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3)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3화(3/171)
3화 <알마게스트>
“아쉽구나. 즈바르트도 함께였으면 좋았을 텐데.”
하염없이 우는 어머니를 달래고 나자, 식사 시간도 막바지가 되었다.
그 즈음해서 아버지 플리안은 둘째 아들, 즈바르트의 이야기를 많이 꺼냈다.
페르세타의 남동생인 즈바르트는, 올해 25세였고 작년에 제국 아카데미를 차석으로 졸업한 기재중의 기재였다.
“그저 아비가 되어 미안할 뿐이지. 그렇게 잘난 녀석이 가문을 살리겠다고 좋은 제안 다 거절하고 이곳으로 돌아오게 만들다니······.”
이제 플리안은 가문의 어려운 사정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숨기려고 애를 써봤지만, 대화 중간중간에 자꾸 스며나오고 말았으니까.
가능하면 오늘 폐관을 마친 페르세타에게 염려를 끼치긴 싫었지만, 아무튼 가문의 구성원인 그에게, 뻔히 보이는 사실을 끝까지 숨기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다.
그렇게 그는 결국 봉인을 해제하고 말았다.
페르세타는 자신이 없는 사이 가문이 이토록 어려워졌다는 사실이 슬펐다.
그런 한편, 슬며시 드는 궁금증도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 우리 가문은 마법사 가문인데 즈바르트는 기사 아카데미를 나온 건가요?”
그 말에 아버지 플리안은 쓰게 웃었다.
“현명한 거지. 어차피······ 마법은 이제 사라지고 있으니까. 신비가 떠나가는 시대니까······.”
마법이 사라진다고?
신비가 떠나가?
페르세타는 그 얼토당토치 않은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허나, 플리안은 그런 페르세타의 시선을 잘못 이해했다.
“그래. 너도 즈바르트가 궁금한 게로구나. 걱정 말거라. 소식을 보냈으니 내일이면 돌아올 거다. 비록 녀석이 오늘 너를 맞이해주진 못 했지만, 부디 녀석을 용서해다오.”
플리안은 페르세타의 손을 꼭 붙들고 말했다.
“다 내 잘못이다. 그 아이에겐 그저 미안할 뿐이야. 가문을 살리겠다고 한창 좋은 나이에 온갖 고생을 다 시키고 있으니······.”
플리안이 눈물을 글썽였다.
페르세타는 그런 플리안을 마주보며 느릿하게 눈을 깜빡이기만 했다.
‘잘못······ 들었겠지. 뭐.’
아버지의 슬픔을 보고 있자니, 아까 들은 이상한 말은 아무래도 중요치 않게 느껴졌다.
어차피 마법은 사라질 리가 없는 것이니까.
지금 페르세타는 그저 아버지의 감정을 조금이나마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가 조금만 더 감정표현을 알았다면 아버지를 꼭 안아줬을 텐데. 그는 그런 표현을 알지 못해, 그저 안타까워 하기만 했다.
**
길었던 식사를 마치고 나자, 일리안느가 페르세타의 손을 잡아끌었다.
“오빠! 내가 영지 구경 시켜줄게!”
페르세타는 일리안느의 손에 이끌리다 말고 주춤 멈춰섰다.
어머니 로오루아에게서 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기색을 읽은 탓이었다.
페르세타는 일리안느의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괜찮아요. 다 기억나요. 우리 영지. 하나하나 전부 다.”
그 말에 어머니 로오루아와 아버지 플리안이 활짝 웃었다.
“우리 아들. 여전히 똑똑하네.”
“그렇지. 페르세타가 어려서부터 한 번 본 건 잊어버리질 않았어.”
페르세타가 기억이 난다고 하면 정말 기억이 나는 거였다.
하지만 일리안느는 고집을 부렸다.
“그래도 옛날이랑은 다를 거 아냐! 당장 나 어릴 때랑도 다른데 뭐!”
그건 그렇지.
자기도 모르게 주억거리는 페르세타.
그걸 본 어머니 로오루아는 페르세타의 어깨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엄마는 괜찮으니까 일리안느랑 영지를 둘러보고 오렴. 집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알아야지. 겸사겸사 네 동생이랑도 더 친해지고.”
그 말에 페르세타도 더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일리안느는 신이 나서 페르세타를 잡아 끌었고, 페르세타는 생전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쩔쩔 매며 그녀를 따라 나섰다.
“오빠! 그거 알아? 나도 마법사다? 즈바르트 오빠는 맨날 마법을 뭐하러 배우냐고 핀잔을 주는데, 나는 마법이 좋아. 아름답잖아? 자유롭고. 멋지고······. 쫌, 어려워서 그렇지.”
일리안느는 페르세타를 끌고다니며 한시도 쉬지 않고 재잘거렸다.
“나 그래서 오빠가 진~짜 궁금했어. 대마법사 바르덴테님의 수제자가 우리 오빠라니! 오빠오빠. 바르덴테님은 어떤 분이셨어? 어떤 걸 배웠어? 아······. 마법은 별로 안 배웠댔지······. 그래도! 뭘 배우긴 했을 거 아냐? 응? 말해줘.”
페르세타는 와다다 쏟아지는 질문들이 조금 버거웠다.
스승님이 어떤 사람이냐고?
평생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스승님은 그냥 스승님이었으까.
페르세타의 세상은 그와 스승과 책들로 구성되어 있을 뿐이었으니까.
대신 다른 질문에 대해서는 조금 대답을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내가 뭘 배웠냐고요?”
“응! 아, 근데 오빠!”
일리안느가 갑자기 빽! 소리를 질렀다.
“대체 언제까지 존댓말을 할 거야?”
두 눈을 세모나게 뜨는 일리안느의 서슬에, 페르세타는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아······. 난 이게 편해서······.”
“아니. 오빠가 그러면 내가 버르장머리 없는 거 같잖아!”
“미안해요······.”
“으아악!”
괴로워하는 일리안느를 보며 페르세타는 난처해서 뺨을 긁었다.
“미안······. 시간을 줘요. 평생 존댓말만 쓰며 살았더니 익숙하지가 않네요.”
그 말에, 일리안느는 또 그만 마음이 짠해지고 말았다.
정말이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바르덴테님이라지만······.
자신이라면 150살도 더 먹은 대마법사랑 단 둘이서, 자신의 평생을 훌쩍 넘는 긴 세월을 살아갈 수 있었을까?
“에효.”
갑자기 포옹을 해 오는 일리안느.
페르세타는 그녀가 왜 그러는지는 몰랐으나, 아무튼 그 온기가 따듯해서 마음에 들었다.
“알겠어. 오빠. 근데 난 계속 반말 할 거야. 그래야 오빠가 익숙해지지. 나한테 버릇 없다 그러면 안 돼?”
일리안느의 선언에 페르세타는 싱긋 웃었다.
“고마워요.”
“고맙긴 뭐가 고마워요야!”
일리안느는 그런 페르세타가 안쓰러우면서도 왠지 답답해서 빽 소리를 질러버렸다.
그리곤 후련하다는 듯 다시 활짝 웃으며 화제를 원래대로 되돌렸다.
“그래서. 오빤 뭘 배웠어? 응? 진짜 궁금함. 말해줘.”
“저야······. 여러가지를 배우고 공부했죠.”
“에이! 좀 구체적으로!”
페르세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배움이란 끝이 없어서, 뭘 배웠냐는 말도 심오하기 그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냥 최근의 고민들에 대해서 말하기로 했다.
“최근에 연구했던 것은 다양한 관측장비였어요. 좀 쉽게 만들 수 있는 것부터, 혼자서는 절대 못 만드는 것들까지. 그걸 계속 고민하다가 밖에 나왔죠.”
“관측장비? 마나감지판 같은 거?”
“아······. 그런 건 아니고. 아, 맞다. 저도 궁금한 게 있어요.”
“궁금한 거?”
“혹시 초대형 마나소 충돌기는 건설이 되었나요? 요새 연구하던 게 그거여서요.”
일리안느는 갑자기 튀어나온 듣도 보도 못한 단어에 고개를 갸웃하고 말았다.
“방금 뭐라고······.”
“초.대.형.마.나.소.충.돌.기.요.”
“그게······ 뭐죠?”
“아, 제가 만든 용어라 모를 수도 있겠네요. 그게 뭐냐면요.”
페르세타는 열심히 설명을 이어갔다.
그 설명을 한참 듣던 일리안느는 뜨악한 눈으로 이렇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오빠. 혹시 이거 오빠가 어제 꾼 꿈 이야기야?”
페르세타는 그만 머쓱해서 코를 긁적였다.
자신이 설명을 근사하게 하지 못 했거나, 아니면 일리안느가 아직 어려서 지식이 없는 게 아닐까?
그저 그리 생각하고 넘겨버렸다.
**
“오빠! 여기가 우리 영지의 핵심! 요정농장이야!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지! 사실 여기 때문에 즈바르트 오빠가 그렇게 구박해도 부득부득 마법사가 되려고 했던 거라고!”
일리안느가 양팔을 벌리고 꽤 규모가 큰 농장을 가리켰다.
페르세타는 그리운 마음이 들어 미소를 짓고 말았다.
“맞아. 여기 기억나요.”
그런데 이상했다.
“근데 여기 왜 이렇죠? 작물들이 너무 비실비실한데······.”
“하긴, 30년 전이랑은 많이 다르겠다.”
일리안느가 쓰게 웃으며, 작은 열매들을 매만졌다.
“후······.”
짧게 한숨을 내쉰 그녀는 결심했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오빠도 알긴 알아야 돼.”
그녀는 빠르게 설명을 마쳤다.
한때 남부럽지 않게 풍족했던 베리타 남작가가 왜 단 몇 년 만에 이리 가난하게 되었는지.
어렵지 않은 이야기였다.
남작가의 주요한 수입은 요정이 길러낸 특수한 작물에서 나왔다.
허나, 4년 전부터 요정계와의 연결이 급격히 멀어지며 특수 작물의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게 된다.
결국 거금을 들여 요정계 공명 마법진을 설치하였으나,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돈만 돈대로 들고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던 것이다.
“뭐, 그래서 영지 재정에 큰 적자가 났고, 그 돈을 메꾸려고 오래 거래한 상단에 돈을 빌렸는데, 이젠 그 상단도 더는 돈을 빌려줄 여유가 안 되고······ 이대로라면 몇 년 못 가 파산이다. 이런 이야기야.”
일리안느는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감정을 죽인 건조한 목소리로 주르르 설명을 이어갔다.
“아~ 부럽다. 저기 북쪽의 레반 자작가는 요정계 공명 마법진을 설치하고 대박이 났다는데, 왜 우리는 이 모양 이 꼴이냐.”
건조하던 일리안느의 표정에 슬픔이 서렸다.
“정말······. 마법은 이대로 사라지는 걸까?”
페르세타는 깜짝 놀라 일리안느를 쳐다보았다.
마법이 사라져?
아까는 잘못 들었다 생각했는데, 일리안느가 또 똑같은 말을 한 것이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마법이 사라진다뇨?”
그러자 일리안느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오빤 그것도 몰라? 요새는 상식이잖아.”
“상식이라고요? 대체 왜요?”
“그야, 마나 태양에서 수급되는 마력량은 점점 줄어들고. 신비세계와의 연결은 점점 멀어지고······. 그렇잖아. 이 요정농장만 봐도 그래. 원래는 마법진 같은 거 없어도 사시사철 요정들이 뛰어놀았다는데······. 이젠 마법진을 설치해도 정말 어쩌다 한 번 보일까 말까 하는걸? 솔직히 대박이 났다는 곳들도 워낙 공급이 없다보니 대박이 되는 거지, 예전 같았으면 그것도 쪽박인 수준인 거잖아.”
일리안느가 서글퍼 하며 하늘로 시선을 던졌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정말 시대가 바뀌는 걸지도 몰라. 시대가 바뀌어서, 마법도, 신비도, 모두 우릴 떠나가는 건지도 모르지······.”
동생이 들려주는 기묘한 이야기.
페르세타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느릿하게 눈을 깜빡거렸다.
그는 천천히, 요정농장에 설치된 마법진을 내려다 보았다.
너무 당황스러워서, 생각이 뚝뚝 끊기는 것만 같았다.
‘왜, 마법진을, 설치, 했는데도, 요정들이, 잘, 보이지, 않는, 거냐고······?’
그야······.
이 마법진이 한 500년쯤은 낡은 잘못된 이론을 기반으로 한, 조악하고 추악한 수식으로 짜여 있으니까.
그냥, 당연한 거 아닌가······?
그제서야,
페르세타는 뭔가가 아주 잘못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았다.
“일리안느.”
“응~ 오빠.”
서글픈 감정을 애써 털어내며 밝게 대답하는 일리안느를 보며, 페르세타는 물었다.
“마법. 배운다고 했죠?”
“응!”
마법을 정말 좋아하는지, 배움을 이야기하자, 일리안느는 다시 눈을 반짝거렸다.
페르세타는 그런 그녀의 눈을 신중히 들여다보며 물었다.
“요새는 어떤 걸 배워요?”
그러자 일리안느는 자랑스러워 하며 대답했다.
“난 요새 <알마게스트> 원론을 다 떼고 3레벨 응용수식을 배우고 있어! 언젠간 내가 꼭 고위 마법사가 돼서, 저 마법진을 고쳐보려고!”
그 말에, 페르세타의 얼굴에서 핏기가 싸아아- 빠져나갔다.
“알마······게스트······요?”
일리안느는 그런 페르세타의 모습에 아연실색을 하고 말았다.
“에? 오빠? 설마 알마게스트가 뭔지······ 몰라? 아니······지?”
페르세타는 눈을 느릿하게 깜빡거렸다.
“일리안느. 자세히 설명해봐요. <알마게스트>가 뭔지. 개념부터 수식까지 하나하나 다 설명해줘요. 지금 당장.”
“지, 진짜야? 오빠. 몰라? 알마게스트라고. 알.마.게.스.트!”
일리안느와 페르세타는 동시에 식겁을 했다.
일리안느는 페르세타가 마법의 시작이자 끝인 <알마게스트>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식겁을 했고, 페르세타는 자신이 15세에 논박하여 폐기처분했던 <알마게스트>가 아직도 사용된다는 사실에 식겁을 했다.
페르세타는 설마설마하며 일리안느의 설명을 끝까지 들어봤지만, 아무리 들어도 ‘그’ <알마게스트>가 맞았다.
페르세타는 골이 띵했다.
‘뭐? 마법이 사라져? 그야, <알마게스트>의 계산을 따라 마법을 쓰면, 당연히 이젠 마법이 성립 안 하지······.’
되려, 아직도 마법이 작동을 하긴 한다는 사실이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페르세타는 문득 묻고 싶어졌다.
‘스승님······.’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