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31)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31화(31/171)
31화 제자
글라우베 마법 대학.
수업이 시작 되기 전의 아침.
보통 이 시간대면 이곳엔 긴장감이 흘렀다.
오늘의 진도도 무사히 따라가야 한다는 압박감. 지난밤을 꼬박 새운 과제가 어떻게 평가를 받을지에 대한 걱정. 갑자기 또 시험을 보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
그런 무거운 분위기로 마법사들이 아주 조용하게 모여 있는 게 바로 이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아주 달랐다.
마법사들은 긴장을 풀고 명상을 하는 대신, 삼삼오오 모여서 수근거리기 바빴다.
“아니. 신학자들이 왜 갑자기 우르르······.”
“그게 문제가 아니야. 맨 앞에. 현자님 옆쪽에 앉은 거. 저거 성녀 아니야?”
“성녀? 성녀라고?”
“틀림없네. 성녀야. 작은 체구. 백금발의 긴 머리칼. 인형처럼 생겼다는 외모. 다 똑같잖아. 심지어 허리춤에 봐. 저거 성검 라하트헤렙이잖아.”
“어라······? 순백색에, 붉은 황금으로 장식이 된 검집······. 뭐야. 진짜야?”
성역을 떠나지 않는 그들의 갑작스런 등장에 마법사들은 당황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껄끄러워했다.
“저들이 여긴 대체 왜 온 거야······?”
“그러니까. 난 신학자들도 아주 불편한데. 심지어 성녀까지 있네.”
“그냥 좀 특이한 마력을 쓰는 거면서 지들이 쓰는 건 마력이 아니라 신성력이라고 바락바락 우기는 이상한 놈들.”
“자신들이 마법사보다 우월하다는 선민의식에 찌든 작자들.”
마법사들과 신학자들의 관계가 그랬다.
서로 적대하는 것도 아니고, 도리어 때때로 교류를 이어가긴 했지만, 서로를 불편해 했다.
신학자들은 자신들의 신앙을 마법적으로 접근하려는 마법사들을 불경하다 여겼고, 마법사들은 자신들이 마법사와 다르다 여기는 신학자들을 아주 눈꼴시려워 했다.
그러니 우르르 등장한 신학자. 그 중에서도 특히 백금발의 긴 머리칼을 늘어뜨린 성녀의 존재감은, 마법사들을 아주 불편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페르세타가 강당에 들어섰다.
그 순간.
우르르르-
착석해 있던 성녀와 신학자들이 벌떡 일어나 두 손을 가슴에 날개 모양으로 교차하며 성례를 표했다.
“사도님을 뵙습니다!”
······.
······.
꽤 긴 시간. 대강당에는 침묵이 흘렀다.
사, 사도?
마법사들은 눈을 홉뜨고 입을 헤- 벌렸다.
페르세타는 난처해서 뺨을 긁적였다.
그나마 사정을 아는 현자 시에넬만이 끌끌거리며 고개를 저었을 뿐이었다.
“으음······. 일단 환영합니다. 성녀님. 그리고 신학자 여러분. 일단 자리에 착석해 주시죠.”
“예. 사도님.”
공손히 대답하며 우르르 앉는 하얀색의 무리들.
마법사들은 벙쪄서 서로의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그리고 페르세타는 정말 난감했다.
‘이러면 면학 분위기를 해치잖아······.’
어쩔 수 없었다.
원래는 시간을 두고 스스로 깨닫게 하려 했지만, 극약처방을 하는 수밖에.
“성녀님과 신학자 여러분들도 이제 제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님.”
“그렇다면 여러분도 면학 분위기를 위해 몇 가지 사실을 알고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준비되어 있습니다. 사도님.”
“우선. 저는 사도가 아니라. 마법사입니다.”
“······예?”
성녀와 신학자들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그게 사실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저를 페르세타 마법사. 또는 페르세타 선생님으로 불러주십시오. 혹시 받아들이기 어려우십니까?”
“아, 아닙니다. 서, 서, 선생, 님······.”
성녀가 간신히 선생님이란 호칭을 입밖에 내자, 신학자들도 그 뒤를 따랐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서, 선생님.”
“그리고 또 하나.”
연단에선 페르세타가 서늘한 눈으로 그들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따라하십시오. 신학이란 건 없습니다. 그것은 그저 마법의 한 종류일 뿐입니다.”
!!!
이번에는 더 큰 동요가 성녀와 신학자들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들은 웅성거리며 서로를 쳐다보았다.
이것은, 자신들의 신앙을 통째로 부정하는 말이 아니던가?
어찌 저런 참람한 말을 입에 올릴 수 있단 말인가?
그때였다.
스르릉-!
성녀가 성검, 라하트헤렙을 뽑아들었다.
신성한 불길이 확! 솟구치며, 대강당 전체를 뜨겁게 달궜다.
“저게······. 성검. 라하트헤렙.”
“무시무시한 마력이다······.”
2,000년 전에 강림한 치천사 살셰겐이 이 땅에 전해주었다는 전설의 검.
산을 가르고 강물을 마르게 하는 힘을 가졌다는 최강의 병기.
마법사들은 바짝 긴장하여 몸을 뒤로 물리며 마력을 끌어모았다.
지금 당장 성녀가 신성모독이라며 저 검을 휘둘러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으니까.
그리고 성녀는.
서걱.
검을 휘둘러.
자신의 긴 머리칼을.
짧게 잘라버렸다.
그녀가 잘려나간 백금발을 손에 쥐고 경건하게 말했다.
“아집을 버리겠습니다.”
그 말에 혼란스러워하던 신학자들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지금 성녀가 하는 저 말. 저건 바로 어제 치천사 메아샤에게 들었던 그 말이었으니까.
“겸손하게 배우겠습니다.”
신학자들은 서둘러 자세를 바로하고 그녀의 말을 복창했다.
“겸손하게 배우겠습니다.”
“처음으로 돌아가. 모든 것을 되돌아보고 진정한 진리의 가르침을 따르겠습니다.
“그러겠습니다. 그러겠습니다. 그러겠습니다.”
성녀가 자신의 손에 움켜쥔, 기나긴 백금발 머리칼을 신성력, 아니, 마력으로 불태워버리며, 말했다.
“신학이란 없습니다. 그것은 그저. 마법의 한 종류일 뿐입니다.”
성녀가 이렇게 나오자, 신학자들도 더는 버티지 못했다.
모두가 경건하게 말한다.
“신학이란 없습니다. 그것은 그저. 마법의 한 종류일 뿐입니다.”
거대한 전율이.
대강당을 휩쓸었다.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성녀와 신학자들의 입에서 저런 말이 나올 줄이야.
그리고 마법사들은,
어쩐지 수백년 묵은 체기가 쑥 내려가는 듯한 시원함마저 느꼈다.
“좋습니다. 그럼 진도나가겠습니다.”
페르세타가 준비한 강의자료를 펼칠 때였다. 맨 앞에 앉은 현자가 손을 들어 물었다.
“저. 선생님.”
“네. 현자님.”
“음······. 혹시 새로운 학생이 이렇게 들어와도 되는 거라면, 학생들을 몇몇 더 초청해도 되겠습니까? 똑똑한 친구들을 좀 알고 있어서요.”
“언제든 환영입니다.”
그 말에. 현자 외의 다른 마법사들도 눈을 번뜩였다.
다들 그런 지인들이 하나씩은 있었던 것이다. 재능 넘치고 똑똑하지만 사정이 되지 않아 이번 포럼에 오지 못한 이들.
다들 그들을 초청할 생각에 몸을 들썩거렸다.
이런 분위기를 보며, 누군가가 속삭인다.
“아니. 근데······. 페르세타 선생님은 대체 뭐냐······? 이제는 천사 성교회마저 그를 따른다고? 그 어마어마한 마법 실력에. 거기다 마법사들도 더 모여들 거고······. 그럼 세력도 만만치 않아. 대체 그는 무슨 미래를 그리는 거지? 이 포럼을 통해 어디로 가려는 거지······? 세계정복이라도 하려는 건가?”
“······세계정복은 어렵지. 누구는 벌써 지금이 기사의 시대라고 하잖아. 마법이 아무리 강해도, 무력에서 기사들을 넘어서기는 어렵다고.”
“그래도 일국의 왕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지 않겠어?”
“······확실히. 그 정도라면······.”
그러자 또 누가 날카롭게 핀잔을 준다.
“바보들아.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냐?”
“그럼?”
“경쟁자가 늘었잖아. 더 늘어날 거고.”
“헉!”
“성적 밀리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으음······!”
글라우베 마법 대학의 면학 분위기가 더더욱 뜨거워진다.
페르세타는 그들의 집중력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자, 그러면 오늘은, 마침 성녀님도 와 계시니, 신계에 대해서 토론을 해볼까 합니다. 신계는 어째서 <알마게스트>가 기술한 운동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걸까요?”
이 질문은 별 것 아닌 것 같으면서도 아주 중요한 것이었다. 신계를 포함한 마계, 영수계, 설화계, 명계, 이 다섯 개의 상계가 바로 <알마게스트>가 가지고 있는 논리적 오류였으니까.
이걸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알마게스트>에 대한 의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아 과정을 통해 마법사들은 마법적 사고를 익히게 될 것이다.
페르세타는 그렇게, 의심하고 스스로 증거를 찾아나가는 마법사들을 기르고 싶었다.
마법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되는.
그는, 그런 진정한 동료를 원했다.
이 강의실에는, 지금 그런 자질을 가진 마법사들이 여럿 보였고.
그 사실이 페르세타를 흡족하게 했다.
**
페르세타는 잠시 산책을 나왔다.
강의실에서는 여전히 마법사들이 토론과 자습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어째서 신계는 <알마게스트>의 예측을 따르지 않는가.
이제 더이상 신계가 위대한 상계이기에 거기에만 적용되는 특별한 법칙이 따로 있다는 둥, 그런 얼토당토치 않은 대답을 하는 자는 없었다.
아주 뿌듯한 부분이었다.
자, 그럼 다음 진도는 어떻게 나갈까.
성녀와 신학자들은 어떻게 이끌어야 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학교 주변을 산책할 때였다.
사박-
발소리가 들리기에 돌아보니, 현자 시에넬 미르사와 그의 두 제자가 보였다.
페르세타는 의아했다.
항상 그 누구보다도 공부에 진심인 시에넬이 웬일이지? 자습은 안 하고 농땡이를?
그런 생각을 했을 때였다.
“페르세타 선생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네. 언제든 환영입니다. 현자님.
그리고 다음 순간.
털썩!
시에넬 미르사가 두 무릎을 꿇었다.
페르세타는 깜짝 놀라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선생님을······. 스승님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그 말에,
“에엣?!”
“스, 스승님!”
그녀의 두 제자, 진 리안느와 알 아네드도 그 말을 처음 듣는지, 펄쩍 뛰어오르며 놀라서는 스승님 옆에 엎어지듯 주저앉았다.
“스, 스승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국의 현자가 누굴 스승으로 모신다고요? 큰일 나요. 스승님!”
“에잇 시끄럽다!”
시에넬 미르사가 짜증을 벌컥 내고는 진지한 눈으로 페르세타를 올려다 보았다.
“정원에서 요정계의 노래국화를 보았습니다.”
“보셨군요.”
“네. 그리고 지난 밤에 천사를 소환하신 것을 보고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무엇을요?”
“선생님께선 제게 진정한 세계의 중심을 알려주셨지요. 하지만. 그조차도 끝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그 너머의 진리까지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녀의 진지한 눈빛에 페르세타는 솔직히 대답했다.
“알지요.”
“그러니. 스승님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이 시에넬. 얼마 남지 않은 목숨. 진리를 깨우치고 죽고 싶습니다.”
페르세타는 그녀를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나이도 훨씬 많고 사회적 직위도 비교가 안 되는 현자 시에넬이 자신의 제자가 된다······.
페르세타도 그게 사회 관습상 영 이상한 일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뭐. 남들에게 들키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문득.
이게 꼭 거부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자신의 목표는 이 세상에 진정한 마법사들을 길러내는 것.
자신과 연구를 함께할 동료들을 길러내는 것이 아닌가?
지금처럼 천천히 가르치는 것도 좋지만······. 통제가 가능한 몇몇을 더 빨리 가르친다면······. 그건 도움이 된다.
이 세상에 진정한 마법을 퍼뜨릴 선생이 더 많이 생겨나는 거니까.
페르세타는 생각을 정리하고 물었다.
“그럼. 매운 맛으로 배우시겠습니까. 순한 맛으로 하시겠습니까?”
“스, 스승님!”
현자 시에넬은 기뻐했다. 지금 페르세타의 말은 자신을 제자로 받아준다는 승낙과 다름 없으니까.
“스승님. 말을 편히 해주십시오. 이 제자.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아뇨. 전 이게 편합니다. 남들 눈도 의식해야 되고요. 그래서. 매운맛? 순한맛?”
“매운맛으로 부탁드립니다.”
그 말에.
페르세타의 얼굴에 숨길 수 없는 웃음이 피어올랐다.
그는 정말로 즐거웠다.
똑똑한 시에넬이라면······. 마음껏 가르쳐도 되지 않을까?
“좋습니다. 다만 허락없이 제 지식을 이용해 힘을 휘두르신다면. 그땐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물론입니다! 전 어차피 늙어서 뭘 휘두르고 그럴 시간도 없습니다! 배우기 바쁠 뿐이지요.”
현자 시에넬 미르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넙죽 엎드려 절을 올렸다.
“스승님을 뵙습니다.”
그녀의 두 제자, 알과 진은 그 옆에서 어쩔 줄을 모르고 발만 동동 굴렀다.
그러자 시에넬이 호통을 쳤다.
“뭣들 하느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알과 진이 시에넬 옆에서 몸을 던져 엎드리며 외쳤다.
“사, 사조님을 뵙습니다!”
페르세타는 그 모습을 희미한 미소를 띄고 바라보다가 물었다.
“그럼 무엇부터 배우고 싶습니까?”
“저는 스승님 덕에 마나 태양이 이 세계의 진정한 중심임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너머의 경지는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는 진리에는 또 무엇이 있는지. 그것이 궁금합니다.”
그 질문에.
페르세타는 진정으로 기뻤다.
그는 오랜만에 자신의 스승, 바르덴테를 떠올렸다.
그날, 그에게 받았던 그 충격을 상기하며 그는 말했다.
“다음으로 추구하셔야 할 것은 이렇습니다. 어째서 신비세계의 좌표는 계속 이동하는가. 왜. 우리 인간계와 뭇 신비세계는 마나의 태양을 중심에 두고 공전하는가? 그 근간에 존재하는 힘은 무엇인가.”
“아······!”
시에넬 미르사가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깊은 통찰이 주는 아득함에 전율을 느낀 것이었다.
페르세타는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자신 역시 바르덴테에게 이 질문을 들었을 때, 시에넬과 다르지 않은 감정이었으니까.
“한 번 고민해보십시오. 고민해보다가 찾아오시면 힌트를 하나씩 드리겠습니다. 그럼 일단은, 강의실로 돌아가죠.”
페르세타는 뒷짐을지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몇 발짝 걷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툭, 말을 던진다.
“아. 그리고. 방금 전에 마나 태양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하셨죠?”
“네. 스승님 덕에 알게 된 진리입니다.”
“아닙니다.”
“네?”
“더 큰 관점에서 보면, 마나의 태양조차도 결코 세계의 중심이라고 할 수 없어요.”
“예에······?”
페르세타는 웃었다.
정말로 기분이 좋아서.
“뭐, 이건. 한참 나중의 진도가 될 테니까. 지금은 그냥 기억만 해두십시오.”
페르세타는 휘적휘적 기분좋게, 마법 대학 글라우베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마침 하늘은 쾌청했고, 단풍이 진 숲은 그윽한 정취가 있었다. 드넓고 다채로운, 차원의 우주가 그러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