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18)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18화(18/171)
18화 파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게냐?”
페르세타가 마침내 어둠을 걷고 다시 나타났을 때, 플리안은 겁에 질린 채로 벌벌 떨며 물었다.
어둠에 잠겨 있던 땅이 제 모습을 드러내자 목이 잘려 죽은 시체들과 어째서인지 목을 부여잡고 고통스럽게 죽은 두 마법사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바보라도 된 듯 침을 질질 흘리며 구린내를 풀풀 풍기는 펠릭스 자작도 보였다.
페르세타는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독단적으로 처리했어요”
“네가, 네가 한 일이라고?”
“예. 그래도 별 문제는 없을 겁니다. 영지전의 요건은 모두 성립 되었고 여기에 있는 무장한 시체들이 그 증거가 될 거니까요. 펠릭스 자작은 구금해 두었다가 석방을 조건으로 보상금을 요구하면 될 것 같습니다. 기왕이면 땅으로 받는 게 좋겠지요.”
담담하게 말하는 페르세타.
그러다가 아차! 하고 입을 다물었다.
심하게 떠는 아버지와 일리안느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페르세타는 자책했다.
‘내 실수야. 화가 난다고 너무 앞뒤 없이 저질렀어. 내 딴엔 방비를 했지만, 정식으로 진을 만든 것도 아니니······. 악마군주의 존재감을 다 가릴 수 있었을 리 없잖아?’
마계의 악마는 인간에 비할 수 없을 만큼 마나의 태양과 가까이에서 살아가는 존재.
인간이 그 존재감을 견뎌낼 수 있을 리 없었다.
하물며 일반 악마도 아닌 악마 군주의 존재감은 어떠하겠는가?
오히려 플리안 남작과 일리안느가 마법사였기에, 그 공포를 더욱더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살리넬르는 어찌어찌 주문을 써서 견뎌낸 듯 했으나, 그 둘까지 지켜주진 못한 모양이었고.
‘자칫하면 트라우마가 생길 수도 있겠는데······.’
페르세타는 불안해졌다.
아버지와 여동생에게 트라우마가 생긴다면 전적으로 자기 잘못이었다.
그게 걱정되는 한편, 행여나 아버지와 여동생이 앞으로 자신을 두렵게 여겨 거북하게 대할까 그게 또 염려되었다.
그런 자신이 비겁하게 느껴져서 페르세타는 괴로웠다.
그때, 아버지 플리안이 페르세타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너는, 넌 괜찮은 게냐? 너무나 불길한······. 끔찍한 기운이 느껴졌는데. 어디 다친 데는 없느냐?”
일리안느도 마찬가지였다.
“오빠 괜찮아? 빨리. 빨리 이리와. 가족끼리 뭉쳐야 돼. 뭉치면 다 이길 수 있어.”
페르세타에게 다가와 서로를 꼭 안는 둘.
페르세타는 그 온기에 조금 놀랐고. 이내 마음이 사르르 풀어지는 걸 느꼈다.
자신도 모르게 긴장하고 분노하고 있던 마음이 싹 녹아내렸다.
그리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감정 조절에 약하구나.’
살면서 감정이라고 느껴본 것이 너무 적다보니, 거기에 내성이 없었다.
분노도 마찬가지였다. 이토록 화가 났던 게 살면서 처음이었던지라, 스스로 그걸 주체하지 못했다.
‘그래도 이제 알았으니 됐다. 스스로 자각하고 주의하자.’
이토록 고마운 가족들이 있으니, 실수를 해도 금세 다시 반성하고 고쳐나갈 수 있을 거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페르세타의 마음을 든든하게 했다.
그렇게 세 가족이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을 때, 살리넬르는 아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플리안 남작과 일리안느를 이해할 수 없었다.
‘허- 아니. 누가봐도 페르세타 저 인간이 괴물인 건데?’
그런데 오히려 저자를 걱정한다고?
저것이 가족이라는 건가.
‘가족 없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살리넬르는 고아였다. 드메치라는 성도 스승님 제로지아 드메치에게서 물려받았던 것.
‘스승님. 오늘따라 뵙고 싶습니다.’
살리넬르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씁쓸한 마음을 삼켜야만 했다.
**
대륙의 곳곳에는 천사를 숭배하는 신앙이 널리 퍼져 있다.
신비가 떠나가고 있는 요즘에는 천사의 기적이 현현한지도 50년이 넘게 지났으나, 여전히 사람들은 신앙을 잃지 않았다.
실제로 천사가 강림했던 것을 두 눈으로 목격했던 사람들이 노인이 되었을지언정 아직 살아있었고, 천사의 축복이 영원히 깃든 각종 이적의 증거들이 세상에 넘쳐났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의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천사 성교회였다.
대륙 중앙에 존재하는 가장 큰 천사강림지. 이른바 ‘살셰겐의 분지’에, 바로 천사 성교회의 본단이 존재했다.
또한 그곳에, 성녀가 있었다.
“성녀님!”
“성녀님. 이쪽을 봐주세요!”
“성녀님이 날 보셨어!”
“아니야! 날 보신 거야!”
“얘들아. 성녀님은 우리 모두를 보신단다.”
성녀 샤라 엘리프.
그녀는 기적이 사라진 이 시대에 마지막 남은 기적이었다.
마법사들이 다섯 개의 상계는커녕, 정령계, 환요계, 요정계와의 연결도 힘들어 하는 이때, 아직도 가장 높은 상계인 신계와 소통하고 그 힘을 빌려 쓸 수 있는 자가 바로 성녀였으므로.
때문에 마법사들은 성녀와 신학자들을 마법사의 일종으로 여겼지만 정작 그들은 자신들을 천사와 연결된 특별한 존재로 인식했다.
마법사들과 교류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세계에 대한 이론적, 방법적 관점의 차이가 존재했던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마법사들과 달리 성지를 잘 떠나지 않았다. 아니. 성지는커녕 성전 밖으로 나서는 일도 드물었다.
오로지 성전 안에서 자기들끼리 연구하고 소통하고 예배를 보는 게 그들의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런 성녀가 웬일로 거리로 나왔다.
수많은 신학자들을 거느리고 그 귀한 걸음을 황급히 놀렸다.
“성녀님. 정말이십니까?”
“저도 확신은 못 해요. 그래서 지금 확인해보려는 거잖아요.”
“허어······. 악마의 강림이라니······! 근 40년 내로 없었던 일 아닙니까?”
“그러니까요. 거기다가 천사께서 전달해주신 예지는······. 그게 자연적인 강림이 아닌, 소환이라는 것 같았어요.”
“소환! 소환이라고요!”
신학자들이 경악했다.
악마의 소환이라니.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얼마나 큰 비극의 역사가 뒤따랐단 말인가?
만약 정말로 소환이 이루어진다면, 이미 비극은 일어난 것일 지도 몰랐다.
제물로 바쳐졌을 수 백, 어쩌면 수 천 단위의 목숨이, 그리고 그 악마가 일으킨 파괴 행위로 다시 수 천 또는 수 만의 목숨이, 이미 이 세상의 것이 아닐 수 있었다.
“아직 확실하진 않아요. 저의 예지는 막연한 느낌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요. 그러니 확인을 해봐야죠.”
성녀는 눈을 빛내며 걸음을 서둘렀다.
그들이 향하는 곳은 ‘살셰겐의 분지’에 세워진 마법 천문대.
신계와 강한 공명을 일으키고 있는 이 땅의 힘을 빌어, 신계 및 마계 등 가장 높은 상계들을 관측하는 연구를 하고 있는 마법사들의 둥지였다.
“성녀님. 어서 오십시오.”
그들이 마법 천문대에 닿자. 이미 여러 마법사들이 천문대 앞으로 마중을 나와 있었다.
성녀의 미간이 좁아졌다.
자신이 온다고 알리지도 않았는데, 미리 마중을 나와 있다는 것은, 천문대에서도 뭔가 심상치 않은 것을 발견했다는 뜻이 아닐까?
“혹시······?”
그녀의 불길한 예감은 적중했다.
천문대의 관장이 고개를 끄덕인 것이다.
“마계와의 공명이 잠시간 폭증하는 현상을 관측했습니다.”
“거기의 위치가 어딥니까?”
“지도로 확인해본 결과. 드블랑 왕국의 동부에 있는 베리테 남작령 인근이었습니다.”
“악마가······ 소환된 겁니까?”
“죄송합니다. 저희로서는 거기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걸 관측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성지의 힘을 빌린 덕분에 가능했던 우연이니까요.”
“······감사합니다.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성녀가 고개를 숙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그녀를 따라온 신학자들의 얼굴도 마찬가지였다.
“이 땅에 내려온 모든 악마들을 단죄하는 것. 그것이 우리 천사 성교회에 소속된 모든 신학자의 의무이고 또한 저의 의무입니다.”
“참으로 옳습니다.”
“즉시 짐을 꾸려 베리테 남작령으로 향합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상을 파악하고 만약 악마 소환자를 발견한다면 감히 대죄를 범한 책임을 물어 단죄해야 합니다.”
“진실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오늘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성녀가 하얀 옷자락을 펄럭이며 성전을 향해 다시 걸음을 돌렸다.
그 뒤를 천사 성교회의 신학자들이 결의로 가득찬 얼굴로 따랐다.
“허어······.”
그 모습을 지켜보던 마법 천문대의 관장은 장탄식을 흘렸다.
“성녀가 세상으로 나가는 건 50년 내로 없었던 일이 아닌가? 세상에 파란이 일어나겠구나.”
그는 우려와 그리고 약간의 기대가 서린 눈으로 성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그 시각.
대마법사 시에넬 미르사는 잔뜩 흥분해서 연구실을 박차고 나왔다.
“짐을! 짐을 챙겨라!”
그 말에 그녀의 제자들이 깜짝 놀랐다.
“네에? 스승님. 베리테 남작가는 가지 않기로 하셨던 거 아니세요?”
“이제 나이 드셔서 거동이 불편하시다면서요?”
아란드리아의 발표를 보고 두 제자가 얼마나 기뻐했던가.
<알마게스트> 이후 최고의 마법적 성취!
이런 수식어를 보고도 가슴이 뛰지 않으면 마법사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들의 스승이 마법사도 아니었을 줄이야······.
둘이 당장 베리테 남작령으로 가야 한다고 간청을 했지만, 시에넬 미르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었다.
“<알마게스트>를 완성시켜? 아냐. 내 생각엔 <알마게스트>가 문제야. 뭔가 맞질 않아. 뭔진 모르겠는데. 뭔가 잘못 됐어.
물론! 나도 궁금하긴 하다. 대체 뭘 발표하려고 이리 호들갑을 떠는지. 하지만 이제 내 수명도 얼마 남지 않았고, 거동도 불편하기 짝이 없는데······. 그런 헛된 이론을 쫓아다닐 시간이 없다. 죽기 전에······ 내가 <알마게스트>를 뛰어넘으려면 그런 곳에 낭비할 시간이 없어!”
이런 말을 하며 제자들의 애를 타게 했던 게 바로 그들의 스승 시에넬 미르사가 아니던가?
솔직히 제자들은 그녀가 본인들의 스승이었지만서도,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통 할 수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마법의 시작이자 끝인 <알마게스트>가 틀렸다니?
자신들에게 말해서 다행이지 다른 마법사에게 말하면 나이를 먹어 노망이 났냐는 소리를 듣기 딱 좋은 소리가 아니던가?
심지어 근거가 뭐냐 물으면, 자기도 모르겠다고, 그냥 140년 마법 인생에서 오는 직감이라는 소리만 돌아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짐을 챙기라니?
“아! 빨리 짐 챙겨! 너희들 소원대로 베리테 남작령으로 갈 테니까!”
그 말에 제자들이 반색을 하며 몸을 날렸다.
황급히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가방에 쑤셔박으며 질문했다.
“완전 좋아요 스승님!”
“근데 스승님! 왜 갑자기 마음을 바꾸셨습니까? 역시······ <알마게스트>를 완성한다는 이론에······!”
“시끄러! 그것 때문이 아냐!”
“네?”
제자들이 당황하여 돌아보자, 시에넬 미르사는 희번득거리는 눈으로 연구실의 중앙에 존재하는 거대한 마나 검출기를 바라보며 소리쳤다.
“마계! 마계의 신호가 관측됐다!”
“예?”
“베리테 남작령이 있는 방향에서! 마계의 마나가 날아왔다고! 너희도 알고 있지 않느냐? 내가 평생 상계의 신호들을 쫓아오고 연구했다는걸!”
“예······. 그랬지요?”
“바로 그거다! 그거라고! 하필 그 방향이 베리테 남작령 쪽이었다고! 이게 우연일까? 거기서 분명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틀림없다! 빨리! 빨리 짐을 싸라!”
두 제자는 이럴 때보면 스승님은 정말 노망이 난 게 맞을지도 모른다는 불경스런 생각을 했다.
말의 맥락을 중간중간 다 잘라서 아무렇게나 뱉어내지 않는가?
하지만 스승님이 이러는 것도 하루이틀이 아니었기에, 그들은 능숙하게 짐을 챙기며 물었다.
“스승님! 황제 폐하께는 뭐라고 보고할까요?”
“뭐라고 하긴! 연구차 떠난다고 해!”
“얼마나요?”
“무기한!”
“예······? 무기한은 좀······.”
“아! 안 받아들이면 일 때려친다고 전해!”
“아, 예······.”
제자는 황제에게 추궁당할 것이 걱정되었으나, 스승이 저렇게까지 나오면 더는 할 말이 없었다.
황제도 황당해 하긴 하겠지만 결국엔 받아들일 것이었다.
그들의 스승, 시에넬 미르사가 바로 제국의 ‘현자’였으니까.
대마법사 바르덴테가 촌구석 남작령으로 내려간 직후, 현자 직위를 물려받은 게 바로 그녀였다.
즉, 당대의 모두가 인정하는 최고의 마법사가 바로 그녀, 시에넬 미르사다.
이렇게, 아란드리아의 발표가 불러온 파도가 도착하기도 전에, 또 하나의 큰 파도가 일어나 베리테 남작령을 향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