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46)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46화(46/171)
46화 살리넬르의 도전
베리테 백작령에선, 마치 지식이 화폐와도 같았다.
사람을 부려먹으려면 대가를 줘야 하는 법인데, 그 도도하고 부유한 마법사들이 단 한 줄의 지식을 얻기 위해서 개미처럼 일을 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그리고 살리넬르는 그 최전선에 서 있었다.
페르세타를 꺾겠다고 맹세하고 남작령의 전속 마법사가 되었던 남자, 살리넬르.
하지만 그는 페르세타를 꺾기는커녕 도리어 포럼 기간 동안 그에게 귀중한 지식을 배우고 말았다.
되려 심리적으로 큰 빚을 지게 된 것이다.
그랬기에 그는, 과제 수행 점수 B등급을 받은 마법사들에게 앵콜 강의를 해주라는 페르세타의 지시를 어길 수 없었다.
2주일에 한 번씩, 그는 연단에 서서 마법사들을 가르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세계가 자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전에 말한 <알마게스트>의 새로운 계산이 가능해졌지요. 그럼 다음 시간에는, 페르세타의 진자를 통해 자전이 실존함을 증명하고, <알마게스트>의 좌표가 왜 틀어졌던 것인지. 그리고 그걸 복원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강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수업을 마치며, 살리넬르는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포럼 기간 내내 느꼈던 감동이 되살아나서 그랬다.
물론 앵콜 강의의 방식은 포럼과는 완전히 달랐다.
포럼 당시의 페르세타는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지식을 풀며, 마법사들이 스스로 <알마게스트>에서 위화감을 느끼고 생각하게 유도를 했었다.
그리고 그 끝에서 알려준 것이, 세계의 진정한 형태와 올바른 좌표계산법.
반면에 지금 하는 앵콜강의는 어찌보면 그 순서가 반대라고 할 수 있었다.
한 명 한 명에게 고민할 기회를 주기보다는 당장 쓸 수 있는 좌표와 수식 몇 개를 먼저 던져주고, 그 후에 원리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방식이었다.
빠르기야 후자가 빠르지만, 정말로 성장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던 건 페르세타가 취했던 전자의 방식.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앵콜강의를 위해 지난 포럼에서 배웠던 지식을 되새길 때마다, 살리넬르는 그때의 전율이 되살아나는 느꼈다.
낡은 고정 관념을 뛰어넘는 대담한 발상, 직관을 뛰어넘는 거대한 상상력.
살리넬르는 그 지식 한 마디 한 마디에서 페르세타라는 인물자체를 읽어볼 수 있었다.
그가 어떤 고민을 했고, 그걸 어떻게 극복했는가.
그 여정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찬탄이 절로 나오는 경이의 연속.
위대함 그 자체.
그랬기에 그는 더욱더 간절해졌다.
‘페르세타를······. 뛰어넘고 싶다.’
이제 그것은 더이상 자신의 스승이었던 제로지아의 꿈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젠 그것이, 살리넬르 자신의 진정한 꿈이 되었다.
저토록 위대한 마법사와 어깨를 나란히 해보고 싶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이겨보고 싶다.
나도 위대함을 담은 눈으로 진리를 꿰뚫어보고 싶다.
그 마음이 점점 커져서, 숨을 쉬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강의를 마친 살리넬르는 황급히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갔다.
드르륵!
문을 열자, 거대한 칠판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는 수식과 메모가 보였다.
지난 두 달간, 살리넬르는 단 하나의 문제에 천착했다.
바로 페르세타가 말했던 ‘동력’에 관한 문제.
자. 이제는 알고 있다. 인간계를 포함한 모든 세계가 마나의 태양을 중심으로 공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헌데 그렇다면, 왜, 세계는 마나의 태양을 공전한단 말인가?
세계가 경로를 이탈하지 않고 마나의 태양 주위로 일정한 여행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살리넬르는 페르세타의 두 번째 강의가 시작되기 전에, 먼저 이것의 답을 찾아낼 작정이었다.
진심으로 페르세타를 이겨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첼레스티움>이 페르세타가 가진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땐, 잠시 좌절을 하기도 했지만, 이제 그는 다시 더 뜨겁게 타올랐다.
페르세타.
당신이 대체 어디까지 내다보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따라잡아주마. 당신의 도움 없이 따라잡고, 그 이후에는 뛰어넘고 말리라.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하루라도 빨리 이 ‘동력’이 무엇인지, 답을 찾아내야만 했다.
우선은 따라잡아야 뛰어넘는 것도 생각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살리넬르는 코트를 벗어던지고 책상에 앉아 사각사각 연구를 시작한다.
“동력. 힘이라는 뜻이지. 그럼 이 힘은 어디서 오는가?”
살리넬르는 여러 가지 가설을 세워보았다.
“신비세계와 신비세계 사이에 존재하는 그 방대한 차원의 우주. 그 자체에 존재하는 흐름 같은 것은 아닐까?
그는 상상했다.
만약 차원의 우주가 흐르는 물 같은 것이라면?
마나의 태양을 중심으로 차원의 우주 자체가 뱅글 뱅글 소용돌이를 치고 있는 것이다.
각 신비세계는 그 소용돌이에 휘말려서 둥둥 떠내려가고 있는 것이고······.
하지만 그는 곧 종이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만다.
“아냐! 이게 아니야!”
차원의 소용돌이? 말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법적이지 못했다.
일단 관측이 불가능하지 않은가? 만약 차원이 소용돌이 치고 있다면, 세계의 바깥을 관측하고 측정할 때, 그 흐름의 차이가 느껴져야 했다. 흐름이라는 건 균일할 수가 없는 것이니까.
물론 차원의 흐름이기 때문에 물의 흐름과는 양상이 다르다라고 가정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건 편의주의적인 가정에 지나지 않는다.
관측할 수 없고, 증명할 수 없이, 그냥 머리로 쌓아올린 이론에 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이것은 마법적이지 못하다.
마지막 강의에서 페르세타는 분명히 말했다.
진리라는 것은 ‘관측’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그리고 여기에서나, 저기에서나 동일하게 작용해야 한다고.
차원의 흐름을 가정하는 건 마치 5개의 상계만이 특별한 법칙을 따르기에 좌표를 특정하지 못한다고 말했던, 지난날의 그 어리석은 대답과도 비슷한 것이었다.
“그럼 뭘까······. 신비 세계 자체가 마나의 태양 주위를 돌고자 하는 속성이 있다는 건가?”
살리넬르는 또 한참을 고민하고 수식을 적어내렸다. 그리고 종이를 찢어버렸다.
“아냐! 이게 차원의 소용돌이를 가정하는 거랑 뭐가 다른데! 관측할 수 없어! 증명할 수 없어! 이건 아니야!”
그럼 뭘까?
동력. 신비세계가 움직이는 동력. 그건 어디에서 기인하는 걸까?
만약 차원의 우주 자체도 아니고, 신비세계에서 기원하는 것도 아니라면, 마나의 태양이라는 말인가?
마나의 태양이 모든 신비세계를 휘두르고 있는 건가?
‘어······?’
살리넬르는 여기에서 일말의 가능성을 느꼈다.
‘그럴······ 수도 있지 않나? 마나의 태양은 무한한 마력의 원천. 그곳에서 나오는 마력이 어떤 작용을 통해 모든 신비세계를 휘두르고 있는 거라면······?’
뭔가. 뭔가. 진리에 한 걸음 다가선 것만 같은 감각이 그를 휘어잡았다.
무엇보다 이것은 측정이 가능하고 증명이 가능하지 않은가?
설명도 아주 간단하고 아름다워졌다.
신비세계를 움직이는 힘은 마나의 태양에서 날아오는 마력이다.
그것은 마치 바람이 물 위의 범선을 밀어내 듯, 신비세계를 움직이게 한다.
그렇다면······. 마나 태양의 마력을 측정하고, 그 마력이 어떻게 신비세계를 밀어내는지를 관찰하고 기술한다면······ 증명도 가능하다!
살리넬르는 홀린 것처럼 벌떡 일어섰다. 칠판에 빼곡하게 적혀 있던 수식을 지우고 광기의 춤을 추듯이 온몸을 흔들며 새로운 수식을 그 위에 적어나갔다.
그가 점점 뜨겁게 달아오른다.
“공전의 원리. 그 힘의 작용방식. 이것만 알 수 있다면······. 이걸 이용할 수만 있다면······! 엄청난 혁신이 가능해진다!”
살리넬르는 떠오르는 것을 마구 메모했다.
그 중엔 이런 내용도 있었다.
– 공전의 비밀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 세계 바깥을 공전하는 인공적인 구조물을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구조물에선 차원을 지나며 산란되지 않은, 순수한 마력과 각 신비세계의 주파수를 받아볼 수 있다. 그걸 잘만 사용한다면······ 엄청난 기적을 일으키는 대마법도 손쉽게 만들어낼 수 있으리라······!
장밋빛 미래가 그의 열정을 더욱더 뜨겁게 달아오르게 했다.
한 시간.
두 시간.
완전한 몰입 속에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투욱······.
살리넬르는 분필을 떨어뜨렸다.
얼굴을 감싸쥐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냐······. 이것도 아냐······.”
그는 알려진 모든 지식을 동원하여 마나 태양의 마력이 신비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을 탐구했다.
하지만······. 도무지 그런 경우의 수를 찾을 수 없었다.
마력은 바람이 아니고, 신비세계는 바람에 부풀어오르는 돛이 아니었다.
마력은 차원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통과하고 때로는 산란한다.
만약 마력이 세계를 밀어냈다면, 인간계는 마나 태양의 주위를 도는 게 아니라 그 너머로 멀리 밀려가야 하지 않았을까?
애초에 인간계를 살아가는 뭇 존재들 역시, 마력에 짓눌려서 죽어버리지 않았을까?
“아······. 아아······.”
분명 뭔가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빠르게 멀어져간다.
“마나 태양 자체가······. 세계를 움직이게 한다. 마나 태양이······.”
어쩐지 그 생각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하지만 마나태양의 무엇이, 어떻게 세계를 움직이게 하는 것인지, 그것만큼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살리넬르는 다시 일어서서 분필을 쥐고 심상의 도구를 작동시켰다.
차원의 우주를 관측하기 시작한다.
처음엔 목숨을 걸어야 했던 이 작업도 지금은 무의식적으로도 해낼 만큼 자연스러워졌다. 심상의 도구를 점점 더 정밀하게 발전시킨 덕분이었다.
곧 그의 심상 속에 여러 세계가 스쳐지나가기 시작했다.
정령계. 환요계. 요정계. 명계. 설화계······.
그것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살리넬르는 절망에 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나 태양에서 비롯한 힘이 맞기는 한 걸까······? 그건 너무 이상하다.”
그래. 이상했다.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
만약 마나 태양에서 비롯한 하나의 힘이 신비세계들을 움직이고 있다고 가정을 하자.
그럼 신비세계들의 움직임을 설명하기가 어려워졌다.
가령 신계와 마계는 영수계와 설화계보다 더 크고 밀도도 높다.
물체에 비유하자면, 더 크고 무거운 물건이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왜 더 크고 무거운 신계와 마계가 더 작고 가벼운 영수계나 설화계보다 빠르게 마나 태양의 주위를 공전한단 말인가? 똑같은 힘이 작용한다면, 크고 무거운 것이 느리고 작고 가벼운 것이 빠른 게 정상 아닌가?
신계와 마계가 더 가깝기 때문에?
가까운 만큼 더 큰 힘이 작용하고 있어서?
그래. 그럴 수 있다.
그렇다고 치자.
그런데 또 문제가 생긴다.
명계는 설화계보다 더 크고 무겁다.
앞선 가정을 따른다면, 명계는 설화계보다 한참 더 느려져야 했다.
명계의 위치는 설화계보다 마나 태양에서도 더 먼데다가 심지어 더 크고 무거웠으니까.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마치 무게따위는 관계가 없다는 것처럼, 명계는 딱 거리에 비례하는 만큼만 느려졌다.
인간계와 정령계를 생각하면 더 이상했다.
정령계는 인간계보다 훨씬 작고 가볍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령계가 인간계의 주위를 도는 거지? 만약 마나 태양에서 뿜어진 어떤 힘이 신비세계들을 휘두르고 있는 거라면, 가벼운 정령계는 벌써 멀찌감치 날아갔어야 정상이 아닌가?
이건 마치······. 무거운 쇠공과 가벼운 가죽공을 같은 힘으로 힘껏 후려쳤는데, 두 공이 똑같은 거리를 똑같은 속도로 날아간 것과 같았다.
말이 되지 않는다. 쇠공은 조금, 가죽공은 멀리, 그렇게 날아가야 하지 않나?
“······마나 태양이 근원이 아니라는 말인가? 아니면 마나태양은 각각의 신비세계를 저마다 다른 힘으로 밀고 있다는 말인가······? 이상해. 너무나 이상하다.”
살리넬르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다시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런 그의 귀에 어느새 들어왔는지 알 수 없는, 페르세타의 목소리가 들렸다.
“잘 하고 계십니다.”
“페, 페르세타 선생?”
화들짝 놀라는 살리넬르를 향해 페르세타는 활짝 웃어보였다.
“안다는 것은, 지극히 작고 유한한 우리의 직관을 뛰어넘는 과정입니다. 이 작은 세계에서 올려다보면 온 세상이 우리를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니 내 자신을 넘어서는 다른 시각을 취하고, 직관을 넓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실은 세상이 아닌, 우리가 회전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페르세타는 살리넬르가 칠판에 적어둔 온갖 의문점들을 바라봤다.
특히, ‘마나의 태양은 각 세계를 서로 다른 힘으로 밀고 있다는 말인가? 무거운 것은 더 강하게, 가벼운 것은 더 약하게?’라고 적어둔 부분과 ‘공전의 비밀을 알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 세계 바깥을 공전하는 인공적인 구조물을 만들 수도 있을지 모른다.’라고 적어둔 부분을 아주 유심히 들여다보며 미소 지었다.
“살리넬르님. 그거 아십니까?”
“뭘······. 말이요?”
“저는 당신이 아주 좋습니다.”
그 말에 살리넬르는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나는 당신이 아주 싫습니다.”
진심이 뚝뚝 묻어나는 살리넬르의 질색에, 페르세타는 그저 또 한번 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