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38)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38화(38/171)
38화 아란드리아가 오다
노란 천사가 기는 해.
파란 달
요정의 날.
아란드리아의 사서들이 베리테 남작령을 찾아왔다.
그들은 설화계에서 기원한 집채만한 소와 사람만한 닭들이 끄는 커다란 마차들을 몰고 왔다.
아주 오래전부터 아란드리아가 키워온 신화적인 존재들.
거대한 마차에는 온갖 보물들과 책이 그득그득했다.
그들은 베리테 남작령에 도착해 플리안 베리테 남작에게 이곳에 터를 잡아도 되는지 다시 한 번 정식으로 허락을 구했고, 곧 자신들에게 주어진 성밖의 들판으로 나아가 마법으로 터를 닦고 제사를 올렸다.
그들은 마나의 태양과 8개의 신비세계에 새로운 터전에 아란드리아의 지부가 섰음을 고하고, 자신들의 맹세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 위대한 세계들 앞에 자신들의 기원을 더했다.
“마나 태양에 영광이 이 땅에 내리는 것처럼, 우리가 이 땅의 모든 영광과 빛을 기록하게 하소서.”
“기록하게 하소서.”
“신계의 드높은 깃털이 이 땅에 떨어지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를 더 높이게 하소서.”
“높이게 하소서.”
“마계의 힘이 세상을 진동케 하는 것처럼······.”
이 과정을 온갖 마법사들은 물론 영지민들과 베리테 남작가의 일원들 역시 모두 몰려나와 구경을 하고 역사상 최초 아란드리아 지부 설립의 증인이 되었다.
“페르세타 베리테 도련님.”
자신들의 의식이 얼추 끝난 후, 아란드리아-베리테 지부의 지부장을 맡게 된 대사서 르위메르가 페르세타에게 부탁했다.
“저희가 이땅에 이리 내려오게 된 것은 모두 도련님 덕분이지요. 그러니, 도련님께서 저희를 위해 축사를 해주신다면 이는 다시없을 영광이 될 것입니다.”
페르세타는 잠시 고민을 했지만, 곧 기꺼이 앞으로 나섰다.
아란드리아는 대륙의 왕들과 황제도 함부로 하지 못하는 지식과 지혜의 근원. 인류의 역사를 지켜보고 기록해온, 어찌보면 천사 성교회보다도 더더욱 신성한 권위를 지니고 있는 비밀스럽고 존귀한 집단.
베리테 남작가의 후계자로서 그런 아란드리아를 위해 축사를 하는 것은 가문의 입지를 향상시키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페르세타는 제단 앞에 나서서 하늘을 우러렀다.
그가 우러르는 방향은 인간계의 중심. 아란드리아가 위치한 방향에서도 더 높은 하늘쪽이다.
그리곤 등을 돌렸다. 차원의 중심을 등지고 그 반대편 머나먼 하늘, 아니, 어쩌면 차원의 저 너머를 바라보며 페르세타는 축사를 시작한다.
그의 축사는 앞서 아란드리아의 사서들이 읊었던 기원과 비슷했으나, 그 내용은 뭇 마법사들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것이었다.
“마나 태양 너머에 존재하는 수많은 태양들의 밝음처럼, 우리의 지식도 항상 서로를 향해 빛나게 하소서.”
마나 태양 너머에 수 많은 태양?
그런 게 어딨어?
지켜보던 마법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생각들을 떠올렸다.
허나 아란드리아의 사서들과 글라우베 마법 대학에서 공부하는 자들은 반응은 달랐다.
‘무엇이지? 이건 일종의 은유인가?’
‘차원 우주의 넓음을 시적으로 표현하신 건가?’
‘그러고보니 그런 가설이 있기는 하다. 신비세계를 제외하고도 희미하게 잡히는 주파수들. 그것들이 머나먼 또다른 세계의 증거라는 가설이 있기는 했는데······.’
마법사들의 의문 속에서 페르세타는 축사를 계속 이어갔다.
“차원 우주의 드넓음처럼 우리가 우리의 무지함의 드넓음을 알게 하소서.”
페르세타의 축사 중에서는 이렇게 쉽게 이해가 가는 내용도 있었다.
그렇지. 차원 우주는 드넓지.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우리가 빛나는 것보다 빛나지 않는 어둠 속에서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무엇보다 우리의 세계가 먼지와 같고 찰나와 같음을 알게 하소서.”
그러나 그의 축사는 결국엔 모두에게 아리송하게 느껴지는 기원으로 끝을 맺었다.
“부디 우리가 한없이 작고 덧없고 그렇기에 소중한 존재들임을 깨닫게 하소서.”
많은 마법사들은 이 말을 듣고 그렇게 생각했다.
역시나 은유였구나.
이 우주에 빗대어 도덕적 은유를 담으신 거였어.
하지만 페르세타는 어쩐지 약간의 격정을 느끼는 듯, 가만히 홀로 여운을 느끼다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그 누구도 감히 숨소리 하나 내지 못했다.
이젠 외부에서 온 마법사들도 잘 알고 있었다. 이 곳에 모인 쟁쟁한 마법사들의 중심에 페르세타가 있음을.
어째서 모두가 그를 추종하는지까진 여전히 이해를 못했어도, 그의 눈치를 살필 줄 아는 사회성 정도는 다들 있었다.
그렇지 않은 자들은 모두 채찍을 맞고 쫓겨났으니까.
잠시간의 침묵.
그 후에 대사서 르위메르가 입을 열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페르세타 베리테 도련님.”
그 말에 페르세타는 살짝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화답했다.
“언젠가. 이 말의 진정한 뜻을 깨달으시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
아란드리아의 지부 설립.
그것은 상상 이상으로 어마어마한 파급효과를 불러왔다.
아란드리아는 수 천년에 걸쳐 세계의 모든 지식과 비밀을 수집해온 집단.
비록 그곳의 사서들이 비밀을 평생 간직하겠노라 서원을 했다고 해도, 여전히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힘은 막강한 것이었다.
수많은 비밀과 지식을 알고 있기에 거기서 오는 통찰, 그것 하나만으로도 왕들과 황제가 찾아가 고개를 숙이고 배움을 구할 만한 가치가 있었다.
하물며 거기에 이제 200년 이상이 지나 비밀서약에서 풀려난 지식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까지 감안하면, 아란드리아는 세상의 모든 마법사들과 현인들 그리고 통치자들이 가장 찾고 싶어하는 장소 중 하나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 아란드리아까지 찾아가는 이는 드물었다.
아란드리아가 비록 서고를 개방하는 데에는 깐깐했지만, 그래도 찾아온 이들에게 지혜를 빌려주고 해답을 주는 일에 인색하지 않았음에도 그러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물리적으로 아란드리아가 너무 먼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도보로 간다거나 말을 타고 간다거나 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그곳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몇 년의 여정을 각오하지 않고서는 결단할 수 없는 길이었다.
오로지, 이번에 아란드리아의 사서들이 몰고 온 설화계의 영수들 정도는 되어야 아란드리아를 쉽게 오갈 수 있었다.
현자 시에넬의 마차를 끄는 기린이나 성녀가 타고 다니는 유니콘 같은 존재들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존재들을 이용해도 1달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곳이 바로 아란드리아였다.
왕복으로만 2달이 걸리는 길.
영수를 탈 수 있을 정도로 신분이 높은 인물들이 그런 긴 시간 여정을 떠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아란드리아의 지부가 생겼다.
대륙 안에.
비록 변방 왕국의 변방 영지에 위치를 했다고는 해도, 그래도 같은 대륙 내라는 사실이 중요했다.
가장 먼 왕국에서 출발해도 말을 타고 1달이면 닿을 수 있는 위치인 것이다.
영수를 이용하면 며칠 걸리지도 않는다.
그런데 바로 그런 곳에 아란드리아의 대사서 1명과 수석 사서 4명. 그리고 정식 사서 30명이 수많은 책과 보물을 가지고 정착을 한 것이다.
당연히 대륙 전체가 떠들썩해질 만한 사건이었다.
당장, 베리테 남작령이 속해 있는, 드블랑 왕국이 움직였다.
“루시안 공작 전하를 뵙습니다.”
플리안 남작은 몸을 벌벌 떨었다.
여태 영지를 찾은 수많은 거물들 덕분에 이젠 좀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또 달랐다.
신분으로만 따지면 그랬다. 드블랑 왕국의 공작보다야 강대국인 비셰나 왕국의 왕세녀가 더 높은 게 당연했다. 제국의 현자인 시에넬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타국의 인물들이 아닌가?
드블랑 왕국의 사람인 플리안 베리테에게는 국왕의 친동생인 루시안 공작이 훨씬 더 무게감 있고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루시안 공작은 예를 표하는 플리안의 어깨를 잡아주며 활짝 웃었다.
“잘해주었네. 플리안 남작. 정말 잘해주었어! 내 오늘은 국왕 폐하의 선물을 들고 왔네!”
그의 선물은 정말로 놀라운 것이었다.
“오늘부터 그대를 플리안 백작에 봉하노라.”
무려 백작으로의 승작.
자작도 아닌 백작이라는 것은 정말 그 의미가 남달랐다.
백작부터는 그냥 귀족이 아닌 대귀족.
남작과 자작을 봉신으로 거느릴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귀족이었다.
아란드리아의 지부가 있는 땅을 다스리는 주인이 남작이어서는 격에 맞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나온 파격적인 승작.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제 3 왕국 연대의 지휘권한을 내리노라.”
이 일대에 주둔 중인 왕국 정규군의 지휘권.
사실상 이게 있는 한 왕국 동부에서 감히 베리테 남작령을 상대로 무력시위를 할 수 있는 존재는 그 누구도 없게 된다.
“또한 아란드리아가 이 땅에 존속하는 한, 영구히 세금을 면제하노라.”
파격에 연속.
세금은 귀족이 왕에게 바쳐아 하는 의무.
그것을 면제해준다는 것은 귀족으로서의 권리만 가지고 그 의무는 거의 지지 않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또한 왕국 차원에서 이 땅에 여러가지 투자와 지원을 준비할 예정이네. 고맙네. 플리안 남작. 정말 고마워.”
국왕의 친동생인 루시안 공작은 이런 터무니없는 특혜를 마구 베풀어주면서도 오히려 플리안 남작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플리안 남작은 그저 정신이 어벙벙해서 성은이 망극하다는 말만을 기계처럼 하고 또하고 또 반복했을 뿐이다.
그리고 루시안 공작은 한창 공사가 진행중인 아란드리아 지부를 구경하고 대사서 르위메르와 한동안 대담을 나눈 후, 폐를 끼치기 싫다며 그날로 바로 영지를 떠났다.
그러니,
그날 밤은 당연히 베리테 가문에서 가족 파티가 열릴 수밖에 없었다.
아름답게 밝혀진 촛불들.
풍성한 음식.
그 기분 좋은 분위기 속에서, 페르세타를 바라보는 플리안 남작······ 아니, 백작과 로오루아 백작 부인의 시선은 각별했다.
“페르세타······.”
그들은 꿈만 꾸는 것 같았다.
30년 간 기별도 없었던 아들.
그 사이 하루하루 가세가 기울어 거의 넘어가기 직전이었던 가문이.
모든 게 잠깐의 악몽이었던 것만 같았다.
페르세타가 세상에 나오고, 모든 상황이 한순간에 돌변했다.
영지는 마법사를 비롯한 수많은 고급 인력들이 넘쳐나는 도시로 발전해나가고 있으며, 수많은 상인들이 이곳을 찾았다.
그것만 해도 꿈같은데 이번에는 백작이 되었다.
백작.
가문의 격이 한순간에 아득히 높아진 것이다.
특히 로오루아 백작 부인의 감격은 크고도 깊었다.
그녀는 자신의 첫째 아들, 베리테의 손을 잡고 쓰다듬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고맙다. 페르세타. 고마워.”
“아니에요. 어머니.”
“아니긴. 정말 큰 일해줬어. 고맙다. 페르세타. 네 덕분에 즈바르트도, 일리안느도······. 내가 한 시름을 덜었다.”
사실 그건 그녀의 오랜 걱정이요 아픔이었다.
한미한 시골 남작가라는 것이 참 그렇게 애매한 것이었다.
한 명의 후계자에게 가문을 물려줌으로써, 귀족의 신분을 유지할 수는 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한 그 형제 자매들은 사실상 준귀족으로 밀려나는 것이고 세대가 두어번쯤 바뀌고 나면 사실상 평민과 다를 바 없는 처지에 놓이고 만다.
그렇기에 부지런히 실력을 갈고 닦아서 스스로 기사가 되거나 마법사가 되거나, 행정관료가 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가난한 남작가의 자금 사정으로는 그런 것조차 마음껏 밀어주는 게 쉽지 않았다.
설령 뛰어난 재능으로 실력이 충분하다 하여도, 한미한 가문 출신이라는 것은 두고두고 발목을 잡는 족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백작이라니.
백작의 신분이 있다면, 결코 가문이 일리안느와 즈바르트의 족쇄가 될 일은 없을 것이다.
또한 그들에게도 당당하게 남작위 정도는 물려줄 수 있었다.
작위가 있는 귀족과 작위가 없는 귀족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
그러니, 로오루아는 가슴 속에 응어리 져 있던 미안함과 걱정이 사르르 녹아내릴 수밖에.
페르세타는 그런 어머니의 표정을 읽고는 더이상 겸양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어머니의 손을 마주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어머니. 정말로 잘 되었어요.”
로오루아가 페르세타에게 기대고 페르세타는 기꺼이 어머니에게 자신의 온기를 나눠주었다.
플리안도, 즈바르트도, 일리안느도, 그 모습을 기분 좋게 바라보며, 따스하고 즐거운 저녁을 보낼 수 있었다.
**
다시 며칠이 지나고.
페르세타는 글라우베 마법 대학의 새로운 강당에 섰다.
점점 더 늘어나는 학생을 감당하기 위해 신축한 더욱 거대한 강당이었다.
백 명이 훌쩍 넘는 학생들 사이에서, 아란드리아의 사서 수십 명이 자리에 앉아 눈을 빛냈다.
이 분위기.
그 동안 쌓아온 지식들.
이에 페르세타는 직감했다.
‘이제 슬슬 <첼레스티움>을 발표할 때구나.’
마법사들도 준비되었고, 새로운 지식이 최대한의 파급효과를 만들 수 있는 그런 상황도 갖추어졌다.
드디어,
이 세계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관, 다른 진리를 받아들일 때가, 찾아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