진 리안느가 울어서 새빨갛게 부어오른 눈으로 달려와 페르세타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쿵쿵-
그때부터 페르세타의 심장은 빨리 뛰기 시작했다.
그는 진 리안느를 따라 거의 뛰다시피 시에넬의 침실로 들어섰다.
침대 위에, 시에넬이 마른 고목처럼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커튼 사이로 번져 들어온 햇살이 깡마른 그녀의 뺨과 목을 비추었다.
‘이렇게나……. 마르셨었나?’
언제나 크게만 보였던 시에넬이었기에, 페르세타는 조금 놀랐고 가슴이 울렁거렸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겁니까?”
알 아드네는 축 늘어진 어깨로 말없이 가만히 서 있고, 진 리안느는 계속 울먹이며 말했다.
“식사 마치고 일어나시다가 갑자기 쓰러지셨어요. 마법으로 깨워 보려고 계속 시도했는데, 소용이 없어요!”
“직접 꿈에 들어가 보셨습니까?”
“그게 드림 다이빙을 시도해 보기는 했는데……. 꿈이 너무 깊고 넓어서 스승님의 의식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페르세타가 시선을 내려 시에넬의 이마를 바라보았다.
살짝 손을 얹고 마법으로 몸을 살펴보니 딱히 이상한 점은 없었다.
그저…….
모든 것이 놀랄 만큼 쇠약해져 있을 뿐.
어떤 질병이라기보다는 그저 노환이라고 불러야 할 무언가.
육신과 영혼의 연결이 헐거워지며 생기는 자연스러운 현상.
그렇기에 페르세타는 무릎이 떨렸다.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육신은 인간계의 산물이지만, 사람의 영혼은 명계에서 와서 명계로 돌아가는 것.
그 둘의 결합은 결코 영원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영혼이라는 태고의 마법에 손을 댈 수도 없었다.
손을 대는 순간 그것은 본래의 모습을 잃게 되니까.
영혼에 간섭하는 일의 어려움은 차치하고서, 어떻게 어떻게 영혼을 변화시켰다고 한들 그렇게 변화한 영혼은 더 이상 예전의 그 영혼이라고 부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시에넬을 살리겠답시고 해 봤자 시에넬이라는 존재 자체를 없애 버리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
그러니,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저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시에넬을 깨워 보는 것 외에는.
“……제가 꿈속으로 들어가서 현자님을 깨워 보겠습니다.”
그 말에, 금방이라도 그림자 속으로 꺼져 사라질 것처럼 축 처져 있던 알 아드네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저도!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그러자 진 리안느도 후다닥 따라붙었다.
“저도요! 저도 갈래요!”
페르세타는 그 둘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을 데리고 꿈속으로 들어가면 조금 더 귀찮아지겠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스승님을 보고 싶어 하는 그들의 마음이 잘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페르세타가 가운데 섰고, 오른쪽에 알, 왼쪽에 진이 섰다.
페르세타가 허리를 구부려 시에넬의 이마에 손을 얹자, 알과 진도 괜히 그를 따라 허리를 앞으로 구부렸다.
퐁- 포퐁-
시에넬의 이마에 얹힌 페르세타의 손을 중심으로 비눗방울 같은 것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두 개 떠오르기 시작했던 것이 어느 순간부터 와르르 쏟아져 나오면서 순식간에 방 전체를 가득 채웠다.
“확실히……. 엄청난 꿈을 꾸고 계시네요. 알과 진이 왜 스승님의 의식을 못 찾았는지 알겠어요.”
페르세타가 시에넬의 이마에서 천천히 손을 떼며 말했다.
그의 움직임을 따라 알과 진도 앞으로 구부렸던 몸을 천천히 바로 세웠다.
“그래도 이번엔, 찾을 겁니다.”
말을 마치기 무섭게, 페르세타가 양옆에 서 있는 알과 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우악스럽게 뒤로 잡아당겼다.
“어엇?”
“꺄악!”
갑자기 뒤로 휙! 젖혀지는 몸에 둘은 당황하며 손을 바둥거렸다.
그런데,
“으헉!”
“끼엑!”
갑자기 발밑이 사라진 것처럼 몸이 부웅 떠오르고, 그대로 몸이 등 뒤로 넘어가며,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풍- 덩!
이윽고 충격과 함께 차가운 물이 온몸을 감쌌고,
물속에서 어푸어푸 헤엄을 쳐봤지만, 몸은 자꾸만 아래로 가라앉았다.
탁-
그리고 마침내 발끝에 단단한 무언가가 닿는다 싶은 순간,
쏴아아-
온몸을 짓누르던 물이 일순간에 빠져나가며, 마침내 몸이 자유를 되찾았다.
“커헉! 허억! 허억!”
“케헥! 켁! 켁!”
푸른 잔디밭.
그 위에서 알과 진이 엎드려 폐에 가득 찬 물을 토해 냈다.
“정신이 좀 드십니까?”
한참을 콜록거리다가 고개를 드니, 뒷짐을 지고 서 있는 페르세타가 보였다.
“아니. 왜 드림 다이빙을 이렇게 거칠게……!”
알이 투덜거리면서 일어서자, 페르세타는 주변을 슥 둘러보며 말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단번에 꿈의 중심부까지 들어와야 했으니까요.”
“꿈의 중심부? 어라?”
알은 그 말을 듣고서야 화들짝 주변을 둘러보더니 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정말이네요? 꿈의 사막이 아니잖아요?”
일반적으로 마법사들이 시도하는 드림 다이빙에선 언제나 가장 처음 도착하는 곳은 꿈의 사막이었다.
꿈의 가장자리.
몽상이 닿지 못하여 모든 것이 멈추고 죽어 모래로 흩어지는 장소.
보통은 거기에서부터 중심을 찾아 들어가며 꿈꾸는 자의 의식을 탐색하곤 했다.
“이럴 수도 있군요……. 하긴 사조님이니까.”
알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연신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에 가득한 푸른 초원. 그리고 멀리 보이는 작고 예쁜 숲.
10분이면 걸어 올라갈 수 있을 듯한 동산 하나.
통나무를 짜 맞춰 지은 집 한 채와 그 주변에 잘 가꿔진 텃밭.
알과 진이 동시에 중얼거렸다.
“스승님의 고향이네.”
“헤리안 평원. 스승님이 어릴 때 살던 데다.”
페르세타가 흥미를 보이며 물었다.
“그렇습니까? 여기가 현자님 고향입니까?”
“네. 확실해요.”
“한눈에 알아보셨네요. 현자님이 알려 주셨던 겁니까?”
“아뇨. 그건 아닙니다.”
알이 고개를 저으며 부정하자, 진이 헤헤 웃으며 말을 이었다.
“몇 번 와 봤거든요. 알이랑 같이 휴가 내고. 스승님은 어릴 때 어떻게 사셨나 궁금해서 찾아봤어요! 스승님에게 고향이면 우리한테도 고향인 거니까!”
진은 그때 기억이 좋았는지, 살짝 몽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군요. 잘 됐습니다. 그럼 이 주변에서 이상한 곳을 찾아 주시겠습니까? 꿈속인 만큼 실제와 다른 부분이 분명 있을 겁니다.”
그 말에 알과 진이 눈을 빛내며 뻥 뚫린 초원 여기저기를 시선으로 훑었다.
곧 둘의 시선이 한 지점으로 보였다.
“여기저기 좀 다른 곳이 있기는 한데, 저기. 저쪽이 제일 이상하네요.”
“뭐가 이상하죠?”
“초원이 기울어져 있어요. 원래는 완전 평탄한 평지거든요. 그런데 저쪽은 완만하게 경사면인 것 같아요.”
설명을 했던 진이 찔끔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너무…… 사소한 걸까요?”
“아뇨. 딱 좋습니다. 저쪽으로 가 보죠.”
세 사람은 기분 좋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완만한 경사를 따라 올라갔다.
경사 끝에 푸른 하늘과 구름이 걸려서, 꼭 하늘 위로 걸어 올라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언덕의 끝에 도달한 세 사람은 동시에 탄성을 터뜨리고 말았다.
경사에 가려 보이지 않던 그 너머에,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꿈의 중심부에 있는 형상들은 그 사람에게 가장 절실하고 행복한 기억들이 있다던데…….”
페르세타가 중얼거렸다.
“……사람의 꿈의 규모가 이 정도가 될 수 있는 거였습니까?”
“역시 스승님. 너무 예쁘다!”
알은 고개를 흔들고, 진은 폴짝폴짝 뛰었다.
언덕을 넘으니 마치 커다란 분지처럼, 다시 완만하게 내려가는 언덕길이었다.
그런데 그 경사로는 아래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어두워졌다.
그리고 마침내는 깊은 심연처럼, 밤하늘처럼, 완전히 캄캄해졌다.
바닥이 어디인지도 알 수 없어서 공간감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암흑.
그 암흑 속에 빛나는 세계들이 둥실 떠 있었다.
밝게 빛나는 마나의 태양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속도로 공전하는 9개의 세계.
페르세타는 각 세계의 크기와 자전 속도, 공전 속도, 공전 궤도 등이 실제 관측 결과와 완벽히 일치한다는 것을 곧 깨달았다.
그러니까 현자 시에넬은 자신의 꿈속 가장 깊은 곳에, 완벽한 계산을 따라 움직이는 차원의 우주를 품고 있었던 것이다.
사박. 사박.
페르세타는 앞장서서 언덕을 내려갔다.
알과 진도 그 뒤를 따라붙었다.
분명 언덕길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비탈 아래를 잡아먹고 있는 어둠이 그들을 덮쳤고, 그들은 새카만 우주 공간에 둥둥 떠서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어느새 그들이 내려온 언덕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끝없는 우주 속이었다.
“깊이. 더 깊이 가 봐야 할 것 같군요.”
그들은 마나의 태양을 등지고 계속 나아갔다.
신계, 마계를 지나치고 계속 지나쳐서 인간계, 환요계, 요정계까지 지나치고, 그 너머로 나아갔다.
아주 작은 세계들이 구름처럼 몰려있는 곳까지 빠져나가고, 모든 세계가 별처럼 멀어져 버린 어둠 속에서 끝도 없이 계속 계속 나아갔다.
“스승님……. 찾을 수 있겠죠?”
진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쩐지 지금 찾지 못하면 영영 다시는 스승님을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불안감이 그녀의 마음을 찌르고 있었다.
페르세타는 말없이 묵묵히 나아갔다.
진은 그런 페르세타의 눈치를 자꾸 보고, 알은 그런 진의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그렇게 나아간 끝에서.
“여기 계셨군요. 현자님.”
페르세타는 기어코 현자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마나의 태양조차 하나의 점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시에넬은 뒷짐을 진 채 멍하니 우주의 저편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과 진이 눈물을 왈칵 쏟으며 소리 질렀다.
“스승님!”
“스승님! 왜 이렇게 꽁꽁 숨어 계셨어요!!!”
시에넬은 어깨를 흠칫 떨더니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두 눈이 초승달을 만들었다.
“오셨군요, 스승님. 깨어나려고 해도, 깨어날 수가 없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페르세타의 눈이 살짝 붉어졌다.
강렬한 충동을 참지 못한 그는 성큼성큼 다가가 시에넬을 끌어안았다.
“현자님. 다행입니다. 다행이에요…….”
페르세타가 먼저 포옹을 해 오다니……?
시에넬은 잠깐 놀랐지만, 이내 부드럽게 미소를 지으며 페르세타의 등을 두드렸다.
“저도 기쁩니다. 이렇게 다시 뵐 수 있어서.”
페르세타는 한참 동안 시에넬을 끌어안고 있다가 천천히 떨어지며 물었다.
그는 놀랍도록 정교하게 구현된 우주를 손으로 가리켰다.
“이게…… 현자님의 꿈인가요?”
시에넬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제 꿈이지요. 아직도 제 꿈은 이렇게 우주 너머, 마법의 끝을 향해 달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낡은 육신이 더는 따라가질 못하네요…….”
씁쓸한 목소리를 던져 놓고.
그리고 시에넬은 마치 마지막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기라도 하는 듯, 온갖 회한이 가득한 눈으로 제자 알의 얼굴을, 진의 얼굴을, 그리고 스승 페르세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