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28)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28화(28/171)
28화 선물
글라우베 마법학교에는 이제 면학 분위기가 잡혔다.
분탕질을 치던 마법사들은 모두 떠났고 이젠 진지하게 공부할 마법사들만 남은 상태.
페르세타는 그동안 분위기를 살피고 만드느라 줄곧 마법 학교에 머물렀지만, 이젠 그럴 필요가 없었다.
적당히 과제만 던져줘도 알아서 토론하며 수업이 굴러갔으니까.
“이제 우리는 인간계가 자전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면 마땅히 그 자전속도를 구해봐야겠지요? 자, 그럼 어떻게 자전 속도를 구할 수 있을지. 내일까지 정리해오세요. 과제입니다.”
“으음······.”
“흠······.”
이렇게 페르세타가 과제를 주면 마법사들은 고통과 도전의식이 뒤섞인 신음을 흘리며 알아서 자습을 시작하는 것이다.
덕분에 페르세타는 한 달이 좀 넘는 시간만에 마법 학교를 떠날 여유를 찾게 되었다.
그러자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있었다.
‘아버지랑 어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와야겠어.’
사실 그는 현자의 제자 알 아드네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당연하게 자기 제자를 믿는 현자와 그녀의 지시를 받아 100% 흡족하게 수행하는 알.
둘의 관계가 꼭 부모와 자식 같이 보였을까?
‘나도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그런 든든한 자식이 되고 싶다.’
폐관을 마치고 나와서 결심하지 않았던가.
이젠 공부만 하는 삶 말고, 가족들도 챙기는 삶을 살겠다고.
그런데 또 공부에 빠져서 한 달이 넘도록 부모님 얼굴을 보지 않고 살았다.
페르세타는 자신의 무심함을 반성하며 남작성을 향해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
페르세타가 먼저 찾아간 곳은 아버지의 집무실이었다.
그의 아버지 플리안 남작은 싱글벙글이었다.
자신감을 되찾은 즈바르트와 함께 영지를 부강하게 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열정적인 토론을 하고 있었다.
“오! 큰아들! 왔느냐!”
플리안 남작은 오랜만에 나타난 큰 아들 페르세타를 격하게 반겼다.
꼭 안아주고 어깨를 두드려준다.
“네 아버지. 건강히 지내셨죠?”
“뭐? 건강? 으하하하! 요즘 네 덕분에 검은 머리가 다시 날 지경이다!”
그게 빈말이 아닌 듯했다.
처음 봤을 때는 희끗희끗 나이든 티가 나던 플리안 남작이었으나, 지금은 40대의 전성기를 지나는 중년처럼 열정으로 가득 차 보였다.
그 모습에 만족감을 느끼며 페르세타는 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계셨어요?”
“아, 그게 말이다.”
아버지는 최근 벌이고 있는 영지의 사업들을 설명했다.
여러 사업들이 성공적으로 잘 굴러가고 있었으나, 문제가 있었다.
모두 같은 문제였다.
“사람이 문제구나. 사람이. 돈이 막 들어오고 주문은 폭주하는데, 그걸 받쳐줄 노동력이 부족해. 그래서 어디서 영지민을 끌어올 수 없을까, 즈바르트와 그걸 고민하던 중이었단다.”
베리테 남작가는 지금 산업 전반에 있어서 인력난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페르세타와 살리넬르가 온 후 베리테 남작령의 모든 상품들의 질이 크게 상승했다. 철물, 빵, 곡식과 채소, 직물 가릴 것 없이 전부다.
그러다 보니 주변 영지는 물론 왕국 전체에서도 상품을 구입해가려는 수요가 크게 늘었는데, 문제는 그 수요를 공급이 따라가질 못한다는 점이었다.
베리테 남작령의 인구는 고작 4,500 여 명 남짓.
그 중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라고 해 봐야 남녀 합하여 1,500명 수준.
그런 와중에 왕국 재판의 승소로 알타자드의 넓은 땅을 차지하게 됐고 추가로 펠릭스 자작가가 배상금으로 토해낸 리스 지역까지 차지하게 되었으니······. 사람이 부족해서 땅을 놀릴 지경이 되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페르세타와 살리넬르가 펼쳐둔 마법을 기반으로 생산력을 끌어올렸지만, 수요의 폭발로 인해 그것도 진작 한계에 달하고 말았던 것이다.
“헌데 문제다 문제야. 영지민의 숫자는 곧 영지의 힘. 다른 영주들은 곧 죽어도 자기 영지민을 내놓으려고 하지 않을 거란 말이지. 또 왕국의 평화가 오래되다 보니 떠돌아다니는 유민도 없고······.”
확실히 고민이 될 만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버지. 그건 제가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아요.”
“네가?”
“네. 영지민을 늘리는 건 쉽지 않겠지만, 당장 생산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방법이 있어요.”
“오옷? 그게 무엇이냐.”
“마법 학교의 마법사들을 동원하면 돼요.”
“응?”
“사람을 못 구한다면 생산효율을 늘려야죠. 그 마법사들을 동원한다면, 영지 전체를 마법으로 도배할 수 있을 거예요.”
플리안 남작이 조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하, 하지만 그 분들이 그런 일을 해 줄 리가······.”
“해 줄 거예요.”
“해준다고?”
“네.”
“그. 아들아. 거기에 계신분들이, 제국 아카데미 교장선생님에, 비셰나 왕국 왕세녀님에······. 요새는 현자님까지 계신다고 하던데?”
“네 맞아요.”
“근데 그 분들을 동원해서 일 시키겠다고?”
“네. 저, 그 정도는 돼요.”
마법 학교의 면학 분위기를 잡았다는 건 바로 그런 뜻이었다.
누가 가르치고 누가 배우는 것인지 그 위계 관계를 확실히 했다는 것.
지금 페르세타가 자신들에게 위대한 지식을 아낌없이 베풀고 있다는 것을 모를 바보는 더이상 마법 학교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러니, 페르세타의 ‘작은 부탁’ 정도야 당연히 들어줄 수밖에.
“어떤 게 필요한지 작성해서 마법 학교로 보내주세요. 제가 확인하고 마법사분들 이끌고 갈게요.”
이걸 든든하다고 해야 할까. 기가 막히다고 해야 할까.
플리안 남작은 혼란스러운 마음에 눈만 깜빡이다가 결국 스르르 팔을 풀러 페르세타를 꽉 껴안다.
“우리 아들. 엄청나······.”
**
페르세타는 손에 꽃다발을 들고 어머니가 계신 정원으로 향했다.
듣기로는 가문의 정원이 영 아름답지 못해서 귀부인들을 초청해 다과회 한 번 열지 못한 것을 민망하게 생각하신다고.
그래서 요즘은 시간 날 때마다 정원을 돌보신다고 했다.
페르세타는 문득 손에 들린 일곱 빛깔의 화려한 광채를 뽐내는 꽃을 바라본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네 어머니, 로오루아 여사가 무얼 좋아 하냐고? 그건 당연히 내가 전문가지. 비장의 한 수가 있단다.’
아버지가 자신만만하게 꺼내든 한 수는 바로 ‘칠색공작꽃’.
‘너희 어머니가 이거 진짜 좋아해. 내가 이걸로 너희 어머니를 꼬셨다.’
어머니를 꼬셔서 결혼까지 한 아버지가 하는 말이니, 페르세타는 그 말에 무척이나 신용이 갔다.
정원에 당도해, 어머니와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등 뒤에 숨기고 있던 칠색공작꽃을 바치기 전까지만 해도.
“어머나? 칠색공작꽃이네?”
어머니 로오루아는 애매한 표정으로 페르세타가 내민 꽃을 받아들었다.
“이거 너희 아버지가 말해준 거지?”
“네. 아주 좋아하실 거라고······.”
그 말에 로오루아는 픽 코웃음을 터뜨렸다.
“하여튼. 그 이가 그렇다니까. 아직도 내가 이 꽃을 진짜 좋아하는 줄 알아.”
“아니에요? 아버지께서 이걸로 어머니를 꼬셨다며 호언장담을······.”
“그땐 그냥 좋아하는 척을 한 거지. 날 꼬시겠다고 세상 화려한 꽃을 가져온 그 이가, 그때는 귀여워 보였으니까.”
아.
페르세타가 충격적인 진실에 망연히 입을 벌렸을 때, 어머니는 깔깔깔 웃었다.
“사실 이런 꽃은 내 취향이 아니야. 너무 화려해서 싫어. 난 들국화가 그렇게 좋더라. 그것도 꽃병에 꽂힌 건 싫고 그냥 여기저기 피어난 게 좋아. 들국화들이 올망졸망 모여서 핀 걸 보면, 그렇게 정다워 보인다?”
“그, 그렇군요.”
“하지만 괜찮아. 이건 영원히 귀여울 내 아들이 준 거니까. 꽃병에 꽂아놓고 매일 볼 거야.”
로우루아는 절대 빼앗기지 않겠다는 듯 칠색 공작꽃을 가슴에 품고 가만히 그 향기를 맡았다.
페르세타는 민망함에 그냥 뺨을 긁적이다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그럼 뭐 해보고 싶은 건 없어요?”
“해보고 싶은 거?”
“예. 제가 다 들어드릴게요.”
그때 페르세타는 현자의 제자 알 아드네를 떠올렸다.
현자의 말 한 마디에 주저없이 나서던 알.
페르세타도 어머니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었다.
로오루아가 싱긋 웃는다.
“있지.”
“뭔데요?”
“페르세타가 수다 떠는 거 들어주기.”
“예?”
“애기들은 그러거든. 하루종일 자기가 뭘 했는지 그렇게 떠들어대. 그걸 들어주는 게 막 고역이고. 그런 걸 해보고 싶구나.”
“전 애기가 아닌 걸요?”
“그러니까 더 그렇지. 애기 때 못 들었으니까. 이제라도 들려줘.”
긁적.
페르세타로서는 전혀 예상도 못한 요구였다.
하지만 어려울 건 없다.
다만 걱정되는 건······.
“그······. 재미 없으실 텐데.”
“원래 그 맛에 듣는 거야.”
“음. 그렇다면.”
페르세타와 로오루아는 정원에 티 테이블을 깔아놓고 앉았다.
차와 다과를 함께 즐기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 페르세타!
히나리리리아네를 필두로 포르르 날아온 요정들이 찻주전자나 접시에 앉아서 같이 재잘대며 이야기를 듣는다.
어머니 로오루아도 이미 요정들이 익숙해졌는지 능숙하게 손가락으로 요정들과 장난을 치며 페르세타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음······. 그래서 긴 진자를 이용해서 차원이 자전한다는 것을 증명했고요. 요즘 마법사들에게 가르쳐주려고 하는 건······.”
로오루아는 이야기에 깊이 집중하는 기색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지루해하는 기색도 아니었다.
그녀는 종알종알 설명을 하는 페르세타를 보는 것 자체가 즐겁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페르세타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한참 설명을 이어갔던 어느 순간, 로오루아가 문득 묻는다.
“아들.”
“네?”
“근데. 네 이야기를 듣다가 생각이 났는데.”
“네.”
“그러면 결국 인간계가 세계의 중심이 아니란 뜻 아니야? 인간계가 자전한다며. 그래서 다른 세계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거 아닌가? 오히려 우리 세계가 다른 것의 중심을 뱅글뱅글 돌고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
“중심. 그럼 뭐가 중심일까? 역시 마나 태양 아닐까?”
페르세타는 놀랐다.
정말 놀랐다.
마법사들도 아직 현자와 살리넬르를 제외하면 아무도 깨닫지 못한 그 사실을. 어머니는 단번에 알아맞추셨다.
페르세타의 얼빠진 표정을 보고 로오루아가 살폿 웃었다.
“왜. 엄마가 맞췄어? 내가 촉이 좀 좋아.”
“와······. 좀 놀랐어요.”
페르세타는 그냥 놀라기만 한 게 아니었다.
그는 동시에 어떤 깨달음을 얻고 있었다.
왜 어머니는 바로 눈치 챈 사실을 다른 뛰어난 마법사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걸까?
‘선입관.’
페르세타는 그것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단단히 굳어진 선입관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오히려 많이 공부했기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는······ 그 딱딱한 지식이 오히려 마법사들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었다는 걸.
그러니,
그 선입관만 잘 부숴주면 마법사들은 훨씬 더 쓸만해질 것이다.
어쩌면 답답함을 훨씬 덜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에 페르세타는 진심으로 기뻤다.
그리고, 또 하나의 깨달음.
어머니는, 똑똑하다.
왠지 페르세타는 기분이 한껏 좋아졌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무얼 선물하면 좋을지도 퍼뜩 떠올랐다.
“어머니.”
“응?”
“고마워요.”
“뭐가.”
“이건 제 마음을 담은 선물.”
후우우웅-
페르세타의 몸에서 마력이 줄기줄기 뻗어나갔다.
그것은 서로 겹치고 흩어지며, 어떤 화음을 만들어낸다.
?♬♪♩♬
“이건······?”
어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티테이블 위에서 노닥거리던 요정들은 기분이 좋은지 눈을 감고 가만히 몸을 늘어뜨렸다.
“노랫소리 아니니?”
“주문이에요.”
“주문? 마법?”
“네.”
“그건 입으로 웅울웅얼하는 거 아니야?”
“음······. 그렇게 할 때도 있는데, 이 마법은 은근 난이도가 있어서요. 입으로 하는 것보단 그냥 내 마력으로 주문을 외게 시키는 게 더 쉬워요.”
“이 음악 소리가 마력이 주문을 외는 소리라고?”
“네.”
“어머. 낭만적이다.”
“좋아하실 줄 알았어요.”
페르세타는 빙긋 웃었다.
그리고 두 손을 들어올렸다.
알 아드네를 떠올리며, 그를 흉내내 주문의 완성을 알린다.
짝!
박수소리와 함께,
피어난다.
정원 곳곳에서.
요정계의 노래국화가.
손톱보다도 작은, 아주 아주 작은 꽃이 소담소담 모여서 피어난다.
소근♩
소근소근♬♪
속삭속삭♪♩
노래국화들이 노래를 한다.
숨을 꼭 참고 귀 기울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을만큼 작은 소리로. 또는, 꽃에 귀를 바짝 들이대야 겨우 들릴 만큼 나직한 화음으로.
하지만 그 꽃이 정원 곳곳에 만개하니, 정원 전체가 속삭이는 노랫소리로 가득해진다.
“와아······. 소환한 거니?”
로오루아의 질문에 페르세타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전이시켰어요.”
“전이?”
“네. 우리 세계로 완전히 가져온 거예요. 요정계와 연결이 끊겨도, 이 노래국화들은 영원히 남을 거예요. 어머니의 정원에 그대로.”
소환이 아닌 전이.
로오루아는 이게 얼마나 대단한 마법인지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얼마나 멋진 선물인지는 아주 잘 느끼고 있었다.
“그럼 이제 우리 식구가 된 거구나! 이 예쁜 국화들이!”
그녀는 벌떡 일어나 요정계의 노래국화가 가득 정원을 거닐었다.
요정들이 그런 그녀를 따라 포르르 날아올라, 노래국화 사이사이를 유영한다.
요정의 빛 때문에, 꼭 로오루아가 빛 무리를 거느리는 마법사처럼 보였다.
“이 귀여운 친구들이 있으면 나도 다과회를 열 수 있겠어! 그간 우리 정원이 좀 초라해서 다른 사람 초청하기가 좀 그랬거든. 아~ 요정에, 국화에, 너무 좋다.”
어머니 로오루아의 얼굴에는 칠색공작꽃을 받았을 때와는 다른, 잔잔한 홍조가 띠었다.
페르세타는 그때 알았다.
‘아, 정말 좋아하실 때에는 저런 표정을 지으시는구나.’
기억해둬야지.
페르세타는 편안하고 느긋하게 의자에 몸을 기댔다.
속닥♬
조잘조잘♩♪
소살소살♪♬
작은 국화들의 노랫소리가, 기분좋게 귓가를 간지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