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36)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36화(36/171)
36화 화학작용
멍-
성녀는 항상 그랬다.
피안의 쉼터에서 나올 때면, 멍- 한 표정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신학자들은 그런 그녀를 이해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피안의 쉼터였으니까.
페르세타는 그곳을 쉼터라고 만들었지만, 정작 그들이 체험하고 느끼는 것은 ‘기적’이었다.
‘사실상 새로운 세상을 하나 만든 것이 아닌가?’
‘죽음을 통해 정신을 새롭게 리셋하다니······. 이건 성서에서도 본 적이 없는 기적이 아닌가······.’
비록 페르세타의 압박에 의해 신학도 결국 마법의 한 갈래라는 것을 인정한 그들이었으나, 사실 그게 어떻게 마음에서 우러나온 인정이었겠는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그들은 여전히 마법사에 대한 우월의식을 놓지 않고 있었다.
왜냐면.
그들은 상계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상계인 신계와 접하고 그곳을 추구하는 신학자들이었으니까.
자신들이 가장 드높은 곳을 바라볼 때, 마법사들은 정령계니, 환요계니, 요정계니 하는 낮은 하계를 기웃거리기나 하는 작자들이 아니었나.
그런데 아니었다.
페르세타의 마법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정령의 힘과 환요계의 요술로 마사지를 하는 것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대체 어떤 원리로 작동하는지도 알 수 없는 ‘공간 분열진’같은 것은 숨을 턱, 막히게 한다.
분명 여러 사람이 같은 건물에 들어갔는데, 그 건물이 모두에게 하나씩 복제된다니? 혼자서 그 시설을 다 이용할 수 있다니?
거기에 환술은 또 뭐란 말인가.
상상한 대로 변하는 풍경은 그냥 눈에 보기에만 그러한 환상 같을 것이 아니었다.
들어갈 수 있었고, 만질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다. 현실과 분간이 불가능하다.
거기에 명계에 이르면 그냥 할 말이 없어져 버린다.
낮은 하계라고 무시하던 환요계의 환술이 이토록 신묘하다니.
다섯 상계중에서 가장 낮은 위계에 속한 명계의 힘으로 그 어떤 기적으로도 이루기 어려운 ‘거듭남’을 가능하게 하다니.
이게.
마법이라니.
충격을 받지 않은 신학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기에 넋이 나가 있는 성녀를 보아도 다들 이해했던 것이다.
다만, 그들이 몰랐던 것은, 성녀의 충격이 그들이 상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거대했다는 사실.
어느날 성녀는 모든 신학자들을 불러모았다.
“여러분께 묻겠습니다.”
“듣겠습니다.”
“신학은 마법의 한 갈래입니까?”
“······?”
신학자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런 질문을 왜 한다는 말인가? 이건 이미 합의가 끝난 사항이 아니었나?
그래도 신학자들은 일단 대답했다.
“네. 신학은 마법의 한 갈래입니다.”
처음 이 말을 할 때만 해도 눈 앞이 캄캄해지고 식은땀이 흐르고 몸이 벌벌 떨렸는데, 이제는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뭐든 처음이 힘든 법이니까.
헌데,
성녀가 돌연 날카로운 눈빛으로 정색하는 것이 아닌가.
“아뇨. 우리는 사실은 그리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사도님의 지시를 겉으로만 따르는 척하고 있을 뿐이지요. 이는 불신이고 불경입니다!”
신학자들은 깜짝 놀랐다.
“아, 아니. 성녀님. 갑자기 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겉으로만 따르다니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저희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 성녀님도 보시지 않으셨습니까?”
허나 성녀는 차게 비웃었다.
“그래요? 그렇다면, 이 중에서 신성력을 마법적으로 기술해본 신학자, 아니 마법사가 있습니까?”
!!!
그 한 마디에 신학자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 아니! 성녀님! 어찌 그런 불경스러운 말을······!”
“신성력은 그렇게 설명 가능한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독실한 신심과 끝없는 수행 끝에 내려받는 은총으로서······!”
하!
성녀의 냉랭한 비웃음이, 그들이 모여 있던 작은 회의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아까는 신학도 마법의 한 갈래라는 것을 인정하신다면서요?”
“아······.”
“음······!”
신학자들은 할 말을 잃었다.
사실 그들도 방금 깨달았던 것이다. 자신들의 진정한 속내를.
그들은 열린 마음으로 마법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스스로 믿었으나, 사실 가장 근본적인 부분에서는 여전히 마법사들과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가령 신성력.
그건 수많은 마법사들이 그 비밀을 밝히고 싶어서 안달을 내던 문제가 아니던가.
하지만 이곳의 신학자들은 말로는 나도 이젠 내가 마법사인 것을 인정한다라고 했으면서도, 여전히 감히 신성력을 마법적으로 분석하고 설명을 해보겠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전히 그런 상상만 해도 그 불경스러움에 식은땀이 줄줄 흐를 정도였다.
하지만 성녀는 작심한 듯 거침없이 말했다.
“이제 우린 바뀌어야 합니다!”
그녀가 타는 듯한 시선으로 모두를 바라본다.
“우리는 진정으로 마법사가 되어야 합니다. 모든 선민의식과 선입관을 내려놓고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모든 걸 새로 배워야 합니다!”
“으음······.”
신학자들은 감히 그 말에는 반박하지 못했지만, 속으로는 떨고 있었다.
정말 괜찮은가? 정말 이래도 되는가?
하지만 성녀는 거기서도 한 걸음을 더 나간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지식을 마법적으로 새로 기술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걸 적극적으로 마법사들과 교환하여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네······?!”
“성녀님! 그게 지금 무슨 말······!”
신학자들이 경악했다.
이젠 손이 떨리는 것을 넘어 몸이 휘청거릴 지경이었다.
“성교회의 비밀을 마법사들에게 전파하겠다는 것입니까?!”
“이는 중대한 배교행위입니다!”
“본단에서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성녀는 흔들리지 않았다.
줄곧 차가운 웃음을 베어문 채로 이리 조소할 뿐이었다.
“그러든지 말든지, 알 바인가요?”
“예······?”
“본단? 거기에 치천사님을, 아니 가장 낮은 위계의 9품 천사님이라도 만나본 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나요?”
“그, 그건······.”
“우리는 치천사님을 바로 앞에서 보았고, 그 분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럼 우리는 누굴 따라야 하죠? 본단을 따라야 합니까?”
“아, 아닙니다······.”
“으, 응당 정의의 천사 ‘메아샤’님의 말씀을······.”
“그런데 당신들은 뭣들 하고 있는 겁니까!!”
성녀의 준엄한 꾸짖음에 신학자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성녀가 그들을 타이르듯 말한다.
“먼저 진리를 따르라. 그리하면 용과 악마도 너희를 피해가리니.”
성서의 한 구절.
신학자들이 그 구절을 따라 읊조린다.
“먼저 진리를 따르라. 그리하면 용과 악마도 너희를 피해가리니······.”
성녀가 주먹을 불끈 쥐고 말한다.
“그럼. 우선 신성력부터 분석해보는 겁니다. 그리고 그걸 카드로 삼아 다른 마법사들의 비전을 가져옵니다.”
“알겠습니다. 성녀님······.”
“따르겠습니다.”
성녀와 신학자들의 마법 연구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순간이었다.
**
“이건······. 아주 흥미롭군요.”
페르세타는 성녀가 신학자들과 함께 정리해온 논문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인정에 성녀와 신학자들의 얼굴이 밝아진다.
“정말 흥미로워요.”
페르세타는 결코 빈 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요즘 마법사들은 자신의 성취를 인정받기 위해 자신들의 연구 성과를 페르세타에게 가져와 평가를 받곤 하는데······. 그때 페르세타가 흥미롭다고 하는 말의 99%는 빈 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진심이었다.
‘이런 방식으로도 심상을 비틀고 심상의 도구를 만들 수 있구나. 너무 원시적이고 조악한 방법이지만······. 내가 떠올리지 못했던 방법이라는 점에서 아주 흥미롭다.’
성녀와 신학자들이 써온 논문. 그것의 제목은, <신성력의 마법적 설명을 위한 서론>
그들의 이야기는 장황했지만, 요약하면 간단했다.
‘신학자들은 자신의 심상 밑에 특별한 왜곡을 만들어 신계의 주파수를 더 용이하게 감지하고 그 파장을 증폭할 수 있다.’
이것은 페르세타가 요즘 살리넬르, 일리안느, 현자 시에넬에게 가르치는 기술과 동일한 원리를 가진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었으나, 신학자들이 심상에 왜곡점을 만들기 위해 치르는 각종 수행과 고행, 기도, 의식의 요소들 중에선 아주 신선하고 참신한 부분이 많았다.
‘으음······. 이런 방식으로 무의식과 염원만으로 특정한 효과를 내는 심상 도구를 만들 수도 있었구나. 정말 흥미로워.’
좀 더 연구를 하면 페르세타 자신의 마법적 성취도 얻을 수 있을 만큼, 의미 있는 내용.
이에 페르세타는 흔쾌하게 결론을 내렸다.
“좋습니다. 이를 크나큰 성취로 인정하는 바. 성녀님 외 53인의 신학자 여러분께, 1주일의 휴가를 드리겠습니다.”
“꺄아아아악!”
성녀의 입에서,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소녀스러운 비명이 터져나왔다.
그녀의 얼굴은 화끈 달아올라있고 귀까지 빨개진 상태였다.
“어······. 성녀님?”
물론, 신학자들도 기뻤다.
매일매일 정신이 리셋되어서 지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매일매일 2시간만 쉬고 22시간을 공부에 매진하는 삶이 힘들지 않을 리는 없는 거니까. 매일이 도전이었고 매일이 시련이었다.
그런데 1주일을, 그 천국 같은 쉼터에서 쉴 수 있다니 기쁜 게 당연하다.
하지만,
성녀의 저토록 좋아하는 반응을 보자, 어찌할 수 없이 가슴 한 켠에서 의심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던 것이다.
‘성녀님······. 혹시······!’
‘설마, 진리를 따르라 어쩌라 하셨던 그 말이 전부······!’
‘이걸로 성취를 얻어서 휴가를 얻어내려고 하셨던 건 아니시죠?!’
10년 이상을 굳게 다져온 신뢰가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성녀는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먼저 인사를 하고 방을 떠나버린다.
“페르세타 선생님. 그럼. 전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여러분은 다들. 푹 쉬고 1주일 뒤에 만나요! 아, 오늘 논문, 아란드리아에 발표하기로 한 거. 그것도 1주일 뒤로 미루자구요.”
룰루랄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뛰듯이 달려나가는 성녀.
신학자들은 그 뒷모습을 망연히 바라보다가, 또 자기들끼리 시선을 마주치다가 한숨을 푹 쉬고 걸음을 옮겼다.
물론 목적지는 피안의 쉼터였다.
곧 그들의 입가에도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떠오른다.
페르세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논문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의 입가에 드리워졌던 미소는 이미 지워진지 오래다.
“아란드리아에 발표를 할 생각이구나. 이제야 성녀와 신학자들이 본격적으로 마법을 받아들이고 마법사처럼 연구를 해볼 작정인 거야.”
사회 경험이 적은 페르세타였지만, 그렇다고 세상 돌아가는 정세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의 스승 바르덴테가 이런 부분만큼은 확실히 가르쳤으니까.
때문에 페르세타는 이 한 권의 논문이 가지고 올 파급 효과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천사 성교회에서 알면 난리가 나겠지. 하지만 그조차도 사소한 문제야.”
그가 지금 신경 쓰고 있는 것은 그런 외부의 사건보다는 오히려, 마법 학교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었다.
자신이 휴가를 보상으로 내 건 이후부터 벌어진 마법사들의 적극적인 합동 연구와 성과 교류.
그게 엄청난 화학반응을 일으키고 있었다.
당장 성녀와 신학자들의 이 논문이 이그나치오 교장의 손에 들어간다면 어찌될까?
분명 처음에는 세상의 발전과 번영을 위한 새로운 마법기술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무수한 정복전쟁으로 대륙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제국의 핵심 인물.
그 지식은 머지않아, 새로운 무기개발 쪽으로 응용되리라.
그런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이 포럼이 모두 끝나고 마법사들이 <첼레스티움>을 품에 안은 채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갔을 때, 본격화 되리라.
페르세타는 방심하지 않고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그러는 한편, 어떤 일이 벌어져도 흔들리지 않고 휩쓸리지 않고, 오히려 중재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베리테 남작령을 강하게 키우는 것에 관심을 쏟았다.
그가 문득 창밖을 바라본다.
그의 얼굴엔 다시 미소가 그려진다.
“흔들림은 있겠지만. 결국엔 다 균형을 되찾을 거야. 내가. 무게추를 만들어 달면 되는 문제니까.”
사실,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기 위해 긴장을 하는 것뿐이지, 그의 마음은 걱정과는 거리가 좀 멀었다.
자신의 예상보다도 더 빠른 마법사들의 변화와 화학 작용이, 페르세타를 어쩔 수 없이, 점점 더 기대하게 만들었으니까.
“생각보다······. 빨라질지도 모르겠어. 내 계획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