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24)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24화(24/171)
24화 여우달
불야성의 성주, 구미호는 인연의 숲 한복판에 있는 호수에 머무른다.
호수의 주변에는 귀신들이 지나는 문으로 알려진 홍살문이 빼곡하게 서 있고, 곳곳엔 황금색 새끼줄이 금줄로 걸려 있다. 나무기둥마다 오방색 천들이 주렁주렁 달려 스산한 분위기를 더했다.
그 한 가운데엔 거울처럼 잔잔한 호수가 잔물결도 없이 영원한 밤이 계속되는 환요계의 달빛을 품는다.
호수 복판에 있는 작은 인공섬에 작은 정자. 구름같은 머리를 틀어올린 구미호는 늘 그곳에 앉아서 술을 마시고 나른하게 책을 읽었다.
“오랜만이구나.”
구미호는 길게 늘어진 소매를 내려 술잔을 떨어뜨리고 슬쩍 고개를 돌렸다.
페르세타가 깊이 고개를 숙였다.
“불야성의 성주님을 뵙습니다.”
구미호는 그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혀를 찼다.
“난 그대가 싫다. 나보다 잘난 인간은 불쾌해.”
“항상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바로 그런 점이 더 싫다는 거다.”
그녀는 느릿하게 고개를 돌리더니 긴장한 채 서 있는 즈바르트를 들여다보곤 다시 혀를 찼다.
“이건 뭐냐? 설마 나더러 이런 자에게 투자를 하라는 건 아니겠지?”
“부탁드리겠습니다.”
“싫다. 이것은 너보다 더 마음에 들지 않는구나. 난 힘에 의존하는 무식한 자는 질색이다.”
“그래도 부탁드립니다.”
구미호가 아직도 허리를 숙이고 있는 페르세타를 바라보며 붉은 혀로 입술을 축였다.
“그렇다면 이건 그대가 내게 빚을 지는 것이겠구나?”
“물론입니다.”
“그럼 좋다.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톡.
구미호의 붉은 입술이 열리고 그 안에서 손톱만한 여우구슬이 흘러나왔다.
“거기 멍청한 것아. 영광으로 알고 삼키거라.”
휙-
구미호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작은 여우구슬이 빛살처럼 날아 즈바르트의 입속으로 빨려들어갔다.
“헙······!”
즈바르트는 놀랐으나, 최대한 빨리 침착을 되찾고 제 몸을 관조했다.
느껴졌다.
마치 원래부터 자신의 일부였던 것처럼, 가슴에 움튼 힘이 느껴졌다.
구미호가 스르르 몸을 일으킨다.
“최선을 다하거라. 저 기분 나쁜 마법사놈의 부탁이라 들어주는 것이지만, 너무 날 실망시키면 벌을 내리겠느니라.”
딱!
구미호가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공간이 출렁거렸다.
아늑했던 정자가 고무줄처럼 늘어나며 순식간에 아득한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넓어지고 천장은 하늘처럼 높아졌다.
“자, 그럼 내가 준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서 한 번 버텨보려무나.”
구미호의 목소리는 마치 깊은 동굴에서 울려퍼지는 것처럼 메아리치며 흩어졌다.
그녀의 몸도 마찬가지였다.
불길에 휩싸인다 싶더니, 순식간의 그녀가 수백명으로 불어났다.
화르르르-
사방에서 불과 연기가 피어올라 시야를 방해했다.
“이것이. 여우불이라는 것이다.”
휘릭! 휙!
수 백명의 구미호에, 사방을 뒤덮은 불길.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와중에, 스르르 피어난 푸른 불꽃들이 즈바르트를 향해 화살처럼 쏘아졌다.
“흡!”
쩡! 쩌정!
오러를 끌어올려 롱소드를 휘두르며 불꽃을 쳐내는 즈바르트.
구미호는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너무 뻔해서 재미도 감동도 없구나. 이게 전부라면 정말 화가 날 거야.”
콰직!
불꽃 속에서 스르르 모습을 드러낸 구미호가 즈바르트의 오금을 짓밟았다.
그러자 또 그 옆에서 나타난 구미호가 한쪽 무릎을 꿇은 즈바르트의 머리를 걷어차 버렸다.
콰앙! 콰콰콰!
그 엄청난 괴력에 즈바르트의 몸이 수십 미터를 날아 마룻바닥을 부수며 틀어박혔다.
구미호가 페르세타를 힐끗 돌아봤다.
“내가 저것의 팔다리를 망가뜨려도 날 원망하지는 말거라.”
“······저는 제 동생을 믿습니다.”
“흥.”
타박타박
맨발의 구미호는 긴 옷자락을 바닥에 질질 끌며 쓰러진 즈바르트를 향해 다가갔다.
수 백명의 구미호들이 불길 속에서 아른거리며 그 걸음을 함께 한다.
“끅······.”
즈바르트는 신음을 흘리며 일어섰다.
“호오······?”
그런데 그런 즈바르트의 눈이 아까와는 달랐다.
화르르 타오르는 불꽃을 품은 눈.
그 모습에 구미호가 흥미를 보였다.
“마안을 각성했구나? 무식한 놈이 집중력 하나는 쓸만 하구나. 그래도 저 기분 나쁜 마법사 놈의 동생이다 이건가?”
즈바르트는 몸을 일으켜 자세를 다시 잡았다.
마안을 각성한 그는 이제 더이상 환술에 속지 않았다. 등불처럼 타오르는 눈으로 거짓과 진실을 판별하고 그 너머를 꿰뚫어 봤다.
구미호는 그 모습을 보고 다시 혀를 찼다.
“이제 보니 마안을 제대로 각성한 것도 아니구나. 꿰뚫어보기는 하나, 상대를 현혹하지는 못하는 반쪽짜리 마안이로다. 마안을 각성했는데도 그렇다는 건, 재능이 없다는 게지. 넌 무언가를 속이는 재주가 없구나.”
피피핑!
쏘아지는 푸른 여우불.
즈바르트는 이제 그걸 똑바로 보고 모두 피하고 쳐냈다.
심지어 중간중간 나타나 발길질을 해대는 구미호의 분신들도 모두 맞상대했다.
하지만,
“몸놀림은 쓸만하지만 전형적인 천한 것의 싸움이구나. 이리하면 어찌할 것이냐.”
구미호가 붉은 입술을 열어 말했다.
[그만 하고 이리 오너라.]덜컥.
즈바르트의 몸이 굳었다.
즈바르트가 홀린 듯 구미호를 향해 걸어왔다.
그는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어떻게든 저항을 하려 했지만, 그게 쉽지 않은지, 자꾸만 눈동자가 몽롱하게 풀려버린다.
[옳지. 거기 꿇어 안고 머리를 땅에 붙이거라.]즈바르트가 몸을 낮춘다. 그의 머리가 땅으로 내려간다.
콰직!
구미호가 그런 즈바르트의 머리를 맨발로 밟아버리곤 페르세타를 돌아보았다.
페르세타는 조금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그래도 힘을 꾹 주고 말했다.
“저는 제 동생을 믿습니다.”
“그 동생이 지금 하찮게 바닥을 핥고 있구나. 응?”
끄그그극!
바닥에 엎드리고 있던 즈바르트가 마루를 부스러뜨리며 몸을 다시 일으켰다.
구미호는 그 기세에 기우뚱 밀려 뒤로 물러섰다.
“······? 저항을 했어? 어떻게 한 게냐?”
즈바르트는 그 물음에 답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구미호를 향해 몸을 날릴 뿐이었다.
“음?”
근데 그 속도가 아까와는 천양지차였다.
콰아아앙-!
어찌나 빨랐는지, 구미호가 미처 피하지도 못한채, 부채를 펼쳐 그 공격을 막아야 했을 정도였다.
쿵쿵!
구미호는 그러고도 충격을 다 해소하지 못해 두 걸음을 뒤로 물러섰다.
그녀는 황당해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뭐니?”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다.
쩌저저정!
쩡!
즈바르트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환술은 가볍게 간파했고, 무수한 구미호의 분신체들은 압도적인 힘과 속력으로 짓눌렀다.
일방적으로 당하던 아까와는 달리, 대등한 싸움이 펼쳐졌다.
“하아······.”
구미호가 깊은 탄식을 흘리며 혀로 입술을 핥았다.
“보통 미친 놈이 아니로다.”
즈바르트의 변화가 어디서 기인했는지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여우의 불꽃으로 자기 자신을 속여?”
구미호는 즈바르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꽃에 주목했다.
구미호의 불꽃은 그 뜨거움보다는 상대를 속이고 현혹시키는 것에 특화된 불꽃.
헌데 즈바르트는 그 불꽃으로 제 몸의 근육과 세포 하나하나를 태워 자기 자신을 속였다.
스스로의 한계를 속여, 그 한계를 뛰어넘어버렸다.
그렇게 얻어낸 압도적인 힘과 속력.
“재밌구나 너.”
구미호가 처음으로 웃었다.
그리고······.
화르르!
곧이어 즈바르트의 검에서 피어오르는 불꽃을 봤을 땐, 그녀의 두 눈이 몽롱하게 풀려버렸다.
그녀가 멍하니 물었다.
“그건 무엇이냐? 어떻게 한 것이냐? 내 불은 그토록 뜨거울 리가 없거늘······.”
지금 즈바르트의 검에서 뿜어지는 열기는, 멀리 떨어진 페르세타조차 견디기 힘들 정도로 뜨거운 것이었다.
주변의 대기가 달아올라 일렁거려, 즈바르트의 몸 전체가 아지랑이처럼 흩어져보일 정도였다.
즈바르트는 검을 고쳐 잡으며 대답했다.
“세상을 속여보았습니다.”
“세상을 속였다? 아······! 법칙을 속인 게로구나! 나의 불을 층층이 겹친 거야!”
본래 불꽃이라는 것은 서로 겹치지 않는 것이다.
두 개의 촛불을 한데 모아봤자, 불꽃이 커질뿐이지, 그 불이 서로 겹쳐서 온도가 더 올라가는 일은 없다는 것.
허나, 지금 즈바르트는 그걸 해냈다.
세상을 속이는 여우의 불꽃이 가진 속성을 이용해, 불꽃을 겹치고 또 겹쳐서 더욱더 뜨거운 불을 만들어냈다.
“하아······.”
또 한번 길게 탄식하는 구미호.
즈바르트가 그런 그녀에게 다시 달려들려던 순간.
“그만. 그만하자꾸나.”
구미호가 등을 돌렸다.
휘리릭!
순식간에 세상이 변했다.
수많은 분신체들이 사라지고, 타오르던 불꽃도 사라지고, 끝없이 높고 넓어졌던 정자도 본래의 크기로 돌아왔다.
“어······? 어? 끝입니까?”
즈바르트가 어리둥절 물었다.
“그렇다. 그러니 그대도 불꽃을 거두도록 하라.”
뜨겁게 타오르던 즈바르트의 검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휙!
구미호는 몸을 돌려 즈바르트를 마주보고 말했다.
“좋다. 결심했다. 무식한 것도 아름다울 수가 있다는 걸 오늘 깨달았다. 너는 저 기분 나쁜 마법사와는 천지차이구나.”
그녀는 잔뜩 긴장한 즈바르트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그대에게. 나를 주도록 하마.”
“아! 감사······ 예?”
“나를 갖다니, 영광으로 알거라.”
“예, 에?”
훌쩍.
구미호는 한 걸음으로, 마법처럼 공간을 격하고 즈바르트의 앞으로 다가섰다. 키가 191인 즈바르트에 비해서도 그다지 작지 않은 그녀가 즈바르트의 멱살을 잡아 끌어당긴다.
“어······?”
멍청한 소리를 흘리던 즈바르트의 입술에 구미호의 붉은 입술이 진하게 달라붙었다가 떨어진다.
즈바르트는 달콤한 석류 향을 맡았다.
구미호가 넋이 나간 즈바르트의 귀에 속삭인다.
“내 이름은 여우달이다. 불야성주 구미호의 첫번째 꼬리지.”
순간 바람이 불어닥쳤다.
여우달의 모습이 하얀 털이 복실복실한, 커다란 꼬리 하나를 가진 여우로 변하더니 그대로 즈바르트의 입속으로 빨려들어갔다.
“흐읍······!”
즈바르트는 황급히 입을 닫았으나, 이미 여우달은 완전히 그의 입 속으로 자취를 감춘 뒤였다.
그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혀, 형······. 이게 어떻게 된······”
페르세타는 미소를 지었다.
동생을 믿고는 있었지만 이런 결과가 나올 거라곤 상상도 못했으니까.
“어떻게 되긴. 엄청난 걸 받은 거지.”
“어, 엄청난 거?”
“그래. 구미호님의 꼬리는 하나하나 살아있는 존재이며, 동시에 구미호님의 일부이고 그 분의 본원진력이 깃든 영물이야.”
“그, 그럼······.”
“원래는 그분의 여우구슬만 받아도 대성공이라고 생각했는데······. 구미호님의 일부를 공유하게 된 셈이 됐네. 이건 단순히 능력을 받은 수준을 뛰어넘는 거야. 심지어 첫번째 꼬리라니. 축하한다! 즈바르트!”
즈바르트는 페르세타의 눈을 보고 알았다.
진짜 대단한 일이 벌어졌다는 걸.
언제나 대단한 일을 일으키는 쪽이었던 페르세타의 두 눈동자에 숨길 수 없는 기쁨과 놀람이 담겨 있었으니까.
즈바르트는 주먹을 쥐어 자신의 가슴에 대었다.
두근, 두근.
가슴 안에서 맥동하는 어떤 힘이 느껴졌다.
처음 여우구슬을 받았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힘.
멍하니 그 힘을 느끼고 있는 즈바르트의 팔을, 페르세타가 잡아당겼다.
“이제 돌아가자 슬슬 나도 포럼에서 발표를 해야 할 때라서.”
“아, 응!”
황급히 페르세타의 뒤를 따르는 즈바르트.
그는 문득 어느 여인의 흐드러지는 웃음소리를 들은 것만 같아 뒤를 돌아보았다.
어쩐지, 가슴이 간질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