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2)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2화(2/171)
2화 어머니
대마법사 프톨레마이오스가 <알마게스트>를 저술한 지 500년이 지났다.
그 한 권의 책은 인류의 역사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마법사들은 <알마게스트>를 익혀 차원 저 너머에 존재하는 마나의 태양은 물론이고, 신비세계들의 좌표이동까지도 정확하게 예측해냈다.
그들은 이를 기반으로 무한에 가까운 마나를 끌어들였으며, 정령계와 환요계, 명계를 넘어, 심지어 신계나 마계와도 소통을 하여 위대한 기적을 사역했다.
그렇게,
가장 위대한 책, <알마게스트>와 함께 ‘대(大) 마법의 시대’가 활짝 열렸던 것이다.
하지만 500년의 세월은 모든 것을 바뀌게 만들었다.
어느 순간, 마법은 쇠락을 거듭했다.
정확했던 <알마게스트>의 예측이 날이 갈수록 점점 맞지 않게 되었던 탓이었다.
수많은 마법사들이 머리를 맞대고 <알마게스트>의 틀어진 계산을 바로잡기 위해 응용 수식들을 짜넣었으나, 그것도 잠시잠깐일 뿐.
오차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빠르게 커졌다.
마침내, 마나의 태양으로부터 수급되는 마력량이 급감하기 시작했다.
이는 재앙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이미 인류는 수많은 마도구를 만들었고 그에 의지하여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리에는 말이 끄는 마차 대신 스스로 움직이는 마법 수레가 굴러다녔으며, 모든 집에서는 수도꼭지만 틀면 물의 정령이 뿜어주는 깨끗한 물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모든 마도구의 동력이 되는 마력이 부족해졌으니, 그 충격은 사회 구석구석을 강타했다.
인류의 문명은 족히 200년을 퇴보했다.
거기에 더해 신비세계와의 연결도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신비세계와 연결된 마도구들이 자꾸 고장 나는 게 문제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신비현상마저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한 때는 매년 두어번은 볼 수 있었던 용을, 이제는 10년에 한 번 관측할 수 있을까 말까 했으며, 천사의 기적이 나타나지 않은지는 벌써 50년이 넘었다.
마법사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총력을 기울였으나, 그들이 찾아내는 답안은 언제나 일시적인 호전만을 가져왔을 뿐, 커다란 추세 자체를 바꾸어놓진 못했다.
심지어 갈수록 늘어나는 응용수식들로 인해, 마법을 익히는 과정은 날마다 어려워졌다.
자연히 마법사는 줄어들었다.
신비세계는 자꾸 멀어지며 그 흔하던 요괴와 정령, 요정들마저 자취를 감추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마법은 이제 사라질 거라고.
마법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올 거라고.
그게 기사의 시대일지, 장인의 시대일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그렇게 될 거라고.
그런 추세였기에, 대마법사 바르덴테가 천재를 제자로 거두었다는 소문은 대륙 전체를 강타했었다.
바르덴테가 누구던가.
마법이 사라져가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수많은 기적을 보여주었던 위대한 대마법사가 아닌가.
그런 그가 천재를 거두었으니, 어쩌면 그 제자가 성장하여 답을 찾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다시 한 번, <알마게스트>와 같은 위대한 책이 탄생하여, 죽어가는 마법을 극적으로 부활시킬 수 있지 않을까?
모든 마법사들과 귀족들이 간절한 염원을 품고 작은 왕국의 한미한 가문, 베리테 남작가를 지켜보았다.
10년이 지났을 때만 해도 다들 가슴 한 켠의 염원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20년이 지났을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의심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30년이 지났을 땐, 모두가 체념하고 그 제자의 존재를 잊어버렸다.
간혹 그 제자를 아직 기억하는 자는, 이렇게 조롱해대곤 했다.
“알고 보니 천재가 아닌, 천하의 둔재였던 거지. 경지에 오르기 전까지는 폐관을 끝내지 않는다 하였는데······. 30년이 지나도 감감 무소식이잖아? 아직도 <알마게스트>와 응용수식을 다 못 익혔다는 뜻 아니겠어? 둔재인 거야. 둔재. 남작가의 바보.”
그랬기에,
남작가의 장자, 페르세타 베리테가 마침내 30년의 폐관을 깨고 나왔을 때, 이 소식에 관심을 가진 이는 대륙 전체에서도 한 손에 꼽을 정도만이 겨우 남았을 뿐이었다.
**
페르세타 베리테는 남작가의 장원을 걸었다.
거리의 풍경은 낯설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했다.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의 얼굴에서 30년 전의 모습이 보일 때도 있었고, 생전 처음 보는 얼굴이라 새로이 기억에 새겨야 할 때도 있었다.
그에겐 그 모든 게, 반갑고 신기했다.
두리번거리며 천천히 남작성으로 걸어가던 페르세타는 문득 남작성의 어느 발코니에 시선을 던졌다.
“페르세-타! 내 아들!!!”
그곳에, 그립고, 반갑고, 그새 많이 노쇠해진 얼굴이 있었다.
‘엄마!’
페르세타는 너무 오랜만에 불러보는 그 호칭이 목에 탁! 걸려서 끝내 뱉질 못했다.
그러는 사이, 남작부인 로오루아 베리테는 체통도 잊어버린 채, 전력으로 성을 달려내려왔다.
그녀는 30년만에 보는 자기 아들을 한 눈에 알아보았다.
오밀조밀했던 예쁜 이목구비가 다 장성한 얼굴에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마침내 남작성 앞에서 페르세타를 마주한 그녀는 그의 어릴 적 애칭을 부르며 두 팔을 활짝 벌렸다.
“페르!!! 우리 페르······!”
덥석!
분명, 어릴 땐 크고 따뜻했던 품이었는데······.
지금은 너무나 작고 가벼워진 여인이 페르세타의 허리를 꼭 붙들었다.
“어서 오렴! 어서 와. 아들아! 내 아들······.”
여인의 눈물이 페르세타의 가슴팍을 적셨다.
페르세타는 콧날이 시큰해졌다.
‘이상해. 기쁜데······. 왜 눈물이 날까?’
5살에 탑에 틀어박혔던 그에게 있어선, 이 모든 게 너무 낯선 경험이요, 감정이었다.
**
“저 분이 첫째 도련님이야?”
“그 남작가의 둔재?”
“드디어 공부를 마치고 나오신 건가······.”
“헐······. 뭘 배운다고 30년이나 그러고 있었대?”
“그러니까 둔재지. 남들은 10년이면 다 뗀다고 하더라.”
잠깐 열린 문틈 사이로 하인과 하녀들이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큼! 크흠!”
남작, 플리안 베리테는 불편한 마음에 헛기침을 했다.
혹시나 아들이 들었을까 염려가 되어 눈치를 살피니, 아들은 싱글싱글 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들은 것 같다.
“큼! 아들아. 신경쓰지 말거라. 오늘은 좋은 날이라 내가 참지만, 내일 단단히 혼찌검을 내리겠다.”
그 말에 페르세타는 느릿하게 눈을 깜빡거리곤 답했다.
“아뇨. 저는 둔재가 맞아요. 스승님의 질문에 답을 찾는데 30년이나 걸렸는걸요.”
페르세타는 그 사실을 겸허하게 인정했다.
딱히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둔재인 덕분에 배울 게 많다면, 그 역시 행복 아닐까?
이제야 혼자서 궁구할 수 있는 것을 모두 궁구하였으니, 이제부터는 세상에 존재할 수많은 마법학 장비들을 이용해 더 깊은 배움을 추구할 수 있으리라.
그는 행복했고 스승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느꼈다.
스승님 덕에 배움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으니까.
“저기······. 오라버니?”
이제부터 배울 새로운 마법이 기대되어 한창 공상을 펼치던 페르세타는, 문득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옆을 돌아보았다.
일리안느 베리테.
연두빛의 머리칼은 자신과는 다르게 어머니를 닮았으나, 흑청빛의 눈동자만큼은 자신과 똑닮은 여자애.
이제 19살이 된, 여동생이었다.
당연히 30년만에 집에 돌아온 페르세타는, 오늘 처음으로 그녀를 보았다.
때문에 일리안느 역시 페르세타를 조금 낯설어했으나, 타고난 천성이 워낙에 해맑았던 그녀는 곧 씩씩하게 질문을 던졌다.
“오빠! 바르덴테님. 대마법사 바르덴테님은 어디 계세요? 같이 나오셨어요?”
그 질문에 남작 플리안과 그의 부인 로오루아도 페르세타를 빤히 바라보았다.
제국의 현자였던 대마법사 바르덴테라면 결코 대접을 소홀히 할 수 없는 손님이었으니까.
하지만 페르세타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스승님은 돌아가셨어요.”
“아······.”
“그런······. 부디 고인의 명복을······. 하인들을 보내 시신을 수습해야겠구나. 제국에도 서신을 보내야겠어.”
어머니는 복잡한 심경이 담긴 탄성을 내지르셨고, 아버지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중얼중얼 정리하셨다.
반면에 여동생 일리안느는 페르세타를 어쩐지 가엾은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우리 오빠. 경지에 올라서 나온 것도 아니었구나······. 그냥 스승님이 돌아가셔서 폐관을 깨고 나온 거였어······.’
남작 플리안은 그런 일리안느의 시선을 눈치채곤 표정을 엄하게 굳혔다. 30년만에 돌아온 아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크.’
일리안느는 아버지의 살벌한 시선에 목을 움츠리고 딴청을 부렸다.
페르세타는 그런 아버지와 여동생의 시선교환도 모두 지켜보았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교감이 둘 사이에 오고 가는 것을 보며, 문득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승님 말씀이 맞아. 사람이 모든 것을 가질 순 없는 거구나.’
얻는 게 있다면 잃는 것도 있다.
배움의 즐거움을 얻은 탓에, 가족이 주는 정을 잊고 살았던 그.
페르세타는 이제라도 다시 조금씩 가족들과 가까워지고 싶었다.
“아버지, 어머니, 잘 계셨어요?”
“잘 지냈다.”
아버지 플리안이 곧장 대답했다.
하지만 여동생 일리안느는 삐죽거렸다.
“잘지내긴요. 가문이 통째로 넘어가게 생겼는데.”
“이리네. 너!”
어머니 로오루아가 일리안느의 애칭을 부르며 언성을 높였지만, 그녀는 접시 위의 소고기를 뒤적이며 다시 입술을 삐죽거릴 뿐이었다.
“그놈의 빚이 뭔지······. 이제 이런 고기를 먹을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요······.”
그 말에 플리안과 로오루아는 뭐라 말도 못하고 일리안느만 노려보았다.
30년만에 돌아온 아들에게 가문의 어려운 사정을 알리고 싶지 않았던 탓이었다.
다행히 일리안느도 더는 말하지 않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
대신 페르세타가 입을 열었다.
“빚······. 음, 그런 게 진짜 있는 거였구나······. 스승님께 배웠습니다. 빚에 대해서.”
그 말에는, 일리안느는 물론이고 플리안과 로오루아마저 짠한 눈길로 페르세타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30년간 탑에서 살며 세상을 책으로 배웠다니.
생각만해도 아득해지는 삶이 아닌가.
일리안느가 포크를 놓으며 물었다.
“오빠는. 마법 안 배우고 그런 거 배운 거야?”
어느새 슬쩍 말을 놓아버리는 그녀.
사실 그녀는 측은해지는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농담 삼아 그리 물었던 거였다.
그런데 페르세타의 대답이 가관이었다.
“그러게요. 그런 거만 주로 배웠네요.”
페르세타는 동생에게도 말을 놓지 않았다. 평생 말상대가 스승님뿐이었기에, 평어가 도통 익숙하지 않았던 탓이다.
하지만 일리안느는 지금 존댓말보다 다른 것에 놀라고 말았다.
“마법은 안 배우고 그런 걸 주로 배웠다고? 진짜? 진짜로?”
“네. 스승님은 제게 마법에 대해서도 많이 알려주셨지만, 실제 강의를 해주신 건 주로, 사회, 철학, 역사, 정치······. 뭐, 그런 것이었어요.”
사실 그건 페르세타가 15세에 이미 바르덴테의 경지를 뛰어넘었던 탓이었다.
처음엔 물정 모르는 페르세타가 사람들에게 이용당할까봐서, 나중엔 너무 강력해진 페르세타가 세상을 멸망케 할까봐서, 그래서 바르덴테는 사회, 철학, 역사, 정치를 가르쳤다.
페르세타의 교양과 윤리의식을 바로잡아서, 그와 세상 모두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그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페르세타의 가족들은 물론이고 페르세타 본인조차도.
그 덕분에, 이젠 다들 확신(오해)하고 말았다.
정말로 페르세타가 둔재였다는 것을.
대마법사 바르덴테조차 마법을 가르치는 것을 포기했던 거구나.
그 사실에, 어머니 로오루아는 화가 치밀었다.
그럼 빨리 폐관을 마치기라도 하지. 지가 늙어죽을 때까지 어린애를 붙들고 대체 뭘 했다는 말인가!
“아들······. 이거 더 먹어.”
로오루아는 치미는 분노와 슬픔을 삼키며, 조용히 고기를 썰어 페르세타의 접시 위에 올려 주었다.
“아들······. 포도주라는 거다. 마셔보겠느냐?”
남작 플리안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권했다.
“오빠오빠. 이거 먹어봐. 동방에서 온 복숭아라는 과일인데 정말 맛있어.”
순식간에 페르세타의 접시와 잔이 가득 찼다.
페르세타는 그득한 음식을 바라보며 먹을 생각은 않고, 뺨만 긁적이다 가족들의 얼굴을 힐끗힐끗 살폈다.
로오루아가 물었다.
“얘야. 왜 그러니? 벌써 배불러? 그럼 안 되는데······.”
그러자 페르세타는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페르세타는 다시 뺨을 긁적이더니 뒷말을 이었다.
“다들 저한테 너무 잘해주시는 게 신기해서요. 이런 건 너무 오랜만이라······. 신기하고. 어색하고. 고마워서 어떻게해야 할지 잘 모르겠고. 막 그러네요.”
그 말에.
“으흑······. 흐흐흑······. 끅. 아들. 흐으흑. 내 아들······.”
어머니 로오루아는 결국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