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16)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16화(16/171)
16화 알타자드에서
플리안 남작은 요즘 기분이 좋았다.
모든 일일 술술 풀리는데, 기분이 안 좋으면 이상한 것이다.
늘 가슴을 짓누르던 빚이여 안녕.
늘 우울하던 영지민들의 안색도 안녕.
요즘 영지민들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번쩍거리는 왕도 산 도구들을 들고 다녔다. 좋은 도구로 술술 밭일을 하고, 척척 벌목을 하고, 슥삭슥삭 나무를 깎고, 다들 플리안 남작만큼이나 신이 잔뜩 났다.
덕분에 지금 영지 내에서 플리안 남작의 인기는 천사에 비견하는 것이었다.
또한 주변의 영주들은 어찌나 사근사근해졌는지.
돈이 없고 사정이 나쁠 때는 뭐 하나 부탁을 해도 다들 시큰둥한 얼굴에 훈수들을 두기 바빴었다.
“거, 플리안 남작. 그렇게 하면 안 돼.”
“내가 해봐서 아는데······.”
아니! 내가 언제 훈수 둬달라고 했어?!
플리안 남작은 언제나 짜증이 목구멍 끝까지 치밀었으나 억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 아쉬웠던 건 본인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다 옛날 말이 되었다.
이제 주변 영주들은 그냥 고개 끄덕이는 인형이 되었다.
“으응? 이 지역 농토를 같이 힘 합쳐서 개간하자고? 허허 좋지! 과연 플리안 남작! 지혜롭다니까!”
“상호 간의 관세를 낮추자고? 아이고. 고맙지. 고마워!”
플리안 남작은 나날이 어깨가 치솟았다.
잘 나간다는 게 이렇게 달콤한 거라니까······.
심지어 오랫동안 끙끙 앓던 문제도 단번에 해결 되었다.
펠릭스 자작과 계속 분쟁중이었던 ‘알타자드’의 비옥하고 넓은 땅 전부가 남작령의 영토로 편입된 것이다!
이것의 의미는 정말로 남달랐다.
결국 귀족의 힘은 땅에서 나오는 것이었으므로.
이건 베리테 남작 가문이라는 귀족의 격을 한 단계 격상시켜주는 어마어마한 성취!
이게 고작 포도주 한 병과 포도 한 수레로 이뤄난 성과라니······!
대 드블랑 왕국의 국왕 폐하 만세!
우리 아들 페르세타도 만세!
“아버지? 왜 갑자기 양손을 번쩍 치켜드시고······.”
“큼! 크흠! 아무것도 아니다.”
함께 ‘알타자드’ 땅을 둘러보던 즈바르트가 의아한 시선을 던지자, 플리안 남작은 헛기침을 하며 두 팔을 슬금슬금 내렸다.
하지만 이런 민망한 순간에도 자꾸만 실실 기어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할 수는 없었다.
“허허허! 보이느냐! 이 비옥한 땅이!”
“정말. 대단합니다. 여기서 농사를 지으면 소출이 1.5배는 나오겠는데요?”
“그러니 말이다! 거기다 이토록 넓다니! 허어······. 이거 경작할 사람이 부족해서 문제구나! 그게 문제야!”
플리안 남작은 껄껄 웃으며 어린아이처럼 기뻐했고 즈바르트는 그런 자신의 아버지를 씩 웃으며 바라보았다.
‘정말. 형이 돌아와서 다행이야.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구나.’
이곳 알타자드 땅 때문에 그와 아버지가 얼마나 속을 썩였던가.
땅도 땅이지만 자존심이 너무 상했었다.
관습을 대놓고 어기고 베리테 남작가문을 업신여기던 펠릭스 자작가의 만행.
그걸 보면서도 항의 한 번 제대로 못하는 약한 가문이라는 사실이, 그게 우리 집안이라는 사실이, 너무 분해서 밥도 잘 안 넘어가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국왕이 직접 나서서 결정을 내려주고, 베리테 남작가를 비호하기까지 했으니, 이토록 시원한 결말이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아버지. 우세요?”
“안 운다!”
훌쩍.
눈물을 먹는 건지 코를 먹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플리안 남작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
플리안 남작과 즈바르트가 감격을 나누고 있던 사이, 페르세타와 살리넬르, 그리고 일리안느는 좀 떨어진 곳에서 알타자드의 넓은 땅을 두고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땅이 너무 넓어서 영지민만으로는 개간이 어려울 것 같다는 게 문제네요. 주변 영지에서 인력을 빌려오는 방법도 있지만······. 이걸 우리가 마법으로 해결할 수는 없을까요?”
처음 안건을 상정한 건 일리안느였다.
그리고 이 흥미롭고 보람 차며 도전적인 문제에 페르세타와 살리넬르, 두 마법사가 모두 눈을 빛냈다.
포문은 페르세타가 열었다.
“간단한 문제 아닐까? 여기에 정령계 공명마법진을 설치해서 땅의 정령들의 도움을 받는다면······.”
즉시 살리넬르가 반박했다.
“그게 당신한테나 쉽지! 우리 같은 무지렁이 마법사들이 이 넓은 땅 전체에 공명 마법진을 설치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이 들어가는지 아십니까? 아니면 이 참에 실력을 발휘하시든지요. 당신이라면 또 주문 한 방으로도 해결할 수 있을 테니.”
“그건 좀······.”
“내 그럴 줄 알았지! 또 눈에 띄는 거는 싫어해가지고!”
어쩐지 페르세타에게 화가 잔뜩 난 살리넬르였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던 일리안느가 손을 번쩍 들었다.
“잠깐만요! 근데 이건 오빠 말도 일리가 있어요. 물론 알타자드 전체를 덮는 공명 마법진은 말도 안 되는 거지만······. 만약 농지 중간 중간에 소규모로 설치하는 거라면요?”
살리넬르가 이맛살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그럼 가능이야 하겠지만······. 그래서야 효과가 있겠소?”
“지진마법을 쓰는 거예요!”
“지진 마법?”
“네! 땅의 정령의 힘을 빌어 곳곳의 포인트에서 지진을 일으킨다면? 전체적으로 밭 갈기가 훨씬 수월해지겠죠? 단단한 땅과 한 번 흔들려서 풀어진 땅은 천지차이니까!”
일리 있는 말이었다. 살리넬르가 그 말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오······. 그럼 그거 받고. 쟁기 만드는 공정에 공명진의 흙을 조금씩 넣으면, 쟁기 자체도 땅을 더 잘 파고 들거요. 땅 정령의 힘이 깃들 테니.”
“좋은 아이디어예요!”
페르세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럼 이건 어때요? 공명진 위에서 건초를 말리는 거예요.”
살리넬르와 일리안느의 귀가 쫑긋 섰다.
페르세타는 신이 나서 설명했다.
“땅 정령의 힘이 깃든 건초를 먹으면 소도 더 오래도록 안 지칠 거거든요.”
“오······. 좋은 방법 같습니다.”
항상 삐딱선을 탈 기회만 노리던 살리넬르도 이번엔 페르세타의 의견에 동조했다.
“그리고 또 이런 방법도 쓰는 거죠.”
셋은 본격적으로 머리를 맞대고 마법의 힘으로 농사 효율을 대폭 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짜내기 시작했다.
페르세타는 이게 상상 이상으로 즐겁고 신이 났다.
‘아! 꼭 대단한 마법을 쓰지 않아도 되는 거야!’
간단하고 누구나 쓸 수 있는 마법들을 창의적으로 사용해서 수많은 이득을 챙기는 방법.
이 시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적정한 기술’이면서도 삶에 큰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들.
이런 것을 찾아내는 것에도 굉장한 지적 쾌락이 있었다.
‘재밌다! 재밌어!’
페르세타가 눈에 띄게 들뜨기 시작했고, 그 분위기는 점차 살리넬르와 일리안느에게도 옮겨 붙었다.
그렇게 세 마법사는 자신들끼리의 세상에 푹, 빠져버렸다.
그러느라, 펠릭스 자작이, 그러니까 졸지에 왕명으로 인해 이 꿀 같은 알타자드 땅을 잃어버린 펠릭스 자작이, 중무장한 병력을 거느리고 찾아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리게 되었다.
**
“펠릭스 자작! 이, 이게 무슨 짓이오!”
플리안 남작의 두 눈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무슨 짓이라니? 요즘 남작이 잘 나간다 하여, 축하를 해주러 왔소만?”
펠릭스 자작은 전혀 축하해줄 마음이 없는 차가운 눈으로 말 위에 앉아 플리안 남작을 노려 보았다.
플리안 남작을 경호하고 있던 10명 남짓의 병사들은 이미 펠릭스 자작이 데려온 20명의 중무장병에 의해 저 멀리 밀려난 상태였다.
“크윽! 비켜라!”
“이 더러운 펠릭스 영지 놈들!”
남작가의 병사들이 분노하며 온몸으로 달려들었지만, 펠릭스 자작이 데려온 병사들은 보통 정예들이 아니었다. 무슨 벽이라도 된 것처럼 단단한 갑옷과 들소같은 힘을 앞세워 남작가의 병사들을 마치 어린아이처럼 몰아세웠던 것이다.
남작가의 병사들은 분통을 터뜨렸으나 달리 방법이 없었다.
펠릭스 자작 역시 명실상부 왕국의 귀족이었기에 플리안 남작의 명령 없이는 무기를 꺼내서는 안 되었다. 그저 순수하게 육체 힘으로 어떻게 해 봐야하는데 저쪽은 철벽 같기만 했다.
허나 플리안 남작 입장에서는 감히 공격 명령을 내릴 수가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 유혈충돌이 벌어지면 당하는 건 오히려 자신들이었으니.
“지금 이 행동이 왕국의 관습법을 몇 가지나 어긴 건지 알고 있소이까!”
플리안 남작이 소리를 버럭 질렀으나, 펠릭스 자작은 차가운 비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남작은 손님접대가 너무 박한 것 아닌가?”
다각다각.
그가 말을 몰아 플리안 남작에게 다가섰다. 플리안 남작은 기죽지 않겠다는 듯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섰으나, 말 앞에 선 그의 모습은 위태로워 보일 뿐이었다.
“물러서시오!”
그때, 모든 병사를 잃고 위태로이 노출된 플리안 남작 앞에 나선 것은 둘째 아들 즈바르트였다.
그가 오러를 끌어올리며 펠릭스 자작의 앞을 가로막았다.
펠릭스 자작이 코웃음을 쳤다.
“아. 그래. 훌륭한 아들이 있었지? 제국 기사 아카데미 차석이라며?”
“자작님.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자작의 곁으로 말을 탄 기사 셋이 모여들었다. 하지만 자작은 고개를 저었다.
“어허. 그래도 도련님인데, 내가 직접 인사를 드리는 게 예에 맞겠지.”
펠릭스 자작은 그리 말하면서 말에서도 내리지 않은 채, 기병도를 끌렀다.
말 위에서 휘두르는 용도의 기병도인만큼 굉장히 길었는데, 펠릭스 자작의 것은 그걸 감안해도 터무니없이 길고 두꺼웠다.
“즈바르트라고 했나? 이 기병도는 우리 가문 대대로 물려오는 보물이지. 한 번 살펴보게. 자네도 기사라니. 기병도를 좋아하겠지?”
쿠웅!
“끄으으윽······!”
펠릭스 자작은 ‘살펴보라’ 말하며 그대로 도집 채로 칼을 휘둘러 즈바르트를 내리눌렀다.
즈바르트는 두 손으로 도집을 받아냈으나, 자신을 내리찍는 무게를 견뎌내지 못하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큭. 쿨럭!”
펠릭스 자작의 도집과 즈바르트의 손 사이에서 오러가 충돌을 일으켰다.
즈바르트는 안간힘을 쓰며 버티려 했으나, 펠릭스 자작의 웅혼한 오러를 견뎌내기 쉽지 않았다.
그는 동부에서 알아주는 기사가문의 가주였으므로, 아무리 제국 아카데미 차석이라 해도 아직 젊은 즈바르트가 그 오러를 당해내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거기다 지금 즈바르트가 밀리는 이유는, 단순히 오러의 차이 때문만도 아니었다.
“기프트 나이트······!”
펠릭스 자작의 도집에는 오러 이상의, 불가해한 거력이 담겨 있었다. 마치 태산이 밀려오는 듯한 무게. 그것은 기사들이 깨닫는 초능력, ‘기프트’가 아니면 설명이 불가능했다.
“그래. 알아보는구나. 이게 바로 선택된 기사들만이 얻을 수 있는 기프트라는 거지. 내 그대도 기프트를 얻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렇게 특별히 한 수 보여주고 있네.”
“끅······!”
처참했다.
펠릭스 자작은 여유롭게 말 위에 앉아있고 그가 한손으로 내뻗은 도집을 붙잡은 즈바르트는 거기에 깔려 짓뭉개질 위기였다. 부들거리던 무릎이 떨어지며 땅에 닿았고 뻗었던 팔이 점점 내려왔으며, 허리는 금세라도 접힐 듯 휘청거렸다.
“그만! 그만하시게! 대체 왜 이러는 건가! 알타자드 땅은 이미 왕명으로 결론이 난 문제 아닌가!”
플리안 남작이 마력을 일으키며 앞으로 나서자, 그제야 펠릭스 자작도 즈바르트를 깔아뭉개던 도집을 거두었다.
그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그래. 왕명으로 결판이 났지. 결판이 났어. 그래서 그대가 착각을 할까봐, 내가 이렇게 왔지.”
척.
펠릭스 자작의 기병도가 이번엔 플리안 남작을 겨누었다.
“착각하지 마라. 플리안. 이번에 네가 국왕폐하를 어찌 구워삶았는지는 몰라도, 이게 너와 나의 차이고 현실이다. 내 앞에선 그 무엇도 너를 보호해줄 수 없다. 여기가 이런 들판이 아니라, 네 남작성이라 해도 이야기는 다르지 않아. 네 가족들을 생각한다면, 부디 앞으로는 네 분수를 알고 처신하라.”
그것은 협박이었다.
여차하면 기습공격으로 가문을 멸족시킬 수도 있다는 뜻이 담긴.
그런 짓을 하면 펠릭스 자작도 왕국의 처벌을 면할 수 없을 테지만, 그 처벌이 아무리 강해봐야 멸문당한 가문의 피해만 하겠는가.
플리안 남작은 모멸감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게······. 무슨 짓입니까?”
그리고 보았다.
자신의 첫째 아들 페르세타가 일찍이 본 적 없는 표정으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모습을.
얼굴은 극히 창백했고, 입술은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뭘 어떻게 걸어오는 건지,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땅이 접히기라도 하 듯, 저 멀리 들판 다른 쪽에 있던 그의 몸이 슥- 슥- 확대되어 다가왔다.
저 뒤에서 황급히 뒤따르는 일리안느와 살리넬르도 보였다.
툭.
어느새 장내에 도착한 페르세타가 바닥에 쓰러진 즈바르트를 일으켜 세우곤 다시 물었다.
“분수를······ 알라고 하셨습니까?”
흠칫.
그 새카만 눈동자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페르세타의 발밑을 타고 흐르는 검은 기운 탓이었을까?
펠릭스 자작은 알 수 없는 불길함에 자신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