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138)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138화(138/171)
138화 마지막 강의
페르세타는 생전 처음 느껴 보는 감정에 가슴이 울컥거렸다.
아니.
처음은 아닌가?
폐관을 마치고 나왔을 때, 새하얗게 백골이 되어 죽어 있는 스승님을 봤을 때도…….
그때도 이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그 감정을 느꼈을 때, 페르세타의 마음은 바싹 마른 사막과도 같았다.
그래서 슬픔이란 비가 내려도, 그 비는 잠깐 고였다가 금세 모래 사이로 스며 사라졌다.
땅속 깊은 곳 어딘가에는 여전히 흘렀겠지만, 겉으로는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지금 그의 가슴 속에는 숲도 있고, 바위도 있고, 진흙도 있다.
거세게 쏟아진 비는 푸르르게 덮인 풀뿌리에 붙잡혔고, 바위들을 따라 흘렀으며, 진흙에 질퍽하게 엉겨붙었다.
뭔가가 자꾸만 출렁거려서, 쉬이 입을 열기가 어려웠다.
“현자님.”
“예. 스승님.”
“돌아가요. 우리. 돌아가서 마저 얘기해요.”
이미 한계에 달한 노화.
의식을 깨운다고 해도 앞으로 점점 더 약해질 일만 남아 있겠지만, 그래도, 그래도 페르세타는 시에넬이 좀 더 이 세상에 머물러 주길 바랐다.
설령 늙고 지친 그녀가 더이상 연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네. 깨워 주세요. 스승님.”
페르세타가 시에넬의 두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을 슬쩍 당겼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페르세타는 다시 시에넬의 손을 당겼다. 이번엔 더 세게.
이번에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잘린 햇살이 검은 대지에 창날처럼 꽂히고…….”
입술을 꽉 깨문 페르세타가 이번엔 눈을 감고 뭐라뭐라 주문을 외우며 거칠게 시에넬의 팔을 당겼다.
하지만…….
그녀는 꿈 밖으로 빠져나오지 못했다.
“아무래도 안 되나 보네요. 스승님.”
“아니. 아닙니다. 이번에는 다른 주문으로…….”
“스승님. 괜찮아요.”
“현자님. 걱정 마세요. 제가 꼭.”
“스승님.”
시에넬이 마른 손을 뻗어 페르세타의 뺨을 만졌다.
“제자는. 괜찮습니다. 이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아마, 알량한 마법으로 너무 노화를 눌러 온 탓이겠지요.”
페르세타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처럼 일그러졌다.
그는 머릿속으로 수많은 가능성을 계산했다.
젊고 싱싱한 육체를 창조해서 시에넬에게 새 육신을 부여해 주는 방법.
명계로 떠나려는 영혼을 억지로 잡아 두는 방법.
명계와의 통로를 통해 시에넬과 계속 교류를 하는 방법…….
하지만 그 무엇도 실현할 수 없는 방법이었다.
육신을 새로 만들어 준들, 이미 인간계와 인연을 다한 영혼이 떠나는 걸 막을 수는 없다. 영혼 자체를 수정하지 않는 이상. 하지만 영혼의 수정이란 사실상 죽음과 다르지 않다.
명계로 떠나려는 영혼을 억지로 붙들어 놓으면, 그 영혼은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된다. 그건 시에넬을 고문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건 명계로 간 시에넬의 영혼과 계속 교류를 하는 것인데……. 그것도 결국엔 시에넬을 괴롭히는 것이었다.
인간계에 머물며 여러 업을 쌓은 영혼은 낡고 지치게 된다. 제때 정화하고 깨끗하게 재탄생시키지 않으면, 영혼은 점점 붕괴하게 된다. 명계를 구성하는 기초 단위인 영혼이 소실되면 명계 전체가 흔들릴 수 있었다.
명계의 혼란은 새로 탄생하는 생명체의 혼란을 의미했다. 임신이 잘 안 되기 시작할 것이며, 유산되는 아이가 늘어날 것이고, 태어난 후에도 금방 죽을 가능성이 높아지겠지.
그렇기에 제때 레테의 강물을 먹어 업과 기억을 씻고 환생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명왕이 산 자와 죽은 자의 교류를 그렇게 병적으로 싫어하는 것이었고.
이것도 안 돼.
저것도 안 돼.
결국 페르세타는 후회를 했다.
“저 때문입니다……. 제가 너무 현자님을 혹사시켜서……. 현자님의 마법 실력이면 더 오래 사시는 게 맞는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 모든 시간이 제겐 다 행복이었는데.”
“…….”
시에넬이 토닥토닥 페르세타의 어깨를 두드렸다.
“정말 행복했습니다. 특히 스승님을 모시고부터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습니다. 아쉬운 거 하나 없습니다. 딱 하나 아쉬운 게 있다면……. 스승님께 더 배울 수 없다는 것. 그게 아쉽네요. 영영 이렇게 꿈 속에서 마법을 연구하며 살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장난스럽게 웃는 시에넬의 얼굴은 마치 소녀처럼 반짝거렸다.
페르세타는 그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때,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죽음 앞에 무력하디 무력한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현자님. 아니. 제자 시에넬.”
처음으로 현자가 아닌 제자라고 그 이름을 부른 페르세타.
시에넬의 눈에 감격이 스쳐 지나갔다.
“예 스승님. 말씀하시지요.”
“자리에 앉아라.”
“!!!”
페르세타와 시에넬이 끝없는 차원의 우주 속에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시에넬의 눈동자에 격랑이 일렁거렸다.
“잘 들어라. 이것은 <레라티비테트> 이후에 너희에게 가르쳐 주려고 했던 지식이다. 나는 이걸 <콴티지에옴>이라고 이름 붙였다.”
“예. 제자. 경청하겠습니다.”
시에넬의 목소리가 파르르 떨렸다.
“<콴티지에옴>은 아주 작은 것. 잘라도 잘라도 더 이상 나뉘지 않는 가장 작은 것들의 움직임을 다루는 학문이다.”
“가장 작은 것들…….”
“이 미시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던 상식과는 전혀 다른 일들이 벌어진다. 가령 하나의 존재는 확률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기에 여기와 저기에 동시에 존재할 수 있지.”
“……잠시만요. 그 말씀은…….”
“그래. 바로 이런 콴티지에옴의 원리가 있기에 다른 세계의 존재가 인간계에 자신의 그림자를 드리울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소환하고 힘을 빌릴 수 있는 이유도 모두 여기에 있다.”
“!!!”
시에넬의 어깨가 전율로 흔들렸다.
“내 말을 한마디도 빠트리지 말고 기억하거라.”
“예. 스승님.”
페르세타의 강의가 계속 이어졌다.
시에넬의 두 제자인 알과 진은 할 말이 너무나도 많은 표정으로 그걸 지켜보았다.
하지만 끝내 끼어들진 못했다.
이런 마지막이야말로 현자 시에넬이 바라마지 않던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서운함도, 아쉬움도, 모두 내려놓고 가만히 페르세타의 강의를 함께 경청했다.
그렇게 페르세타가 한참 강의를 이어 가다가 잠시 말을 끊었을 때였다.
시에넬이 자신의 제자들을 불렀다.
“알. 진.”
“예! 스승님!”
“스, 스승님!”
울먹이는 목소리로 득달같이 대답하는 둘.
시에넬은 그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다 기억하고 있느냐?”
“예. 예. 사조님의 가르침 가슴에 새기고 있어요.”
“당연히. 기억합니다.”
“그래. 다행이구나. 기쁘다. 너희가 나보다 더, 멀리 갈 수 있다 생각하니…….”
시에넬지 떨리는 손을 앞으로 내밀자, 알과 진이 다가가 그 손을 잡았다.
시에넬은 그들을 좀더 가까이 잡아당겨 자신의 품에 안았다.
고아였던 알과 진을 거뒀던 그 옛날처럼.
옛날이지만, 어제처럼 생생한, 한 번도 잊어 본 적 없던 그 시절처럼.
시에넬은 그들의 스승이자 부모였으니까.
시에넬은 알과 진을 양쪽으로 품은 채 페르세타를 바라보았다.
“스승님. 계속해 주시지요.”
페르세타는 고개를 끄덕이고 <콴티지에옴>의 마지막 부분을 강의하기 시작했다.
1시간.
2시간…….
한창 강의를 하던 페르세타는, 미처 강의를 끝내지 못했던 때에, 깨닫고 말았다.
“시에넬……?”
그녀가 눈을 감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파스스스-
저 멀리에서부터 꿈이 무너지고 있음을.
“시에넬…….”
“스, 스승님?!”
“스승님! 스승님!”
알과 진이 벌떡 고개를 들고 시에넬을 흔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몸도 서서히 투명해지며 흩어지고 있었다.
“스승님!!!”
죽은 자는 꿈꾸지 않는다.
꿈 속의 모든 것이,
그렇게 스러졌다.
* * *
현자 시에넬의 죽음은, 대도서관 아란드리아의 미네르바들을 통해 전 세계로 알려졌다.
“……내가 아직 꿈을 꾸나?”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물어온 편지를 확인한 애캘슨이 멀뚱히 앞으로 걸었다.
다리가 풀려서, 그는 그만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러곤 주저앉은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상하다…….”
또르르-
천천히 눈물을 흘리는 애캘슨의 뒤로는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창문을 통해 비쳐 보였다.
“현자님이 죽었다고?”
또 다른 장소,
편지를 확인한 일리안느는 눈살을 찌푸렸다.
“에이……. 그렇게 정정하셨는데? 정말?”
뭐랄까. 일리안느는 스스로에게 놀랐다.
의외로 너무 아무렇지도 않아서.
놀랍고 슬프다기보다는 뭔가 좀 황당했고 황망했다.
“정말?”
그녀는 계속 고개를 갸웃거리며, 옷을 챙겨 입었다.
마음 속에 구름이라도 낀 것 같이 알쏭달쏭한 기분이 기묘한 초조함을 주고 있었다.
어쨌든, 편지에 적혀 있는 장소에 가 봐야 알 것 갈았다.
일리안느는 빠른 걸음으로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현자는 전 세계의 모든 마법사에게 존경을 받는 위치였다.
제국뿐만이 아니다. 마법사라는 이름을 가진 이들은 누구나 그녀를 애도했다.
그리고, 그중 나이가 좀 많은 이들은 어떻게든 현자의 장례식에 참가하고자 했다.
대륙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마법사들의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온 세상의 마법사들이 현자의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 제국의 수도 리세아룬으로 몰려들었다.
현자는 제국의 스승이었고, 또한 수많은 손님을 맞아야 했기에, 제국은 제국장으로 그녀의 장례를 치렀다.
준비 시간은 무려 한 달이었고, 일주일 동안 손님을 맞이하는 행사였다.
마침내 약속된 날이 오자, 보존 마법이 걸린 시에넬의 시신이 리세아룬의 대광장에 설치되었다.
수 많은 마법사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어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들 대부분은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어디에나 그렇듯 성정이 가벼운 자들도 있었다.
“야…….”
“왜?”
“마도왕 전하 말야.”
“……왜.”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궁금하지 않냐?”
“뭐가.”
“그렇잖아. 그 분 마법사들 잠도 안 재우고 쥐어짜는 걸로 유명한 분인데. 현자님 죽음에는 어떻게 반응할까?”
“뭐래, 슬퍼하시겠지.”
“그래. 슬퍼는 하시겠지. 근데, 그게 어떤 슬픔이냐는 거지. 막 이런 거 아닐까? 아아……. 나의 노예 1호가 세상을 떠나다니 참으로 슬프군. 이젠 누구를 노예 1호로 삼아야 한다는 말인가.”
“……미쳤냐?”
“아니. 솔직히 궁금하지 않냐? 너도 전에 봤잖아. 마도왕 전하한테 걸리면 현자고 뭐고 미친 야근이더만. 잠도 안 자고 일해서 다크서클이 아주 선명하시던 거, 내가 똑똑히 기억한다고.”
“흰소리 하지 말고.”
속삭속삭속삭.
많은 마법사들이 모인 만큼 그렇게 별별 말들이 돌아다녔다.
그리고,
“마도왕 전하 납시오!”
페르세타가 광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관 옆을 지키며 상주 노릇을 하던 알과 진이 군중들을 헤치고 나와 페르세타를 모셨다.
페르세타는 알과 진의 안내를 따라 천천히, 아주 천천히 광장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흑……. 흐윽…….”
방울방울 눈물을 떨어뜨렸다.
참혹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로, 눈물을 숨기려는 듯이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 눈물을 닦아 냈지만, 그래도 감춰지지가 않았다.
“흐윽……. 흐으윽…….”
울며, 한 발, 한 발, 간신히 앞으로 떼는 그를 보며, 마법사들은 할 말을 잊었다.
“흐흐흐흑.”
“현자님……. 끄으으…….”
시에넬과 인연이 있었던 마법사들은 마치 페르세타의 눈물이 어떤 신호라도 된 것처럼, 펑펑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하늘은 맑았으나,
광장의 바닥은 무수한 눈물방울로 점점이 젖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