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izard has finished closing the store RAW novel - Chapter (49)
천재 마법사가 폐관을 마침-49화(49/171)
49화 이제 알겠다
엘프들은 평화를 사랑하지.
하지만 난 그 평화가 싫어서…….
끊었다네.
? – 숲을 등진 엘프 영웅, 에라루아린의 회고록.
*그가 끊었다는 평화가 무엇인지. 어째서 평화를 끊었다는 건지. 그에 대해선, 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 * *
사람들은 엘프들의 성격을 세 가지로 묘사하곤 했다.
첫째. 그들은 지극히 종교적이다.
반드시 세계수 주위에 모여 살며 세계수를 신성시하여 숭배한다.
세계수에 대한 엘프들의 경외는 상상을 초월해서 사실상 그들이 하는 모든 행동이 세계수를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세계수를 지키기 위해 무장하고, 세계수를 키우기 위해 숲을 가꿔서 영역을 지키고 가능하다면 넓혀 나간다.
그들의 하루, 한 달, 일 년은 모두 세계수를 위한 헌신으로 가득히 채워진다.
둘째.
그들은 평화를 사랑한다.
인간들과 달리 물욕도 없고 권력욕도 없다. 오로지 세계수의 품 안에서 숲을 가꾸고 자기들끼리 어울려 살아가는 것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때문에 먼저 자극하지 않는 이상 엘프와 싸울 일은 없다.
셋째.
그들은 지혜롭다.
그들은 인간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미래를 꿰뚫는 수많은 예지를 시로 표현해 내곤 한다.
엘프들의 바로 이러한 특성 탓에 엘프가 필연적으로 인간을 미워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도 널리 퍼져 있었다.
그들은 종교적인 만큼 융통성이 부족하고 외부에 배타적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만큼 자기 욕심을 못 이겨 항상 싸우고 훔치고,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을 경멸한다. 지혜로운 만큼 인간의 허위와 기만을 꿰뚫어 본다. 이런 식의 논리였다.
이 설명은 아주 그럴 듯했기에, 여태껏 즈바르트도 그럴 거라고만 생각해 왔다.
정말…….
그런 줄 알았다.
“스으으읍- 하아아- 아……. 정말 평화롭군. 인간들의 터전이 이토록 평화로울 줄은 몰랐소.”
베리테 백작령으로 귀환하는 길에 동행한 엘프 사절단만 아니었다면, 아직도 그렇게만 믿었을 것이다.
‘……평화롭다고?’
즈바르트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쿠구구궁!
쿠르르르!
그들은 지금 공사가 한창 벌어지고 있는 칼라산맥의 끝자락 쪽을 지나는 중이었다.
수많은 마법사가 개미 떼처럼 달려들어 나무를 밀고 땅을 파헤치며 지진을 일으키고 분진이 사방으로 흩날리고 있다.
인간의 기준으로도 평화와는 아주 먼 풍경이었고, 엘프가 본다면 자연을 훼손한다며 분노할 만한 광경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 엘프들은 그런 것 따위 일절 신경도 쓰지 않고 그저 습-하- 습-하- 흙먼지를 들이켜며 평화롭다는 말만 연신 되뇌는 것이 아닌가.
“아, 저 혹시……. 실례가 아니라면 그 국화차 한 잔만 더 얻어 마실 수 있겠소?”
현재 즈바르트를 따라오는 엘프 사절단은 총 11명.
그 중 즈바르트의 옆에 서 있는 엘프는 장로라고 불리는 800살이나 먹은 엘프였다.
그런데도 얼굴만 보면 주름이 멋들어지게 잡힌 미중년 정도로 보일 정도였으니……. 과연 세간에 전설처럼 떠도는 엘프들의 미모는 과장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즈바르트는 생각한다.
미모를 제외한 다른 모든 이야기는, 죄다 잘못 알려진 것이었다고.
“아. 예. 드시죠.”
즈바르트는 품에서 보온병을 꺼내 요정계의 노래 국화차를 한 잔 따라 주었다.
이 역시 페르세타에게 받은 것이었다.
마법을 발동해서 엘프들이 적대 행위를 그치면 이 차를 대접하라며 건네줬다. 그러면서 페르세타는 이렇게 덧붙였다.
‘이 차 한 잔이면, 넌 신이 될 거야.’
그게 무슨 뜻인가 했는데…….
호르륵.
“하아아아- 현묘하다. 현묘해. 아아, 미래가 보이는구나.”
엘프 장로의 몽롱하게 풀어진 눈동자를 보니 그 뜻이 저절로 이해되었다.
“즈바르트 님께서는 미래를 보신 적 있소?”
“……아뇨. 저는 현재를 보기에도 급급한 둔재라서요.”
“오호. 깊고도 깊도다. 허어- 그렇지. 과거도 미래도 모두 현재에 있는 것을. 놀라운 지혜로다.”
“…….”
“존재한다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오. 그렇지 않소? 즈바르트 님?”
“때로는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어허. 보이는구나. 아아. 미래가 보여. 존재. 그것은 고통 속에 피어난 꽃이니, 꽃이 흔들리며 반짝이는구나. 아아. 아름다운 색채여.”
“…….”
국화차를 마신 장로는 처음에는 더 활달해져서 대화를 하는 듯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즈바르트는 역시나 그게 대화가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게게 풀린 눈동자로 미래가 보인다는 헛소리를 하며, 끝없이 이상하기 짝이 없는 시 비슷한 것을 입으로 읊어대는 장로.
‘이딴 게…… 엘프의 지혜? 예지?’
즈바르트가 평생 키워 왔던 엘프에 대한 환상이 와장창 깨지는 순간이었다.
* * *
엘프 사절단 11명은 풍성한 선물을 들고 백작령에 들어섰다.
수많은 마법사와 시민들이 전설 속의 엘프를 구경하기 위해 거리로 몰려나왔다.
“허억…….”
“세상에…….”
“엘프가 요정의 후손이라 하더니……. 정말…….”
시민들은 엘프들의 미모에 깜짝 놀랐다. 이젠 시민들과 많이 친해진 요정들이 넋이 나간 그들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질투했지만, 시민들은 자꾸만 엘프들의 얼굴에 눈이 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요정들도 예뻤다. 그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요정은 너무 작은 데다가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소년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다.
반면에 엘프는 사람보다도 좀 클 정도로 늘씬했고, 젊은 남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요정이 마냥 귀엽다면, 엘프에게서는 눈을 뗄 수 없는 이끌림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저 걷는 모습 하나만으로도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치명적 매력.
하지만 한 가지.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모습이 있었다.
“근데 왜들 저렇게 숨을 크게 마시지?”
“그러게……? 엘프들 특유의 호흡법인가?”
습- 하.
스읍- 하.
엘프들은 꼭 숨을 못 쉬어서 죽은 귀신들처럼 열심히 코를 벌름거리며 사방의 공기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 쟤네들은 바보들이라서 그래!
– 맞아! 쟤네가 뭐가 좋다고! 쟤네는 그냥 요정계와 정령계 마력이라면 정신을 못 차리는 바보들이라고!
– 그만 봐!
요정들이 질투를 하며 진실을 쏘아 냈지만, 시민들은 그런 요정들을 그저 귀엽게 보며 웃어넘길 뿐이었다.
한편, 마법사들은 시민들과는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달랐다.
“허어……. 저것이 그 전설의 은라(銀羅)인가?”
“특별한 합금인 삼라은으로 짠 비단이지? 저토록 가볍고 아름다운 천일 뿐인데……. 그 단단함과 질김은 통짜 강철에 맞먹는다는…….”
그들은 엘프들이 가지고 온 선물에 관심을 주었다.
“설마 저 병 안에 담긴 건 만상주(酒)?”
“허어. 한 모금만 마셔도 우울증이 싹 낫는다는 기적의 술이 아닌가?”
?”저건 엘프들의 도자기입니다! 허어……. 저리 영롱한 빛깔이 있다니.”
“저기에 음식을 담으면 절대 상하지 않는다면서요?”
하나같이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던 절세의 보물들이 엘프들을 따라오는 자동 수레에 그득그득했다.
수레부터가 특별했다, 자동 수레 자체는 이제 베리테 영지의 마법사들도 쉽게 만들어 내는 것이었지만, 엘프들의 수레는 바퀴가 없이 둥실둥실 떠 있었으니까. 지형의 영향을 받지 않는 매우 우수한 수레가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즈바르트와 엘프 사절단이 백작성으로 사라질 때까지 사람들은 눈이 빠지라 그 광경을 구경하고 곱씹기 바빴다.
백작성 앞에서는 페르세타와 플리안 백작이 나와 웃으며 엘프들을 맞이했다.
그들을 본 엘프들은 몸을 흠칫 떨었다.
“앗……?”
“공주님?”
숨을 크게 마시며 헤롱헤롱 걷던 엘프들이 황급히 자세를 바로 하고 예를 취했다.
오른쪽 손등을 이마에 대고 깊이 허리를 숙이는 엘프들 특유의 인사법.
그건 모두 페르세타의 어깨 위에 앉아 있는 요정 공주 히나리리리아네 덕분이었지만, 시민들과 마법사들이 그걸 알 리가 없었다.
“와! 과연! 우리 백작님과 도련님은 엘프들에게도 존경을 받는구나!”
“역시!”
그렇게 플리안과 페르세타의 인기와 권위는 또 한층 올라가게 되었다.
* * *
페르세타가 엘프들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스승, 바르덴테의 가르침 덕분이었다.
바르덴테는 현자답게 마법뿐만 아니라 역사와 사회 정치 등 모든 학문에 정통해 있었다.
단지 책으로 알게 된 지식이 아니라 오랜 세월 직접 겪으며 스스로 알아내고 밝혀낸 지식들로 그것은 아주 단단하고 값진 것들이었다.
“내 젊은 시절 엘프들의 숲에 방문한 적 있었지.”
바르덴테는 추억을 더듬으며 그리 말했다.
“세간에 엘프는 종교적이고 평화를 사랑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내가 느낀 건 좀 달랐어. 그들은 뭐랄까……. 일종의 중독자들 같았지.”
바르덴테는 엘프들의 습성을 정확히 꿰뚫고 스스로 가설을 세우고 나름대로 근거도 찾아 놓은 상태였다.
“그런 가설이 있어. 아주 먼 옛날에는 정령계가 인간계와 하나였다는 가설. 그리고 이런 기록도 있지.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쯤에는 요정계와 정령계는 인간계와 크게 공명을 이루었다는 내용이야. 그때는 이 땅에 요정과 정령이 아주 흔했다고 하지.”
바르덴테의 가설에 의하며 엘프라는 종족은 2,000년 전 인간계에 정착한 요정의 후손이었다.
다만 정착 과정에서 그들은 정령계의 기운에 영향을 받았고, 또 먼 옛날, 정령계가 분리되기 이전의 흔적이 섞여 들어가 엘프들의 육신을 재구성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바르덴테는 엘프뿐만 아니라 세계수도 마찬가지의 과정으로 탄생했다고 보았다. 요정들을 탄생시키는 요정 나무가 이 땅에 적응하며 정령계의 기운과 흔적이 섞여서 거대한 세계수로 재탄생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던 페르세타는 이후 여러 세계와 교류를 하며 기록들을 열람했고 바르덴테의 가설이 진실에 가까운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엘프들의 특이한 습성이 탄생한다.
결국 엘프란, 인간계에 살게된 정령계와 요정계의 후손. 그들은 본능적으로 요정의 기운과 정령의 기운을 갈망하게 되었다.
그 갈망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너무나 커져서, 그들의 모든 행동 양식을 결정하게 될 정도에 이르고 만다.
세계수는 정령계, 그리고 요정계와 공명하는 식물.
그래서 엘프들은 세계수를 신성시여기고 세계수를 키우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1년에 한 번, 세계수의 꽃이 피면, 요정계와 정령계의 공명이 최대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그날이 엘프들의 축제일이었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요정의 기운과 정령의 기운에 본능적인 환희를 느끼며 몸을 벌벌 떠는 날인 것이다.
그리고 꽃이 지기 시작할 때가 되면 엘프들은 세계수의 꽃잎을 잘 따다가 말려서 특별한 날에 그것을 태워 흡입하며 종교 의식을 치르곤 했다.
그 갈망은 너무나 거대해서 식욕, 성욕, 수면욕마저도 훌쩍 뛰어넘어 버리는 것.
엘프들은 자신들의 삶을 오롯이 세계수에게 헌신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니.
이들에게 지금의 베리테 백작령은 천국과 다르지 않았다.
향상된 좌표와 주파수 계산. 그리고 수많은 마법사의 연구로 현재 베리테 백작령엔 요정의 기운과 정령의 기운이 충만했으니까.
일주일에 한 번 벌일까 말까 하는 종교 의식이 1년 365일 벌어지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이 계속 습하습하 숨을 쉬며 걷는 이유이기도 했다. 낯선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다면, 더 평화롭게 늘어져서 엘프의 예지를 마음껏 뽐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페르세타는 엘프들과의 협상을 조금도 어렵게 여기지 않았다.
“허어……. 아들아. 엘프들이 듣던 것과는 많이 다르구나. 인간에게 굉장히 적대적이라 들었는데.”
플리안 백작이 헤실헤실 웃는 엘프들을 보며 페르세타에게 귓속말을 했다.
페르세타는 웃으며 대답했다.
“엘프들은 딱 한 가지에만 관심이 있거든요. 그것만 충족시켜 주면 저렇게 변합니다.”
“세계수 말이냐?”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저는 세계수보다 더 좋은 걸 가지고 있죠.”
둘이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엘프 장로는 페르세타가 내민 조약서를 헤실헤실 읽어 보고 있었다.
허나 그의 얼굴이 돌연 딱딱하게 굳는다.
헤실거리던 얼굴과 심각해지는 표정 사이의 괴리가 너무 커서 플리안 백작은 움찔 놀라고 말았다.
“플리안 백작님.”
“말씀하시지요. 장로님.”
플리안 백작이 긴장을 감추며 차분하게 말을 받는 순간, 장로는 뾰족한 음성으로 통보하듯 말했다.
“여기. 이 조건은 우리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오.”
그는 조약서의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찍어 눌렀다.
거기에는 세 가지 요구 사항이 적혀 있었다.
“세계수의 꽃과 가지를 거래하자니? 세계수는 거래의 대상이 아니오! 그리고 마을에 허가받은 인간의 체류 권한과 통행권을 달라? 이것도 말이 안 되오. 마지막으로 군사동맹을 맺고 작전권을 그대들이 가지겠다니……. 이건 사실상 우리 마을을 흡수 통합하겠다는 소리 아니요!”
엘프 장로가 분노를 담아 소리쳤다.
플리안 백작은 속으로는 크게 당황했으나, 겉으로는 평정을 유지하며 천천히 페르세타를 돌아보았다.
이 문제는 아들이 대신 설명해 줄 거라는 것처럼.
과연 페르세타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섰다.
“장로님. 그럼 그 밑에 다른 조건도 보시겠습니까?”
“이미 다 읽어 보았소. 나머지는 다 받아들일 수 있소. 이곳 베리테 백작령에 엘프 마을을 만들고 무제한적인 교류를 하는 것은 좋다 이거요. 그 대가로 노래 국화차를 받기로 했으니 우리에게도 좋은 일이지. 하지만 앞서 말한 세 가지 요구 사항은……!”
“그 대가로 우리가 뭘 지불하기로 되어 있죠?”
장로가 이맛살을 구기더니 조약서를 바라보며 말했다.
“말린 요령초(妖靈草)? 이게 무엇이요?”
그러자 페르세타가 품에서 연초 비슷한 물건 하나를 꺼냈다.
알 수 없는 풀들을 잘 말려서 빻고 그걸 마나지(紙)로 길쭉하게 말아 만든 것이었다.
페르세타가 그것을 장로 앞으로 슥 밀며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한번 해 보시죠. 제가 특별히 완벽한 비율로 배합한 물건이거든요. 좋을 겁니다.”
“으음……?”
“입에 물고 그냥 쭉 빨아들이시면 됩니다.”
엘프 장로는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요령초라는 것을 입에 물고 쭉 빨았다.
그 순간, 요령초의 끝부분이 붉고 푸른 마나로 기화하며 스르르 날아간다.
그리고,
“흐으으읍!”
엘프 장로가 두 눈을 부릅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의 눈동자가 머나먼 세계를 응시하듯 몽롱하게 풀어진다.
그리고 그의 등에서 희미한 빛을 뿌리는 날개가 돋아났다.
요정들의 날개와 비슷한 형태.
“아아…….”
장로는 요령초를 피우며 눈물을 주룩주룩 흘렸다.
“그렇구나……. 이제야 알겠구나……. 내가 누군지. 내가 무엇이었는지……. 아아…….”
그의 등 뒤의 날개가 진해지며 천천히 퍼덕인다.
아름다운 빛의 날개.
엘프가 날개를 펼치다니?
이건 엘프들조차 본 적 없는 현상이었고, 그 어떤 기록에도 남지 않은 일이었다.
페르세타조차 살짝 놀랐을 정도로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허나 이것은 증거였다.
먼 옛날, 그들이 요정에게서 발원한 종족이었다는 명확한 증거가, 수천 년의 시간을 거슬러, 이곳에서 발현한다.
“나는……. 나는 날 수 있구나…….”
하지만 실제로 장로가 날아오르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 빛의 날개는 그저 그들의 혈통에 잠들어 있던 흔적과도 같은 것일 뿐이라, 실제로 비행 기능은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장로는 이미 허공으로 둥실 떠오른 것처럼 몽롱한 표정이었다.
“자, 장로님?”
“장로님?”
“나, 날개가? 어찌 이런 일이?”
“그, 그렇게 끝내주나?”
멀리서 회담을 지켜보던 엘프들이 침을 꼴깍꼴깍 삼키며 장로를 불렀다.
장로는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그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보이느냐?”
“예?”
“안 보이느냐. 이 세상이……. 아아……. 세상은 이런 것이었구나. 나와 세상은, 이렇게 연결된 것이었어. 이제야 알겠다. 이제 알겠어.”
스으읍-
또 한 모금 요령초를 깊이 피우며 탄식을 내뱉은 장로는 조약서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러니까. 아까 그 요구 조건들을 들어주면 대가로 이걸 주겠다는 말씀이오?”
페르세타가 고개를 끄덕이자 장로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제 엄지손가락을 칼로 베어 조약서 위에 피로 된 지장을 찍었다.
“우리 마을이 나에게 맡긴 권리로 이 조약을 받아들이겠소. 아아……. 진작에 이것을 알았다면…….”
조약을 빠르게 해치운 장로는 소파에 깊이 몸을 묻었다. 그의 좌우로 빛의 날개가 아름답게 하늘거렸다.
페르세타는 조약서를 챙기며 아버지를 향해 속삭인다.
“이제. 칼라산맥을 정복하는 데 방해될 것은 아무것도 없겠네요.”
그 말에 플리안 백작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릴 뿐이었다.
“하아…….”
장로의 몽롱한 숨소리가 회담장에 메아리쳤다.