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169)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169화(169/171)
169화 프로젝트 향수
페르세타가 마침내 지구로 복귀했다.
부모님의 상을 치른 뒤 몇 달 동안이나 이어졌던 칩거를 마침내 깬 것이었다.
그가 수많은 중계 기지를 거쳐, 오르트 구름까지 날아와 마침내 지구에 도착한 날.
수많은 존재가 그를 마중 나왔다.
떠들썩한 환영회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다 같이 모여 페르세타의 눈치를 보는 자리에 가까웠다.
페르세타가 30년의 폐관을 깨고 나온 뒤, 이토록 오래 외부활동을 멈추고 칩거했던 적이 없었으니까.
그의 마음이 어떨지 잘 짐작이 가지 않아서 다들 소극적으로 환영을 하며 페르세타의 눈치를 봤다.
하지만 단 두 명 만큼은 달랐다.
뚜벅 뚜벅 뚜벅살리넬르가 경쾌한 구두 소리를 내며 페르세타의 앞에 섰다.
그의 표정은 복잡했다.
두 눈은 분노한 듯 이글거렸고, 뺨은 격정으로 퍼들거렸으나, 입술만큼은 걱정인지, 연민인지 알 수 없는 감정으로 움찔거리고 있었다.
“살리넬르 님?”
페르세타가 의문을 드러내자, 살리넬르는 입술을 몇 번 더 움찔거리더니 힘겹게 한마디를 토했다.
“도망치지 마십시오.”
“예?”
“도망 못 친다고요. 따라갈 거니까.”
“에? 그게 무슨 말씀……? 아, 설마?”
퍼뜩 짐작 가는 게 있었다.
자신이 떠날 것이라는 걸, 이미 예전에 샤라 엘리프가 알아차리지 않았던가.
심지어 이번엔 일리안느도 알게 되었다.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살리넬르가 이야기를 들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었다.
“알게…… 되셨군요?”
“네. 그래서 저도 같이 떠나려고 합니다.”
“같이 가신다고요?”
하지만 같이 가겠다는 살리넬르의 말만큼은 여전히 의외였다.
현재 살리넬르가 마법사로서 가지고 있는 입지가 얼마나 막강하던가?
생명과 인간의 기원을 찾겠다면 그가 추진 중이던 장기 프로젝트가 몇 개던가?
‘그런데 그걸 다 버리고 나를 따라오겠다고?’
어디까지나 혼자 떠날 계획이었던 페르세타는 너무나 의외의 말에 그저 눈을 깜빡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자세한 건 제가 설명해 드릴게요.”
타박. 타박.
가벼운 발소리를 내며 이번엔 샤라 엘리프가 페르세타의 앞에 와서 섰다.
그녀는 깜짝 선물을 준비한 아이처럼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따라 오세요. 준비해 둔 게 있으니까.”
“네? 네……?”
샤라가 페르세타의 손목을 덥석 잡고 이끌었다.
페르세타는 상황 파악을 못하고 그 뒤를 우물쭈물 따라갔다.
그러자 페르세타를 맞이하기 위해 모였던, 마법사, 기사, 천사, 악마, 요괴 등등등이 일제히 눈을 빛냈다.
‘뭐지? 뭘 준비했다는 거지?’
‘맞아. 그러고 보니 요즘 살리넬르 님과 샤라 님이 묘하게 바빴지?’
‘또 뭔가를 준비하신 건가?’
군중들은 서로서로 눈빛을 교환하고는 샤라와 페르세타의 뒤를 쫄래쫄래 따르기 시작했다.
샤라가 페르세타를 데리고 간 곳은 공항 근처의 야외 강연장이었다.
땅을 오목하게 파내고 경사로에 의자로를 배치한 일종의 야외 원형 극장.
신규 탐사대가 도착할 때마다 브리핑이 진행되는 장소였다.
그곳에는 이미 300명을 넘는 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마법사가 200명 정도 되고 기사가 70명 정도 되고 요정이나 천사 같은 다른 신비 세계의 존재들이 30명 정도 되었다.
그들이 무대 위에 서 있다가 페르세타를 보고 깍듯이 인사를 건넸다.
페르세타는 인사를 받으며 반사적으로 무대를 살폈다.
무대 위에는 <심우주 탐사 프로젝트 : 향수> 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페르세타는 그제야 무언가를 직감하고는 샤라를 바라보았다.
“성녀님? 설마 이건?”
“네. 그 설마가 맞을 겁니다.”
그녀는 페르세타를 원형 극장의 가장 앞자리 관객석에 앉히고 자신은 무대 위로 훌쩍 올라갔다. 살리넬르도 그녀를 따라 무대 위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곧 수많은 존재들이 관객석을 가득 채웠다.
무언가 눈치를 채고 입을 쩍 벌린 페르세타와 다르게 새로 관객석을 채운 군중들은 아직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를 알지 못한 채 자기들끼리 웅성거렸다.
일단 뭔가 있는 거 같아서 호기심에 따라오긴 했는데……. 눈앞에 펼쳐진 것은 대규모 학술회의의 풍경 같은 것이었다.
“대체 뭐지?”
“그러게? 심우주 탐사 프로젝트? 이런 게 있었나?”
웅성웅성웅성
소란스러운 극장.
짜아아악-!
그 소란을 뚫고 날카로운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사방이 고요해졌다.
성녀 샤라 엘리프가 박수와 함께 일대의 음파 자체를 지워 버리는 마법을 발현한 것이다.
그렇게 한 순간에 장내를 조용하게 만든 그녀는 페르세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지금부터 대천세계의 중심에 있는 종말을 향하는 심우주 프로젝트를 발표하겠습니다.”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아니. 실제로는 고요했다.
대천세계의 중심.
종말.
향하다.
이런 키워드들에 놀란 마법사들이 좌우를 바라보며 무어라 떠들어 댔지만, 음파 소멸 마법의 잔향이 남아 정작 아무 소리도 새어 나오지 않았다.
고요한 소란 속에서 샤라와 페르세타의 시선이 교차했다.
“먼저 프로젝트의 이름이 왜 <향수>인가. 이것부터 명확히 하겠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다들 예상하실 수 있는 것처럼 이번 탐사는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편도 탐사가 될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고향을 그리워 한다는 의미에서 <향수>입니다.”
이번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는 사람들이 많았다.
돌아오지 못하는 탐사라니?
그 아득함에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아무리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흥분을 해도 목소리가 새어나오는 일은 없었다.
그 기묘한 고요 속에서 샤라는 홀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대천세계의 중심으로 향한다는 사실에 기인합니다. 대천세계의 중심에서…… 우리는 어쩌면 삼라만상 모든 것들이 태어난 기원을 찾아내게 될지도 모릅니다. 즉, 우리의 출발점, 고향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볼 수도 있죠. 그렇기에 또다시 <향수>라는 이름에 걸맞게 되는 겁니다.”
소리 없이 아우성치는 군중들을 담담하게 바라보며 샤라는 등을 돌렸다.
무대 위에 서 있는 300 여명의 탐사대를 눈에 담으며 그녀는 선언했다.
“그리고 여기 모인 311인의 탐사대원은 기꺼이 그 기약 없는 여정에 함께하기로 맹세한 이들입니다. 그간 비밀리에 탐사를 위한 연구를 진행했고, 각오를 다지지 못한 탐사대원을 방출하기도 했고, 그런 과정 끝에 이제야 성과가 드러나서 여러분들께 공개하게 되었습니다.”
휙!
샤라가 다시 몸을 돌려서 군중들을 올려다보았다.
“현 시간부로는 비밀 프로젝트였던 <향수>를 모두에게 공개합니다. 그 누구든 탐사대원으로 자원할 수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그럼 이제부터 탐사 계획을 발표하겠습니다.”
군중들이 충격을 받건 말건, 페르세타의 눈이 점점 커지건 말건, 샤라는 따박따박 자기가 할 말만 하고 발표를 진행시켰다.
곧 원형 극장의 무대 위로 현란한 환상 마법들이 펼쳐졌다.
심우주 탐사에 사용될 탐사선의 설계도들.
아득하다는 말도 우스울 정도로 멀리 떨어진 대천세계의 중심까지 날아가기 위해 가속을 할 방법.
탐사를 하며 연구해야 할 과제들과 연구 방법.
중간중간 들러야 할 기착지들을 포함한 항로의 후보군들.
탐사대원의 구성과 각각의 임무.
그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었다.
샤라가 고르고 고른 탐사대원들 답게, 각자의 전문성을 한껏 뽐내며 발표를 진행했다.
극장은 고요했다.
이젠 샤라의 마법 때문이 아니었다. 이미 그 마법의 지속 시간은 끝난 지 오래.
그런데도 극장은 고요하기만 했다.
이 위대한 프로젝트에 대한 압도감.
잘 준비된 계획에 대한 경탄.
이름난 인재들이 기꺼이 목숨을 걸었다는 사실에서 느껴지는 경외감.
페르세타는 물론이고 샤라와 살리넬르까지 이 자살에 가까운 임무를 따라 떠날 것이라는 충격.
온갖 감정들이 휘몰아쳐서 입을 열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페르세타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탐사대를 눈에 담고 있었다.
특히 이 모든 것을 준비한 샤라를 보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흔들리고만 있었다.
그런 그의 흔들림에 마침표를 찍어 준 건 살리넬르였다.
뚜벅 뚜벅단단한 구두소리를 내며 페르세타에게 다가가 살리넬르는, 아까 공항에서는 차마 하지 못했던 속내를 꺼냈다.
“그러니까 선생님. 혼자 갈 생각하지 마시라고요. 지옥까지라도 쫓아가서 제가 반드시 뛰어넘고 말 테니까.”
그때, 페르세타의 표정은 아주 빠르게 변했다.
당황
기쁨
감동
흥미
장난기
고작 몇 초사이에 드라마틱한 표정 변화를 보여 준 페르세타.
무대 위의 탐사대원들은 그걸 보고 생각했다.
‘아아. 탐사대원을 하길 잘했네.’
‘저 사람 얼굴에서 저런 표정을 볼 줄이야.’
‘우리가 얼마나 미친 짓을 벌이고 있는지 이제 좀 실감 나는데……? 오히려 좋아!’
그렇게 소리없는 만족이 퍼져나가고 있을 때, 내내 침묵하고 있던 페르세타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살리넬르 님.”
“말씀해 보시죠. 페르세타 선생님.”
살리넬르의 눈빛은 도발적이었다.
감히 나를 두고 떠나려고 했던 게 괘씸하다는 듯, 전에 없이 도전적이었다.
그걸 보며 페르세타는 살리넬르가 처음 자신을 찾아왔던 순간을 떠올렸다.
스승님의 유지를 이어 자신을 납작하게 꺾어 주겠노라고 큰소리를 치며 나타났던 살리넬르.
그래서 그런지 페르세타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더욱더 짙어졌다.
“저를 넘고 싶다면서요? 그런데 절 따라오는 게 맞나요?”
“……무슨 뜻입니까?”
“제가 인간계를 떠나면, 자연히 살리넬르 님이 최고의 마법사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계속 연구를 이어가시면 마침내 제가 남긴 업적과 비견될 만한 업적을 세우실 수도 있고요.”
살리넬르의 얼굴이 무참하게 구겨졌다.
“그러니까……. 지금 저더러, 드래곤이 떠난 산에서 왕노릇하는 오우거가 되라는 말씀입니까?”
“걱정 돼서 그렇죠. 저 따라서 심우주로 나가면, 지금 지구에서 하는 것처럼 수많은 연구원들의 도움도 받지 못할 테고……. 그러면 결국 이전처럼 저랑 일대일로 겨루셔야 할 텐데……. 차라리 그냥 남아 계시는 게……?”
빠드득!
살리넬르의 입에서 이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두고 봅시다. 가서 승부를 냅시다. 저기 심우주에 가서. 당신이 보는 거 나도 보고, 내가 보는 거 당신도 보고, 공정한 상태에서 승부를 보자고요! 저는 그럼 이만 연구하러 가 보겠습니다!”
치미는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 살리넬르가 딱! 딱! 발소리를 크게 내며 원형 극장을 떠나갔다.
페르세타는 그 뒷모습을 보다가 배시시 웃음을 흘렸다.
“잘됐다……. 살리넬르 님이 함께 가는 건 정말 든든하네…….”
그 말에 샤라가 다가와서 혀를 찼다.
“아니. 든든하다면서 왜 그렇게 도발을 해요?”
“그래야. 도중에 발 안 빼고 끝까지 참여하실 거 아니에요? 저는……. 미안하고 염치없지만 그래도 가능만 하다면 꼭 살리넬르 님과 함께하고 싶어요.”
“와…….”
그 대답에 샤라가 생각도 못했다는 듯이 혀를 내둘렀다.
“선생님. 많이 영악해지셨어요.”
그 말에 페르세타는 웃었다.
평범하게.
사람 냄새 나는 웃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