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139)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139화(139/171)
139화 제문(祭文)
일리안느는 계속 멍한 기분이었다.
장례식에 오면 뭔가 실감이 날 거라 생각했는데, 딱히 그런 게 없었다.
중간중간 훌쩍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근처에 서 있는 살리넬르와 애캘슨도, 성녀 샤라 엘리프도, 왕세녀 라냐 비셰나도, 이제는 제 1황녀라는 본래 신분을 드러낸 비앙카 애시(도로테아 세이린)도 모두 두 눈이 발갛게 부어 있었지만, 일리안느는 아무리 해 보려고 해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그녀는 괜히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나 사실 되게 마음이 차가운 거 아닐까.’
현자 시에넬과의 기억이 스르르 스쳐 지나갔다.
공부를 하느라 끙끙 대고 있으면, 어느새 옆에 다가와 자상하게 이끌어 주던 목소리.
가끔 주고 가던 파이나 케익, 오렌지 주스.
어디를 가나 현자님만 있으면 마음이 든든했던 순간들.
‘분명……. 현자님을 되게 좋아했는데. 왜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지.’
그냥 마음이 조금 쓸쓸하고, 그냥 좀 머리가 몽롱하고, 그게 전부였다.
죽은 시에넬을 떠올리는 것보다, 오히려 시에넬의 관 앞에 서 있는……. 기가 팍 죽은 알 아드네와 진 리안느의 얼굴을 보는 게 더 슬펐다.
일리안느는 이런 자신이 조금 미웠다.
그러다가 광장에 가득 모인 군중들이 술렁이는 걸 보았다.
‘무슨 일이지?’
저 뒤쪽부터 흐느끼는 소리가 파도치듯 밀려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데?’
두리번거리다가 딱 시선이 꽂혔다.
시에넬의 관을 향해 걸어오고 있는 페르세타의 모습에.
“오빠…….”
일리안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페르세타가 울고 있었다.
본 적도 없고 상상해 본 적도 없는 모습이었다.
운다고? 오빠가?
세상 모든 걸 다 알고 있는 듯하던 오빠가.
그 어떤 위협에도 여유롭기만 하던 오빠가.
운다고?
그것도……. 저렇게……?
아무리 가려도 오빠의 손바닥 밑으론 계속 눈물이 떨어졌고, 아무리 닦아도 더 많은 눈물들이 쏟아졌다.
‘응……?’
뭐지?
일리안느는 문득 코끝이 찡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고추냉이를 잔뜩 털어넣은 것처럼, 코에서 올라온 맵고 시고 쓴 무언가.
눈물이 고였다.
‘어라……?’
문득.
펑펑 우는 페르세타를 보고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뭐야? 정말로……. 다시는 현자님을 볼 수 없는 거야?’
진짜라고?
이 모든 게?
이 푸른 하늘에,
이 많은 인파에,
저 한가운데에 놓인 현자님의 관까지.
이게 다 진짜라고?
이제 다시는 현자님이 일어나지 못한다고?
다시는?
다시……는?
쨍그랑.
일리안느의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깨졌다.
“끅. 끄으윽. 크흑……. 윽……!”
눈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
일리안느는 그런 자신의 신체 반응을 잠깐 동안 자각하지 못했다.
배 속에 있던 말벌 통이 날뛰는 것만 같았다.
목구멍을 타고 웨에엥 웨에엥 쏟아져 나왔다.
일리안느는 쏟아지듯 엎어져서 두 손으로 땅을 짚었고 목 놓아 울었다.
‘정말로……. 이젠 없는 거야? 다시는?’
갑자기 참을 수 없을 만큼 어지러웠다.
익숙한 세상에서, 낯선 우주로 내동댕이쳐진 것 같았다.
일리안느가 생각한 미래의 모든 장면에는 현자 시에넬이 있었다.
새로운 발견을 했을 때, 참 잘했다고 두드려 주는 주름진 손이 있었다.
힘들 때 하소연하면, 미소를 짓고 가만히 들어 주는 따뜻한 노인이 있었다.
그러다가 언젠가 결혼을 하면, 기꺼이 주례를 서 줄 든든한 어른이 있었다.
그녀가 막연히 생각했던 그 모든 미래가 산산히 박살 나서 깨어졌다.
일리안느는 갑자기 이 세상이 너무나 무서워졌다.
“흐아아아! 으아아아아!”
속에 있는 걸 다 토해 내듯이 우는 일리안느.
성녀 샤라가 그런 그녀를 안아서 일으키곤 등을 토닥여 주었다.
“울어. 실컷 울어.”
일리안느는 샤라의 품에 안겨 어린 아이처럼 몸부림치며 울었다.
* * *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페르세타가 광장을 가로질러 현자의 관 앞에 서기까지.
페르세타는 몇 번이나 멈춰 섰고 때로는 휘청거렸고, 다리가 풀려서 알과 진이 부축을 해야 하기도 했다.
눈물이 눈물을 부축하는 현장.
하지만 결국에는 이 순간이 왔다.
누구에게나 마지막이 찾아오는 것처럼, 페르세타는 마침내 현자의 관 앞에 서서 그 위에 손을 올렸다.
흔들리는 몸을 애써서 가누어 낸 그는 품에서 미리 작성해 온 제문(祭文)을 펼쳤다.
그는 자꾸 울음이 치미는지 몇 번이고 주저하다가, 목을 가다듬고 제문을 읽기 시작했다.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더 이상은 흔들리지 않게.
낭랑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준비해 온 제문을 읽었다.
—
<페르세타의 제문(祭文)>
편히 잠드소서.
차마 이 말을 하지 못 하겠습니다.
애석하고 원통해서, 누구라도 붙잡고 탓을 하고만 싶습니다.
삶이라는 건 수없는 기약입니다.
언제 밥 한번 먹자.
다음에 같이 연구하자.
이 신세 꼭 갚을게.
대부분은 지켜지지 않는 말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진심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우리 앞엔 무한한 시간이 있고, 언젠가는 그 때가 오고야 말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그런 기약들로 채워 나갑니다.
언젠가는 올, 오고야 말, 그 시간들이 우리의 이정표가 되고 막연한 미래를 생생하게 채색합니다.
그러나.
당신의 죽음이 그 모든 걸 무너뜨렸습니다.
밥 한번 먹자고 했던 기약은 정말로……. 이젠, 정말로 빈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당신은 나에게서 미래를 앗아 갔습니다.
제가 예쁘게 만들어 둔, 스테인드 글라스가 넘어져 산산이 박살 났습니다.
저는 누구를 원망해야 합니까.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원망할 사람은 나 자신뿐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짓눌립니다.
솔직히.
좀 무섭습니다.
당신이 없는 세상이 너무 낯섭니다.
그러나.
나는 하소연을 하려고 이 제문을 쓰는 게 아닙니다.
실은 장례식이 열리는 한 달 동안 저는 명계를 헤매었습니다.
명왕을 만나 부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게 해 달라고.
당연하게도 그는 거절했습니다.
허락을 해주지 않으면, 그냥 우격다짐으로라도 당신을 만나려 했으나, 그래 봤자 당신에게 좋을 게 없다는 그의 설득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야 했습니다.
그때 명왕은 말했습니다.
생전의 기억은 레테의 강물이 모두 휩쓸어 가지만, 그래도 남는 게 있다고.
그게 뭡니까.
명왕은 답했습니다.
꿈은 영혼에 남는다.
페르세타. 언젠가 다시 태어날 그녀가 계속 이어서 꿈을 꿀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라.
라고, 그가 말했습니다.
나는 그렇게 끝내 당신을 만나지 못한 채 명계를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당신의 육신은 이곳에서 스러지지만, 마법 속에는 여전히 당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당신은 뛰어난 관측 마법을 이용해, 신비 세계 밖에 존재하는 수많은 왜소 세계들을 관측했습니다.
저조차도 알지 못했던 108개의 새로운 왜소 세계를 찾아냈습니다.
312개의 물질들의 합성식과 성질 변화를 연구하여 마법적 화학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시공간의 파동을 이용해 드넓은 차원의 우주를 들여다볼 수 있다는, 마나 인력 레이더의 개념을 제시하여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져 주었습니다.
당신이 이 세계에 남긴 마법적 성과는 여기서 다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방대하고 깊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연구를 이어가는 한, 당신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당신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우리들이 서고, 또 그 어깨 위에 다른 이들이 올라설 것입니다.
마법이라는 우리의 꿈 속에 당신은 영원히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여기서 당신께 바치는 제문은 슬픔도, 원망도 아닙니다.
그저, 새로운 기약입니다.
당신의 뒤를 이어 내가 마법의 길을 개척할 겁니다.
내가 스러지면, 또 그 다음 사람이 그 길을 개척할 겁니다.
그렇게 영원히, 마법은 나아갈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재회할 것입니다.
언젠가 그 길 위에서 다시 만납시다.
몇 번이고.
다시.
길 위에서.
—
페르세타가 들고 있던 제문을 마법으로 태웠다.
그의 마음이 하얀 연기가 되어 하늘로 곧게 올라갔다.
우우웅-
하늘이 검게 물들었다.
페르세타의 제문을 듣고 있던 마법사들이 무의식적으로 흘린 마력이 한데 엉겨 하늘을 물들였다.
푸른 대낮이 순식간에 깜깜한 밤이 되었다.
마법사들은 페르세타의 제문을 들으며, 삶과 죽음을 생각했고, 자신의 마지막을 상상해 보았다.
어쩐지 마음이 단단해지는 기분이었다.
새카만 하늘. 그 너머를 향한 영원한 추구. 세대를 거듭하고 전생과 환생을 거듭하며 추구해 나갈 진리의 길.
마법사들의 다짐이 까맣게 세상을 물들였다.
그리고,
혹시나 모를 소란을 방지하기 위해 광장을 둘러싸듯이 지키고 있던 황실의 기사들은 마른침을 꿀꺽 삼켜야 했다.
‘으음…….’
‘무슨 마력이…….’
일부러 작정하고 뿜어내는 마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저 무의식 중에 흘러나온 마력임에도 불구하고.
그 기세는 견디기 어려울 만큼 무거웠다.
몇몇 기사들은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칼자루를 잡을 정도였다.
황제가 오러 소드를 창안한 이래로 기사들이 마법사의 천적으로 군림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쩐지 마법사들이 두려웠다.
* * *
황궁.
황제는 서서 커다란 창밖을 내려보았다.
페르세타가 제문을 읽고, 마법사들이 흐르는 눈물을 닦고 그 제문에 귀 기울이는 것을 보았다.
슬픔을, 진리 탐구를 향한 다짐으로 바꾸는 과정을 보았다.
푸르던 하늘이 마력으로 어두워지는 광경을 똑똑히 지켜보았다.
황제는 자신도 모르게 소름이 돋은 팔을 쓸어 보았다.
“……시대가 바뀌고 있음인가.”
착각하고 있었다.
페르세타라는 한 명의 걸출한 마법사의 문제가 아니었다.
‘마법’ 그 자체가 문제였다.
검술도 시대를 따라 발전하기는 하지만, 지금 마법이 보여 주는 발전 속도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한 명의 평범한 마법사가 평생을 걸어 아주 작은 성취를 이루었다고 해 보자.
개인으로 보면, 그건 아주 사소하고 별것도 아니다.
하지만 모든 마법사가 그렇게 아주 작은 성취를 이룬다면?
마법이라는 학문은 그 작은 성취 하나하나를 탐욕스럽게 집어삼켜 앞으로 나아간다.
진리에 인생을 바치기로 맹세한 마법사들은 서로 서로의 어깨 위에 올라서며, 점점 더 키를 높인다.
페르세타가 사라져도, 마법이라는 괴물은 지금처럼 계속 자라날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황제는 섬뜩했다.
세상의 그 어떤 국가가, 그 어떤 권력이, 저것을 상대할 수 있을까?
대를 이어나가며, 계속해서 성장하는 힘을 그 무엇이 견제할 수 있을까?
황제는 자신이 없었다. 설령 내가 이 세대에 그걸 틀어막더라도, 다음 세대에도 그럴 수 있을까? 또 그 다음 세대는?
어쩌면 페르세타가 마법이라는 학문을 정립한 순간, 모든 게 변한 것인지도 몰랐다.
결국에는 마법을 제외한 모든 힘은 낡은 것이 될 것이고 도태될 것이다.
“하…….”
황제는 짧게 한숨을 쉬고 소파에 가서 앉았다.
창 밖, 어두워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네가 옳았을지도 모르겠구나. 도로테아.”
황제는 황위를 계승하겠다면서 당차게 자신 앞에 섰었던 첫째 딸을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