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170)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170화(170/171)
170화 마지막 여행
“최종적으로 탐사대의 숫자는 천 명으로 하려고요.”
샤라의 말에 페르세타는 깜짝 놀랐다.
“천 명이요? 그럼 커다란 마을 수준 아닌가요?”
“맞아요. 그게 목표였어요. 그래서 탐사선도 그 정도 규모로 설계했고. 다행히 잘됐네요.”
“일부러 천 명을 목표로 삼았다고요? 처음부터?”
“네. 사람은 가족만으로도 친구만으로도 살 수 없어요. 사람이 살려면, ‘사회’가 필요해요.”
페르세타는 눈을 깜빡거렸다.
사람이 살아가려면 ‘사회’가 필요하다.
어디에서도 들어 본 적 없는 말이었다.
그 근거가 궁금했다.
“그냥. 제 신념 같은 거예요. 저는 성녀였잖아요. 항상 고민하고 기도하는 게 일이었다고요.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올바르게 성장할까. 행복할까. 잘 살 수 있을까.”
그 담담한 말을 들으며 페르세타의 머릿속으로는 여러 장면이 떠올랐다.
성녀는 어쩌면 수많은 기부와 봉사를 해 왔을 것이다. 배고픈 자에게 빵을, 슬퍼하는 이에게 위로를, 무력한 자에게 도움을.
또 성녀는 어쩌면 사람들을 가르치기도 했을 것이다. 어리석은 자에게 지혜를, 분노한 자에게 위로를, 무능한 자에게 지식을.
또 성녀는…….
참 많은 일을 했을 것이다.
성녀였으니까.
그러니,
말은 간단했지만, 그 안에는 성녀 샤라 엘리프가 평생 동안 품어 왔던 고민과 시행착오가 담겨 있는 게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저 간단한 말에 이토록 울림이 있을 수 있는 게 아닐까.
페르세타는 샤라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예전에는 몰랐겠지만, 이제는 사람의 말 뒤편에 서린 사연들과 감정들을 어느 정도는 읽어 낼 수 있었다.
그게 페르세타에겐 꽤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샤라는 페르세타의 진지한 표정을 보곤 피식 웃었다.
‘이젠 좀 귀엽네.’
천진할 정도로 사람의 관계와 감정에 무지해서, 마치 어린아이처럼 잔인했던 페르세타가 이렇게 바뀌다니.
샤라는 또 한 번 확신했다.
‘역시 사람이 살아가려면 ‘사회’가 필요한 거야.’
그녀는 페르세타에게 자신이 깨달은 것을 조곤조곤 말해 주었다.
“우리에겐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해요. 불특정 다수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해요. 더 큰 세상 속에서 나의 가치를 확인해볼 수 있어야 해요. 그래야 고이지 않고 계속 변화해가며 이 세상을 흥미롭게 살아갈 수 있어요. 사람이 가진 외로움과 욕구라는 건, 가족과 친구를 넘어서 더 큰 사회를 필요로 하는 거거든요.”
페르세타는 그 말을 들었고, 그 행간에 담긴 뜻을 알아챘다.
“설마. 절 위해서 그런 건가요?”
샤라와 페르세타가 눈을 마주쳤다.
샤라는 눈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걸 이제 알았어요?’
페르세타는 어쩐지 목이 메었다.
“제가 어떻게 선생님만 혼자 저 먼 우주로 보내겠습니까. 나라도 따라가야겠다 싶었죠. 근데 생각해보니까 저는 선생님과 단둘이서 그 긴 시간을 버틸 자신은 또 없었어요. 그래서 사람을 더 끌어들이기로 했죠. 근데 끌어들인 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거예요. 몇몇 지인만으로는 이 막막하고 외로운 여행을 견딜 수 없어요. 그러니 결국 하나의 사회가 필요해진 거죠. 그리고 이편이 선생님께도 도움이 될 거예요.”
페르세타는 멀뚱하게 그녀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정말.”
샤라는, 반사적으로 고개 숙인 페르세타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가 흠칫 손을 빼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긴 했지만, 그런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 * *
대천세계의 중심까지 나아가는 심우주 탐사의 일정이 잡혔다.
그리고 본격적인 탐사대원 모집이 시작되었다.
처음 그 공고가 떴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갸웃거렸다.
“저걸 누가 지원하려나?”
“그러니까.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확률이 높다잖아?”
“차원의 우주로 나가면 그렇게 외롭고 허망하다던데…….”
“사실상 사회적 자살 아닌가?”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 보자, 지원자의 수는 예상보다 많았다.
7백 명을 뽑는데 지원자가 3만 명이나 몰렸다.
40대 1의 경쟁률.
인간계와 각 신비 세계들에서도 지원자가 꽤 나왔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지구 등 새로 개척한 왜소세계에서 나온 지원자들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치열한 선발전.
마침내 4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히 합격한 사람 중에는 대륙 동쪽의 반도에서 온 마법사, 이민후도 섞여 있었다.
그가 탐사대 명단에 포함되자, 그의 가족, 친지, 지인들 모두가 나서서 그를 말렸다.
“아니. 네가 거길 왜 가?”
“지금도 지구에서 손꼽히는 마법사인데, 그 좋은 걸 다 버리고 가겠다고?”
“나는 반대다. 안 가면 안 되니?”
이민후는 지구에서 가장 먼저 마법을 배우기 시작한 선구자 그룹이었다.
거기서도 계속 두각을 드러냈고, 지구인 출신 마법사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실력을 자랑하게 되었다.
‘참……. 즐거운 시간이었지.’
한 몇 년은 그랬다.
세계 최고의 물리학자가 꿈이었던 그였고, 고작 31세에 대학의 정교수가 됐을 만큼 뛰어났던 그였지만…… 사실은 늘 답답했었다.
과학이라는 것은 고일 대로 고인 학문.
그가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성과를 내기는 쉽지 않았다.
세상에는 괴물 같은 노교수들이 있었고,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거대한 연구 시설들에선 새로운 데이터들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이런 경쟁 환경에서 눈에 띄기 위해선 실력뿐만이 아니라 노력과 인맥과 연구 자원들 역시 중요했다.
하지만 마법은 달랐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체계를 처음부터 다시 배운다는 것.
노교수의 경륜도, 들어가기 어려운 연구시설의 보조도 의미가 없는, 완전히 똑같은 출발 선상에서 다시 시작하는 경쟁.
그게 어찌나 신이 나던지.
한 몇 년은 마법에 미쳐서 살았고 지구 최고의 마법사들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성과도 보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아무리 해도…… 본토 출신의 마법사들을 뛰어넘을 수가 없어.’
과학을 공부하며 맞닥뜨린 한계를 또다시 마주하고 말았다.
‘인간계’라 부르는 세계에서 온 마법사들.
마법이라는 게 당연한 세상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영재 교육을 받은 이들.
마나 태양으로부터 풍부한 마력을 공급받으며 온갖 실험과 시도를 해 본 존재들.
이미 한참이나 앞서 나간 그들을 따라가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그랬기에,
이민후는 심우주 탐사에 자원해야만 했다.
“말리지 마세요. 이건 제 꿈이니까요. 저 머나먼 우주에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그 대단한 페르세타 선생님도 알지 못했던 온갖 발견들이 즐비할 거예요. 똑같은 조건에서 다시 시작하게 되는 거죠. 저는 거기서 꼭 두각을 드러낼 거예요. 지구인 중에 가장 뛰어난 마법사가 아닌, 그냥 가장 뛰어난 마법사가 될 거예요.”
이민후는 이런 각오를 남기고 탐사대에 합류했다.
다들 그렇게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다.
“차라리 잘 됐다……. 아무도 날 모르는 곳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어.”
세상살이에 지치고 꺾였던 사람이 도피처로 탐사대에 지원하기도 했고,
“완전히 새로운 세계라니. 꼭 보고 싶어!”
누군가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지원하기도 했고,
“마법의 끝을 보려면. 따라나서야 한다.”
누군가는 마법 그 자체에 대한 열망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렇게 최종 확정된 천 명의 탐사대는 강도 높은 훈련에 돌입했다.
천 명이 하나의 완결된 사회를 이루어서 기나긴 시간동안 자급자족을 해내려면 아주 많은 것들이 필요했으니까.
* * *
탐사대가 착착 준비되는 시간 내내, 페르세타는 샤라와 그리고 먼저 선발된 탐사대와 함께 탐사선 설계 마무리와 제작에 몰두했다.
“탐사대 준비는 잘 되고 있나요?”
페르세타가 샤라에게 물으면 샤라는 간단하게 대답하곤 했다.
“네. 잘 되고 있어요.”
“혹시 명단을 미리 볼 수 있나요?”
그렇게 물으면 샤라와 살리넬르의 반응이 갈렸다.
“오? 보고 싶으십니까? 마침 한 부 가지고 있는데…….”
살리넬르가 입이 근질근질하다는 표정으로 서류를 꺼내면, 샤라가 그의 옆구리를 세게 꼬집었다.
“아악!”
고통스러워하는 살리넬르를 슬쩍 가리며 샤라는 화제를 돌렸다.
“아. 그것보다요. 생명 유지 장치에 관해서 논의해야 하는 부분이 있는데요…….”
왜 샤라는 탐사대의 명단을 보여 주려 하지 않는가.
페르세타는 그 부분이 의문이었지만 일단 연구가 중요했기 때문에 금세 연구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 마침내 탐사대의 출정일이 왔다.
페르세타는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탐사대원들을 볼 수 있겠네요!”
그간 탐사선 제작에 몰두하며 자연스럽게 잊어버리고 있었지만, 페르세타의 마음속에는 늘 궁금증이 있었다.
어떤 이들과 함께 떠나게 될까?
사람인 이상 궁금해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앞으로 제2의 인생을 함께해 나갈 이들이었으니까.
샤라는 신이 난 페르세타를 바라보며 살짝 긴장한 표정이었다.
‘꼭 뭔가 숨기는 게 있는 사람 같네.’
페르세타는 그녀의 이상한 눈치를 알아챘지만, 묻지는 않았다. 어차피 이제 알게 될 터였으니까.
출발 3시간 전.
마침내 탐사대 전부가 아틀란티스의 공항에 모였다.
탐사선은 이미 차원 궤도에 올라간 상태로 언제든 탐사대원들을 내부로 소환할 준비를 갖춰 놓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공항에 들어선 페르세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상하지 못했던 얼굴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선황제 폐하?”
“이제 왔나? 늦었군. 마도왕.”
선황제 칼리슈트 세이린.
그가 탐사대를 통솔하고 있었다.
“폐하도 함께 가십니까?”
“이게 자꾸 하다 보니까 재밌더라고.”
페르세타는 멍하니 황제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휙휙 돌렸다.
또 예상치 못한 누군가가 있을 게 분명했으니까.
그리고 발견했다.
“일리안느? 즈바르트!”
탐사대원들 틈바구니에 뻔뻔하게 껴 있는 자신의 동생들을.
“뭐야! 너네가 왜 여기에 있어!”
페르세타가 빽 소리를 지르자, 일리안느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답했다.
“우리도 보고 싶어졌거든. 이 대천세계의 중심에 있다는 종말 말이야.”
“하, 하지만……. 즈바르트! 너 영지는 어떻게 하고?”
“형. 어차피 세상은 변하고 있어. 귀족이니 뭐니 그런 게 의미 없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고. 한 번 사는 인생, 살고 싶은 대로 살아야지. 여우달도 더 넓은 세상이 보고 싶다더라.”
그의 말과 함께 구미호의 첫 번째 꼬리 여우달이 화르륵 모습을 드러냈다.
“본체랑도 얘기 끝냈어. 요괴 중에서 가장 멀리까지 나아간 요괴가 되겠다고 하니까 좋아하던데?”
“허…….”
페르세타는 한숨을 터뜨렸다.
그리곤 샤라를 노려보았다.
“성녀님. 아무리 그래도 제 가족이 걸린 문제인데 이걸 어떻게 비밀로……!”
“오빠. 성녀님은 잘못 없어. 내가 비밀로 해 달라고 했거든.”
“뭐? 어째서…….”
“오빠도 그랬잖아? 우리 비밀로 하고 혼자 떠나려고 했잖아. 오빠도 당해 봐야지.”
고소하다는 듯이 킥킥 웃는 일리안느를 보며 페르세타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즈바르트가 그런 형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같이 가자 형. 그게 맞는 거 같아.”
“하지만…….”
“일리안느는 실제로도 마법 탐구에 열정이 있는 거 같은데, 사실 난 아냐. 난 어머니가 걸려서 따라가는 거거든.”
“어머니?”
“응. 어머니가 늘 미안해했잖아. 형 혼자 가족들과 떨어뜨려서 시간을 보내게 한 거. 그래서 난 형을 혼자 보낼 수가 없다. 이번엔. 같이 가 보자고. 남매들끼리.”
페르세타는 그 말에 뭐라 반박을 못 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퍼뜩 주변을 다시 돌아보았다.
그리고 놀랐다.
“애캘슨 님? 라냐 님? 도로테아 님?”
그의 밑에서 배웠던 마법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여러분도 같이 가는 거예요?”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저희는 배웅해 주러 왔어요.”
한 명 한 명. 페르세타에게 다가와서 포옹을 했다.
“배운 은혜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애캘슨은 단단하게 말했고,
“몸 건강하세요.”
라냐는 어딘지 슬퍼 보였으며,
“……꼭 다시 돌아와요.”
도로테아는 어딘가 미련이 많아 보였다.
그리고 이 인사를 받으며 페르세타는 정말로 실감했다.
아, 이제 떠나는구나.
그때, 살리넬르가 뚜벅뚜벅 다가와서 도로테아에게 종이쪽지를 건넸다.
“뭐예요?”
도로테아가 의아해하며 쪽지를 펼쳤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아주 획기적인 방법으로 이 세계의 시작을 규명할 수 있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하지만 시간이 부족하여 그 발견을 여기에 다 서술하지는 못하고 떠난다.>
“엣?”
도로테아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라냐가 그걸 흘깃 보고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뭐예요. 살리넬르 님. 이 거짓말은?”
살리넬르가 히죽 웃었다.
“내가 이러고 떠나면 사람들은 ‘혹시?’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나는 어쩌면 페르세타 선생님을 뛰어넘었을지도 모르는 마법사로 기억되는 거죠.”
“하?”
“잘 부탁드립니다. 도로테아 님.”
살리넬르의 뻔뻔한 요구에, 다들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제 정말로,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여행을 떠날 시간이었다.
“잘 가요!”
“건강해야 해요!”
“꼭! 돌아와서 다시 만나자!”
환송을 나온 수많은 사람의 인사와 함께, 탐사선에서 시작된 소환의 빛이 탐사 대원들을 감싸 안았다.
* * *
다음 날 발간된 지구의 신문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화살은 떠나갔다. 태초를 향해 쏘아 낸 이 화살이 진리에 명중할까? 아니면 완전히 빗나가 영영 찾을 수 없게 될까. 오직 신께서만 아실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들과 살아생전 다시 조우할 수 있다고. 그렇게 믿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