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25)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25화(25/171)
25화 세계라는 선입관
“스승님. 정말 여기에서 악마가 강림했다는 건가요?”
“저희는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
진 리안느와 알 아네드.
두 제자는 땅에 손을 대고 마력파장을 느껴보기도 하고 흙을 채취해 시약과 섞어 흔들어보기도 하더니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현자 시에넬 미르사의 판단은 달랐다.
“어리석은 녀석들아. 보이는 것만 찾으면 어떡하느냐.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야지.”
“보이지 않는 것이요?”
진 리안느가 짧고 까만 단발머리를 흔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시에넬이 혀를 쯧쯧 찼다.
“이미 날아가버린 마계의 파장을 찾아서 무얼 하느냐.”
“그럼요?”
“마계의 파장이 지나간 흔적을 찾아야지.”
“아······?”
알 듯 모를 듯 그런 표정을 짓는 진과 알, 두 제자를 보며 시에넬은 땅 한쪽을 짚었다.
“이곳. 여기의 마나를 잘 느껴보거라. 미세한 변형이 보이지 않느냐? 마계의 파장은 우리 세계의 파장보다 훨씬 밀도가 높고 강력하기 때문에 이렇게 흔적을 남긴다. 무언가가 뚫고 지나간 흔적이 남는 거지.”
알과 진이 다가와서 그곳에 손을 얹었다.
잠시 눈을 감고 끙끙거리던 둘이 식은땀을 흘리며 다시 눈을 떴다.
“모······르겠는데요?”
“스승님. 괜히 아는 척 하시는 거 아니에요?”
시에넬은 멍청한 제자 진에게는 꿀밤 한 대를 놓고 건방진 제자 알에게는 꿀밤 세 대를 놓았다.
“윽······. 죄송해요.”
“아, 저는 왜 맞는데요.”
시에넬은 끝까지 건방진 알의 머리에 꿀밤을 한 대 더 놓고 몸을 일으켰다.
“어쨌든 가자. 이곳에 악마가 강림했던 건 틀림없어 보이는구나. 그럼 이제 그게 소환이었는지, 아니면 자연적인 강림이었는지, 그걸 알아봐야지.”
그 말에, 알과 진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드디어 포럼에 가는 건가요?”
시에넬이 혀를 차며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 이것들아. 빨리 가자꾸나.”
알과 진이 후다닥 마차 안으로 따라들어갔다.
“네! 스승님!”
“결국 이렇게 될 거 진작 포럼부터 갔으면······!”
딱!
마차 안에서 찰진 꿀밤 소리가 울려퍼졌다.
**
“오늘 포럼 주제는 뭐야?”
“그러게. 아직도 뭐가 남았나? 어제까지 해서 이론적인 부분은 끝이 난 거 같은데······.”
“아, 혹시 그건가? 신비세계가 멀어진 이유를 추측했다고 했잖아. 그······. 그 누구냐?”
“페르세타 베리테? 이 영지의 도련님?”
“아, 맞아. 그 사람.”
“흐음······. 추측이라. 어떤 추측이길래 아란드리아에서 이름까지 실어줬으려나.”
베리테 남작령 외곽. 작은 숲에 위치한 마법 학교.
그곳의 대형 강당에는 마법사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전에 없던 자신감을 빛내고 있었다.
마법이 사라져가던 시대.
서서히 힘을 잃고 밀려나고 있던 마법사 특유의 우울한 분위기를, 적어도 이곳에서만큼은 털끝만큼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잃어버렸던 마법 상당수를 되찾았으니까!
그들은 이미 만족했고, 이제 이대로 포럼이 끝나도 별로 상관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느슨해진 긴장감 속에서, 한 인물이 등장했다.
끼이익-
대강당의 문이 열리던 순간, 문 근처에 서서 잡담을 나누던 마법사 하나가 무심코 문쪽을 돌아보았고 곧 그의 얼굴이 사색으로 물들었다.
“혀, 혀, 혀, 현자님!”
그 한 마디가 무슨 마법 주문처럼 강당에 떨어졌다.
우르르르르-
편하게 앉아서, 기대서, 환담을 나누던 마법사들이 일제히 기립했다.
남들과 달리 심각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던 제국 아카데미의 교장과 교수들도 일제히 몸을 일으켰다.
“현자님을 뵙습니다.”
제국의 현자.
그것은 마법사들의 왕과 다름없는 존재였다.
신비가 멀어지는 요즘 시대에도 홀로 자유자재로 마법을 사용하는 기적의 존재.
“흥.”
모두의 주목 속에 등장한 현자, 시에넬 미르사는 심술궂은 표정을 지으며, 포럼에서 사용되었던 자료집을 휙! 빼앗아 펼쳐보았다.
파라라락!
두꺼운 자료집을 1분도 되기 전에 넘겨 읽어낸 시에넬은 혀를 찼다.
“마나 주파수 문제를 풀었다니, 살리넬르란 마법사가 생각 외로 기특하구나. 나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다 해결했어. 하지만 그런 주파수를 기계장치에 의존해야만 감지할 수 있다는 건 마법사로서 참 안일하기 그지 없어. 떼잉······. 나 때 마법사들은 이렇지 않았는데.”
시에넬의 핀잔에 마법사들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들은 시에넬의 말이 허세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그녀의 마나 감응력은 대륙 전체에 명성이 자자했다.
그녀가 마나파 측정 장치 없이 그와 유사하게 주파수를 읽어내고 예측할 수 있다고 해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비록 습관적으로 불평을 늘어놓았을지언정, 살리넬르만큼은 높이 평가했다.
“그래도 확실히. 아란드리아에서 <알마게스트> 이래로 가장 위대한 마법적 성취라고 말할 만한 발견이야. 하지만······. 아쉽구나.”
시에넬은 씁쓸한 미소로 읊조렸다.
그녀가 최근 30년간 꽂혀 있는 주제는 전혀 다른 것이었으니까.
그녀는 <알마게스트>자체에 의문을 느끼고 있었다.
아직 명확한 근거는 찾지 못했지만, 그녀의 예민한 마나 감응력과 1세기를 넘는 시간 동안의 경험이 축적된 직감이었다.
그러다보니 그녀 입장에서는 <알마게스트>를 보완. 재확인 하는 내용에 가까운 <에멘다툼>이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갈증을 조금도 해소해주지 못했으니까.
시에넬은 아쉬움을 삭이며, 일단 지금 알아내야 할 것에 다시 집중했다.
‘만약 악마가 자연 강림한 게 아니라 소환된 거라면······. 누굴까? 가장 유력한 건 살리넬르 마법사였는데······.’
그래서 여기까지 찾아왔다. 그가 해냈다는 위대한 발견을 보면 뭔가 힌트가 있을까봐서.
하지만 애매했다. <에멘다툼>은 뛰어난 마법서지만 이것으로 마계의 악마를 소환할 수는 없다.
자료집에서도 에멘다툼의 예측이 다섯 상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 누구지······. 설마 페르세타?’
자신의 전임자였던 바르덴테의 수제자인 페르세타.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죽기 전에 바르덴테가 엄청난 비전을 완성했고 그걸 페르세타에게 전수했다면?
그걸 완벽하게 익히느라 30년의 세월이 걸린 거라면?
시에넬은 한층 더 깊어진 눈으로 강단을 바라보다 뚜벅뚜벅 걸음을 옮겼다.
“헛!”
“흠!”
강당에 가득하던 마법사들이 흠칫 놀라며 분분히 몸을 날려 그녀의 앞길을 일어주었다.
시에넬은 맨 앞자리, 정중앙에 당당하게 앉았다.
그녀의 두 제자가 그녀의 뒤에 시립하고 선다.
그제서야 마법사들은 눈치를 보며 현자 주변을 피해 적당한 자리에 앉았다.
곧이어, 강당의 문이 열리고 살리넬르와 페르세타가 들어왔다.
**
오늘의 발표는 마법사들의 예상대로 페르세타의 추측을 설명하는 자리가 되었다.
그리고 발표 내내, 페르세타는 심상치 않은 짜증을 느꼈다.
“추측이 참신하네.”
“그렇긴데······. 저거 안다고 뭐가 바뀌나?”
“그러게. 마법 쓰는데 도움이 되는 건 아닌 거 같은데?”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그 가치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마법사들도 나름 이유는 있었다.
그들은 2주 넘는 시간동안 살리넬르의 <에멘다툼>을 바탕으로 사라져 가던 마법을 되살리고, 어려웠던 주문을 손쉽게 해냈던 짜릿한 경험해왔다.
그때 느낀 희열이 너무 컸기에, 페르세타의 추측에 대해서는 시큰둥한 반응이 나오게 된 것이다.
오로지 몇몇 아주 학구적인 마법사들이 그 발표를 들으며, 인간계가 자전하고 있다고 가정할 때, 그것을 마법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 지를 고민했다.
반면에 또 몇몇은 대놓고 야료를 부렸다.
“참나. 저런 허황된 이야기를 하려고 우리 귀한 시간을 뺏은 거야?”
“아란드리아의 평가 시스템도 예전 같지가 않나? 저런 공상소설 같은 걸 합리적인 추측이라고 잘도 띄워주네.”
다 들리게 불평을 하는 자들.
그걸 듣고 있던 살리넬르는 불안해졌다.
‘아, 씹. 저 인간들 왜 저래? 페르세타 저거 표정이 안 좋은데······.’
그는 페르세타가 무서웠다.
언젠가 그를 짓밟고 뛰어넘겠다고 맹세했지만, 무서운 건 무서운 거였다.
‘페르세타. 좀만 참아라. 자전에서 시작해서 마나 태양의 황도가 비틀린 것까지 싹 말하면 돼. 그럼 다들 콧대가 꺾일 거라고······!’
한편, 미리 이 이야기를 들었던 제국 아카데미의 교장 이그나치오는 초조함과 의심을 느꼈다.
‘빨리 틀어진 마나 황도의 재계산 이야기를 듣고 싶군. 그게 정말일까······? 솔직히 아직도 믿기진 않는데······.’
오로지 단 한 사람.
이 강당에 모인 사람 중 단 한 명만이 어떤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그건 바로 현자 시에넬 미르사였다.
‘뭐지······? 우리 차원이······. 회전을 하고 있어?’
왤까?
그걸 상상하자, 벼락을 맞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만약······. 만약 정말 우리 차원이 회전을 하고 있다면······. 차원의 하늘을 가로질러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마나 태양과 신비세계도······. 사실 전부 착시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녀는 자전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했다. 다만 아직 그녀의 생각이 <알마게스트>의 세계관에 엮여 있었기에, 공전의 중심이 인간계가 아닌 마나 태양이라는 사실까지 곧바로 유추해낼 순 없었다.
다만 이걸 기반으로 연구하면 무언가 자신이 찾던 답이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을 느꼈을 뿐.
이렇게 저마다 페르세타의 발표를 다르게 판단하고 있는 와중에도, 예의를 말아먹은 몇몇 마법사들은 계속 떠들며 페르세타의 추측을 깎아내렸다.
사실 그들은 애초에 페르세타가 저 강단에 서는 것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페르세타를 무슨 마법사 지망생쯤으로 보고 있어야 저지를 수 있는, 무례한 행동이었다.
“그만 나갑시다. 언제까지 저런 허황된 이야기를 들어야 해?”
“그러니 말입니다. 무슨 근거도 하나 없는 상상을 추측이랍시고······. 제 제자가 저랬으면 가만 두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그 말소리들이, 한창 집중 중이던 현자 시에넬을 거슬리게 했다.
그녀가 짜증을 담아 꾸짖었다.
“조용히 하거라. 어린 것들아. 포럼 중이지 않느냐? 네놈은 누구 제자길래 행실이 그따위인 거냐? 네 스승은 마법사의 발표에서 함부로 떠드는 게 얼마나 큰 실례인지도 안 가르치더냐?”
그 말에, 투덜대던 마법사들이 찔끔 놀랐다.
“아, 아니. 현자님. 그것이 아니오라······.”
하지만 시에넬은 이미 그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저 짜증 어린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을 뿐이다.
“시끄럽구나. 정말.”
그 순간, 현자 시에넬의 뒤에 조용히 시립해 있던 제자 알 아네드가 무례한 마법사들을 향해 급발진했다.
“닥치시오! 당신이 제국 현자와 대화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오!”
강당 전체를 쩌렁쩌렁하게 울려버리는 목소리.
가만히 있던 다른 마법사들까지 놀라서 어깨를 움츠렸을 정도였다.
그제야 투덜거리던 마법사들의 기가 팍! 꺾였다.
“그, 그게······. 죄, 죄송합니다. 현자님.”
허나 현자는 돌아보지 않았고 그녀의 제자 알은 가차가 없었다.
“닥치라고 하지 않았소! 언제까지 포럼을 방해하며 발표자와 나의 스승님을 욕보일 건가!”
“······.”
그야말로 진땀이 나는 순간이었다.
투덜이 마법사들은 입도 열지 못하고 손수건으로 식은땀을 닦아내며 연신 머리를 조아릴 뿐이었다.
그제야 알 아드네는 그들을 쏘아보던 무서운 시선을 거두고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페르세타는 이 광경이 꽤 기꺼워서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페르세타 마법사.”
그랬기에 현자 시에넬이 손을 들어 질문했을 때, 페르세타는 밝게 답했다.
“네. 말씀하시지요. 현자님.”
“저들이 아주 무례한 것은 사실이나 또 아예 헛소리는 아니었소. 도플러 효과를 통해 자전을 추측한 것은 굉장히 영민했으나 그것만으로는 증거가 부족하지 않소?”
현자가 이 질문을 던졌을 때, 살리넬르와 이그나치오 교장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걸 말할 순간이다. 페르세타!’
‘드디어······! 나오는가?’
그들이 알고 있는 한, 인간계의 자전을 입증할 만한 것은 자전축의 기울기를 역산해 틀어진 마나황도의 좌표를 되찾는 것밖에는 없었으니까.
그것조차도 간접증거이기는 했으나, 그래도 <알마게스트>를 완전히 되살릴, 그런 강력한 수식이 있으면 모든 마법사들이 입을 닥치고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을 터였다.
마침내 페르세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증거가 있습니다. 차원의 자전, 충분히 직접적으로 증명이 가능합니다.”
그 말에 살리넬르와 이그나치오는 고개를 갸웃했다.
직접? 그것도 결국엔 간접이 아닐까?
그 순간, 페르세타가 말한다.
“아니. 아예 자전 그 자체를 눈으로 볼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바로 여기서.”
???
모든 마법사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차원의 자전을 보여주겠다고?
그게······. 말이 돼?
따악!
페르세타가 손가락을 튕기는 순간, 강당의 천장 쪽을 가리고 있던 천이 사라지고, 긴 사슬 끝에 무거운 추가 달린 진자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특이한 점은 그 진자가 천장에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 떠서 고정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차원 이격 마법을 써서, 우리 차원에서 유리시킨 차원의 진자입니다. 오직 줄의 끝점만이 우리 차원의 한 점에 고정되어 있지요.”
페르세타가 강단을 내려와 계단식으로 배열된 청중석의 중앙으로 걸어오르며 말했다.
“저 진자는 움직임을 시작하는 순간, 관성을 따라 동일한 궤적을 계속 그리겠지요?”
마법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외부의 개입이 없을 경우 물체는 관성을 따라 기존의 운동을 계속한다. 이건 상식이었으니까.
페르세타가 빙긋 웃었다.
“저 진자는 동일한 궤적을 그리는데······. 우리 차원은 회전을 하고 있죠. 그럼.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어헉!”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현자 시에넬이 기함을 토하며 벌떡! 일어섰고,
“지금. 보여드리겠습니다.”
따악-!
페르세타는 손가락을 한 번 더 튕겼다.
후웅!
페르세타의 진자가 마침내 움직인다.
세계라는 선입관을, 흔들어 부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