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26)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26화(26/171)
26화 페르세타의 진자
간단한 원리다.
잉크가 줄줄 새는 통을 긴 줄에 묶어놓고 쭈욱 당겼다가 놓으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잉크는 일정하게 흔들리는 진자운동을 따르며 땅 아래에 한줄의 선을 만든다.
그런데, 만약 그 밑에 원판을 두고 회전시키면 어떻게 될까?
잉크는 여전히 일직선으로 움직이며 한줄의 선을 떨어뜨린다. 하지만 그걸 받아내는 원판이 회전을 하고 있기에, 원판 위에는 꽃모양 같기도 하고 별모양 같기도 한 궤적이 남게 된다. 곧았던 선이 조금씩 옆으로 이동하며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페르세타의 진자가 바로 그런 원리였다.
하지만 차원은 꽤 긴 시간을 두고 한바퀴 회전을 하고 있었고, 현재 위치가 회전축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있느냐 등에 따른 변수도 있었기에, 페르세타의 진자는 처음엔 아무 변화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후웅-
훙-
긴장해서 진자를 올려다보던 몇 몇 마법사들은 섣불리 어깨의 긴장을 풀고 말했다.
“뭐야? 아무것도 안 변하는데?”
그의 말대로였다. 페르세타의 진자는 허공을 움직이며 그림을 그리듯 연두빛 궤적을 남겼지만, 그 연두빛 궤적은 정확한 일직선을 취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 그렇지! 차원이 자전할 리가 있나.”
“하하. 차원이 회전을 했으면 우린 모두 멀미를 했어야 하지 않겠소?”
아까 현자에게 혼이 났던 자들은 눈치를 보느라 조용히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은 마음껏 떠들었다.
이젠 안전하다 생각한 것이었다.
증명하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말해놓고 정작 실패를 한다면 마음껏 비웃어도 할 말이 없는 거니까.
하지만,
이번에 나선 건 현자가 아니었다.
“좀 조용히 해보시오!”
꽤 많은 숫자의 학구적인 마법사들은 섣불리 판단을 내리지 않고 페르세타의 진자에 계속 집중했다.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거대한 차원의 회전이라면, 저 진자가 아무리 크다고 한들 한눈에 그 움직임이 보이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훙-
후웅-!
그리고 마침내······.
“도, 돌아갔다!”
한 마법사가 손가락을 쭉 뻗고 경악의 비명을 질렀다.
모두의 시선이 그 손가락 끝을 따라갔다.
“진짜다!”
정말이었다. 일직선으로 보였던 선의 끝이 살짝 넓어진게 보였다. 진자가 움직이는 중심은 여전히 하나의 선으로 보였지만, 그 끝은 마치 부채꼴처럼 살짝 넓어졌다.
“돌아간다!”
몇몇 마법사는 황급히 시계를 꺼내 시간을 재고 누구는 노트를 꺼내 스케치를 시작했다.
이젠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연두빛 궤적이 점점 돌아가는 게 눈에 확연히 보일 정도가 되었으니까.
“아, 아름답다······.”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그 말에 여러 마법사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저게······. 차원의 자전······.”
이젠 뚜렷한 경향성이 보였다. 페르세타의 진자는 단순히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차원에서 유리되어 있는 그 진자는 이젠 지면과 다른 방향으로 고개를 치켜들고 있었다.
서서히 궤적이 올라가며, 일종의 구를 만들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심지어,
“진자가 움직이는 속도가 변했어! 왜 저런 일이 벌어지는거지? 미세하지만 빨라졌다가 느려졌다가 하잖아? 진자의 속도는 일정해야 하는 거 아니야? 왜 저런 일이······?”
시계를 들고 있던 마법사 하나가 경악해서 중얼거렸다.
“마, 마법을 쓴 것 아니오?”
“마법은 무슨 마법! 당신은 마력 감지를 못하시오? 아무 마력도 안 느껴지지 않소!”
그저 진자가 흔들릴 뿐인데, 알 수 없는 기현상이 계속 벌어지고 있었다.
현자 시에넬 미르사는 그런 페르세타의 진자를 부술듯한 시선으로 노려보며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차원의 회전 축은 우리보다 한 단계 높은 차원에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공간은 물론 시간까지도 그저 하나의 축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그녀는 알지 못했다.
엄청난 지적 충격을 받아 미친듯이 추론을 이어나가는 그녀를, 페르세타가 아주 흐뭇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하지만 여전히, 아직도, 멍청한 마법사들은 남아 있었다.
“그······. 신기하긴 하지만. 그것뿐 아니오?”
“그, 그렇지. 차원이 자전한다는 걸 안다고 마법에 무슨 도움이······.”
하지만 이곳에 멍청한 이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몇몇 마법사들이 눈을 빨갛게 뜨고 소리를 지른다.
“멍청한 소리 하지 마시오! 차원이 자전하고 있다면 초장거리 발사마법의 궤도 계산이 가능해진다는 것도 모르시오?”
“공간 마법 좌표계산에 있어서 이 얼마나 큰 혁신인지 모른다는 건가? 제발 멍청이들은 그냥 닥치고 여기서 꺼져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모두 마법학계에서 저명한 마법사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대놓고 무안을 주자 이젠 더 이상 불평을 늘어놓을 수 있는 자는 남지 않았다.
여전히 페르세타의 진자에서 아무 의미를 찾지 못한 이들도 있었으나, 무식함이 탄로나기 싫다면 입을 다무는 수밖에.
그저 대체 무엇 때문에 저들이 저렇게 흥분하는지,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 억지로 생각을 돌려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어떤 마법사의 열광도 현자 시에넬의 그것을 따르진 못했다.
130년이 넘는 그녀의 마법 인생. 그 기나긴 시간동안 차곡차곡 쌓이고 또 쌓였던 어떤 의문이, 지금 이 순간 허물어지고 있었으니까.
다른 마법사들은 차원이 회전한다는 사실에서 그걸 마법에 적용할 수 있는 응용수식들을 짜내느라 바쁠 뿐이었지만, 오직 그녀만큼은 더욱더 본질적인 것을 알아보았다.
거대한 대오각성의 순간이, 마침내 한 세기를 넘어 그녀를 휩쓴다.
“자, 잠깐! 잠깐! 페르세타 마법사! 이 세계가 정말 자전을 하고 있다면! 그렇다면! 어쩌면······! 이 세계의 중심은······!”
마침내 해답에 도달한 마법사.
그녀의 주름진 얼굴이 소녀와 같은 열정으로 밝게 빛난다.
마침내 그녀가 단 하나의 진리. 사실은 인간계가 세상의 중심이 아닌, 마나 태양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사실을 입 밖으로 내려던 순간이었다.
“쉿.”
페르세타는 검지를 들어 자신의 입술에 붙인다.
그가 작게 속삭인다.
“현자님. 그건. 제 것이에요.”
페르세타는 자신의 저서, <첼레스티움>의 핵심 아이디어를 다른 이의 입으로 먼저 유출할 마음이 없었다.
“허······. 허허······. 그럼. 그럼 정말로······.”
시에넬 미르사가 온몸에 힘이 쭉 빠진 듯 주저앉았다.
“스승님. 왜 그러세요?”
“어디 아프세요?”
등 뒤의 알과 진이 걱정하며 물어오지만 그녀는 귀찮다는 듯이 손만 휘저을 뿐이었다.
“멍청한 제자놈들아. 조용히 하거라.”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선 이 세계가 새롭게 그려지고 있었다.
중심에 태양을 놓고 그 주위에 인간계를 비롯한 모든 신비세계를 늘어놓은 뒤 그 궤적을 계산한다. 그것을 <알마게스트>와 비교한다.
“아······.”
마침내,
그녀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평생 알고 싶었던 진리. 오늘 그곳에 닿은 자의 마음을 누가 알리.
“어떡해? 스승님 우셔!”
“진짜 아픈 거 같은데? 스승님 좀 봐요. 열 나나?”
호들갑 떨며 자신을 매만지는 제자들의 손길도 잊은 채, 그녀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그리고,
또 한 명, 뒤늦게 진리를 깨달은 자가 있었다.
살리네르 드메치.
그는 현자의 말을 듣는 순간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세계의, 중심······?’
스쳐지나갔다.
그간 페르세타가 자신에게 던졌던 질문이.
어째서 다섯 개의 상계는 <알마게스트>의 예측을 따르지 않는가. 왜 도플러 효과가 다르게 나타나는가?
‘그야······. 그 다섯개의 상계가 인간계를 중심으로 도는 게 아니라······. 마나태양을 중심으로 도니까······? 마나태양이 중심에 있고. 그 다음에 신계, 마계, 영수계, 설화계, 명계, 인간계. 이런 순서로 놓여 있는 것이라면······?’
그럼 설명이 된다.
어째서 다섯 상계의 신호가 때론 터무니없이 강해지고 때론 터무니없이 약해지는지.
상계에만 적용되는 특별한 법칙 따위를 가정하지 않아도 완벽하게 설명이 되었다.
‘그럼 설명이 돼! 어째서 상계들이 마나태양을 중심으로 일정 거리 이상 멀어지질 않는 건지. 최대이각의 문제가 해결 된다고. <알마게스트>에서 가정한 것처럼 그 다섯 상계만 태양과 인간계 사이의 직선 위를 오가며 운동한다는 둥 하는 이상한 가정을 내릴 필요가 없는 거라고······! 그러니까······. <알마게스트>가 틀린 거야! 처음부터 틀렸던 거야!’
모든 게 착시였다.
모든 것이 착시였다!
인간계라는 작은 세계에서 드넓은 차원의 우주를 바라보느라 생긴 착각이었다!
살리넬르는 넋이 나갔다.
이거였구나.
페르세타가 가진 비밀이 이거였구나······.
하지만 그도 알지 못했다.
페르세타가 그런 자신을 그저 흐뭇하게 바라볼 뿐이라는 걸.
마치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아기를 바라보는 어른처럼.
사실 페르세타는 정말 기분이 좋았다. 벌써 2명이나 <첼레스티움>의 핵심에 도달했으니까.
이젠 더 많은 마법사들을 거기까지 끌어올릴 차례였다.
그가 정리한 나머지 3권의 책.
<프린키피아>
<레라티비테트>
<콴티지에옴>
이것들을 운이라도 띄워보려면 우선, <첼레스티움>이라는 사고의 전환이 전제되어 있어야 했으니까.
자기 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이 거대한 우주를 객관적인 시선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작지만 거대한 변혁이 필요했으니까.
마침내 그 첫발을 떼었다는 생각에 페르세타는 조금 기분이 나아졌다.
물론 조금일 뿐이었다.
오늘, 그가 느낀 건, 대체로 답답함과 짜증이었으니까.
웅성거리는 대강당 안에서, 페르세타는 다시 입을 열었다.
“자, 이제 자전에 관해서는 충분히 증명을 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젠, 신비세계가 멀어진 것처럼 보였던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모든 마법사들의 시선이 페르세타를 향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간계의 자전축이 세차운동으로 인해 500년전과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차원 하늘에 비친 각 신비세계의 좌표가 완전히 틀어진 것이죠.”
“!!!”
만약 페르세타가 처음부터 이 말을 했다면, 이들의 충격은 결코 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럴 듯 하나 근거가 없다 생각했겠지.
하지만 모두가 자전의 증거를 두 눈으로 목도한 지금은 그 느낌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저는 자전축이 500년 전에 비해 어떻게 기울었는지. 그걸 계산해냈습니다. 즉. 이 계산을 따르면, 500년 전, 대(大) 마법 시대가 열렸던 그때의 마법을 재현할 수 있죠.”
“어헉!”
“끕······!”
괴상한 신음소리들이 들려왔다.
이젠 멍청한 마법사들도 깨닫고 있었다.
이 발견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이게 사실이라면, 페르세타는 <알마게스트>를 저술한 프톨레마이오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가장 위대한 마법사로 우뚝 서게 되는 것이다.
“계산 결과부터 바로 발표하겠습니다.”
페르세타가 틀어진 각도 값을 말하고, 그에 따라 마나태양과 신비세계의 새로운 좌표를 역산해 발표했다.
마법사들 사이로 벌통이 떨어진 것같은 소란이 일어났다.
“잠깐······. 내가 지금 수식을 적용해서.”
“미, 미친······!”
“된다! 된다고!”
휘오오오오-
대강당 안으로, 막대한 마력이 몰아닥쳤다.
벌써 몇 백년이 지났다.
마나의 태양에서 무한한 마력을 끌어오지 못하게 된 지가.
하지만 이 순간, 모든 마법사들은 마치 각성이라도 한 듯, 어마어마한 마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것이 증거였다.
페르세타의 모든 추론이 진실이라는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증거.
“자, 그럼 여기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모두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페르세타를 바라보았다.
페르세타는 아주 천천히 팔짱을 꼈다.
그의 넓은 소맷자락이 흔들린다.
그의 머리칼이 흔들린다.
그의 눈빛이 칼날처럼 날카롭다.
무언가 압도되는 그 분위기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더이상 그들의 앞에 있는 페르세타는 무명의 마법사가 아니었으므로.
거대한 거인이 그들을 내려보는 듯한 압박감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페르세타의 입술이 느릿하게 열린다.
“계산결과를 미리 알려드렸으니. 이제는 그 계산 결과가 왜 그렇게 나왔는지. 여러분이 스스로 알아내보십시오. 다른 사람과 토론하는 것도 인정하겠습니다. 어쨌든 답을 찾으십시오.”
마법사들이 어깨를 흠칫 움츠렸다.
알아오라고?
이것은 마치······.
“네. 1주일 뒤, 시험을 칠 겁니다.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는 분들은 그대로 포럼을 떠나시면 됩니다.”
시험?
시험을 치라고?
이곳에 모인 마법사들은 아무리 멍청한 자라 해도, 자신들의 지역에서는 나름 저명한 인사들이었다.
제자를 여럿 거느리고 가르치며 과제를 내주고 시험을 내주는 게 바로 그들의 일이었다.
그런데 페르세타는 말하고 있었다.
이 다음 지식을 알고 싶으면,
시험을 치라고.
“원래는 그냥 쭉 진도를 나가려 했습니다만. 저는 오늘 여러분들께 실망했습니다. 그러니. 시험결과로 제 마음을 돌려야 할 겁니다.”
모두가 입을 쩍 벌렸다.
살리넬르도, 이그나치오 교장도, 현자 시에넬도, 모두가 당황했고, 이상한 죄책감을 느꼈다.
팔짱을 낀 페르세타가 그런 그들의 면면을 쭉 둘러보더니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뭐 하고 계십니까? 시간이 가고 있습니다.”
척!
파라라락!
슥삭슥삭!
가장 먼저 움직인 건 현자 시에넬이었다.
그녀가 대뜸 마법 주머니에서 노트와 깃털펜을 꺼내더니 미친듯이 무언가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게 시작이었다.
감히 현자가 공부를 시작하는데 딴 짓을 할 수 있는 마법사가 있을 리 없었다.
불만이 있어도 삼켜야 했다.
우르르르!
파라라락!
스삭스삭 슥삭!
백 명도 넘는 마법사들이 일제히 책을 꺼내고 펜을 꺼냈다.
모두가 머리를 처박고 공부를 시작한다.
훙- 후웅-
그들의 머리 위로, 페르세타의 진자가 마치 시계추처럼 오간다.
시험은,
1주일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