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32)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32화(32/171)
32화 <이데아>
“시, 심상 속에 도구를 만들라고요?”
글라우베 마법 대학의 수업이 모두 끝난 밤.
학교 근처의 어두운 숲 속에 4명의 마법사가 모였다.
페르세타, 일리안느, 살리넬르, 시에넬.
원래는 일리안느와 살리넬르가 페르세타에게 배우는 심야학습의 시간이었지만, 오늘부터 여기에 현자 시에넬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 거대한 충격에 몸을 바르르 떠는 중이다.
“그······. 스승님. 심상은 언제나 맑고 투명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최초의 마법서 <이데아>의 가르침이 아닙니까. 그 맑고 투명한 심상이 있어야 마법이 가능한 것인데······. 거기에 무언가를 만들어 넣으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녀는 페르세타를 믿었다. 자기자신보다도 더 믿고 있었다.
그렇기에 거대한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믿었던 세계가 발 밑에서부터 무너져 내리는 듯한 충격.
<이데아>를 부정하는 것은 <알마게스트>를 부정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마법이라는 거대한 탑을 쌓아올린 가장 밑바닥의 주춧돌. 그것을 빼내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일이었기에.
그런 시에넬을 보며, 살리넬르와 일리안느는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음······.”
“저희도, 저랬었죠?”
그들은 이미 페르세타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마나파 감지장치’를 심상 속에 만들어 둔 상태.
충격을 받은 시에넬의 모습이 새삼스럽게 보일 수밖에 없었다.
페르세타는 미소를 지었다.
시에넬이 합류하면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 되었음에도, 그는 짜증을 내지 않고 차분하게 가르쳐준다.
그는 똑똑한 사람을 사랑했으니까.
“현자님.”
“네. 스승님.”
“<이데아>에 있는 동굴의 비유. 알고 계시죠?”
“예. 갈고 닦지 않은 심상이란 마치 동굴 벽면을 바라본채 결박당한 죄수와 같다. 간수들은 식물이나 나무 같은 자연물의 모형을 불빛 앞에 가져다대며 지나간다. 죄수들은 동굴 벽에 비친 그 그림자가 ‘현실’이라 착각하며 살아간다.”
“잘 알고 계시네요. 더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네. <이데아>에서는 말합니다. 그렇기에 심상을 맑고 투명하게 연마해야한다고요. 그 어떤 선입관도 없이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받아들여야 한다고요. 마치 묶여 있던 죄수가 포박을 풀고 동굴 밖으로 나가서 태양 아래 드러난 진정한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흐려진 심상을 닦아냄으로써, 인식과 감각의 왜곡을 벗어날 수 있다.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틀렸습니다.”
페르세타는 말했다.
“있는 그대로의 인식이라는 건 존재할 수 없거나, 존재하더라도 무의미합니다.”
“예?”
“인간은 해석을 통해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렇기에 세상은 의미를 가집니다. 지금 이 숲 속에는 수많은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있지요. 만약 제가 아무 편견없이, 이 풀벌레의 울음소리와 현자님의 목소리를 동일한 비중으로 받아들이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 그럼.”
“네. 저는 정작 현자님의 말 속에 담긴 의미들에 집중하지 못하고,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될 겁니다. 청각뿐 아니라 시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지금 달빛과 그림자가 교차된 현자님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아무 편견 없이, 저 나무위에 떨어진 달빛과 현자님의 코 위에 떨어진 달빛을 동일하게 바라보면 어찌 되겠습니까?”
“······그럼 정작, 저라는 사람을 알아보기 어려워질 테지요.”
“맞습니다. 우리는 들어온 온갖 정보들을 해석합니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 먼저된 것과 나중 되는 것을 구분하고 각각을 다르게 인식하지요. 그렇기에 이 세상에서 의미를 만들고 파악해낼 수 있는 겁니다.”
“아······.”
현자의 입이 벌어진다.
페르세타는 담담이 말을 잇는다.
“그러니. 편견이 곧 인식입니다. 우리는 더 공정하고 의미있는 편견을 가지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지, 편견 자체를 없애기 위해 노력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무의미이자 혼돈이 될 뿐이니까요.”
“아아······.”
이번에 나온 탄성은 현자 시에넬의 것이 아니었다. 살리넬르와 일리안느의 입술도 어느새 벌어져 있었다.
이상하지.
이미 비슷한 말을 여러 차례 들었는데, 오늘 또 이렇게 들으니 그 느낌 새로웠다.
페르세타는 흡족해 하며 계속 말을 잇는다.
“허나 <이데아>의 가르침이 다 틀린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심상은 분명 맑고 투명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가장 깊은 곳에는, 투명한 심상이 받아들인 정보들을 해석하고 조작하는 장치가 필요하지요. 그게 바로 심상의 도구들입니다.”
그가 자신의 눈을 가리키고 머리를 두드리고 이어서 손발을 움직였다.
“우리 인간의 몸이 바로 그렇게 움직입니다. 눈이 투명하게 정보들을 받아들이면, 그 정보가 뇌로 향하여 그 안에서 재조합되고, 그렇게 만들어낸 해석을 통해 손발을 움직여 살아남습니다. 마법사의 마법도 이와 다르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시에넬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 스승님······. 이제야 알겠습니다. 마법사 자체를 새롭게 정의하는 것이군요. 아아. 이럴 수가. 스승님의 말씀대로 수많은 도구들을 심상 속에 갖추어 둔다면. 모든 것이 변하겠군요! 수많은 마법재료들도, 의식도구들도, 기나긴 주문도, 필요 없어지는 것. 전쟁 마법사와 일반 마법사의 구분도 사라질 것입니다.”
“네. 그렇게 될 겁니다.”
시에넬은 잠시 멍하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다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스승님. 저 또 하나를 깨달았습니다.”
“무엇이죠?”
“마법은 의심하는 학문이라는 것을요. 저는 <이데아>를 아무 의심없이 믿었습니다. 그것이 최초의 마법서였고, 이 세상에 마법을 존재하게 해준 책이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허나 마법은 끝없이 의심으로 발전해 나가는 것임을, 이제 알겠습니다. 스승님.”
시에넬이 감격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주름진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페르세타는 그 모습을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는 역시, 똑똑한 사람이 좋았다.
잠시간의 침묵.
그리곤 페르세타는 분위기를 전환하며 살리넬르와 일리안느에게 시선을 옮겼다.
“아무튼. 일단은 진도 나가겠습니다. 살리네르님과 일리안느는 이미 심상 속에 도구를 하나 만들었지요. 바로 마나파 감지장치입니다. 이 둘은 이제 어떤 외부의 장치가 없이도 자신에게 와닿는 마나파를 정확하게 분석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살리넬르와 일리안느가 조금 민망해 하면서도 으쓱한 태도를 보였다.
천하의 현자보다 앞섰다니, 자신도 모르게 조금 건방진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그럼. 묻겠습니다. 마나파 감지 장치. 이 다음에 심상에 갖추어야 할 도구는 무엇일까요?”
“으음······.”
살리넬르가 어렵다는 듯이 침음성을 흘렸다.
마나파 측정장치 이후에 갖추어야 할 도구?
그게 뭘까?
마법 재료나 의식도구를 대체할 수 있는 그런 기물을 만들면 될까?
하지만, 왠지 그건 답이 아닐 것 같았다.
페르세타는 마법의 시작은 ‘관측’에서부터 나온다고 했으니까.
다만, 이미 마나파 측정장치를 심상에 이식했는데, 이 이상 어떤 관측 도구가 존재할 수 있을까?
마나파 측정장치는 현존하는 최고의 관측장비이거늘······.
그렇게 살리넬르가 고민에 빠지는 사이, 일리안느는 자신의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보고 있었다.
현실성?
그건 일단 고려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의 오빠, 페르세타의 마법은 언제나 현실성 따위는 훌쩍 뛰어넘어버렸으니까.
그녀는 상상하고 또 상상하던 끝에, 조금은 자신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으음······. 마나파 감지장치는 우리 차원에 떨어진 마나파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장치니까. 혹시. 이런 건 아닐까요? 직접 차원 너머를 들여다보는 장치. 수동적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차원의 우주 곳곳을 살펴볼 수 있는 장치.”
그 말에 살리넬르가 눈썹을 찌푸렸다.
“그건 불가능하오. 차원의 우주는 방향도 가늠할 수 없으며, 인간이 인식하기에는 너무나도 드넓은······.”
허나 페르세타가 그 말을 끊고 답한다.
“일리안느. 정답. 훌륭하다. 내 동생.”
“와아······!”
일리안느는 환호했고, 살리넬르는 눈이 튀어나올 듯이 놀랐다.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페르세타님. 차원의 우주를 엿보는 건, 극도로 위험한 일입니다. 그 거대함에 정신이 붕괴할 수도 있고, 차원 멀미로 인해 내장이 꼬일수도 있고, 방향이 없는 그 우주 속에서 길을 잃어 영영 정신을 되찾지 못 할 수도 있습니다!”
페르세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격하게 동의한다는 듯이.
“네. 그렇기에 바로 도구가 필요한 것이지요. 길을 잃지 않고, 쓸데없는 정보에 휘둘리지 않게 해주는, 인식의 틀이 필요한 겁니다.”
“그······. 그런 게······.”
“살리넬르님의 지적은 다 옳습니다. 그렇게 접근하세요. 우선 가능한 모든 위험을 다 떠올리는 겁니다. 그 다음엔 철저히 대비하고, 그 다음 도전하는 거죠. 마법은. 세상에서 가장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학문이니까요.”
“······!”
살리넬르는 충격을 받은 듯, 입만 뻐끔거리고 말을 잇지 못했다.
현자도 얼굴이 창백해지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녀 역시 경험이 많은 마법사로서, 차원의 우주를 직접 들여다보는 게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었으니.
하지만 페르세타는 거침없이 설명을 이어갔다.
“저는 이 장치를 ‘지향성 차원 탐색 장치’라고 부릅니다. 마나파 측정장치는 마치 땅 위에 어리는 빛과 그림자로 하늘 위의 달과 별을 짐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지향성 차원 탐색 장치’는 하늘을 직접적으로 올려다보는 행위와 같죠.”
!!!
땅과 하늘. 그 상징은 강렬했다.
세 마법사는 설명하기 어려운 전율을 느낀다.
시에넬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건 마치······. <이데아>에서 말한 동굴의 비유와 비슷하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진정으로 동굴을 나서는 방법은 자리에 앉은 채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 필멸자들은 직접 팔다리를 움직이고 장소를 바꿔가며, 온갖 도구와 해석을 곁들여야만, 진정한 하늘을 올려다볼 수 있습니다. 지향성 차원 탐색 장치가, 바로 그 시작이 될 겁니다.”
살리넬르는 그 설명이 아름답다고 느꼈다.
목숨을 걸어보고 싶을 만큼.
하지만 그는 여전히 걱정이 됐다.
“근데 그게 우리 인간에게 정말 가능한 겁니까? 차원의 우주는 너무나 넓고 방향도 짐작할 수 없는데······?”
“글쎄요. 만약 살리넬르님이 평생 구부정하게 땅만 내려다보며 살았다고 생각해보세요. 그러다가 처음으로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본 겁니다. 그럼 어떤 기분이 들겠습니까?”
“······너무 넓고 방향도 짐작할 수 없다 생각하겠지요.”
“그렇죠. 하지만 그걸 계속 보고 내가 서 있는 위치와 계속 비교해보다보면, 어찌 될까요?”
“······서서히 그 하늘에도 익숙해질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자꾸 하늘을 올려다보면 우리는 그 안에서 별자리를 찾아냅니다. 의미와 방향과 관계를 깨닫게 되지요. 차원의 우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살리넬르는 몸을 크게 한 번 부르르 떨었다.
곧 그는 숨을 크게 몰아쉬며 말한다.
“······후. 좋아. 그럼 해보겠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비장했다.
그리고 페르세타는 보았다. 그의 심상이 이리저리 뒤틀리며, 새로운 장치와 방비들을 만들어내는 것을.
임시적이고 조악했으나, 방향성은 꽤 나쁘지 않다.
“흐으으읍!”
순간, 살리넬르의 눈이 뒤집혔다.
눈동자가 눈꺼풀 속으로 사라지고 부릅 떠진 흰자위만을 드러낸 채 그가 온몸을 바들바들 떤다.
그는 지금, 급조한 심상의 도구를 이용해 차원의 우주를 엿보고 있는 것이다.
“사, 살리넬르님? 괜찮아요?”
일리안느가 감히 살리넬르를 만지지는 못하고 그 주변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했다.
현자 시에넬도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한다.
그렇게 한 3분쯤 지났을까? 당장이라도 죽을 듯이 몸을 파들파들 떨어대던 살리넬르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허어억! 허억! 하아악!”
콜록거리며 그가 몸을 구부린다. 흰자위만 드러나 있던 그의 눈이 어느새 정상으로 돌아왔다.
페르세타가 물었다.
“어떠셨습니까?”
그 말에, 살리넬르는 창백한 얼굴로 답했다.
“거의 죽을 뻔했습니다. 미칠 듯이 두려웠고······.”
그러나 희미하게, 그는 미소를 띄운다.
“근데. 그래도······. 가능하다는 확신을 얻었습니다.”
페르세타가 웃었다.
그는 똑똑하고 용감한 자들을 사랑했으므로.
“좋아요. 자. 그럼 이번 과제는 차원의 우주를 직접 바라볼 수 있는, ‘지향성 차원 탐색장치’를 고안해보는 겁니다. 어떻게든 하늘을 직접 올려다볼 방법을 찾아보십시오.”
그 말을 마지막으로 페르세타는 미련없이 등을 돌려 학교로 돌아갔다.
찌르르-
찌르-
풀벌레 우는 숲 속. 덩그러니 남겨진 세 명의 마법사들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시에넬의 허탈한 목소리가 침묵을 흔든다.
“우린 여태 땅만 바라보고 살아왔구나······. 개미도 아니고. 버러지도 아니고. 하늘을. 올려다볼 줄도 몰랐구나.”
그녀가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회한이 가득한 목소리가 숲 사이로 흩어진다.
일리안느와 살리넬르는 가슴 저미는 울림을 느끼며,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깊은 숲.
깊은 밤.
세 명의 마법사는 마법이 무엇인지, 마법사가 어떤 존재인지, 서서히 깨달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