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4)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4화(4/171)
4화 요정
“오빠는 평생 공부만 했다면서 또 책을 봐?”
일리안느가 옆에서 입술을 삐죽거렸다.
페르세타는 빙긋 웃고 남작가 서재에 있는 책들을 속독으로 읽어내릴 뿐이었다.
“근데 오빠. 진짜 읽는 거 맞아? 무슨 책 한 권 읽는데 1분도 안 걸리는 거 같은데······. 오빠가 기억력이 좋다는 건 어릴 때부터 듣긴 했지만······.”
일리안느는 페르세타가 방금 던져버린 책을 펼쳐들고 물었다.
“자 맞춰봐. 방금 이 책의 68페이지 다섯번째 문장이 뭐야?”
그러자 페르세타는 시선을 파라락 넘기고 있는 책 페이지에 고정한 채로 대답했다.
“위대한 책, <알마게스트>에 서술된 바와 같이, 마나의 태양과 모든 신비세계가 우리 차원을 중심에 두고 회전하고 있음은 지극히 자명하다.
우리 인간계가 온 우주의 중심에 있고 뭇 신비세계와 위대한 마나 태양이 우리를 둘러싸고 굽어보신다. 이는 마나 감지판을 사용한 차원 관측을 통해도 입증되는 바이다.
비록 차원의 우주는 물결치고, 위대하신 대마법사 프톨레마이오스님과 같은 천재가 아닌 다음에는 차원 우주 속에서 방향조차 짐작하기 어렵기에, 정확한 궤적과 거리를 알긴 어렵지만, 대략 모든 신비세계와 마나태양의 신호가 우리를 중심에 두고 이동하고 있음은 여전히 증명이 가능한 바이다.
다만 오늘날 <알마게스트>의 좌표계산이 맞지 않게 된 이유는 알 수가 없다. 현재로서는 우리를 굽어보시던 마나태양과 신비세계가 우리를 두고 점점 멀리 떠나가고 있다는 학설이 유력하다.”
다른 책을 파라락 넘기며 동시에 일리안느가 요구한 부분을 암송하던 페르세타는, 점점 화가 치밀어서 얼굴이 창백해졌다.
너무 기가 차고 어이가 없어서, 한 문장 외고 말 것을 끝도 없이 외워내렸다.
결국 질려버린 일리안느는 소리를 질렀다.
“그만! 그만해! 알겠어! 알겠다고! 와······. 이걸 다 외우네.”
일리안느는 질려버린 얼굴로 페르세타를 바라보았다.
문득 이해가 안 갔다. 저런 머리로 왜 30년 간 경지에 오르지 못 한 거지? 이해력이 조금 문제가 있는 걸까?
아니면 마나 감응력의 문제일까?
그녀는 조금 궁금해져서 알아보기로 했다.
“오빠. 여기 있는 책은 원론적인 책들뿐이고. 진짜 마법사들이 다루는 응용수식 책은 내 서재에 따로 있거든?”
“응용수식?”
“응! 알마게스트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만들어진, 마법사들의 헌신과 노고가 깃든 위대한 수식들!”
그 말에, 페르세타의 얼굴이 다시 창백해졌지만, 일리안느는 그 표정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아무튼, 그거 보여줄게. 따라와! 현대의 마법을 이해하려면 무조건 응용수식을 익혀야 한다고? 3레벨만 마스터 해도 마법사로 활약하는 덴 지장이 없고, 5레벨을 마스터하면 왕궁에서 모시러 나오고, 7레벨을 마스터하면 왕국 제일. 8레벨은 제국에나 있다고 하더라고.”
“그런 게······. 8레벨까지 있다고······?”
“이론상으로 9레벨이나 10레벨도 가능하대. 여전히 대마법사님들이 연구중인 과제지.”
“아······.”
페르세타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일리안느는 그런 그가 안쓰러웠다.
30년을 공부하다 나왔는데, 공부할 게 아직도 이렇게 많다는 소릴 들으면, 그녀라도 똑같은 표정을 지을 것 같았으니까.
**
결론이 났다.
아니, 사실 결론은 진즉에 내렸으나, 정말 믿을 수가 없어서······.
페르세타는 일리안느가 자랑하는 응용수식 책까지 쭉 읽어보고 나서야 그 결론을 인정할 수 있었다.
“그렇구나. 그런 거였구나······.”
모든 책을 독파한 페르세타가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일리안느는 그런 페르세타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어때······? 오빠?”
페르세타는 힘겹게 웃었다.
“그냥······. 이걸 그냥 풀어서는 안 될 거 같아요.”
“엥? 무슨 말이야? 뭘 풀어?”
일리안느가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페르세타는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이래서, 스승님께서 내게 정치, 철학, 윤리, 사회, 경제, 역사······ 그런 걸 가르치셨던 거구나.’
페르세타는 총명한 머리로 스승의 의도를 뒤늦게나마 짐작해냈다.
이번에도, 스승님이 옳았다.
만약 자신이 스무살에 <프린키피아>를 완성했을 때 세상에 나왔다면,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을지, 스스로도 잘 짐작이 가지 않았다.
너무나 낙후한 현대의 마법학······.
아니, 학문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그 조악한 주술에 실망하여 이 세상을 멋대로 뜯어 고치려 하지 않았을까?
공부를 마치고, 이제 더 깊은 진리를 탐구하고자 했는데,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다른 마법사들을 보고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었다.
지금도, 이 세상이 자신의 연구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깨달음에 이토록 마음이 저린데, 철없던 젊은 시절에는 오죽했겠는가?
끔찍한 재앙이 벌어졌을 것이다.
힘으로 남을 바꾸는 것은, 그것이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어도 피바람을 불러일으키는 법이었으니까.
스승님의 가르침 덕에 페르세타는 이제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럴 순 없지.’
그렇다면 힘을 사용하지 않고 부드럽게 지식을 퍼주면 어떨까?
그것도 결코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다.
손쉽게 힘을 쥐고 몸집만 커진 인류는 그 주체 못하는 힘을 멋대로 휘두르려고 할 것이고 세상은 다시 엉망진창이 될 것이었다.
스스로 노력하기보단, 힘을 손쉽게 차지하기 위해 자신을 중심에 두고 처절한 각축전도 벌여대겠지.
‘그럴 순 없어.’
이 꼴도, 저 꼴도, 다 보기 싫었다.
페르세타는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 거대하고 장구한 차원의 우주 속에서, 우리의 세계는 한낱 티끌이고 찰나일 뿐인데······. 그 안에서 서로 싸우고 아등바등한다니······.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세상에 어딨어?’
그가 알아낸 세계의 진실 속에서, 인간의 삶과 인류의 역사란, 너무나 작고 소중한 것이라······ 그렇게 낭비할 수는 없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이대로 자신의 연구를 포기해야 할까?
스승님이 물었던, ‘모든 것의 기원’에는 끝내 닿을 수 없는 걸까?
페르세타는 이미 혼자 연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마친 상태였다.
앞으로 연구에는 수많은 거대 시설과 장비들이 필요했다.
그건 혼자 만들고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수준 높은 마법사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들이었다.
페르세타는 차분히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의 마법은 이미 수 백년. 아니 어쩌면 이미 수 천년을 앞서고 있다.
그리고 현재의 마법사들이 갇혀 있는 수준을 보면, 그의 지식은 그가 가르치고자 한다고 해서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어쩔 수 없지.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아가자.’
억지로 가르치려 하면 세계에 문제가 생길 것이고, 그렇다고 가르치지 않으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없게 된다.
페르세타는 이 딜레마 속에서 나름의 절충안을 세웠다.
100년 200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해보는 걸로.
어차피 그의 마법적 경지를 고려하면, 300살까지는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천천히. 아주 천천히. 사람들이 스스로 마법을 깨우쳐 가게, 그렇게 유도하는 거야.’
그게 페르세타의 결론이었다.
아주 친절하게 커리큘럼을 만들 것.
그 커리큘럼을 따라 사람들이 스스로 깨닫게 할 것. 마법을 연구하는 올바른 방법을 익히도록 이끌어 줄 것.
그렇게 속도조절과 방향조절을 통해, 혁신의 단점은 빼고 장점만을 남길 것.
‘우선은 가까운 사람부터 천천히 가르치고 깨닫게 하자. 그리고 총명한 이들을 조금씩 모아보자.’
페르세타의 머릿속에 순식간에 계획이 짜맞춰졌다.
어떤 커리큘럼으로, 어떤 전략으로 움직일 것인가.
그리고 그 계획의 끝에 한 가지 개인적인 목표도 슬쩍 끼워넣었다.
‘그리고 우리 가문도 번창하게 해야지.’
그는 마법도 좋아했지만,
30년만에 만난 가족도 참 좋았으니까.
어쩌면, 100년, 200년을 보고 긴 계획을 세울 수 있었던 것도, 가족이 주는 안정감과 여유 덕분이었는지도 몰랐다.
**
“일리안느.”
“응?”
“요정이 좋다고 했죠?”
“응! 요정 정말 좋아!”
일리안느의 두 눈이 꿈에 취하듯 몽롱해졌다.
“지금, 요정농장에 갈 건데 같이 갈래요?”
“지금?”
“네.”
“좋아! 혹시 알아? 이 야심한 밤에 요정들이 춤이라도 추고 있을지. 진짜 그랬으면 좋겠다.”
후다닥 일어나서 겉옷을 챙겨입는 여동생을 보며, 페르세타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밖은 바람이 시원했다.
요정 농장의 밤엔 창백한 빛이 이따금 깜빡거렸다.
그 모습에 일리안느는 잔뜩 신이 나서 방방 뛰었다.
“와! 그래도 오늘은 평소보다는 요정계와 연결이 원활한 편인가봐! 저기 요정의 빛 보이지!”
요정의 빛.
그것은 말마따나 요정의 빛일 뿐이었다.
정작 요정은 보이지 않고, 창백한 빛들만이 반딧불이처럼 이따금 나타났다가 사라질뿐.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원래라면 인간계에선 자랄 수 없는 특수한 작물들이 어찌어찌 자라나긴 했다.
생산량이 적고, 품질이 낮아서 그렇지.
요새는 그게 일반적인 것이 되었지만.
일리안느는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기쁜지, 이따금 날아오르는 창백한 요정의 빛 아래서 양 팔을 벌렸다.
“난 아직도 꿈을 꿔. 딱 한 번 본적 있거든. 이 요정 농장에서, 진짜 요정을. 봤어 분명히. 잊을 수가 없어. 그 순간을.”
몽롱하게 하늘을 바라보는 자신의 여동생을 바라보며, 페르세타는 묵묵히 마법진의 중심에 섰다.
‘이걸······. 제대로 수정해선 안 되겠지.’
그건 너무나 눈에 띄는 짓이었다. 그럼 이 마법진의 비밀을 알아내고자 전 세계가 미쳐서 달려들 터였으니까.
그러니,
그저 우연한 일로, 이 세상의 마법사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렇게 접근하는 수밖엔 없었다.
“오빠? 뭐 하려고? 거기는 마법진의 중심인데?”
혼자 꿈에 취해있던 일리안느가 퍼뜩 정신이 들었는지 페르세테에게 다가왔다.
페르세테는 그저 한 번 웃어보이곤 손을 뻗어 마법진의 중심을 활성화 시켰다.
파아아앗-!
순식간에 다채로운 빛을 뿌리며 활성화되는 거대한 마법진.
밤의 농장이 마법진의 빛에 휘감겨 신비롭게 번쩍거렸다.
“우왓? 그걸 이렇게 쉽게 활성화 한다고?”
일리안느는 깜짝 놀랐다.
은근히 마음 속으로 불쌍히 여기던 오빠에게 숨겨놓은 한 수가 있었다. 마법도 제대로 못 배우고 폐관을 마친 줄 알았는데, 이런 재주가?
하지만 놀라운 일은 지금부터였다.
“일리안느. 잘 들어요.”
“어, 어?”
“현 시대에 마법이 잘 발동하지 않는 이유는 <알마게스트>의 좌표 계산에 오차가 생겼기 때문이죠.”
“그, 그야 그렇지? 아니면 신비세계 자체가 우리 세계를 떠나가고 있는 중이거나······.”
그 말에, 페르세타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신비세계는 우리를 떠나지 않았어요. 단지, 우연히 지금 시기에는 자연적인 공명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 뿐인 거죠.”
“에······. 그걸 오빠가 어떻게 알아?”
페르세타는 싱긋 웃기만 하곤 더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손을 흔들었다.
그의 손짓을 따라, 의미로 가득한 룬 문자들이 우수수 떠올랐다.
“우선, 좌표 계산을 정확히 할 수 없다면, 감지하는 범위를 넓히면 해결이 돼요. 작은 원통으로 들여다보던 하늘을 큰 원통으로 들여다보는 거죠. 그럼 그 큰 시야 어딘가엔, 내가 보고 싶었던 별이 담길 거잖아요?”
일리안느도 마법사였기에, 그 말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반박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정작 내가 보고 싶어했던 별빛은 잘 안 보이잖아. 감지범위를 넓힐수록 노이즈가 심해지는 건 기본 아니야?”
“그래서 공명이 필요한 거예요. 내가 보고자 하는 별이 보내는 주파수에 맞춰 공명을 일으키는 거죠. 그 별빛을 홀로 환하게 키우는 거예요.”
페르세타가 양손을 휘젓자, 우수수 떠올랐던 룬문자들이 마법진의 룬문자와 섞여 재배열 되었다.
좁고 깊은 우주를 감지하던 마법진이 넚고 얕은 우주를 시선에 담는다.
“공명을 시킨다? 하지만 지금 있는 게 공명 마법진인걸?”
“공명이 안 되잖아요. 주파수가 틀어져서 그래요.”
“그럼 그걸 어떻게 바로 잡는데?”
“이렇게요.”
파악-!
양손바닥을 펼쳐, 마법진의 룬문자를 완전히 고쳐버린 페르세타는, 이번엔 쪼그려앉아 땅을 두드리며 주문을 외웠다.
“비 내리는 숲. 흙 위로 떨어진 속삭임이라. 빛 드는 잎새. 그 사이 떨어진 춤사위리라. 그대는 어느새 피어있던가. 뒤 돌면 흐드러지는 흔들림 속에.”
탁탁 땅을 두드리는 페르세타의 기묘한 리듬과 함께, 운율을 지닌 그의 주문과 함께, 대지에 뻗은 마법진이 공명을 시작했다.
웅-
우웅-
깜빡이며 깜빡이며 점점 환해지는 빛 속에서, 일리안느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게 무슨······.”
아까 룬을 다루는 것도 충분히 놀라웠는데.
지금 읊조리는 주문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것이었다.
애초에 마법이기는 한가? 그런데 왜 마법진이 반응을 하지?
당황했던 그녀는, 문득 누군가가 자신의 머리칼을 따끔! 잡아당기는 것을 느끼고 화들짝 놀랐다.
“아얏! 뭐야?!”
하지만 돌아본 곳엔 사람이 없었다.
– 하하핫! 바보 같아!
대신,
요정이 있었다.
빛나는 날개로 허공에 무한대를 그리곤 작은 열매 위로 내려앉는다.
– 꺄르르
– 헤헤? 여긴 어디야?
– 넌 첨 와봐? 난 오랜만인데!
빛났다.
온 농장이.
요정과 요정의 날개가 발하는 빛으로 가득했다.
털썩.
일리안느는 그만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