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143)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143화(143/171)
143화 콴티지에옴
“생각해 보면, 요정들 도움을 많이 받은 거 같아.”
쓱싹쓱싹 연구를 하던 페르세타가 문득 펜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 헤에? 우리가 도와준 게 있어? 페르세타는 뭐든 혼자 다 잘하잖아.
페르세타의 어깨에 앉아 발을 까딱까딱하며 놀던 히나리리리아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냐. 이거저거 많이 도와줬잖아. 베리타 영지 시절부터.”
– 뭐. 솔직히 우리가 안 도와줬어도 잘 했을 거잖아.
“그건 그렇지만.”
꽁!
히나리리리아네의 작은 주먹이 페르세타의 뺨을 때렸다.
페르세타는 꼭 말랑한 빵 조각이 날아와 부딪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 계약자가 너무 잘나서, 할 게 없는 이 가련한 요정의 마음도 좀 헤아려 줄래?
“아니. 근데, 진짜 알게 모르게 도움을 받은 거 같아.”
– 어떤 걸?
“요정의 키스 말야.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하잖아.”
– 그렇지……?
“그래서 그런지. 결국 일이 다 잘 풀리는 것 같아. 이번에 황제 폐하만 봐도 그렇잖아. 나는 그분이 비행사를 하겠다고 할 줄 생각도 못 했어.”
– 하긴. 그 무서운 인간이…….
몸을 한 차례 부르르 떨었던 히나리리리아네는 돌연 몸을 벌떡 일으켜서 양 허리를 짚으며 잰 체를 했다.
– 그래. 이제 요정의 위대함을 알겠어?
“응. 정말이야. 만약 요정이 행운에…… 그러니까 확률에 영향을 끼친다면, 이건 엄청난 거지.”
– 그럼! 그럼!
“그 어떤 대마법보다도 위대하지.”
– ……당연하지!
“신계의 치천사나, ‘신’이라 불리는 그 분의 힘보다도 더 엄청난 기적이지.”
– ……저기 페르세타 혹시 맥이는 거야?
한껏 치켜 올라갔던 히나리리리아네의 어깨가 축 처졌다.
“엥? 아냐. 아냐. 진심이야.”
– 아니……. 신계의 신님까지 나온 건 너무하잖아. 아무리 내가 요정뽕이 심해도 그건 좀…….
“하지만 정말 그래. 확률은…… 모든 것이잖아?”
– 그만해! 나도 알아! 그깟 확률이 뭐라고! 동전 10번 던져서 앞면 6번 나오게 하는 힘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는 거야!
꽁! 꽁!
부드러운 빵송이가 뺨에 연달아 부딪혔다.
페르세타는 잔뜩 성이 난 히나리리리아네의 작은 머리칼을 검지 손가락으로 살살 쓸어 주며 말했다.
“아냐. 진짜야. 사실 이 세상은 확률로 이루어져 있거든.”
– 세상이 확률로 이루어져 있다고? 무슨 소리야. 세상은 법칙으로 이루어져 있지! 마나 인력의 법칙 같은 거! 그래서 마법사들이 마법을 쓰는 거잖아?
“너. 내가 쓰는 책 안 읽어 보는구나?”
페르세타가 흘깃,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원고 뭉치를 바라봤다.
히나리리리아네는 마치 당근을 먹으라는 소리를 들은 아이처럼 인상을 찌푸렸다.
– 윽! 저거 너무 어렵단 말야.
“아쉽네. 이걸 같이 봤으면 알 텐데.”
페르세타가 원고를 넘기자, 가장 앞장에 <콴티지에옴>이라고 쓰인 글자가 보였다.
“가장 작은 것에 대한 이야기거든.”
– 가장 작은 것? 요정보다 작아?
“훨씬 작지. 어떤 물질을 쪼개고 또 쪼개고 쪼개는 거야. 더 이상 쪼개지지 않을 때까지.”
– 에이. 별거 아니잖아? 끝까지 쪼개면 결국 나오는 건 마나잖아? 세상의 모든 건 마나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정확히는 마나소로 이루어져 있지.”
– 마나소?
“응. 마나를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 굳이 말하자면 마나 알갱이 한 개라고 말해야 하나.”
– 그게 그거잖아?
“달라. 거기까지 쪼개서 들여다보면, 사실 세상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거든.”
– 그게 무슨 말인데?
“말 그대로야. 마나 알갱이 하나가 있는지 없는지, 그게 여기 있는지 저기 있는지, 지금 어떤 상태인지, 그 모든 것은 그저 ‘확률’로만 존재해.”
그 말을 하면서, 페르세타는 어쩐지 숨이 가빠지는 기분을 느꼈다.
모든 것은 확률로 이루어져 있다.
이 사실을 처음 알아냈을 때의 충격과 감격은 10년 넘게 시간이 지난 지금도 조금도 옅어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뜨거운 충격으로 그의 영혼에 어떤 화인을 남기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게 무슨 소리야. 마법사들은 가끔 너무 사변적이야. 머릿속의 관념에 몰두하지 말고 세상을 보라고! 자! 잘 봐! 하늘은 푸르고, 바람은 시원하지? 그리고 네 어깨 위에 요정은 예쁘지 않아?
반짝반짝. 히나리리리아네의 날개가 무지개색으로 빛났다.
페르세타는 요정의 작은 손가락을 따라 창밖도 보고, 그 틈새로 불어오는 바람도 느끼고, 마지막으로 요정 공주의 화려한 날개를 눈동자에 담았다.
“마법은 사변적인 게 아냐. 가장 물질적인 거지. 아주 무식하게 하나하나 두드려 깨 보고 깊이 들여다보면서, 관찰한 ‘사실’들을 종합해서 내린 결론이야. 세상은 사실 확률이야.”
– 재미없어.
“알고 나면 너도 재밌을 거야. 얼마나 이 세상이 놀라워 그저 무수한 확률이 겹치고 겹쳤을 뿐인데, 지금의 이 다채롭고 복잡한 세상이 존재한다니.”
히나리리리아네가 작은 손으로 자신의 귀를 틀어막았다. 듣기 싫다는 듯.
페르세타는 그 조그만 손을 살짝 집어 떼어 내며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그러니까. 사실은 요정이야말로 정말 대단한 존재인지도 몰라. 세상 모든 것이 확률인데, 그 확률에 개입할 수 있는 존재라니. 그거야말로, 피조물이 자신을 만들어 낸 원리 자체에 개입한다는 거잖아. 왜 여태 이 생각을 못 했나 몰라.”
– 그래. 그래. 아무튼 요정은 대단해! 그러니까 이 요정님 좀 그만 괴롭혀!
페르세타는 토라진 히나리리리아네의 머리를 검지로 문지르고 다시 원고지에 시선을 던졌다.
<콴티지에옴>.
그가 쌓아 올린 마법학의 마지막 단계.
이후로도 연구를 계속하긴 했지만, <콴티지에옴>과 <레라티비테트>를 통합할 수 있는 궁극의 이론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그저 알고 있던 것들을 더 발전시키고 세밀화 했을 뿐.
그러니 사실상, 이게 마지막이었다.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이걸 발표할 수 있어서 페르세타는 기뻤다.
사각사각.
페르세타는 문장을 다듬어 나갔다.
현대의 마법사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그리고 단계적으로 깨달을 수 있게, 아주 오랫 동안 품고 있던 <콴티지에옴>을 한 줄 한 줄 종이 위에 새겨 넣었다.
* * *
마법사들은 은연중에 기대하고 있었다.
페르세타가 또 한 차례 포럼 또는 연구회를 열거라고 생각했다.
“슬슬 때가 되지 않았나?”
“그치. 때가 됐지? 이제 <레라티비테트>도 꽤나 알려졌잖아.”
“그러니까. 다음 책이 <콴티지에옴>이라면서? 무슨 내용일지 기대된다.”
“아마 그거겠지. 다른 세계와 통로를 잇는 비법.”
“아! 그렇겠네. 그건 도무지 설명이 안 되잖아? <레라티비테트>로도.”
“아, 제발.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마법사들은 신상품을 기대하는 소년 소녀들처럼 눈을 반짝거렸다.
페르세타가 새로운 책을 발표할 때마다 어찌나 소름이 돋았던가.
<첼레스티움>으로 <알마게스트>를 박살 냈을 때의 전율은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그런데 그 <알마게스트>가 <프린키피아>로 완전히 재해석 되었고, 급기야는 <레라티비테트>로 완성되었다.
그때마다 느낀 전율은 마치 금단의 약물과도 같아서 마법사들을 계속 간지럽게 만들었다.
어느날 갑자기 페르세타가 세상 모든 마법사들을 모으고, 1년~2년 정도 이어지는 기나긴 세미나를 통해 마침내 완전히 새로운 관점을 그들의 뇌리에 박아 주는 그 체험!
그 끝없는 지적 혁명의 시간을 모두가 손꼽아 기다렸다.
그리고,
아란드리아에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들이 날아올랐다.
“어?”
“어라……?”
마법사들은 경악했다.
연구가 활발한 요즘, 미네르바의 부엉이들이 새로운 연구성과를 물어오는 일은 흔하디 흔한 일이었지만, 이번만큼은 그렇게 여상하게 보아 넘길 수 없었다.
“<콴티지에옴>……?”
“이게 왜. 부엉이한테 달려서 와?”
모두가 기다리고 있던 페르세타의 다음 강의, <콴티지에옴>. 그것이 책의 형식으로 묶여 배달되었으니까.
“이, 일단 읽어 보자.”
“그래. 대체 무슨 내용인지…….”
마법사들은 황급히 자리를 잡고 책을 읽었다.
그리고 곧 그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게 말이 돼?”
“아니! 이거 사칭 아니야? 누가 페르세타 선생님 사칭한 거 아니냐고!”
“미친. 적당히 말도 안 되는 소리 버무려서 소설을 쓰면 선생님 흉내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이건……. 말이 될 리가 없지.”
“애초에 이해가 안 되는데? 참…… 조작도 정성껏 하네.”
“아니. 뭐야. 아란드리아 대도서관이 속기라도 한 거야?”
대부분이 믿지 못했다.
이게 정말로 페르세타가 써낸 원고라는 사실을.
그만큼, 책에 담긴 내용이 말도 안 됐다.
사실 페르세타의 발표는 언제나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당대의 상식을 철저히 짓밟는 파격적인 발상의 전환들로 이루어져 있었으니까.
하지만 여태 그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던 것은 포럼이라는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계 유수의 마법사들과 면대면으로 대면하여, 그 자리에서 질문을 받고, 논쟁하고, 논박하는 그 과정.
심지어, 페르세타는 실험을 통해 직접 보여 주기도 했고, 포럼 참가자들에게 실험을 할 기회를 부여해 주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을 들여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도와주었기 때문에 여태 그의 파격적인 주장이 전달 될 수 있었다.
하지만 페르세타는 이번에는 그런 과정을 생략했다.
이제는 충분히 마법사들이 스스로 자신의 연구를 검토하고 해석해 나갈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판단이 설령 사실이라고 해도, 마법사들의 반발이 이전보다 거센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페르세타! 페르세타 공!”
마법의 궁전에 거친 발소리가 울려퍼졌다.
밤새 페르세타가 발표한 원고를 꼼꼼히 읽어 보고, 아침이 밝자마자 뛰쳐 들어온 인물.
첫 번째는 황제였다.
그 역시 몇 년 전부터 페르세타에게 마법을 전수받고 있었다.
아직 마법과 검술을 조화시킨다거나 하는 식으로 무력의 증가를 이루어 내지는 못했으나, 이론만큼은 충실히 배웠기에 그도 페르세타의 원고를 읽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는 도무지 페르세타의 원고에 동의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아침부터 이렇게 쿵쿵거리며 찾아온 것이었다.
“선생님! 페르세타 선생님!”
그리고 또 한쪽에서는 다급한 발소리가 울려퍼졌다.
성녀 샤라 엘리프였다.
황제와 거의 비슷하게 궁전을 찾아온 그녀. 그 이유도 황제와 같았다.
그녀 역시 <콴티지에옴>을 도무지 수긍할 수가 없었다.
“아침부터 어쩐 일이세요?”
페르세타가 그 둘을 맞이했다.
황제와 성녀가 동시에 눈을 마주쳤고, 먼저 씨근덕거리며 말을 꺼낸 것은 황제였다.
“어젯밤에 발표한 <콴티지에옴> 말일세!”
“네. 네.”
“그거 진짜 자네가 발표한 건가?”
“네. 맞아요.”
황제가 두 눈을 부릅 떴다.
“진짜 자네가 발표했다고? 이 세상이 모두 확률로, 한낱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그 터무니없는 글자 뭉텅이를 자네가 발표했다고?”
“네. 세상은 모두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황제가 할 말을 잃었다는 듯 멈춰섰다.
그는 애초에 어제 받아본 원고가 페르세타가 쓴 게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충격을 받았다.
그러자 성녀 샤라 엘리프가 빠르게 반박했다.
“선생님! 무슨 말씀이에요. 신께서 주사위 놀이라도 한다는 말인가요? 이 세상은 고도로 정밀하게 계산된 법칙들로 완벽하게 짜여 있다고요!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마법을 쓰고, 이렇게 눈부신 문명을 만들어가는 거죠! 아니! 애초에 세상 자체가 마법이잖아요! 마법은 질서와 법칙으로 이루어지는 거고요! 근데 그게 어떻게 우연이라는 거예요?”
그렇게 말하는 성녀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평생동안 흔들리지 않았던 신념이, 심지어 페르세타를 적대시하다가 메아샤에게 두들겨 맞았을 때에도 흔들린 적 없었던 가장 근본적인 믿음이 바로 지금 무너져 내리고 있었으니까.
이토록 아름답고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세상인데…… 그 가장 밑바닥을 캐내고 캐내서 뒤집어 보면, 그곳에는 오직 확률만이 존재한다고?
그런 해괴한 이론이 어딨어?
하지만 페르세타는 덤덤했다.
오히려 그런 둘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그래서 더 아름답지 않나요?”
“아름답다고요? 무서운 게 아니라요?”
“네. 아름답죠. 이보다 더 마법같은 일이 어디에 있어요? 아주 작은 마나소들이, 그저 확률로만 존재하는 마나소들이, 서로 상호 작용하며 번쩍 번쩍 찰나의 현상을 일으켜요. 그것들이 수없이 모이고 모여, 이토록 아름답고 복잡한 세상이 탄생해요.”
페르세타가 열변을 토했다. 황제와 성녀의 표정이 흔들렸다.
누군가의 진심 어린 마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흔들 수 있는 법이니까.
“전 이것보다 더 멋진 마법을 본 적이 없어요. 본질적으로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들이 모여 우리가 느끼는 모든 것을 만들어 내는 마법. 무(無)에서 피어난 유(有).”
페르세타는 말했다.
“공(空)에서 태어난 존재가, 자신이 태어난 우연을 응시하는 것. 그게 바로 마법사예요.”
황제와 성녀는 여전히 페르세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순간, 둘이 믿고 있던 세계는 또 한 번, 쩍!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그 누구도 상상해 본 적 없는 깊은 균열과 공허를 드러내며.
그렇게 <콴티지에옴>은 세상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