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23)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23화(23/171)
23화 산책
즈바르트는 요즘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 형이 돌아온 건 기뻤다. 그건 정말이었다. 형을 생각하면 막 마음이 편안해지고, 기분이 좋아졌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밉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즈바르트는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뒷동산에 올라 검을 휘둘렀다.
한참 땀을 빼고 있다보면, 잡생각이 가라앉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하지만 오늘은 그것마저도 통하지 않는 날이었다.
‘나는······. 쓸모 없는 게 아닌가······?’
지난번, 펠릭스 자작 사건 이후로 이런 생각이 더 강해졌다.
그때 자신이 무얼 했는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바보같이 펠릭스 자작의 기병도에 깔려 바닥을 기었을 뿐이었다.
그랬기에, 페르세타가 나타나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나왔을 때에도······. 즈바르트는 그냥 앉아 있었다.
가족들이 함께 껴안고 안도하는 걸 홀로 떨어져서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스스로가 한심해서.
마법이 너무나 대단해보였다.
하지만 이제 와서 마법을 배우기엔 너무 늦었다.
할줄 아는 건 검술뿐인데, 그마저도 별로 쓸모가 없다.
‘기프트라도 있었으면 좀 달랐을까······.’
그는 문득 아카데미 시절을 생각했다.
그때 그의 별명은 만년 차석이었다.
입학시험에서부터 졸업시험까지 단 한 번도 수석을 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노력?
자신이 더 많이 했다 생각한다.
재능?
검술과 오러의 재능이라면 결코 뒤지지 않았다 생각한다.
하지만 결코 수석이 될 수 없었던 이유. 그게 바로 기프트였다. 선택된 기사만이 가질 수 있는 축복. 또는, 성 몇 개는 사들일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뿌려, 강제로 개화시킬 수 있는 초능력.
기프트.
항상 수석을 가져갔던 그 녀석은 제국에서도 내로라 하는 가문의 후계자였고, 당연하다는 듯 기프트를 개화시키는 대법을 받았다.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남작령의 차남인 즈바르트에게는, 당연히 그런 게 없었다.
그게 둘의 운명을 갈랐다.
즈바르트는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곤 했다.
만약 자신에게 기프트가 있어서, 제국 아카데미를 수석으로 졸업했더라면······. 그래도 나는 고향으로 돌아왔을까?
차석과 수석의 대우는 어딜 가나 다른 것이고, 심지어 그 차이에 기프트의 유무까지 더해지면, 그건 비교가 의미 없어지는 수준이 되었다.
결국 정상 오르는 자들은 모두 기프트를 가지고 있으니까.
아마도, 자신이 그런 위치에 있었다면······. 아마 그 부귀영화까지 포기하고 고향으로 돌아오진 않았을 것 같다.
그게 즈바르트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근데 이게 뭔가.
그래도 스스로 주도해서 능력을 펼쳐보자는 마음으로 돌아온 고향에서조차, 할 수 있는 게 없다니.
또······.
두 번째라니······.
즈바르트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냥 떠날까······.”
이제라도 번듯한 기사단에 들어가 실력을 쌓고 경력을 쌓는 것. 그게 차라리 가족들에게도 더 좋지 않을까?
“가지마.”
갑작스런 목소리에 즈바르트는 깜짝 놀랐다.
돌아보니, 막 언덕을 올라오는 페르세타가 보였다.
“즈바르트.”
“어······. 어, 형······.”
즈바르트는 속내를 들켰다는 생각에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짜증이 날 정도였다.
그런 즈바르트의 눈을 들여다보며 페르세타는 말했다.
“가면 안 돼. 네가 필요해.”
울컥.
그 말이 왜 이리도 얄밉게 들리는지.
“······위로할 필요 없어.”
즈바르트는 당장이라도 왁왁! 소리를 질러버리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내며, 간신히 답했다.
“좀 걸을까?”
페르세타가 앞장섰다.
그래. 말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걷는 게 낫겠다.
즈바르트는 그런 생각을 하면, 터덜터덜 페르세타의 뒤를 따랐다.
걷는 내내 페르세타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즈바르트는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하며 땅만 내려다보며 걸었다.
언덕 능선을 지나, 내리막길에 들어서고, 내리막을 걷고, 내리막을 계속 내려가는데······.
‘뭐지?’
즈바르트는 뒤늦게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왜 계속 내리막이야?’
뒷동산은 그리 높지 않았다. 벌써 평지에 닿아도 5번은 닿았어야 할 만큼 내리막을 걸었는데, 이상하게 아직도 그들은 내리막 위에 있었다.
“어······?”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던 즈바르트는 깜짝 놀랐다.
“여기가, 어디야······?”
깊은 숲 속이었다.
심지어 캄캄한 밤이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밝은 대낮이었는데, 언제 이렇게 어두워졌지?
아니 애초에, 우리 남작령에는 이런 빽빽한 숲이 없잖아?
즈바르트는 우울했던 감정도 잊고 얼이 빠져버렸다.
그러나 페르세타는 태평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환요계에 있는 인연의 숲이야.”
“환요계? 환요계라고? 우리가 지금 환요계에 와 있는 거야?”
그 말에 페르세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완전히 넘어온 건 아니고. 그냥 차원의 경계에 중첩된 상태라고 생각하면 돼. 우리 영지에도 요정들이 나타나잖아? 이번엔 우리가 환요계의 요정이 된 셈이랄까.”
페르세타는 나름 설명을 한다곤 했지만, 즈바르트로서는 그걸 알아들을 방법이 없었다.
“아무튼 여기가 환요계라는 거지?”
“음······. 네 눈에 보이는 풍경이 환요계냐고 묻는다면. 맞아.”
“미친······.”
즈바르트는 기사였으나, 그래도 그 역시 마법사 가문의 자제였다.
이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상황인지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니. 애초에 신비세계가 멀어져서 요괴 하나 소환하기 어려워하는 게 현실인데······. 소환이 아니라, 아예 환요계로 넘어온다고?
대체 자신의 형은 어떤 존재란 말인가? 이제는 울컥하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그저 기가 팍 질려버렸다.
페르세타는 어쩐지 위축된 동생을 보며 차분히 말했다.
“즈바르트.”
“으, 응?”
“기프트. 갖고 싶지 않아?”
기프트를. 갖고 싶지 않냐고?
손끝이 떨렸다. 턱끝이 떨렸다.
즈바르트는 간신히 목소리를 빚어 입밖으로 토해냈다.
“그걸······. 갖고 싶다고······. 가질 수가 있어······?”
“가능하지. 선천적으로 타고 날 수도 있지만, 후천적으로 얻는 기프트는 대개 신비세계에서 가져오거나, 계약을 통해 얻어내는 것이니까.”
페르세타는 뭐든 알고 있었고, 즈바르트는 전혀 모르던 새로운 사실에, 전율을 느끼며 몸서리를 쳐야만 했다.
“형······. 그러니까 형 말은······. 내가······. 기프트를 얻을 수 있다고? 여기 환요계에서······?”
“응. 너는 오늘 기프트를 얻을 거야. 그래서, 네가 우리 가문을 수호해야지.”
꿀꺽.
즈바르트의 목으로 마른 침이 넘어갔다.
그의 몸을 흔들던 떨림이 차츰차츰 가라앉았다.
즈바르트의 눈이 깊어지고 고요해졌다.
마침내.
모든 떨림을 가라앉힌 즈바르트가 처음으로 페르세타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뭘 하면 돼?”
“증명하면 돼.”
“증명?”
“응. 환요계의 요괴가, 널 보고······. 기꺼이 자신의 요술을 나눠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느끼도록. 그렇게 네 자신을 증명하면 돼.”
휘이히히히이히-
즈바르트와 페르세타 사이로, 환요계의 요사스러운 바람이 스쳐지나갔다.
**
즈바르트는 환요계, 인연의 숲을 걸었다.
페르세타는 몇 걸음 떨어져서 그의 뒤를 따랐다.
인연의 숲의 외곽부는, 그저 빽빽하고 아무것도 없는 검은 숲으로만 보였지만, 중심부로 들어가자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북적북적-
나무 사이사이로 크고 작은 목조건물들이 들어서고, 수많은 요괴들이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옷자락을 펄럭이며 지나다녔다.
그곳은 일종의 시장이요, 상점가였다.
“아니. 무슨 요만한 능력 하나 사는데 요기를 그렇게 달래? 미쳤어?”
“아. 싫음 사지마! 가! 가! 안 팔라니까.”
“아니······. 그러지 말고.”
곳곳에서 요괴들이 목소리를 높여 흥정을 한다.
인연의 숲. 이곳에서 거래되는 물건은 요괴들의 고유 능력, 즉 요술이었다.
어떤 요괴는 바람을 다스리는 요술을 팔고, 어떤 요괴는 둔갑술을 팔고, 어떤 요괴는 땅 속으로 이동하는 요술을 판다.
즈바르트가 기프트를 얻는 방식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었다.
이곳에서 요술을 사서 초능력의 씨앗을 얻는 것.
일단 그 씨앗을 얻은 다음에는 스스로의 노력에 따라 요술을 더욱 성장시키거나 변화시킬 수도 있었다.
다만 페르세타가 즈바르트에게 권유한 방식은, 일반적인 거래 방식이 아니었다.
‘투자······를 받아내라고 했지?’
페르세타가 말한 증명이 바로 그런 뜻이었다.
그 누구보다 요술을 빠르고 강하게 키워낼 가능성을 입증하는 것.
요괴들은 그런 가능성을 가진 인간에게는 ‘투자’를 했다.
자신이 가진 원기를 뚝! 잘라서 강력한 요술을 넘겨주는 것이다. 대신, 그 능력을 받아간 인간이 그 요술을 품어 더욱더 강하게 발전시키고 변화시키면, 그때 그걸 공유받아 자신의 능력의 더 크게 키웠다.
그게 바로 요괴들의 투자방식.
그렇기에, 이것만큼은 페르세타도 도와줄 수 없었다.
‘투자’는 어디까지나 요술을 건네주는 요괴와 그걸 건네받는 인간 당사자 사이의 계약이었으니까.
즈바르트는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를 증명해내야만 했다.
그 사실이,
그를 더욱 타오르게 했다.
‘내가. 내 가치를. 증명한다.’
근래 들어 스스로조차 의심하고 있던 자신의 가치.
그걸 객관적으로 평가받아보는 자리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즈바르트가 의지를 다지며 고요히 나아갈 때, 뒤에서 묵묵히 따라오던 페르세타가 문득 물었다.
“그래서. 어떤 능력을 얻을지는 정했어?”
“응.”
“어떤 거?”
“불꽃. 이곳에서 가장 강력한 불꽃.”
그 말에.
페르세타는 조금 난처한 기색을 흘렸다.
“불꽃? 음······. 아까 말했다시피 나는 괴력을 추천하는데······.”
“그래서 고민 많이 했는데. 역시 난 불꽃을 원해.”
“하지만 환요계에서는 너에게 어울리는 붙꽃을 찾을 수 없어. 아까도 말했다시피, 환요계의 불꽃은 뜨겁고 강한 불꽃이라기보다는 일렁이며 상대를 홀리고 속이는, 그런 불꽃이거든. 너는 힘을 위주로 하는 검술을 쓰잖아. 너에게 어울리는 불꽃을 얻으려면 설화계나 영수계까지 가야돼. 하지만 그곳의 존재들은 지금 너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어.”
즈바르트는 고개를 끄덕였어.
“이해했어. 형. 그래도 불꽃을 원해. 불꽃으로 시작해야 언젠가 설화계나 영수계에 갔을 때도 불꽃을 받아 그걸 더 강화시킬 수 있는 거라며.”
“그야······. 그렇기는 한데······. 차라리 지금은 괴력을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불꽃을 받아서 괴력과 불꽃 모두를 다루는 식으로 가도.”
“아냐. 나 정말 많이 생각했어. 아주 오래전부터. 나에게 기프트가 있다면 그걸 어떻게 사용할까······. 불꽃이야. 그게 어떤 붙꽃이든, 불꽃이기만 하면 돼.”
즈바르트가 이렇게까지 나오자 페르세타도 더는 말리지 않았다.
“네 판단이 그렇다면······. 그럼 누구에게 불꽃을 받을지 정해보자.”
“가장 강한 불꽃을 가진 존재.”
즈바르트는 숨도 쉬지 않고 답했다.
페르세타의 눈이 깊어졌다.
“쉽지 않을 거야. 그런 존재가 하나 있긴 한데, 별로 관대한 분이 아니거든. 그를 실망시키면, 너, 꽤 힘들어질 지도 몰라.”
“상관없어.”
페르세타는 즈바르트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것은 오기도 치기도 아니구나.
오롯하게 뜻을 세운 사람은 바로 저런 눈을 가지는구나.
어쩐지 기꺼운 마음이 들었다.
씩 웃어보인 페르세타는 즈바르트의 앞으로 나섰다. 그를 인도했다.
“그래. 그럼 가자.”
“어디로?”
페르세타는 대답 없이 몇 걸음 앞서 걷다가, 툭, 흘리듯 대답했다.
“구미호. 불야성의 성주님한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