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167)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167화(167/171)
167화 인생
평생 금슬 좋게 살다가 한날한시에 떠난 부부.
플리안과 로오루아의 장례식에는 수많은 문상객이 찾아왔다.
특히 저 머나먼 오르트 구름에서도 찾아오려는 이들이 많아 특별히 우주 왕복선이 편성되었다.
칼리슈트 세이린 선황제를 포함해, 성녀 샤라 엘리프, 살리넬르 드메치 등 페르세타와 인연을 맺은 걸출한 인물들이 그 우주선을 타고 왔다.
심지어 지구의 각국을 대표하는 사절단은 물론이고 다른 왜소 세계의 사절들 역시 그 우주선에 함께 탔다.
신계, 마계, 영수계, 설화계, 명계, 정령계, 환요계, 요정계, 총 8개에 달하는 신비 세계에서도 문상객들이 줄을 이었다.
각국의 왕, 통령, 총리 등 인간계의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한 장례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빛이 바랠 정도로 모든 우주에서 쟁쟁한 인물들이 찾아왔다.
페르세타는 자신이 폐관하던 곳이자, 부모님이 돌아가신 그 탑 주변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그 모든 손님을 맞이했다.
그는 담담하고 예의 바르게 모두를 대했지만, 어딘가 넋이 나간 것처럼 멍해 보였다.
문상객들이 걱정을 보이고 위로해 주면 멀쩡하게 괜찮다고 말했지만, 실은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장례식이 모두 끝난 이후, 페르세타는 한 달 넘게 탑에 틀어박혔다.
페르세타가 폐관을 끝내고 나온 이래로 단 한 번도 없었던 그의 칩거였다.
“오빠. 밥 먹어.”
일리안느는 마법 연구를 쉬고 영지에 남았다.
그녀는 탑에 틀어박힌 페르세타를 매일 찾아가서 밥을 먹자고 불러내곤 했다.
“형! 밥 먹자.”
즈바르트도 마찬가지였다.
영지를 물려받은 이후로 온갖 행정 일들을 처리하느라 바빴음에도 불구하고 밥때만 되면 일리안느와 함께 페르세타의 탑을 찾았다.
“……먼저 먹어. 난 별로 배 안 고파.”
페르세타는 방문도 열지 않고 자신의 방에서, 그러니까 아버지와 어머니가 돌아가신 그 방 안에서 그렇게 대꾸하곤 했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지. 빨리 나와.”
“그래. 나 배고파 형.”
“……먹고 가. 나는 나중에 배고파지면 남은 거 먹을게.”
그래도 평소에는 다시 권하면 못 이기는 척하고 나오던 페르세타였는데, 오늘은 고집을 부렸다.
“그래도 같이 먹어야지.”
“그래. 무겁게 싸 들고 왔는데.”
“…….”
페르세타는 급기야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일리안느는 결국 골이 났다.
“아! 진짜 오빠! 이럴 거야? 부모님 돌아가셨으니까 우리끼리라도 더 잘 지내야지!”
마침내 그녀가 참지 못하고 페르세타의 방문을 쾅! 열어젖혔다.
“아…….”
깜짝 놀라 돌아보는 페르세타가 보였다.
‘락 마법을 걸어 두는 걸 깜빡했네.’
너무 정신없이 지내느라. 방문 잠그는 것도 까먹는 바람에, 일리안느의 침입을 허용하고 말았던 것이다.
– 이리네! 잘 왔어!
페르세타의 어깨에 앉아 있던 히나리리리아네가 반색을 하며 휘리릭 날아올랐다.
“앗. 공주님. 오랜만이에요. 장례식 이후로 처음이네요?”
늘 페르세타의 주위에서 돌아다니던 요정 공주를 지난 한 달간 한 번도 보지 못한 일리안느였다.
그 사실이 새삼 떠올라 인사를 하자 히나리리리아네가 하늘에서 팔다리를 바둥거리며 외쳤다.
–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페르세타 좀 말려 봐! 얘 지금 이상한 거 연구하고 있다니까? 너네한테 들킬까 봐 밥 먹을 때마다 나도 일부러 소환 해제 시킨 거야!
“네?”
깜짝 놀란 일리안느가 페르세타를 바라보았다.
‘연구를 하고 있다고?’
부모님을 잃었다는 실의에 빠져서 방에 처박혀 있던 게 아니었어?
약간의 배신감에 휩싸인 일리안느의 두 눈에, 난감해하는 페르세타가 보였다.
히나리리리아네를 향해 눈을 살짝 흘기는 것을 보면 제때 역소환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것처럼 보였다.
“오빠. 무슨 연구 하는데……?”
일리안느가 성큼성큼 다가갔고, 페르세타는 허둥거렸다.
그녀가 몇 걸음을 내딛는 짧은 사이에 페르세타의 눈에선 고민이 소용돌이쳤다. 지금이라도 연구하던 것을 숨길지 말지.
하지만 그는 결국 숨기지 않았다.
체념한 듯 자리에 얌전히 앉아 어깨를 떨구었다.
그사이에 다가온 일리안느가 책상 위의 자료들을 빠르게 훑었다.
“……? ……?!”
탁!
눈으로만 자료를 읽던 그녀가 급기야 책상 위의 종이들을 낚아채듯 집어 올려 팔락팔락 넘기기 시작했다.
마치 글자 속으로 들어가기라도 할 듯 엄청난 기세로 그것들을 살핀 일리안느가 흔들리는 눈동자로 페르세타를 바라보았다.
“이게 뭐야. 오빠?”
“……계획.”
“떠나려고?”
“응.”
“안 돌아오려고?”
“그건 몰라.”
“오빠!”
일리안느가 비명처럼 토해 낸 외침에, 밖에 있던 즈바르트도 고개를 들이밀었다.
“뭐야? 무슨 일인데?”
그러자 일리안느가 그에게 종이를 흔들었다.
“즈바르트 오빠. 페르세타 오빠가. 하……. 떠날 생각인데? 우리 버리고?”
“응?”
즈바르트가 황급히 다가와 일리안느의 손에 들린 자료를 살폈다.
‘……뭐야. 이 외계어는……?’
베리테 가문은 대대로 마법사 가문이었기에, 지금은 기사의 길을 택한 즈바르트라고 해도 어릴 때는 마법을 익혔다. 어디 가서 조예가 깊다는 소리는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꽤 수준 높게.
하지만 그사이에 마법학은 어마어마하게 발전했고, 지금의 즈바르트로서는 최신의 이론이 가득한 페르세타의 연구자료를 읽어 낼 수가 없었다.
잠깐 현기증을 느꼈던 즈바르트는 이마를 짚으며 페르세타를 살폈다.
꼭 이해할 필요는 없지.
물어보자.
“형. 진짜야?”
끄덕.
“형……!”
“버리는 건 아냐.”
페르세타는 일단 긍정한 이후, 조심스레 반박했다.
그러자 일리안느가 발끈했다.
“버리는 거 맞잖아! 떠나서 다시는 안 돌아올 생각이잖아!”
“아냐! 돌아올 거야. 어쩌면…….”
“어떻게 돌아오는데? 응? 그리고 설령 돌아온다고 쳐. 근데 그 속도로 떠났다가 돌아오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이미 만 년도 넘게 지났겠다! 우리 다 죽었을 거라고! 그게 우리 버리는 거 아니야?!”
일리안느는 많이 분한지 두 눈을 빨갛게 물들였다.
즈바르트는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돼서 허둥거렸다. 기사의 비애였다.
페르세타는 착잡한 표정을 짓고 서 있다가 일리안느에게 바짝 다가섰다.
그는 자신의 연구 자료 여기저기를 짚으며 말했다.
“물론 <레라티비테트>에서 밝힌 것처럼, 빠른 속력으로 왕복을 하면 시간이 느리게 가긴 해. 내가 저 위에서 10년을 보내면 여기 인간계에서는 1만 년이 흐를 수도 있지.”
“그걸 알면서……!”
“하지만, 내 목표가 어딘지 잘 봐 봐.”
페르세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지점. 그걸 본 일리안느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대천세계의 중심…… 으로 가겠다고?”
“응.”
“거기에는 ‘종말’이 있어!!”
일리안느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페르세타는 고개를 저었다.
“아냐. 그게 종말처럼 보이는 건, 그저 아직 우리가 무지해서 그럴 거야.”
“무슨 소리야. 거긴…… 구멍이잖아! 세계의 구멍! 어마어마한 마나들이 마나소보다도 작은, 무한히 작아서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는 한 점에 수렴해 버린……. 그런 끔찍한 세계잖아!! 그 어떤 사건도 그 인력에 붙들리면 빠져나올 수 없다고. 그 너머는…… 마치 지평선처럼 절대로 닿을 수도 넘을 수도 없는 곳이라고. 그 안에 떨어지면 삼천 대천세계에서도 다시는 찾을 수 없게 된다고. 영혼조차 남지 않는다고! 그게 종말이 아니면…… 뭔데?”
거의 울 것처럼 항변하는 일리안느를 바라보며 페르세타는 딱 한 단어를 입에 담았다.
“진리.”
일리안느는 기가 막혀서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을 벙긋거렸다.
“진…… 리?”
“영원히 돌아올 수 없다는 건, 그곳이 이곳과는 완전히 법칙적으로 분리된 세계라는 걸 의미해. 단순히 인간계, 정령계 이런 수준의 차이가 아닌, 절대적으로 분리된 또 다른 세계라는 것. 그곳을 연구한다면, 우리 세계의 탄생과 관련한 중요한 걸 알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레라티비테트>로 설명해야 할 거대한 힘이 <콴티지에옴>으로 설명해야 할 아주 작디작은 공간에 몰려 있다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지. 그걸 통해 나는 두 개의 이론을 통합하거나, 아니면 훨씬 거대하고 새로운 이론을 발견할 수 있어.”
“그래서 그 종말로 가겠다고?”
“종말이 아니라 진리라니까. 그리고 힘이기도 하지.”
“힘……?”
“응. 수천억 개의 마나 태양이 존재하는 이 대천세계 전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거대한 힘. 그걸 길들이고 이용할 수 있다면……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 한 일이 가능할지도 몰라.”
“이미 지금도 다 할 수 있잖아?!”
일리안느의 외침에 페르세타는 쓰게 웃었다.
“아니. 다 못하잖아. 나는 아무것도 다 하지 못했어. 현자님과도 더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고, 부모님과도 그러지 못했어. 몸은 하나고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세상은 너무나 넓어서…… 할 수 없는 일들 투성이거든.”
그 말에, 일리안느는 물론 즈바르트도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둘다 눈으로 욕을 하고 있었다.
‘아니. 그러면 진작에 부모님한테 더 잘하든가!’
‘아니. 사람인 이상 그건 당연한 거잖아?’
그 기색을 눈치챈 페르세타는 쓰게 웃으며 뒷말을 이었다.
“지금도 그래. 즈바르트. 일리안느. 나는 너희와도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그래서 슬퍼.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는 게.”
여태 듣기만 하던 즈바르트가 침울하게 되물었다.
“그래서 우리를 포기하겠다는 거야?”
페르세타는 고개를 저었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거야. 내가 그 지평선 너머에서 진리를 찾고 힘을 얻는다면…… 모든 게 가능해질지도 몰라. 그곳에서, 다시 눈 깜짝할 새에 돌아와서 너희와 인사를 나눌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돌아가신 부모님과도 재회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모든 걸 알고 모든 것을 얻으면…… 그 무엇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어.”
일리안느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녀는 눈만 깜빡거렸다.
즈바르트는 헛웃음을 흘렸다.
“이걸 포부가 크다고 해야 할지, 광인의 망상이라고 해야 할지…….”
다른 이가 이런 소리를 했다면 가볍게 광인의 망상으로 취급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간 페르세타가 보여 줬던 수많은 기적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침묵 끝에 일리안느가 물었다.
“오빠. 신이라도 되겠다는 거야?”
그 말에 페르세타는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아니.”
또 한 번 단호하게 대답한 페르세타는 일리안느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인생을 걸어 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해.”
그때 일리안느는 느꼈다.
페르세타를 말릴 수 없다는 걸.
뻐끔.
뻐끔.
몇 번이나 뭔가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 닫았던 그녀는 마침내 쥐어짜 내듯 한마디를 했다.
“언제 갈 건데……?”
“우주선이 만들어지는 대로.”
즈바르트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이상하네……. 화가 나는데. 좀 부럽기도 하고. 나도 좋아하는데, 다른 세상 여행…….”
그가 천천히 다가와 페르세타의 어깨를 안아 주었다.
“…….”
일리안느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뭔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