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21)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21화(21/171)
21화 아버지
“그러니까 우리 영지에 장인 공방을 만들고 싶다고요?”
플리안 남작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즈바르트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들의 앞에는 왕도의 상인이자 귀족, 비델 남작이 활짝 웃음을 짓고 두 손을 모은 채 공손히 서 있었다.
“예. 예. 근래에 마법사 나리들이 많이 모여든 것으로 압니다. 자고로 마법사들이 모이면 이런 저런 기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법. 남작령의 기술자들로는 그 수요를 다 충당하기 어려우실 테니, 저희가 그걸 나눠 맡겠다는 것입죠! 물론 지분은 확실하게 드리겠습니다. 여기. 계약서 초안입니다. 한 번 살펴보시지요.”
플리안 남작은 계약서를 읽었다.
상당히······ 아니, 매우 좋은 조건이었다.
그래서 의아했다.
“허어······. 하지만 마법사들이 얼마나 머물지도 알 수 없는데 이런 투자를 하셔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비델 남작은 득의만면한 웃음을 함뿍 베어물었다.
“저는 그 점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신다고요? 당장 다음달에 마법사분들이 다 떠나면 어쩌시려고요······.”
“하하! 마법 학교를 세우고 그 ‘포럼’이라는 것을 연 게 바로 페르세타 공자 아닙니까? 그러니 저는 확신합니다. 그 도련님이라면, 포럼이라는 게 끝나도 많은 마법사들을 이곳에 붙잡아둘 거라고요. 베리테 남작가는 드블랑 왕국의 마법 중심지가 될 겁니다. 확신해요!”
플리안 남작은 어안이 벙벙했다.
페르세타를 그렇게나 믿는다고?
자신도 아직 페르세타를 잘 모르는데?
그 표정을 읽은 비델 남작은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그날 경매에서 페르세타 공자가 들려준 이야기들 있지 않습니까?”
“아, 예. 그랬지요.”
“제가 그것들을 다 따로 교차검증을 해보았지요.”
“그러셨습니까?”
“예에.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정말 다 근거가 있더군요. 제가 자문을 구한 수많은 마법사들과 학자들도 그 사료들을 찾느라 한참을 낑낑거렸는데 페르세타 공자는 그 자리에서 줄줄 읊지 않았습니까.”
“그랬지요.”
“그겁니다. 저는 이제 확신합니다. 페르세타 공자가 무려 30년이나 폐관을 한 것은, 그만큼 큰 것을 이루기 위해서였다는 것을요. 거기에 제 인생을 배팅하기로 했습니다.”
“허어······.”
플리안 남작은 탄식했다.
뭐랄까? 비델 남작의 판단은 약간의 근거와 야수 같은 직감의 혼합체였다. 그렇기에 그 누구보다 빠르게 판단을 내리고 이런 투자를 결정한 것이리라.
다른 걸 다 떠나서 그 거침없는 결단에 감탄했고, 또 자신의 아들을 자신보다 더 믿는 듯한 모습에 반성 반, 감탄 반을 섞어 또 탄식을 흘렸다.
“즈바르트. 어떻게 생각하느냐?”
플리안 남작은 가능하면 페르세타와 이 문제를 상의하고 싶었지만, 페르세타는 요즘 마법 학교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기에 일단은 옆에 있는 즈바르트에게 물었다.
그러자 즈바르트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더니 일목요연하게 자신의 생각을 풀어냈다.
“받아들이심이 옳습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느냐?”
“단, 조건을 붙여야 합니다. 공방을 세우되 잡부들을 모두 우리 영지 사람들로 고용할 것을 약속받고 기술자 중 일정 비율을 또한 우리 영지의 사람들로 채울 것을 약속 받는 것입니다.”
“호오?”
“그렇게 하면, 지분을 제외하고도 공방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의 일부가 임금의 형태로 우리 영지에 떨어지게 됩니다. 또한, 공방을 오고가며 우리 기술자들과 영지민들이 왕도 기술자들의 기술을 배우고 익혀 더 뛰어난 기술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기존 우리 남작가에 소속된 장인들 역시, 왕도 기술자들과 경쟁을 하며 더 기술을 연마할 계기가 됩니다.”
플리안은 즈바르트의 의견에 크게 감탄했다.
“즈바르트! 네 지혜가 놀랍구나!”
그러자 즈바르트가 멋쩍게 웃을 뿐이었다.
“아닙니다. 다 형에게 배운 것입니다.”
“설령 배운 거라 한들, 그 짧은 사이에 그렇게까지 네 것으로 흡수를 했다면, 이 또한 너의 능력 아니겠느냐?”
“······아닙니다. 이런 거라도 잘해야죠.”
즈바르트가 어딘지 씁쓸하게 말했다.
그 표정이 조금 슬퍼 보였기에 플리안남작은 의문이 들었다.
왜 저러지?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나?
하지만 비델 남작이 갑자기 치고 들어오는 바람에 그만 물어볼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무조건! 전부 다! 수용 가능합니다! 계약서에 확실히 적고 왕실의 공증을 받는 것으로 하지요!”
플리안 남작의 시선이 다시 비델 남작에게로 돌아갔다.
확실히······. 이득은 분명하고 손해는 없다시피한 계약.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왕실의 공증을 받는다면, 법무관이 한 조항 한 조항 세세하게 뜯어서 확인을 해줄 것이기에 계약서에 장난을 칠 수도 없었다.
“좋소. 긍정적으로 이야기 해봅시다!”
플리안 남작과 비델 남작은 뜨겁게 악수를 나눴다.
**
포럼이 시작한 지도 일주일이 지났다.
마법 학교는 연일 열광의 도가니였다.
마법사들은 살리넬르가 미리 준비한 마나파 측정장치들을 들고 정령계, 환요계, 요정계와 공명을 만드는 재미에 푹 빠져버렸다.
그들은 그간 쓰기 힘들었던 온갖 주문과 마법을 실험하느라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살리넬르의 이론을 검증하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알마게스트>가 기술한 신비세계의 연주운동에 따른 주파수의 변화를 매일같이 관측하고 기록했다.
그때마다 그들은 탄성을 질렀다.
페르세타는 뭐랄까.
그 모습을 보면 신이 났다.
자신이 이미 10살 이전에 체득했던 지식이었지만, 그런데도 신이 났다.
‘앎을 나누는 게 이토록 즐거운 일이구나.’
내가 이미 100번은 읽어본 이야기라 해도, 그 이야기를 처음 듣는 사람이 있다면, 또 한 번 즐거운 법.
페르세타는 바로 그런 재미를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재밌는 것은 재밌는 것이고, 시간이 남는 것은 남는 것이었다.
포럼의 초반부는 철저하게 살리넬르의 발견을 발표하고 토론하고 받아들이는 시간으로 할애되었기에, 정작 페르세타는 할 일이 없었다.
페르세타는 그 남는 시간을 영지를 위해 썼다.
“페르세타 도련님. 부르셨습니까?”
아버지의 친구, 상인 글라우베를 부른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예. 삼촌.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도 반갑습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삼촌이라뇨. 이 늙은이가 감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말씀을 거두어주세요.”
페르세타는 일단 아버지가 시킨 대로 삼촌이라 한 번 불렀고, 그 후에는 따로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하하. 알겠습니다. 글라우베님. 아무튼 오늘은 부탁을 드릴 게 있어서 모셨습니다.”
“말씀만 해주시지요.”
“보시다시피 이곳에 마법사들이 아주 많습니다.”
“예. 정말로 그렇습니다. 하나같이 대단한 마법사분들이어서 많이 떨립니다.”
“그래서 말인데······. 마법사들이 모이면 많은 마법 재료와 의식도구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또한 아버지께서 비델 남작의 도움을 받아 공방을 차린다는데, 그 공방에 필요한 재료들 또한 많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 말씀은······?”
“이곳에 상회를 하나 열어주시지요. 앞서 말한 모든 상품을 공급하는 상회입니다.”
“아! 제겐 정말 좋은 제안이군요. 하지만 저도 상인이다 보니 따질 건 따져봐야할 것 갈습니다.”
“마법사들이 오래 머무르지 않을 것 같아 걱정되십니까?”
“네. 그게 아무래도 걱정이 됩니다.”
“그건 괜찮습니다. 이 포럼은 1년은 지속될 테니까요.”
글라우베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네? 1년이나요?”
“네. 그렇게 만들겁니다.”
페르세타는 두 눈을 빛냈다.
그는 처음부터 이 포럼을 짧게 끝낼 마음이 없었다.
하나의 주제가 끝나면, 다음 주제를 꺼내고, 그 주제가 끝나면, 또다른 주제를 꺼내고······. 그런 식으로 자신이 짠 커리큘럼에 따라 마법사들을 착착 이끌어나갈 생각이었다.
애초에 이 마법 학교는 마법사 지망생들을 위한 학교가 아닌, 노련한 고위 마법사들이 모여 배우고 연구하는 ‘마법 대학’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이었다.
‘적어도······. 포럼을 끝내고 저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는, 저마다 가슴에 <첼레스티움> 한 권씩은 들고 가게 해야지.’
처음부터 그게 포럼의 목적이었다.
<알마게스트>를 논파하고 <첼레스티움>을 모두에게 새겨주는 것.
지식의 전수를 절대 서두르지 말자고 다짐했던 페르세타였으나. 이 문제만큼은 서두르고 있었다.
왜냐면, 진정한 의미의 마법학은 <알마게스트>를 무너뜨림으로써, 비로소 열리는 것이었으니까.
시작은 빠를수록 좋다.
그래서 페르세타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었다.
“만약 마법사들이 많이 줄어든다면, 거기서 오는 부족분은 우리 마법학교가 적극적으로 물건을 사들여서 메우겠습니다. 이 부분도 계약서에 쓰셔도 좋습니다.”
그쯤 되자, 글라우베는 확실히 깨달았다.
지금, 페르세타가 그에게 ‘부탁’한다고 말을 하긴 했지만, 사실 이건 그가 자신에게 주는 기회라는 것을.
글라우베는 얼른 고개를 조아렸다.
“당치도 않습니다. 그런 계약조항은 제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 감사할 뿐입니다.”
글라우베는 페르세타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뿌듯하게 웃었다.
“설마 벌써······. 제 뇌물이 이렇게 효과를 보일 줄을 몰랐습니다.”
그 말에 페르세타가 웃으며 화답했다.
“엄청난 효과가 있었지요. 이 마법 학교 이름이 뭔지 아십니까?”
“무엇이지요?”
“이제 곧 현판을 올릴 겁니다. <글라우베 마법 대학>이라고요.”
뭉클.
뭐랄까.
자신의 이름이 들어간 마법 대학?
글라우베는 그 순간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
**
이처럼 베리테 남작가가 수많은 마법사들을 맞이하여 정신없이 돌아가던 와중, 그런 상황을 미처 알아볼 여유도 없었던 한 인물이 있었다.
“아버지! 아버지이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아버지이이이!”
펠릭스 자작가의 소가주, 에키드 펠릭스.
그 자를 잘 아는 이들은, 그를 두고 ‘들개 같은 자’라고 부르곤 했다.
강한 자에게는 약하고 약한 자에게는 강한, 천성적으로 비겁한 품성.
하지만 그렇기에, 오래 살아남을 잡초같은 인간.
그런 에키드 펠릭스는 지금, 5명이라는 최소의 병력만을 거느린 채, 베리테 남작성에 와 있는 상태였다.
“아버지!!!”
자신의 아버지 펠릭스 자작을 돌려받기 위함이었다.
이걸 위해 무려 자작가의 금싸라기 땅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마을 세 개를 배상금으로 바쳐야만 했다.
“아아······. 아들······. 헤에······. 아들이다아······.”
그런데 펠릭스 자작의 상태가 영 이상했다.
침을 질질 흘리며 눈에 초점도 잡지 못하는 것이 영락없는 바보꼴이 아닌가?
이에 에키드 펠릭스는 심히 분노했다.
“대체 아버지를 어떻게 한 것이요!”
하지만 베리테 남작가의 대응은 심플했다.
“펠릭스 자작은 영지전 도중, 낙마하여 머리를 다쳤소.”
그러자 할 말이 없었다. 증인도 없고, 잘못은 펠릭스 자작가가 먼저 저질렀으니, 왕국에서도 편을 들어줄 리도 없고······.
에키드 펠릭스는 그저 분노를 되새김질 할 뿐이었다.
‘두고보자 베리테 놈들······! 진짜 영지전이 뭔지 보여주마. 조만간 이 치욕을 천 배 만 배로 갚을 것이야······!’
그는 후일을 도모하며 아버지를 업고 마차에 올랐다.
‘아마도 마법사 전력에서 밀린 것이겠지. 그래. 페르세타가 제법 마법을 한단 소문이 있더군. 그래. 내 가문의 기둥뿌리를 뽑아서라도, 이 수모를 갚아주마! 궁정 마법사급의 전쟁 마법사를 고용한다면, 반드시 이 치욕을 갚을 수 있겠지!’
마차를 타고 돌아가는 내내, 에키드 펠릭스는 창밖으로 보이는 남작령의 땅 한 뼘 한 뼘을 세듯이 바라보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저 땅들을 남김없이 짓밟아주리라고.
그런데······.
끼리리리링!
돌연 마차 밖으로 기묘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저건······?”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민 에키드 펠릭스는 경악을 했다.
하얀 털이 길게 늘어지고, 뱀처럼 목이 길고, 발바닥은 호랑이와 같은, 그런 말이 하늘을 날듯 땅을 접어 달리며 순식간에 눈 앞에 나타난 것이다.
생전 처음 보는 짐승이었지만, 그도 교양을 아는 귀족. 금세 그 짐승의 정체를 알아냈다.
“기, 기린······!”
신비가 사라지는 요즘 시대에, 영수계(靈獸界)의 존재인 기린이라니?!
하지만 진짜 놀랄 것은 따로 있었다.
그 기린의 뒤에 연결된 마차.
그 마차에 새겨진 문양은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는 것이었다.
“제국!”
그리고.
“현자!”
기린, 그리고 마차 문양. 모든 것이 확실했다.
진짜 제국의 현자가 눈 앞에 등장한 것이다.
그 무소불위의 권력자, 황제 폐하가 허리를 굽혀 인사를 올린다는 제국의 스승, 현자가 나타났다!
에키드 펠릭스는 허겁지겁 마차에서 내렸다.
드르륵!
잠시 뒤, 그의 앞에 멈춰선 현자의 마차에서 창문이 내려갔다.
심통맞아 보이는 할머니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얘야. 베리테 남작령 가는 길이 여기가 맞니?”
에키드 펠릭스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네! 네! 맞습니다. 현자님. 쭉 가시면 베리테 남작령입니다.”
“그래. 고맙다.”
드르륵!
다시 창문이 닫히고,
끼리리리링!
기린이 기묘한 울음을 울며 다시 땅을 접어 달리기 시작했다.
에키드 펠릭스는 멀어지는 현자의 마차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황급히 마차에 올라타 소리 질렀다.
“다시! 다시 베리테 남작령으로 돌아간다! 제국의 현자가 왜 그곳으로 가시는지 알아내야 한다!”
마부는 얼른 마차를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리고 잠시 뒤.
베리테 남작령에 우글우글 모여든 마법사들의 면면을 모두 알게 된 에키드 펠릭스는 하늘을 우러르고 망연히 서 있다가, 마차에 기대 침을 질질 흘리는 자신의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주르르.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에키드는 바보 천치가 되어버린 아버지의 손을 잡고 고개를 푹 숙인다.
“아버지······. 용서해주십시오. 소자······. 최선을 다해 머리를 굴려보았지만······.”
그는 다시 베리테 남작령을 돌아보았다.
이제 정신을 차리고 다시 보니 보였다.
자작령보다 더 활기찬 거리. 영지민들이 들고 다니는 질 좋은 도구. 활발하게 오고가는 마차. 그리고 무엇보다도······ 넘쳐나는 마법사.
그 중에는 제국 아카데미 교장도 있고, 마법왕국의 왕세녀도 있다.
아예 눌러 앉을 생각인지 집까지 지어놓고 지내는 모습이 선명히 보였다.
“이거, 도저히······ 못 이길 거 같습니다. 아버지······.”
에키드 펠릭스는 고이 마음을 접었다. 오래 살려면 다리 뻗을 자리를 보고 누워야 하니까.
터덜터덜 펠릭스 자작가로 돌아가는 마차의 뒷모습이 더없이 작고 초라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