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48)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48화(48/171)
48화 조우
페르세타는 주기적으로 어머니 로오루아와 티타임을 가졌다.
요정계의 노래국화가 만개한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그에게도 무척이나 행복한 것.
다만 어머니의 질문은 그가 느끼기에 조금 갑작스러울 때가 있었다.
“페르세타.”
“네?”
“그래서 누구니?”
“네?”
“누가 제일 마음에 드니?”
“누가요……?”
“그 왜 있잖니. 성녀님이랑, 왕세녀님이랑, 애시 남작 영애.”
“아…….”
페르세타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셋 중 누가 제일 마음에 드냐고?
답하기 어려웠다.
성녀 샤라 엘리프는 지혜가 깊다. 서로 다른 것들 사이의 연결성을 찾아내는 능력이 일품. 그건 수준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더 빛을 발할 능력이었다.
한편, 왕세녀 라냐 비셰나는 탄탄한 기본기로 우직하게 나아가는 맛이 있었다. 샤라 엘리프처럼 한순간의 깨달음으로 모든 것을 꿰지는 못 할지 몰라도, 한순간도 멈춤 없이 꾸준히 성장한다.
누군가 뛰어난 영감으로 골격을 세우면 성실하게 그 사이의 빈틈을 메울 수 있는 능력. 그것 역시 마법의 발전엔 필수적인 재능이었다.
마지막으로 비앙카 애시는…… 욕심이 있다. 재능으로 따지면 성녀와 왕세녀를 반반 섞어 놓은 듯하다. 그런데 그녀는 언제나 자신을 한계까지 쥐어짜며 예상 이상의 성취를 만들곤 한다. 자기 건강도 돌보지 않는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이제 피안의 쉼터가 있지 않은가? 길게 보면 어쩌면 가장 잠재력이 큰 건 비앙카 애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어렵네요.”
숙고 끝에도 페르세타는 결국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래도 로오루아는 그저 흐뭇하게 웃는다.
“그래. 잘 생각해 봐. 그리고 네가 아니더라도, 좋은 사람 같으면 네 동생 즈바르트한테 소개도 해 주고.”
“네? 아, 네…….”
페르세타는 그 말이 잘 이해가 되진 않았다. 즈바르트는 마법사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왜?
아……. 친구로 지내는 것도 나쁠 건 없어서 그러시나?
그렇게 생각하며 페르세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화제로 즈바르트가 나온 탓일까? 로오루아의 얼굴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런데 난 네 동생이 걱정이다. 험한 칼라산맥에서 혼자 괜찮을까?”
“걱정 마세요. 위험해지고 싶어도 위험해질 수가 없어요.”
“괴물들은 그렇다고 쳐도. 엘프가 있지 않니? 엘프는 세계수가 있는 숲에서는 절대적으로 강해. 뛰어난 전사이자 사냥꾼들이지. 거기다 지혜롭기까지 하고. 즈바르트와 통신을 해 보니 엘프 레인저들과 몇 번 조우했다더구나. 몹시 적대적이었다는데……. 걱정이야.”
그 말에 페르세타는 웃고 말았다.
“엘프요? 엘프들은 전혀 걱정할 필요 없어요.”
그러자 테이블 한 켠에서 쿠키를 두 손으로 들고 뇸뇸 먹고 있던 요정 공주 히나리리리아네도 얼른 동의를 표한다.
– 맞아! 로오루아 공. 엘프들은 전혀 걱정할 필요 없도다.
“어머? 그래요?”
– 응. 걔네들은 단순하니라.
“엘프가 단순하다고요?”
지혜롭고 까다롭고, 자존심 드높기로 유명한 게 엘프인데…….
하지만 페르세타도 히나리리리아네도 전혀 걱정할 게 없다는 태도를 고수했다.
– 괜찮대두.
“걱정 마세요 어머니. 엘프들은 세계수를 신성시하잖아요.”
“그렇지?”
“그들이 세계수를 신성시하는 이유가 있거든요.”
그 말을 하며 페르세타는 히나리리리아네와 의미심장하게 시선을 교환했다.
* * *
“드디어 잡았다. 범사울!”
칼라산맥의 깊은 곳.
즈바르트는 페르세타에게 받은 지도를 바탕으로 괴물들을 차근차근 몰아 소탕하는 중이었다.
목표는 괴물의 절멸.
후방에서 마법사들이 활발하게 땅을 파내고 있었기에, 즈바르트의 목표는 괴물을 한 마리도 놓치지 않아 후방을 절대적으로 보호하는 것이었다.
물론 후방의 인력들은 모두 마법사들이기에 괴물 몇몇쯤 놓친다고 큰일이 벌어질 리는 없었다. 오히려 괴물들이 큰일 나겠지.
하지만 즈바르트는 이걸 자존심의 문제라 생각했다.
그는 페르세타가 준 지도를 바탕으로 모든 괴물의 위치를 철저히 파악하고 완벽한 동선으로 놈들을 몰아 사냥했다. 실제로 단 한 마리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즈바르트는 지난 2주간 잡지 못했던 범사울과 웨어 타이거 수십 마리를 마침내 막다른 길에 몰아넣는 데 성공했다.
엄밀히 말하면 막다른 길은 아니었지만, 그 너머는 엘프의 영역. 범사울과 웨어 타이거들도 감히 그곳을 침범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
엘프들은 세계수의 힘이 미치는 숲 안에서는 절대적인 힘을 자랑했으니까.
결국 괴물들은 선택을 내렸다.
엘프와 싸우느니, 저 건방진 인간들과 싸우겠다고.
크르르르-!
수십 마리의 웨어 타이거들이 상체를 부풀리며 송곳니와 기다란 손톱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에 새하얀 털을 나부끼는 3미터 크기의 범사울이 커다란 손을 펼치며 싸울 자세를 잡는다.
범사울. 상체는 백호의 모습이고 하체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얼핏 보면 웨어 타이거처럼 이족보행 하는 호랑이처럼 보이지만 사실 본질적으로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
홀로 멋들어진 바지를 입은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놈은 설화계에 그 기원을 둔 존재로, 인간을 뛰어넘는 지혜를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무예 솜씨도 대단해서 어지간한 달인도 그 앞에선 순식간에 갈기갈기 찢기게 된다.
하지만 즈바르트는 전혀 겁먹지 않았다.
‘여우달. 오늘도 잘 부탁한다.’
페르세타와 함께 환요계에서 받아 온 구미호의 첫 번째 꼬리 여우달.
그 강대한 기프트가 즈바르트의 몸을 타고 퍼진다.
“기기화(欺己火).”
화르르-
즈바르트의 코와 입에서 밝은 노란색의 불꽃이 피어오르고, 곧 그의 몸 전체에서 불길과도 같은 아지랑이가 무럭무럭 치솟았다.
세상을 속이는 불꽃으로 자기 자신을 속여,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게 만드는 술법.
크허어어엉!
범사울이 포효하며, 인간의 인지를 벗어나는 속도로 달려들었지만, 즈바르트는 오히려 그보다 더한 힘과 속도로 범사울을 압도했다.
쩌어엉!
까아앙!
즈바르트의 대검과 범사울의 손톱이 부딪힐 때마다, 범사울은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서기 바빴다.
범사울은 절망 속에서 쇠를 긁는 듯한 목소리로 인간의 말을 뱉어 냈다.
“크륵! 어떻게……! 크르륵! 한낱 인간이!”
“한낱 호랑이도 너처럼 잘 싸우는데 뭐.”
즈바르트는 범사울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통제하여 놈을 전장에서 떨어뜨렸다.
그렇게 일반 병사들이 상대하기 어려운 위협이 제거되자, 즈바르트의 병력들은 압도적인 마법 무기들을 앞세워 수십 마리의 웨어타이거들을 휩쓸기 시작했다.
“천벌! 발포!”
“천벌 발포!”
선임병사들의 지시에 병사들이 일제히 짊어지고 있던 금속 통으로 하늘을 겨누며 끝에 달린 심지를 잡아당겼다.
퍼어어엉!
폭죽 소리 같은 소음과 함께, 통에서 발사된 마법체들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마법체들은 마나의 귀소성에 의해 떠오르다가 스스로 추진력을 내며 적당한 위치에 자리를 잡더니 그곳에서 힘과 물질로 구현화되었다.
투명한 마나 덩어리였던 것이 뜨겁게 타오르는 작은 칼날들이 되어 땅에 내려꽂힌 것이다.
콰가가가각!
“캬아아아아!”
“키아아아아!”
웨어울프들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뜨거운 칼날에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순식간에 튼튼한 피부가 찢기고 뼈가 쪼개졌다. 뜨거운 열기에 살이 익어 움직임이 둔해졌다.
“비약 섭취! 돌격!”
“돌격!
병사들은 바로 그 타이밍을 노렸다. ‘각성의 비약’을 마신 후 훨씬 더 예민해진 감각과 움직임으로 웨어 타이거들을 유린했다.
“캬아아악!”
웨어 타이거들은 강력한 괴물들이었다. 페르세타가 병사들의 갑옷에 걸어 준 가호를 찢어발길 수 있을 정도의 막강한 힘과 속도를 갖춘, 괴물 중의 괴물들.
하지만 지금은 속절없이 도살당할 뿐이었다.
즈바르트의 병사들은 더 이상 몇 달 전의 어리버리한 신병들이 아니었으니까.
그들은 페르세타가 걸어 준 가호 덕분에 적극적으로 싸우며 빠르게 전투 실력을 늘릴 수 있었다.
그 후에는 성녀와 왕세녀 그리고 비앙카와 일리안느가 개발한 각성의 비약을 마시며 감각을 강화해 어려운 전투 기술도 금방금방 익혀 냈다.
그들은 이제 온갖 신무기를 내 몸처럼 다루는 전투의 달인이자 살육의 전문가들이었다.
“캬아아아!”
웨어울프들은 구슬프게 울부짖으며 가죽과 고기가 되어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그들의 우두머리인 범사울의 말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물론 놈은 설화 속의 괴물답게 녹록지만은 않았다.
수없이 검에 찔리고 베여도 계속해서 몸을 재생하며 버텼다.
끝까지 흉성을 터뜨리며 즈바르트를 위협했다.
녀석의 폭발적인 발길질과 날카로운 발톱이 허공을 찢을 때마다 나무들이 수수깡처럼 부러지고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울었다.
그러나 마침내 즈바르트가 피워 낸 불꽃 앞에선, 그런 설화 속의 괴물도 속절없었다.
“층화(層火).”
세계의 법칙을 속여 층층이 쌓아 올린 불꽃.
겹쳐지며 끝없이 뜨거워지는 불합리한 불꽃.
그 새하얀 불이 범사울의 몸을 잡아먹었다.
“끼에에아에에에아!”
놈의 비명 소리는 지금까지 중 가장 처절하고 끔찍한 것이었다.
새하얗게 타오르는 층화에 휩싸여서 바닥을 뒹굴며 타들어 가는 범사울.
즈바르트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이미 재가 되어 사라지는 범사울에게는 딱히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이길 것을 알았고, 실제로 그리되었으니까.
그보다는 새로 나타난 손님들에게 관심이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숲의 존재들이여.”
스르륵.
스륵.
즈바르트의 인사가 신호가 된 것처럼, 나무 그늘 사이에서 하늘빛과 연둣빛 갑옷을 걸친 존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의 갑옷은 마치 부드러운 금속성의 천으로 지은 듯했다.
갑옷 특유의 딱딱하고 무거운 느낌이 전혀 없이 몸을 착 감쌌다.
저런 걸로 창칼을 막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지만, 어쨌든 갑옷은 갑옷인지 몸 곳곳을 잘 가렸고 하늘거리는 모자처럼 생긴 투구도 있었다.
그들은 즈바르트와 병사들을 향해 활을 겨눈 채로 눈을 매섭게 번뜩였다.
그들 중 대장으로 보이는, 가장 화려한 갑옷에 깃털 장식까지 달고 있는 엘프가 서늘한 눈으로 선고하듯 말했다.
“인간. 너희는 우리의 경고를 무시했다.”
“아뇨. 저희는 당신들의 영역을 침범한 적이…….”
즈바르트가 뭐라고 설명을 하려 했지만 엘프들은 이미 들을 마음이 없는 듯했다.
“따라서 집행한다. 우리의 숲을 위협한 해충들을 제거한다.”
그리고 엘프가 선언하는 순간,
구우우웅-!
주변의 나무들이 마치 악기처럼 공명하며, 거대한 진동을 만들어 냈다.
그 모습을 본 병사들은 겁에 질렸다.
“헉……! 여, 여기가 세계수의 영역이었습니까?”
“여기에 있으면 우린 다 죽습니다!”
“당장 도망쳐야……!”
막강한 마법 무기를 가진 병사들이었음에도, 자신들이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세계수의 영역 내에서 엘프가 얼마나 강해지는지는 구구절절이 수많은 전설로 전해지는 이야기였으니까.
즈바르트가 입술을 깨물며 물었다.
“방금 이곳을 세계수의 영역으로 포함시킨 겁니까? 처음부터 우리를 잡으려고 영역을 넓힐 준비를 해 놨던 겁니까? 우리가 싸우는 틈을 타서 포위를 한 거고요?”
그는 이게 상당히 비열한 술수라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타협과 대화의 여지는 없고 그저 기회만 있으면 자신들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벼르고만 있었다는 뜻이 되니까.
그리고 그런 태도는 엘프의 말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시끄럽다. 해충에 불과한 인간과 나눌 대화 같은 것은 없다. 너희를 모조리 거름으로…….”
이 대목에서 즈바르트는 느꼈다. 페르세타가 옳았다고.
페르세타는 말했었다.
‘즈바르트. 엘프들을 만나면 대화할 생각을 하지 마. 말이 통하지 않을 테니까.’
‘그럼? 엘프들과 동맹을 맺을 거라면서?’
‘맺어야지. 하지만 그 방법이 대화일 필요는 없잖아?’
‘응……?’
그리 말하며 페르세타가 맡겼던 물건.
즈바르트는 주저 없이 금속 구체를 품에서 꺼내 비틀었다.
딸깍!
소리를 내며 구체가 비틀리는 순간, 마법이 발동된다.
우우우웅-!
구체 위로 떠 오른 빛나는 두 개의 원통이 허공을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각각 두 개의 방향으로 고정된다. 그리고 퍼져 나가는 룬문자들.
후우웅-!
즈바르트는 기사였으나 동시에 마법사 가문의 차남. 그랬기에 그도 이게 무슨 마법인지는 대충 알아볼 수 있었다.
‘공명 마법……?’
아마도, 요정계와 정령계에 좌표를 맞추고 공명을 극대화하는 종류의 마법.
‘이걸 왜……?’
엘프들은 당장이라도 공격을 시작할 기세인데……. 전투와 관계없는 이런 공명 마법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이었다.
“스으으읍…….”
“하아아아…….”
활을 치켜 들고 살기를 뿜어내던 엘프들이 돌연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크게 들이쉬기 시작했다.
“하아아……. 죽인다…….”
“으아아……. 히. 히히.”
스륵.
스르륵.
그들은 하나둘 활을 내리고 히죽히죽 웃기 시작했다.
쿵! 콰당!
심지어 나무 위에 있다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엘프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아파하지 않았다.
“하하하하.”
“아……. 스으으읍. 하아…….”
그저 크게 공기를 들이켜며 바닥에 대자로 뻗어 하하하 웃어 댈 뿐이었다.
‘뭐야.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거지?’
즈바르트가 당황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갑자기 엘프들이 나타난 것도 이상했는데…… 갑자기 다 죽일 것처럼 굴더니, 이젠 신경도 쓰지 않고 히히 웃고 낄낄거리며 나무에 걸터앉아 열심히 호흡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 선임 병사 중 하나가 즈바르트에게 다가와 속삭인다.
“저……. 대장.”
“응?”
“저, 예전에 여행할 때 이런 걸 본 적 있습니다.”
이런 이상한 광경을 본 적 있다고?
즈바르트가 빤히 들여다보자 선임 병사가 꿀꺽 침을 삼키며 말했다.
“그. 술에 중독된 사람이 이상한 약초액을 진탕 마시면 이 비슷한 행동을 보이던데요……?”
어?
즈바르트가 흠칫 놀라 주위를 다시 돌아보았다.
“히히…….”
“하……. 좋다.”
“스으으읍. 하아아아…….”
그곳에는 공명 마법으로 인해 진해진 요정계와 정령계의 기운을 마음껏 들이켜며 헤실헤실 웃고 있는 엘프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