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145)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145화(145/171)
145화 발사
밖은 아직 어두웠다.
새벽 시간이었지만, 해는 아직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어둠은 저 멀리 태양의 기척을 느끼며 차가운 발톱을 대지에 틀어박곤 마지막 발악을 준비한다.
모두가 잠든 시각, 거리는 대체로 어둠에 잠겨 있었지만, 마법의 궁전 근처에 있는 카페들은 이 시간에도 환하게 불을 밝혔다.
거리 여기저기에 고인 웅덩이들이 카페의 빛을 머금고 반짝거렸다.
회색 자켓에 검붉은 바지를 빼입은 한 남자가 우산도 없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는 젖지 않았다.
그의 발이 웅덩이를 밟았지만, 물방울들은 마치 작은 개구리들처럼 남자를 피해 달아났다.
빗방울도 남자를 피해 허공에서 휘어져 내렸다.
그는 회중시계를 한번 꺼내 보더니,
딸랑-
환하게 불을 밝힌 카페 중 하나를 밀고 들어갔다.
안온한 공기가 부드럽게 그의 뺨을 감싸 안았다.
“어서 오세요! 이제 다 모였네요!”
일리안느 베리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그를 반겼다.
하지만 나머지 4명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막 들어온 남자를 보며 짓궂게 웃었다.
도로테아 세이린. 그러니까 예전에는 비앙카 애시라는 이름으로 함께 했던 그녀가 막 들어온 남자, 애캘슨을 놀렸다.
“아. 왔어? 제국의 반역자? 또 역모를 획책하느라 늦은 거야?”
애캘슨은 코웃음을 쳤다.
“당연하지. 여기에 차기 섭정을 맡을 예정이라는 도로테아 황녀가 있다길래 납치 준비를 하느라 늦었지. 여기는 이미 포위됐으니 부질없는 반항은 하지 말도록.”
애캘슨은 책을 읽듯이 무감정하게 제 할 말만 하곤 비어 있는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도로테아가 손짓을 하자, 따끈따끈한 커피가 둥실 날아와 애캘슨의 앞에 놓였다.
“좋군.”
애캘슨은 커피잔을 어루만지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살리넬르, 일리안느, 라냐 비셰나, 샤라 엘리프, 도로테아 세이린.
페르세타의 밑에서 함께 고생하며 공부했던 그의 동기들.
한때는 매일매일 얼굴을 보며 서로 토론하고 격렬하게 말다툼도 했었는데…….
“와……. 저 진짜 감개무량해요! 우리 이렇게 다 모인 거 5년만 아닌가요?!”
일리안느가 두 손을 맞잡고 환호했다.
애캘슨은 예전부터 그녀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어떻게 페르세타 밑에 저렇게 사교성 넘치는 동생이 있을 수 있을까?
오늘 이 자리도 그녀가 나서서 모두를 불러 모으지 않았다면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다.
문득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다들 비슷한 생각인 듯했다. 저마다 얼굴에 비슷한 웃음들이 떠다녔으니까.
“저기. 반역자 씨.”
애캘슨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곤 인상을 팍 썼다.
“아니, 라냐 님도 저를 그렇게 부르시는 겁니까?”
라냐 비셰나. 왕이 일선에서 물러선 비셰나 왕국을 사실상 홀로 통치하고 있는 여걸.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며 대꾸했다.
“사실은 사실 아닌가요? ‘제국의 달무리’는 엄청 유명하다고요. 마법 아이템으로 무장한 평민들이 영주와 기사들을 죽이고, 곳곳에서 나라를 뒤엎는다고 들었는데요? 덕분에 저도 개혁 정책을 펴기가 아주 편하답니다. 대신들이 결사 반대를 외칠 때마다 요긴하게 써먹고 있어요. 경들은 진정 왕국의 달무리 같은 꼴을 보고 싶다는 말인가! 호통 빵빵 치면서.”
애캘슨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쪽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는 살리넬르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그건 저 말고 살리넬르 님에게 말씀해 보시지요. 그 간악한 반역 도당들이 사용하는 무기를 만들어 준 게 저기 계신 살리넬르 님이니까요.”
그러자 살리넬르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무슨 소리인가? 나는 그저 무시무시한 반역자에게 납치, 감금, 협박을 당하고 있는 선량한 마법사일 뿐이네. 제발 나를 좀 구해 주게.”
후륵.
그러곤 따뜻한 우유를 섞어 넣은 커피를 음미하는 살리넬르.
애캘슨이 그 모습을 얄밉다는 듯 쳐다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어휴. 그래.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겁니까?”
그러자 라냐 비셰나가 얼른 질문을 던졌다.
“그게. 사실 궁금했거든요. 저야 살리넬르 님이나, 애캘슨 님이 어떤 사람인지 대충 아니까 이해하고 넘어가는 면이 있긴 한데……. 솔직히 ‘제국의 달무리’는 상당히 과격한 주장을 많이 하잖아요.”
애캘슨이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렇죠. 하나의 확실한 조직이라기보다는 여러 사람이 자발적으로 행하는 운동이다 보니 제가 다 통제할 수는 없습니다. 통제해서도 안 되고요. 그러면 제국과 다를 바 없어지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말인데요. 얼마 전에 ‘제국의 달무리’의 시위를 봤거든요. 쓸데없이 우주선을 쏘아 올리지 말라. 그 돈이면 학교 100개는 지을 수 있다! 뭐 이런 거요.”
그러자, 라냐의 말에 도로테아가 끼어들며 덧붙였다.
“그러니까. 고명하신 반역자의 생각은 어떠신지 궁금하다는 거지. 오늘. 제국의 황제 폐하가 직접 태양계의 끄트머리로 날아가는 이 역사적인 날에 대해서 말이야.”
그 말에 애캘슨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만 해도 캄캄하기만 했던 밤거리로 푸르스름한 빛이 조금씩 섞여 들어오고 있었다.
이제 몇 시간 남지 않았다.
인간계 포함 총 9개로 항상 굳어져 있던 신비 세계를 떠나, 단 한 번도 접촉해 본 적 없던 머나먼 곳의 다른 차원으로 탐사선을 내보낼 순간이.
비록 우리가 살고 접해 왔던 신비 세계들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세계들이겠지만, 또 마나 태양의 마력이 거의 닿지 않는 척박한 세계겠지만, 그래도 마법사들은 예측했다.
그런 세계에도 생명이 존재할 수 있다고. 어쩌면 문명도 존재할 수 있다고.
그 예측이 사실이라면, 인류는 역사상 처음으로 미지의 존재와 접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애캘슨은 그 생각을 하면 가슴이 떨려 왔다.
“뭐. 말할 필요가 있을까. 엄청나게 떨립니다. 평민들은 때론 과격하죠. 잘 먹고 잘사는 것. 오직 그것만이 중요한 것 아니냐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밖에 나머지는 다 귀족들의 허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비록 애캘슨 본인이 바로 그런 주장들을 하는 ‘제국의 달무리’의 수장이었지만, 정작 그는 그런 생각에 한 톨만큼도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이 어떻게 빵만으로 살겠습니까? 사람을 살게 하는 것. 그리고 이 세상에 빵을 만들어 내는 것. 저는 그것을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 탐사선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꿈 중 하나지요.”
그렇게 말할 때, 애캘슨은 어쩐지 인류의 역사가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저 땅에 떨어진 과일과 씨앗만을 보며 살아가던 초기의 인간이, 어느 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고, 그리고 마음을 닦아 그 너머의 차원을 바라보았을 때,
바로 그때부터 마법이 시작되었을 테니까.
그의 말에, 다들 생각에 잠겼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살리넬르였다.
“그곳에도 생명이 있다면…… 정말 좋은 기회겠지. 하나의 세계에서 생명이 어떻게 탄생하는가. 그걸 확인하면, 생명이라는 마법의 기원을 찾을 수 있을 거야.”
살리넬르는 여전히 생명에 관심이 많았다. 인간이 어떻게 탄생하는지를 깨닫고 그걸 기반으로 언젠가는 페르세타를 뛰어넘기 위해.
한편, 일리안느는 다른 것에 관심이 많았다.
“생명이 있다면 사회도 있겠죠? 신계, 환요계, 설화계, 인간계, 다 저마다 다른 사회를 가지고 있잖아요. 그 머나먼 세계는 또 어떤 사회를 가지고 있을지 저는 그게 너무 궁금해요.”
그녀는 생명들이 모여 만드는 사회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라냐는,
“저는 세계라는 마법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게 궁금하군요. 왜소 세계는 우리보다 작고 원시적인 세계일 테니. 세계의 형성과 발전에 대한 중대한 단서를 얻을지 몰라요.”
세계 그 자체에 관심을 가졌으며,
“나는 그 왜소 세계의 존재들이 사용할 힘이 궁금해. 환요계에서는 요술을 부리고 신계에서는 기적을 부리잖아. 마나 태양의 마력이 거의 닿지도 않을 그 세계에서는 그걸 어떤 힘으로 빚어 냈을까……. 그걸 알면 우리 마법의 응용 방법이 훨씬 넓어지겠지.”
도로테아는 그 세계의 존재들이 사용할 힘에 호기심을 느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녀 샤라 엘리프가 중얼거렸다.
“나는 이 세상의 탄생에 대해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거 같아요. 마나 태양계는 어떻게 태어났는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차원의 우주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가장…… 근원적인 질문이요.”
어느덧 그녀가 마음에 품고 있는 질문은 페르세타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먼 옛날.
대마법사 바르덴테가 페르세타에게 했던 질문.
‘삼라만상은 모두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인가.’
페르세타가 그걸 묻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마법사들의 마음속에는 저절로 그런 질문이 자라나 있었다.
샤라는 홍조로 붉게 달아오른 뺨으로 어느덧 푸르게 물든 바깥을 바라보았다.
“우리의 그 모든 질문이 드디어 답을 구하러 떠나는 날이네요.”
비가 추적추적 오는 아침이었다.
하지만 우산을 쓴 사람들은 삼삼오오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인류사에 다시 없을, 역사적인 순간을 두 눈에 담기 위해.
“우리도 슬슬 일어납시다.”
살리넬르가 모자를 챙겨 들고 일어섰다.
“가시죠. 제가 제일 좋은 자리를 맡아 놨으니까.”
유일하게 이번 탐사선 프로젝트에서 중역을 맡고 있는 샤라 엘리프가 콧노래를 부르며 모두를 이끌었다.
“잘 되겠죠?”
일리안느가 슬며시 걱정을 드러내자, 도로테아가 씩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관여한 사람은 많지만 결국엔 두 사람에게 달린 일이지. 페르세타 선생님과 황제 폐하. 그 두 사람의 어깨에 이 거대한 프로젝트의 성공과 실패가 모두 달려 있지.”
“그럼 잘 되겠네요!”
일리안느가 웃고 도로테아도 따라 웃었다.
* * *
“저는 행운아입니다.”
페르세타가 그렇게 말하자, 전신을 감싸는 갑옷을 입은 황제가 멀뚱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황제 폐하와 같은 시대에 태어났으니까요. 폐하께서 도와주지 않으셨다면 이 프로젝트는 성공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무엇보다…… 이렇게 위험한 임무를 믿고 맡길 사람을 찾지도 못했을 거예요.”
황제는 그런 페르세타를 지그시 노려봤다.
‘나랑 같은 시대에 태어나서 행운이라고……?’
여기에 대해 황제는 참으로 할 말이 많았다.
페르세타만 없었더라면! 페르세타 때문에……! 그가 그런 생각을 얼마나 자주 했던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00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전 세계를 통일한 위대한 정복 군주로 이름을 남겼을 텐데…….
지금은 이런 웃기지도 않은 갑옷을 입고 가늠할 수도 없는 머나먼 세계로 날아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후우…….”
하지만 황제는 그 온갖 억울함과 서러움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나도 그렇다고 치지.”
대신 그렇게만 말하곤 페르세타의 어깨를 두드렸다.
“잘 부탁하네. 혹시 내가 우주 미아가 되어도 구하러 오게나. 10년이고 20년이고 어떻게든 버티고 있을 테니.”
“물론이죠!”
황제는 미심쩍은 얼굴로 페르세타를 바라보다가 우주선으로 들어갔다.
우주선은 동그란 구 형태였고, 수없이 많은 마법진이 명멸하고 있어서 그 실체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떠십니까?”
페르세타가 묻자 우주선에 탑승한 황제의 목소리가 통신 마법으로 울려 퍼졌다.
– 좁군. 하지만 있을 건 다 있어.
“왕복 1년입니다. 최대한 줄여 봤어요. 왜소 세계 탐사는 2년간 진행합니다. 총 3년의 여정이네요.”
– 이미 다 들었네. 빨리 출발이나 하게. 이번엔 터뜨려 먹지 말고.
“물론이죠.”
페르세타가 손짓을 하자, 수많은 마법사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321발사!
황제를 태운 탐사선이 차원을 찢으며 날아올랐다.
페르세타의 눈이 꿈에 젖어 들었다.
살리넬르의 눈도, 애캘슨의 눈도,
라냐와 샤라와 일리안느의 눈도,
꿈에 젖어 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눈을 빛으로 물들였고, 탐사선은 성공적으로 인간계를 빠져나가며 가속했다.
세계의 이쪽 끝에서부터 저쪽 끝까지. 모두가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최초의 유인 탐사선.
진정한 우주 시대의 개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