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17)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17화(17/171)
17화 대가
“너, 넌 뭐냐?!”
페르세타가 길게 끌고 오는 불길함.
바짝 긴장한 펠릭스 자작은 목소리를 떨었다.
그러자 여태 조용히 있던 두 명의 마법사가 앞으로 나섰다.
“허어······. 젊은이의 마력이 대단하구만?”
“살리넬르 외에도 이런 마법사가 있었나? 우리가 안 왔으면 자작이 크게 곤욕을 치를 뻔 했어.”
둘 다 머리와 수염이 허연 노마법사들이었다.
허벅지까지만 오는 회색빛 짧은 로브를 입고 허리와 가슴에 온갖 마법적 기물들을 주렁주렁 매달았으며, 소매를 걷어붙이고 있었다.
그 전형적인 모습에 플리안 남작은 잔뜩 긴장했다.
“전쟁 마법사······!”
오로지 전투와 전쟁을 위해 마법을 갈고 닦은 괴물들.
“아들아. 물러서거라. 전쟁 마법사와 마법전을 벌이는 건 결코 현명한 선택이 아니야.”
마법이 사라져 가는 시대라지만, 여전히 마법사의 주문은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절대적인 힘을 내기 위해서는 다양한 준비가 필요한 법.
그랬기에, 전쟁 마법사는 특별했다. 그들은 전투 주문을 빠르게 완성시킬 수 있는 온갖 응용 수식에 통달했고 여러 의식 절차를 간소화 할 수 있는 특별한 도구를 주렁주렁 만들어 지니고 다녔다.
그런 전쟁 마법사와 일반 마법사가 싸우면 그 승패는 불보듯 뻔한 것.
하지만 페르세타는 아버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화가 나서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그저 펠릭스 자작을 노려볼 뿐이었다.
“펠릭스 자작님.”
서늘한 음성이 새어나왔다.
펠릭스 자작은 두 명의 전쟁 마법사가 자신을 보호하자 자신감을 되찾고 오만하게 답했다.
“말하라.”
“지금 당장. 이 땅에서 나가주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억누르고 억누른 목소리.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잔잔한 떨림이 느껴지는 그런 목소리였다.
펠릭스 자작은 콧방귀를 뀌었다.
“내가 왜? 나는 내가 떠고 싶을 때 떠날 것이다. 어찌할 테냐?”
그 말에 페르세타가 펠릭스 자작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그거 알고 계십니까?”
“무얼 말이냐.”
“첫째, 초청을 받지 않고 이곳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둘째, 영주의 허락 없이 무장을 하고 오셨습니다. 셋째, 축객령에 응하지 않으셨습니다.”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이로써, 왕국법에 따라, 영지전의 모든 구성요건이 충족되었다는 겁니다.”
“뭐?”
펠릭스 자작이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가 자신이 기사들과 전쟁 마법사들을 돌아보자 그들도 껄껄 웃어댔다.
“그래서.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지금 나를 상대로, 영지전이라도 하겠다는 것이냐?”
“네.”
그게 페르세타가 그에게 던진 마지막 말이었다.
저벅.
페르세타는 펠릭스 자작을 향해 한 걸음을 걸었고, 그 순간 그의 발 밑에서 일어난 새카만 흑암이 그들을 감싸 버렸다.
페르세타와 펠릭스 자작, 2명의 전쟁 마법사, 3명의 기사, 그리고 20명의 병사가 어둠에 잡아먹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무, 무슨 일이······!”
깜짝 놀란 플리안 남작이 눈 앞에 펼쳐진 구형의 어둠 속에 손을 넣어보려 했으나, 어둠은 그의 손을 밀어냈다.
황급히 뛰어온 살리넬르가 숨을 헐떡이며 어둠에 손을 얹고 마나를 읽어내렸다.
“이건······. 최소한 하3계의 힘이 아닌데······. 최소 명계 이상 상계의 힘이다. 응? 아니 잠깐. 설마 이건······.”
살리넬르의 얼굴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설마······ 마계? 악마······?”
그는 질린 얼굴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노려보았다.
“페르세타······. 뭘 어쩌려는 겁니까.”
그는 분노로 이성을 잃은 것만 같았던 페르세타를 떠올리며, 불길한 예감에 어깨를 부르르 떨고 말았다.
**
“네놈!!! 무슨 짓을 벌인 것이냐!”
펠릭스 자작은 소리를 질렀다. 두려워서 그랬다.
페르세타가 그저 한 걸음 걸었을 뿐인데, 사방이 깜깜한 흑암으로 뒤덮였다.
땅도 보이지 않고 하늘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자신의 몸과 다른 사람의 모습은 마치 빛이라도 나는 것처럼 선명하게 보인다는 게 더 기괴한 느낌을 주었다.
그가 아는 한, 이런 마법을 아무런 도구도 없이 순식간에 발현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펠릭스 자작은 잔뜩 긴장해서 전쟁 마법사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이라면 뭔가 방법이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이게 무슨······. 이 느낌은······ 설마 마계와의 연결인가?”
“거짓말이다! 환영 주문이야! 마계일 리가 없어! 마계와 연결이 끊긴지는 벌써 40년도 넘었다고!”
그들은 페르세타가 아무런 도구도 없이 마법을 시전했다는 사실보다 더 근본적인 무언가에 놀라고 있었다.
마계.
5계의 상계(上界) 중에서도 신계를 제외하면 가장 위대한 세계.
그곳과의 연결은 대마법사 프톨레마이오스조차 마음대로 해내지 못했던, 기적의 영역이 아닌가?
있을 리 없는 일이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저벅.
짙디 짙은 흑암 속에서 걸어나오는 존재가 하나 있었다.
길고 붉은 머리칼에 휘어진 뿔이 마치 투구처럼 자라난 존재.
땅을 날카롭게 긁어내는 불타는 채찍을 질질 끌고 오는 자.
불타는 뼈를 갑주로 두르고 치명적인 미색으로 모두를 매혹하는 자.
그 정체를 알아본 전쟁 마법사가 비명을 질렀다.
“자, 잔학(殘虐)의 악마. 니르다야타······!”
감당할 수 없었다.
소환된 게 그냥 평범한 마족이라도 감당하기 어려울 텐데, 악마군주라니. 그 중에서도 전투력으론 손에 꼽는 잔학의 악마라니······!
전쟁 마법사들은 그 늙은 육신을 벌벌벌 떨었다.
더이상 이게 환상이라는 생각따위는 하지 못했다.
저 존재감, 저 마력, 쳐다보기만 해도 무저갱으로 떨어져내리는 듯한 공포.
그들이 아는 환상 마법으론 이런 압도적인 존재를 구현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어린 아이처럼 떼를 쓰는 것뿐.
“네, 네노옴! 악마 소환은 대륙 법령으로 금지된 술법이거늘! 네가 이런 짓을 하고도 이 땅에 발을 붙이고······!”
허나 그들은 그 말을 맺지도 못했다.
“!”
“!”
전쟁 마법사 둘이 허우적거리며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
“!!!”
딱딱했다.
사람의 하관처럼 잘 깎인 바위덩이였다.
두 사람을 지켜보던 펠릭스 자작은 너무 놀라 그만 말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그는 아파할 겨를도 없이 비명을 질렀다.
“자, 자네들 얼굴이!!!”
“!!!”
“!!!”
정확히 코에서부터 턱까지. 두 전쟁 마법사의 얼굴이 딱딱한 돌로 변해버렸다.
털썩.
털썩.
코와 입이 돌이 되었으니, 당연히 그들은 숨을 쉬지 못했다.
폐 속의 산소가 고갈되자 그들은 가슴을 쥐어뜯으며 바닥에 엎어져 허우적거렸다.
페르세타는 그런 둘을 짜증스레 내려다보았다.
“시끄럽게······. 마법사 같지도 않은 것들이. 입만 살아서는······.”
다들, 운이 나빴다.
사실 페르세타는 겉으로는 평온해보일지언정, 속으로는 짜증이 많이 치밀어올라 있는 상태였다.
기껏 폐관을 마치고 나왔더니, 이 세상의 마법 수준은 한심하기 그지 없어서 그의 연구에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다.
솔직히 인간인 만큼, 그도 짜증이 나고 실망도 할 수밖에 없었다.
왜? 왜 이걸 못 하지?
왜 이것밖에 못했지?
너희들은 대체 뭘 했지?!
하지만 페르세타는 그 마음을 억눌렀다.
이 연약한 세상에서 마음 내키는대로 힘을 휘둘렀다가는 끔찍한 재앙이 일어날 것이라는 걸 잘 알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고삐가 완전히 풀리고 말았다.
펠릭스 자작이 자신의 아버지에게 했던 모욕이 아직도 머릿속을 메아리쳤기 때문이었다.
‘네 분수를 알고 처신하라.’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하!
뇌리가 불길로 하얗게 타버리는 것만 같았다.
분수를 알라고?
뭘 할 수 있냐고?
나는 이렇게 참는데······.
너는 힘으로 하겠다고······?
좋아.
그럼 힘으로 한 번 해보자.
페르세타가 시선을 돌렸다.
기사 셋. 병사 20명.
감히 자신의 아버지 앞에서 힘 자랑을 한 자들.
촤아아악-!
페르세타가 손을 좌에서 우로 긋자, 은밀한 마법의 칼날이 일어나 그들의 목을 일제히 베었다.
“어······. 어어······?”
펠릭스 자작이 바닥에 털퍼덕 엉덩방아를 찧었다.
“어······?”
하늘에서 피의 비가 내려 그의 뺨과 어깨를 적셨다.
그가 자랑하던 기사들과 정예병들이 모두 목 없는 시체가 되어 땅 위에 널브러졌다.
“어어······?”
두려워하는 펠릭스 자작의 앞으로 거대하고 아름다운 악마가 고혹적으로 걸어왔다.
“에이. 페르세타. 내가 죽여도 되는데.”
페르세타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당신더러 죽여달라고 부른 거 아닙니다.”
“죽이는 게 아냐? 그럼 왜 날 불렀어?”
“저 자의 영혼을 좀 뜯어달라고요.”
“영혼을?”
“네. 명색이 귀족이라 죽이면 좀 곤란하거든요. 최대한 고통스럽게 영혼을 뜯어주세요. 죽지 않을 정도로만. 제가 직접 뜯으려면 너무 번잡스러워서······.”
악마가 어깨를 으쓱였다.
“뭐, 어려울 것 없지.”
그 대화에 펠릭스 자작은 경악했다.
영혼을 뜯는다고?
영혼을?
그건 그의 영혼이 억겁의 세월동안 쌓아온 업을 뜯어낸다는 소리였다.
차라리 고문을 해서 죽이는 게 관대하다.
살아서는 오줌 싸고 똥 싸는 천치가 되어 가족들에게 누를 끼칠 것이었고, 죽어서 명계에 가도 반푼이 영혼 취급을 받다가 다시 반푼이로 환생하게 될 터였다. 어쩌면 벌레나 가축으로 환생할 지도 몰랐다.
“아, 안 돼! 죽여! 그냥 차라리······!”
하지만 잔학의 악마 니르다야타는 애초부터 펠릭스 자작 따위에겐 아무 관심이 없었다.
뜨드득!
마치 길가의 꽃을 꺾듯 손을 쓱 뻗어 자작의 영혼을 뜯어내 한 입에 꿀꺽 삼킬 뿐.
“커어······. 아? 아아······?”
펠릭스 자작이 침을 흘리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했으며, 눈동자는 이리저리 마음대로 굴러다녔다. 바지가 축축하게 젖도록 똥과 오줌을 흘렸다.
페르세타는 그 모습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됐네요. 감사합니다.”
그러자 니르다야타는 잔학한 미소를 지으며 긴 손가락을 뻗어 페르세타의 턱을 훑었다.
“대가는. 잊지 않았겠지?”
페르세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심각한 어조로 답했다.
“······빨리, 끝내주세요.”
“분부대로.”
잔학의 악마, 니르다야타가 네모난 상자 같은 마도구를 꺼냈다.
그것은 빛과 마력을 이용해 대상의 초상을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사진기’라는 마도구로 페르세타가 만들어낸 물건이었다.
잔학의 악마는 자세를 낮추며 페르세타를 향해 ‘사진기’를 겨누고 손짓을 했다.
“자자, 자세 잡고! 먼저 이쪽을 돌아보며 뭔가 먼 곳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으로······!”
페르세타는 한숨을 푹 쉬고 그녀의 지시를 따라 이리저리 포즈를 잡았다.
어쨌든 ‘대가’였기에 아무리 싫어도 따라야 했으니까.
“그렇지! 좋았어! 최고야! 표정만 살짝 바꿔서 다시!”
“그런데······. 진짜 이런 게 가치가 있는 겁니까? 그냥 제가 만든 마법을 대가로······.”
“어허! 모르는 소리. 지금 악마군주들 사이에서 그대의 포토카드가 얼마나 유행인지 알아? 아, 이거 다 찍고 사진 뒤에 사인도 해줘야 한다?”
“······네.”
“자, 그럼 이번엔 자세 바꿔서! 저기! 저 시체 위에 앉아서 찍어보자. 최대한 오만한 표정으로!”
시체가 즐비한 흑암 속에서, 악마 하나와 인간 하나가, 가열찬 촬영회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