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22)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22화(22/171)
22화 변화의 바람
포럼은 벌써 3주차가 지나고 있다.
마법사들의 열광은 조금도 식지 않았다.
살리넬르는 이론의 큰 주제를 이미 모두 발표했고, 이제는 그 주제에서 파생하는 작은 주제들을 다루는 상태였다.
마법사들은 그 하나하나를 몸소 검증해보면서도, 마나파 측정장치를 들고 온갖 주문을 부리고 자신들만의 실험을 해보느라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벌써 2주를 훌쩍 넘겼는 데도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고, 느긋하게 모든 것을 살피고 시험해보는 이 순간을 그저 즐거워했다.
페르세타도 그랬다.
지켜보기만 해도 재밌었고, 또 기대가 되었다.
이 과정을 통해 살리넬르가 발견한 지식이 마법사들 사이에서 단단하게 뿌리내릴 것이니까.
그 뿌리가 <알마게스트>를 무너뜨릴 것이고, 그 위에 <첼레스티움>이 새로이 꽃을 피울 테다.
영지의 발전에도 여러모로 도움이 되었다.
처음엔 길어야 1달을 예상했던 마법사들이 이젠 짧아야 2달, 길면 3달을 예상하기 시작하면서 보다 본격적으로 돈을 쓰고 연구를 하기 시작했으니까.
처음, 아껴서 쓰던 돈조차도 이 작은 남작령의 경제 규모를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돈이었는데, 이제는 아예 그 단위가 달라졌다.
그뿐이랴, 마법사들이 본격적으로 각자의 마법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온갖 이로운 파생효과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으로 수혜를 입은 건, 농부 길리안이 돌보는 요정 농장이었다.
“어후······. 이제는 요정이 너무 많아서 감당이 안 될 정도네.”
길리안은 기쁨의 탄식을 떨구었다.
요즘 남작령은 마치 그 전체가 요정계가 된 것만 같아 보일 지경이었다.
마법사들이 공명 주파수를 실험해 본다는 명목으로 곳곳에 공명진을 만들고, 요정계 및 정령계, 심지어 환요계까지 마구 연결하고 있었기에, 곳곳에서 요정, 정령, 요괴를 만나는 게 일상이 되고 말았다.
그 중에서도 요정의 수는 압도적이었다.
원래 베리테 남작령 자체가 요정계와 공명을 이루기 쉬운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대로 요정 농장을 주요 수입원으로 삼았던 것이고.
수없이 많은 요정계 공명진이 중첩된 효과를 일으키며 더 많은 요정들을 불러오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이젠 마을 사람들마다 하나씩은 절친한 요정이 생겼을 정도였다.
그런데 좋은 일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자자! 다들 빨리 빨리 옮기라고!”
길리안이 크게 호령하자, 마을의 젊은 청년들이 일사불란하게 마법 학교 앞에 쌓인 마법 폐기물들을 수레에 실었다.
마법 폐기물의 종류는 다양했다.
다 쓰고 버려진 보석 가루. 색이 빠지고 부스러지는 금속. 각종 의식을 치루고 부숴진 의식 도구들.
길리안은 그것들을 빼먹지 않고 꼼꼼하게 수레에 실어 청년들과 함께 요정 농장으로 향했다.
내내 그의 얼굴에선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내년 농사는 대풍년이겠어.”
안 그래도 많던 요정이 몇 배는 늘어났다. 그것만으로도 고무적인데, 마법 폐기물을 잘 갈아서 밭에 뿌리면 그건 그대로 최고의 거름이 되어줄 것이었다.
요정계와의 연결을 강화시키는 마법적 비료.
농장에 끝없이 쌓이는 마법 폐기물을 보면, 절로 마음이 든든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수많은 청년들.
모두가 외면하던 요정 농장 일이 이젠 모든 청년들이 선망하는 직업이 되었다.
길리안은 진짜 요새는 하루하루가 너무 꿀같이 달콤하게 느껴졌다.
– 길리안이다!
– 길리안 안녕!
– 으아아아! 너무 빨라요! 같이 가요!
– 꼴찌는 벌칙으로 꽃봉오리 속에 1분간 갇히는 거야! 빨리 와!
흐뭇하게 웃는 길리안의 곁으로 수 백이 넘는 요정들이 빛의 물결을 이루며 지나갔다.
그 맨 앞에는 유독 예쁘장하게 생긴 요정이 있다.
요즘 요정들은 그 요정을 따라다니며 놀기 바빴다.
마치 골목대장처럼 모든 요정들을 좌우하는 존재.
길리안은 신기한 마음에 그 요정을 빤히 바라보았다.
별다를 건 없는 모습이었다.
한 쌍의 투명한 날개. 그리고 셔츠와 바지.
일반적인 요정과 같아 보이지만, 이상하게 시선을 떼기 어려운 그런 요정이었다.
머리카락 색이 조금 튀어 보여서 그러나?
– 같이 가요! 히나리리리아네!
– 으악! 너무 빨라!
– 꼴찌는 안 돼! 1분이나 갇혀 있으라고!? 너무 잔인해!
항상 제멋대로인 요정들이 그 요정만 유독 따르는 것도 신기했다.
길리안은 요정의 물결이 멀리멀리까지 사라질 때까지, 그 모습을 그윽히 바라보았다.
**
요정 공주, 히나리리리아네는 요즘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자신의 계약자, 페르세타의 주변에 요정 공명진이 날개에 걸릴 정도로 많이 생겨난 덕분이었다.
그 바람에 히나리리리아네는 남작령 전역을 쏘다니며 온갖 요정들과 하루종일 놀러다닐 수 있었다.
그 전에는 페르세타가 소환을 해줘야만 그의 주변에 머물 수 있었는데······. 이젠 그가 부르지 않아도 멋대로 나올 수 있었고, 심지어 남작령 바깥, 꽤 먼 곳까지도 오갈 수 있었다.
일정 시간이 지나기 전에 다시 돌아와야 하긴 했지만, 그게 어디인가?
요정 공주, 히나리리리아네 본인의 능력과 수많은 마법진의 중첩공명이 만들어낸 짜릿한 자유가 아닐 수 없다.
다만 그녀는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 변장을 했다.
요정공주 특유의 2쌍의 날개와 무지개빛 광채는 숨기고 드레스도 벗어던진 채 셔츠와 바지만 입은 것이다.
그런 히나리리리아네가 남작령을 빠르게 가로질러, 아담한 숲에 위치한 마법 학교로 날아들었다.
– 페르세타! 페르세타아!
“아, 오셨습니까?”
마법사들의 연구를 흐뭇하게 지켜보던 페르세타가 손을 가슴어림까지 들어올리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히나리리리아네는 그런 그의 손가락에 살포시 내려 앉아서 오늘 보고 온 것들을 재잘재잘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 페르세타! 내가 뭘 봤는지 알아?
“오늘도 멀리 다녀오셨습니까?”
– 응! 남작령 다 둘러보고 옆 동네 펠릭스 자작령까지 다녀왔지.
“기운도 넘치십니다.”
– 그래. 이렇게 기운 넘치는 나를 그동안 네가 가둬둔 거라고.
“하지만······. 늘 연구할 마력도 빠듯했던 걸요?”
– 진짜! 그대는 단 한 번도 듣기 좋은 말을 하지 않는구나!
손가락에 앉아 있던 히나리리리아네가 발딱! 일어서서 조그만 발로 페르세타의 손가락을 팍! 팍! 찼다.
물론,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아픈 체를 하지 않으면, 공주의 심술이 더 커진다는 걸 알았기에, 페르세타는 아픈 척 인상을 찌푸리며 엄살을 부렸다.
“아야. 아픕니다. 그만하시죠. 그나저나 뭘 보고 오셨습니까?”
슬쩍 화제를 넘기자, 히나리리리아네는 장난감을 좇는 고양이처럼 금세 그 화제를 따라왔다.
– 아! 맞다. 엄청난 걸 보았다. 너희 영지에 지금 기린이 와 있는 걸 아느냐?
잔뜩 뻐기듯 말하는 히나리리리아네.
그런데 그 내용이 뻐길 만한 것이었다.
“기린이요?”
– 응! 마차를 끌고 있는 기린이었다!
“어······. 그런 마차면······ 제국의 현자가 타는 마차밖에는 없을 텐데. 결국 현자도 왔군요? 많이 늦길래 안 올 줄 알았는데, 잘 됐네요.”
– 어떠냐? 내 소식이 꽤 쓸 만하지?
“네. 네. 감사합니다.”
– 근데 또 있어.
“그 정도 소식이 또 있습니까?”
– 응! 펠릭스 자작가에도 갔다고 했잖아!
히나리리리아네가 말투를 다시 친근하게 바꿔서 사근사근 말했다.
– 거기서는 천사의 냄새가 나는 여자애를 발견했어! 하얀 복장의 사람들이 잔뜩 둘러싸고 있었는데, 그 사람들에게서도 희미하지만 천사 냄새가 났어.
“천사요?”
페르세타는 깜짝 놀랐다.
<알마게스트>를 따르는 현재의 마법사들은 다섯 상계와의 연결을 어려워한다.
특히 신계와의 연결은 대마법사 프톨레마이오스조차 임의로 할 수 없을 만큼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했던 것이다.
뭐, 사실 그 이유는 그리 대단한 게 아니기는 했다.
모든 신비세계가 인간계를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알마게스트>의 가설에 따르면, 다섯 상계(上界)의 정확한 주파수를 잡을 수 없는 게 당연했으니까.
‘사실 중심엔 마나의 태양이 있고, 신계, 마계, 영수계, 설화계, 명계, 인간계 순으로 늘어서서 마나의 태양을 공전하고 있어서 그렇지.’
몰라서 그렇지, 알면 사실 간단했다.
신계, 마계, 영수계, 설화계, 명계는 모두 마나의 태양을 넘어가며 공전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알마게스트>에 따르면 그 다섯 세계가 인간계를 중심에 두고 공전을 하는 것으로 표현되지 않는가? 그러면 인간계를 중심으로 늘 일정거리 이상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잘못된 결론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떠한가?
중심이 마나의 태양이기에 상계들은 태양을 넘어갔다 돌아오며, 인간계와 한참 떨어졌다 다시 가까워지는 궤도 위에 있다. 그러니 도플러 효과로 인한 주파수의 변화도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 주파수가 제대로 측정이 안 되는 게 당연했다.
심지어 마나의 태양과 가까이에 있는 천체들이었기에, 강력한 마나파로 인해, 안 그래도 부정확한 주파수에 노이즈마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주파수를 잡아내려면, <첼레스티움>에 기반한 정확한 궤도와 좌표계산이 필요했다.
그러니 신계와의 소통은 아직 불가능해야 하는데······. 천사의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이라고?
‘그런 사람이라면······. 성교회의 신학자들과 성녀밖에는 없겠지?’
페르세타는 스승에게 배운 정치적 지식을 동원해 그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들이 왜 펠릭스 자작가까지 왔는지도.
‘악마 소환을 감지했구나.’
역시, 약식으로 만든 방비로는 부족했던 모양.
– 근데 그 사람들 되게 심각해보이던데? 페르세타가 뭐 잘못한 거 아니야?
그 말에 페르세타는 웃으며 고개를 절레 절레 저었다.
“아뇨. 괜찮을 겁니다.”
– 진짜? 악마를 소환한 게 틀림 없다며 처단이 뭐 어쩌고 하던데.
“그 사람들은 걱정 안 해도 돼요.”
– 왜?
“그야. 천사 한 번 소환해주면 되니까요.”
– 아~ 그런 거야?
“네. 그런 거예요. 아무튼 소식 알려줘서 고마워요.”
페르세타는 씩 웃고는 히나리리리아네에게 손톱만한 마법체를 잘 빚어서 넘겼다.
– 왓! 맛있는 거다! 오늘은 무슨 맛일까?
히나리리리아네는 그 마법체를 마치 빵이라도 되는 것처럼 양 손으로 쥐고 맛있게 뜯어먹었다.
페르세타는 그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물었다.
“아, 맞다. 혹시 즈바르트 보셨나요?”
– 네 동생? 봤지.
“지금 어디 있나요? 할 말이 좀 있어서.”
– 음······. 뒷동산에서 검술 수련중이더라.
“아, 감사합니다. 그럼 잠시 다녀올게요.”
– 뭐야! 같이 가!
“가족끼리 할 얘기예요. 안 돼요.”
페르세타는 부드럽게, 그러나 단호하게 거절을 하곤 히나리리리아네를 손가락에서 날려보냈다.
날아오른 히나리리리아네는 신경질적으로 날개를 파닥였다.
– 흥! 내가 뭐 너 아니면 같이 놀 사람이 없는 줄 아느냐? 살리랑 놀 거야!
“바쁜 사람 너무 귀찮게 하진 마시고요.”
– 흥!
히나리리리아네가 콧방귀를 뀌고 창문 밖으로 사라졌다.
페르세타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겉옷을 입었다.
그는 즈바르트를 생각했다.
‘요새······. 힘들겠지?’
자신이 돌아온 것을 진심으로 기뻐해준 착한 동생이었다.
하지만, 그 마음이 어떨까 생각하면 페르세타는 가슴이 아팠다.
‘내가 온 뒤로, 즈바르트의 역할이 사라졌어.’
가문을 살리기 위해 좋은 자리도 다 마다하고 돌아온 녀석이 아니던가?
하지만 가문의 빚은 페르세타가 청산해버렸고, 가문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결정도 대개 페르세타를 통해 이뤄지고 있었다.
스승님께 배운 지식을 동원하면, 사람은 보통 이럴 때 소외감이라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더 빨리 눈치 챘어야 했는데······.’
사람과의 관계마저 책으로 배웠던 페르세타였기에, 이걸 깨닫는 게 조금 늦었다.
그래도, 이제부터라도 잘 해결해봐야지.
페르세타는 속으로 다짐하고 길을 나섰다.
목표는 착한 동생 즈바르트.
한창 소외감을 느끼고 있을 녀석을, 가문의 든든한 수호기사로, 대륙에 이름을 떨치는 기사로, 재탄생시켜줄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