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150)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150화(150/171)
150화 군어족
쿠르르르릉!
아직 이름도 붙지 않은 왜소 세계.
그곳은 하늘도 땅도 없이 그저 끝없는 물로 가득 차 있는 세계였다.
사실은 물도 아니었다.
공기보다는 무겁지만, 물보다는 훨씬 가벼운 하늘색의 무언가가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인간계에서 가장 가벼운 나무토막도 이 안에 들어오면 가라앉고 말 것이다.
그래도 편의상 물이라고 부르자.
하늘의 태양도 달도 없는 세계였지만, 은은하게 물결치는 푸른 빛이 가득했다.
이곳의 물은 압축될수록 밝은 빛을 뿜어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중력이 집중되는 세계의 중심부로 갈수록 세상은 점점 무거워졌고, 동시에 밝아졌다.
그 심해에서 올라온 빛이 세계 전체에 균등하게 퍼졌다.
그런 세계였다.
이 세계를 살아가는 생물들이야 다른 세계의 생명들처럼 바쁘고 분주하게 수많은 역사를 써 내려갔지만, 세계 자체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도 없고, 낮과 밤도 없고, 늘 비슷한 풍경이 반복되는 세계.
쿠르르릉!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쏴아아아아!
이 세계에 그간 존재하지 않았던 거대한 소용돌이가 발생했다.
콰드드득!
물의 격렬한 흐름으로 인해, 특정한 수심에 떠서 거대한 산을 이루는 태산 산호의 군락이 뜯겨져 나가기 시작했다.
수십 키로미터에 이르는 태산 산호 군락에 가려져서 수백 년째 어둠에 가려져 있던 위쪽 해역으로 빛이 번져갔다.
그곳에서 해조류들을 엮어 집을 짓고 살고 있던 군어들이 일제히 눈을 떴다.
– 무슨 일이지?
군어족 중 하나가 집 밖으로 나가 상황을 살폈다.
그녀는 곧 이변을 눈치챌 수 있었다.
– 저게 뭐람?
생전 처음 보는 광경에 헤엄치던 꼬리를 멈춰 세웠다.
쿠르르르릉!
수백 년간 존재해 온 태산 산호들을 무너뜨리며 점점 그 크기를 키우고 있는 소용돌이.
소용돌이의 중심에선 칠흑 같은 어둠이 풀려나왔다.
붉은빛이 번쩍번쩍이며 산호처럼 여러 갈래로 갈라져 나왔다가 사그라들기를 반복했다.
군어족들은 그게 ‘벼락’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런 건 이 세상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존재하지 않는 게 벼락뿐이랴. 저런 소용돌이 자체가 처음 보는 것이었다.
크기가 작은 군어족이었던 그/그녀는 옆을 바라보았다. 마침 옆에 있던 덩치가 큰 군어족도 그/그녀를 보고 있었다.
말은 필요 없었다.
둘은 동시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몸을 흩어냈다.
손도 있고 발도 있던 두 군어족의 몸이 순식간에 깨알처럼 작은 물고기들로 분해되었다.
떨어져 나온 물고기들은 반딧불이 같은 빛을 내고, 꼬리지느러미를 흔들어 대며 다시 한 자리로 뭉치기 시작했다.
번쩍번쩍.
물고기 한 마리 한 마리가 하나의 세포와 다름없었다.
서로 신경망이 서로 연결되고 체액 교환을 시작하며 곧 무수한 군어들의 집합이 또 다른 하나의 군어족을 만들어 냈다.
군어족의 마을 곳곳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군어족이 둘씩 셋씩 서로 몸을 합쳐 하나가 되어, 심유한 눈빛으로 저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을 관찰했다.
개중에는 합치기는커녕 오히려 더 작은 존재로 갈라져서 도망을 치는 개체도 종종 있었다.
– 후우우…….
합쳐져서 새로운 존재가 된 그/그녀가 눈을 떴다.
더 커지고 더 지혜로워진 그/그녀는 저 아래에 거대한 소용돌이를 내려보며 이내 결심을 굳혔다.
– 확인해 봐야 한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그 말에 다른 군어족들도 심유한 눈을 빛내며 뜻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 동의한다.
– 접근할 이들과 멀리서 관찰할 이들을 정한다.
– 저것이 위험한 현상이라면 어떻게든 그 정보를 획득해 우리 중에 나누어야 한다.
쿠르르르르릉!
영원히 커질 것만 같았던 소용돌이가 어느 순간부터 잦아들기 시작했다.
막대한 기세로 물을 끌어당기던 힘이 소멸하며, 천천히 물의 흐름이 느려졌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서…….
“여기가. 새로운 세상인가.”
황제, 칼리슈트 세이린이 눈을 떴다.
전신을 감싼 까만색 갑옷에선 차원 이동의 여파로 뜨거운 불길이 이글거렸고, 오러를 담은 두 눈은 자줏빛으로 형형하게 빛났다.
스르릉-
오러 블레이드가 선명하게 돋아난 검을 뽑아 들고, 그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수십 체의 군어족들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렇군. 너희가 이 세상의 지성체들인가?”
그때, 군어족들은 난생처음 보는 불의 열기와 오러의 압박감에 짓눌려 몸을 움직이지도 못한 채 덜덜 떨기만 했다.
그것이 군어족과 인간족의 첫 조우였다.
* * *
– 그때는 정말 무서웠다.
– 살면서 그런 공포는 처음이었다.
– 몇몇 특이한 동족들이 상상으로 만들어 내는 이야기가 현실화가 되었다고 생각했지.
– 신기한 일이었다. 처음 보는 것인데,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어째서 그렇게 두려웠을까.
의외로 황제는 군어족들과 금세 친해졌다.
처음엔 황제를 두려워하며 덜덜 떨던 군어족들이었으나 황제가 오러를 가라앉히자, 그들은 언제 떨었냐는 듯 금세 황제에게 다가와 호기심을 보였다.
그리고 황제에겐 그 경험이 썩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완전히 다른 세계. 완전히 다른 족속이라는 건 이토록이나 신비한 것인가.’
그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다가온 군어족과 연결되었던 그때를 잊을 수 없었다.
군어족의 겉모습은 다양했다.
사람처럼 생긴 것, 문어처럼 생긴 것, 고래처럼 생긴 것, 물고기처럼 생긴 것, 새처럼 생긴 것, 심지어 표범처럼 생긴 것도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빛이 아른거리는 투명한 피부를 가지고 있었고, 손가락이 7개 달린 손을 달고 있는 경우가 많았기에 그들이 군어족임을 알아보기가 어렵진 않았다.
처음 황제에게 다가온 군어족은 사람처럼 생긴 것이었다.
그것은 다가와 황제에게 손을 뻗었다.
황제가 긴장했을 때, 그 긴장이 무색하게도 군어족의 손이 모래 알갱이 같은 것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그건 모래 알갱이가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그건 아주 작은 물고기들이었다.
찌리릿. 찌릿.
물고기들은 황제의 갑옷을 뒤덮으며 반짝이는 빛을 만들어 냈다.
황제는 전신 갑옷을 입고 있었기에, 물고기들과 몸이 닿지는 않았다.
그런데,
– 너는 누구? 동족?
– 이상해. 이상해.
– 의념! 강력! 동족? 없어. 다른.
물고기들의 반짝임을 따라 어느 순간 머릿속으로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언어가 아닌, 의미 그 자체로 전달되는 메시지.
황제는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나는 너희의 동족은 아니다. 먼, 아주 머나먼 다른 세상에서 왔지.”
– 동족? 맞아.
– 뭐래? 어려워.
– 다른? 바다.
– 바다? 다른? 없어. 그런 거.
– 무슨 뜻?
몸을 감싼 작은 물고기들의 소란이 커졌다.
그리고,
그때 황제는 어쩐지 감격했다.
‘아……. 아아…….’
얼마만의 대화인가?
이따금씩 들려왔던 페르세타와의 통신 말고.
바로 앞에 존재하는, 나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와의 진정한 소통.
더구나 말이 아닌 뜻이 바로 머리에 쏙쏙 박혀서 그런지, 훨씬 더 마음에 와닿는 느낌이었다.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황제는 떨리려는 목소리를 억지로 감추며 말했다.
“이 세상은 처음이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내게 가르쳐다오.”
– 처음?
– 태어남? 막?
– 신기
– 흥미
물고기들은 한참이나 속삭였다.
그리곤 자기들끼리 어떤 결론에 이르렀다.
– 있다. 밖.
– 다른. 세계.
– 방문자.
– 손님.
그러자.
손을 뻗었던 군어족이 천천히 다가와서 황제를 덥석 끌어안았다.
그의 피부에서 작은 물고기들이 연기처럼 날아오르고, 군어족의 마음이 황제의 마음에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 환영한다. 다른 세계에서 온 동족이여.
그랬다.
군어족들은 황제를 자신들의 동족으로 받아들였다.
황제는 그 사실이 굉장히 인상 깊었다.
“너희들 군어족이 이상하다는 걸 알고 있나?”
– 이상하다?
– 무엇이?
단 1주일 만에 군어족들과 몹시 친해진 황제는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아까 한 말도 그래.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데 두려워서 신기했다며?”
– 그렇지. 보통은 알아야 무서운 법이니까.
“우리 인간족은 반대라고.”
– 반대다? 그게 무슨 말이냐. 무엇인지도 모르는 걸 두려워한다는 말인가?
“그래. 정확해. 우리 인간들은 잘 아는 건 별로 두려워하지 않아. 모르는 것을 두려워하지.”
– 이상하다. 모른다는 것은 그게 위험한지, 아니면 전혀 위험하지 않은지, 그걸 전혀 알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두렵지?
“모르니까. 모르는 만큼 최악을 상상하는 거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엄청난 위험일 수도 있잖아.”
– 이상하다. 위험할 수도 있는 것은 위험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위험한지 아닌지 확인해야 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 최악을 상상한다? 최악은 결국 죽음이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위험은 이미 많다. 특별히 더 무서워할 이유가 없다.
군어족들의 말에 황제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이 이상한 존재들의 사고방식이 아주 재밌었다.
– 또 이상한 소리를 낸다.
– 웃음이라고 했다.
– 즐거움? 방금 이야기 중 어떤 점이 즐거웠지?
– 모르겠다. 하지만 동족이 즐거워하니 나도 즐겁다.
– 그나저나 인간계에 산다는 동족들의 생각은 참 별나다. 환경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인가.
태산 산호를 깎아 만든 방과 의자. 거기에 앉은 군어족들이 반짝거리며 기쁨을 표했다.
그들은 정말 순수하게, 다른 이유 없이, 그저 황제가 즐거워한다는 이유만으로 자기들도 즐거워했다.
황제는 그조차도 참 마음에 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그게 또 너희의 이상한 점이야. 대체 너희는 나를 왜 ‘동족’이라고 부르는 거지?”
– 그야. 동족이기 때문이다.
“동족이라니. 우린 전혀 다르잖아. 기원부터가 완전 다르다고.”
– 감정이 있다. 소통을 한다. 사유를 한다. 그러면 동족이 아닌가.
– 맞다. 그러면 동족이다.
황제는 또 막 웃었다.
뭐랄까. 군어족과 대화를 하면 할수록 마음을 단단히 속박하고 있던 무언가가 뚝뚝 떨어져 나가는 것만 같았다.
지난 1년간 쌓아 온 외로움이 떨어져 나가는 걸까?
아니면 평생 동안 쌓아 온 선입관이 해체되는 걸까?
그건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황제는 점점 더 유쾌해졌다.
* * *
황제와 군어족의 교류는 페르세타를 비롯한 지상의 마법사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그건 엄청나게 큰 영감을 주는 자료였다.
특히 성녀 샤라 엘리프와 마도왕 페르세타의 기쁨은 유독 큰 것이었다.
“정말 신기한 종족이에요. 단일한 정체성이 없고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군어라는 작은 물고기들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존재를 이룬다니.”
성녀의 말에 페르세타는 고개를 미친 듯이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그러니까요! 언제든 여러 개로 쪼개질 수도 있고 합쳐질 수도 있는 존재라니! 존재와 의식, 그리고 영혼에 대해 우리에게 완전히 새로운 이해를 전달해 줄 거예요!”
페르세타는 흥분해서 군어를 대상으로 한 연구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샤라는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는지, 페르세타의 등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황제가 보내 주는 영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 하하하. 그게 군어족의 농담인가? 내가 들어 본 농담 중 최악이었어!
– 최악? 최악이라면서 왜 너는 즐거워하지.
– 지구의 동족은 정말 이해하기 힘들다.
그녀가 집중한 것은 황제의 목소리였다.
점점 더 우울해지고 무거워지던 황제의 목소리가 단 1주일 만에 날아갈 듯 가벼워져 있었다.
아마도 너와 나의 경계가 희미하여 모든 것에 열려 있으며, 마음으로 직접 소통하는 군어족이었기에, 황제의 외로움을 더 빨리 치유할 수 있었던 거겠지.
아무튼 확실한 건.
사람에게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거다.
특히나 아주 먼 우주로 탐사를 떠날 사람이라면…….
샤라는 그런 생각을 하며, 페르세타의 등을 바라보았다.
들썩들썩.
흥이 가득 돋아난 그의 등.
‘뭐가 저리 좋은지.’
샤라는 그 등을 바라보다가 폭,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